수타원 박인원 교무님
불러도 불러도 정다운 이름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교무님을 부르자니 한숨이 먼저 나오고 가슴이 아픕니다.
그간 우리 교당에 부임하셔서 대내외적으로 교당의 면모를 일신시키고 30, 40대 교도 확충을 비롯하여 철두철미한 계획과 몸을 아끼지 않은 실행 위주의 교화대불공에 큰 불을 지펴주시고 나아가 교단에서 큰일을 하리라 기대가 크던 수타원 박인원 교무님께서 병마를 얻으시어 치료를 위해 우리 교당을 떠나시게 되니 안타까움에 차마 말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덕진 교당을 더 젊고 활기차게 교화하시도록 교구장님께서 유임을 허락하셨다 해서 전 교도가 환호와 박수를 보냈던 것이 불과 두 달도 안 되는데 허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희들은 마치 어미를 잃은 어린 새끼들처럼 당황스럽고 잘 달리던 자동차가 고장이 난 것 같은 착잡한 기분입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녀로 출가하시어 수십 년 간을 제생의세의 험난한 길을 걸으시며 혈성을 다 바쳐 멸사봉공하시다보니 본인의 육신을 돌보실 틈이나 있었겠습니까. 저희들 또한 그간 교무님의 지도를 잘 따르고 심기를 편하게 해드렸는가 자문해 볼 때 미흡하기만 하여 반성이 되고 이 지경에 이르도록 교무님의 건강을 지켜드리지 못하였구나 하는 자책감으로 그저 민망하고 죄송합니다.
수타원 박인원 교무님
덕진 교당에 부임하시어 참으로 힘든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대구 수성 교당을 짓고 피로하시어 1년 휴무 하시다 오신다기에 원기 91년 1월 어느 날에 마중을 나가 뵈오니 몸은 허약해 보이지만 전에 계셨던 교무님들에 비해 젊고 이목구비가 수려하며 눈빛이 힘 있는 분이어서 눈이 번쩍 뜨이고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나며 정말 반가웠습니다. 거기에다 성가도 잘 부르시고 피아노도 잘 치시며 설교 말씀이 좋고 음성이 낭랑하시어 금상첨화요 밝으신 눈빛이 장차 무엇인가 큰일을 내실 분으로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회장단을 부르시더니 교당을 둘러보자고 하셨습니다. 지하실은 물이 차서 썩어가니 모기 유충이 득실하고 벽에서는 곰팡이가 슬어 퀴퀴한 냄새가 났습니다. 1층은 원광어린이집으로 좁은 공간을 칸칸이 방을 나누어 쓰고 있으니 불이나면 아비규환이 날 것이라 하시고 2층 3층을 차례로 보시며 물이 새는 3층 대법당의 안전 면에 소홀함과 생활관이 협소하고 소법당이 함께 있는 2층의 불편함을 지적하셨습니다. 더구나 법회를 보러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층간이 높아서 노인들은 오르기 힘들고 넘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염려가 들었습니다. 그러니 교당을 이대로 둘까요? 아니면 고쳐야 할까요? 교무님의 말씀에 그저 부끄럽고 엄두가 안 나던 일이라 난처하여 머뭇거렸습니다. 그랬더니 교무님 본인도 헌금을 낼 테니 회장님도 내고 교도님들께서도 내어서 리모델링 불사를 이루어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겁은 나지만 한 번 해보자고 마음을 모으고 일부 교도님들의 반대를 설득하여 교당 리모델링 공사를 예치금 1억 원에 2억 원을 모금하여 3억 원으로 지금의 이와 같은 쾌적한 법당을 완공하였습니다. 이는 교무님과 전 교도님들이 한 마음이 되어 이룩한 거룩하고 혈성어린 불사였습니다.
원기 92년에는 전북교구청 부지 구입 기금 2000만원을, 그리고 93년에는 교구청 건축 기금 1300만원을 헌금하였고, 야외 교화단 나눔의 장인 덕향정 건립, 원기 95년에는 3층 청소년 공간인 전국 최초 희망의 숲 1호를 2500만원 헌금으로 설치하였습니다. 수타원 교무님 모시고 제가 교도회장 재임 기간 5년 동안 한두 번도 아니고 무려 네 차례나 불사 헌금을 요구하였으니 교도님들께서 너무 힘드셨고 앞에서 추진하던 교무님과 회장도 어려운 요구를 하다 보니 마음고생과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교도님들께서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 큰 불평 없이 협찬하여 주셔서 이루어진 일들이니 교도님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는 다 교도님들의 태산 같은 불심과 바다 같은 공심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이 모든 불사를 원만하게 성취한 것은 수타원 박인원 교무님의 밝으신 혜안과 강한 의지와 추진력의 소산이라고 평가합니다.
교무님께서는 교당의 면모를 새롭게 하신 후에 교화의 내실을 기하려고 노심초사 하셨습니다. 먼저 교당 내 조직을 정비 개편하셨습니다. 여자교도님들의 친목성이 강한 원화회를 해체하여 여성회와 독경단을 조직하셨습니다. 남자교도님들의 친목성이 강한 산덕회를 해체하여 청운회를 조직하셨습니다. 이리하여 교당의 조직이 기존의 조직인 봉공회와 호법회를 비롯한 여성회 청운회 독경단의 다섯 가지 단체로 늘었습니다. 교무님은 조직의 달인이신지라 이에 만족하지 아니하시고 3040회를 서둘러 만드시고 작년 연말에는 50대 60대 남자들의 은덕회를 조직하셨습니다. 여러 단체를 조직하신 뜻은 봉사와 헌신을 통한 교화 불공 사업에 모두가 뛰어 들어 참여하라는 교화대불공의 한 가지 방편을 펴신 것입니다. 특히 3040회는 젊은 청장년 남녀 교도들 단체로서 우리 교단 전반에 걸쳐서 가장 시급한 젊은 교도 부족으로 인한 충원의 필요성과 가속적인 교도 노령화로 인한 교도수 감소와 교당존폐의 위기에서 벗어나고자하는 교무님의 선구자적인 발상이요 교화대불공의 간절한 의지가 담긴 조직으로 교화 효과가 크고 그 활동이 기대가 크며 교당에 신바람을 일으켜서 수타원님의 빛나는 업적이요 따라서 3040회는 원불교 전 교당에 일반화시킬 가치가 충분한 조직입니다. 그리고 어린이유년법회와 학생 청년법회를 통하여 청소년 교화에 교단의 미래가 달려 있음을 깊이 자각하시고 청소년 교화에 사활을 거셨습니다. 어려운 교당 살림 형편에도 청소년교화에 꾸준히 지원하시며 전국 최초의 희망의 숲 청소년 전용 교화 공간을 조성하셨습니다.
수타원 박인원 교무님께서는 조직을 정비하신 후 발로 뛰고 손발로 실천하는 교화 방안을 강구하시어 가정 방문 독경기도를 하시고, 교도님들 가정의 사는 모습을 일일이 파악하신 후, 가족총력법회를 매월 4주에 여시어 남편 또는 자녀를 교당으로 인도하게 하시었으며, 마을 교화를 위해 하가지구와 서신동 천변 아파트촌에 교화대불공 길거리 홍보 및 방문 교화를 3회 교도들과 함께 나가셨습니다. 줌마댄스단을 만들어 송년문화법회에 공연케 하시고 4축 행사나 경사스런 일에 당하여 춤을 추게 하였습니다. 종법사님 알현 세배시 대중 앞에서 이를 공연하여 대중의 갈채를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데 적재적소에 필요한 각종 기도문을 작성케 하시어 서전주 지구 요인훈련에 기도문 수첩을 보급하기도 하셨습니다.
문화 법회를 통해 교도님들에게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셨고 교화단 법회를 매월 열게 하시어 재가들의 자력과 협력 그리고 공부심을 키워 주셨습니다. 근래에 이르러 교단 전국 최초로 릴레이법문봉독하기에 이어 릴레이기도를 실행하셨고 교당에서의 1인 1취미 활동 반으로 금속공예반, 한지공예반, 판소리반 등을 운영하시어 교도님들이 수시 드나들도록 교당의 문턱을 낮추셨습니다. 원기 96년에는 전국 원100교화실천경연대회에서 교화 비전 부문 실천 우수상을 받아 성금 300만원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원기 97년에 덕진 교당을 떠나지 않으시고 연임하시게 되니 교화에 변화를 주시고자 교화단을 새로이 편성하시되 법사, 법호인, 특신급, 보통급을 고루 포함하되 노소를 막론하여 조직하셨습니다. 단장 중앙 위에 법호인으로 항단장을 임명하여 지도 솔선하게 하시고 교화단별 혼합 편성된 노소가 함께 공부하면서 상봉하솔하고 공경과 사랑의 예를 다하라는 의미를 담아 주신 것입니다. 나아가 법회 진행에 있어서도 변화와 혁신을 도모하시어 성가대를 조직하여 법회에 활기를 불어넣자 하시었습니다. 법회를 보다 즐겁고 알차게 진행하기 위해 법회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법회 진행 사회자 교육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세부 설계는 교화기획분과장이 주축이 되어 추진하기로 하되 교도님들 각자가 스스로 힘을 키워 재가교역자의 역량을 갖추자 하시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뜻밖의 병고로 항상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 오신 훌륭하신 교무님께서 덕진교당을 떠나시게 되니 저희들의 복이 다한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수장이 없어 길 잃은 철새들처럼 펼쳐질 앞날이 은근히 겁이 나며 모두가 허망하여 망연자실합니다.
그러나 수타원 박인원 교무님,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교무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저희들 변함없이 열심히 잘 하겠습니다. 제가 근간에 기간제 교사로 정식 담임교사 대신 들어가 임시로 학급을 맡으면 학생들에게 ‘여러분들 담임선생님 계실 때처럼 하던 대로 하세요’라고 당부합니다. ‘결석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고 사이좋게 지내세요’라고 부탁을 합니다. 수타원 교무님의 심정도 그와 같으실 것입니다. 교무님이 떠나셔도 저희들 교도들은 교무님 계실 때에 하던 것처럼 할 것입니다. 법회에 결석하지 않고 법동지 간에 의좋게 지내며 부지런히 마음공부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교무님께서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고 홀가분하게 총력 교화며 덕진 교당이며 다 놓으시고 오로지 치료에만 전념하시며 자신의 건강만 돌보십시오. 본인도 모르게 얻으신 병고는 그 동안 무아봉동 멸사봉공으로 교화에만 모질게 일심 정성과 온몸을 바치시느라 육신에 대하여 미처 돌보지 않으신 결과입니다. 대중에게 정법을 전하시고 불토 낙원 세계 건설을 위하여 지금껏 정녀로 사셨으니 재가들에 비해 남편이나 자녀에 대한 근심은 없으십니다. 애착 원착 탐착을 헌 신짝처럼 버리고 홀홀단신으로 아무런 착 없이 오직 공심으로만 사셨으니 수타원님의 마음이 명경같이 밝고 샘물처럼 맑아서 치료가 말끔히 잘 되실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현대 의학이 발달하고 의술이 뛰어나서 아무리 어려운 경우에도 치료가 될 뿐만 아니라 수타원님의 평소 닦으신 삼대력과 마음공부의 힘이 발하여 틀림없이 병마를 거뜬하게 이겨 내실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법신불 사은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아니하시고 한시가 급하게 서둘러 깨끗이 나으시도록 가피해 주실 것입니다. 저희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수타원님의 빠르고 완벽한 쾌유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머지않아 용사처럼 용감하게 병마를 무찌르시고 개선장군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저희들 앞에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수타원 박인원 교무님
저희 교당에 오셔서 6개년 2개월 동안 넉넉하지 못한 유지비를 가지고 교화하시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법회 때마다 목이 아프도록 성가를 열심히 불러주시었고, 한 말씀 한 말씀 저희들을 살려 주고 이끌어 주신 주옥같은 설법 말씀들을 두고두고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면서 수타원님께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끝으로 빨리 쾌유하시기를 거듭 간절히 축원하면서 이상으로 저희 덕진교당에 오셔서 쌓으신 업적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원기 97년 2월 26일
중산 최경수 합장
첫댓글 그져 고개숙여 감사 드립니다
한사람의 무게가 이렇게 크게 느껴지긴는 처음입니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난 6년여의 사연들이
현실임을 어쩔 수 없네요
지도자란
자신의 능력보다 타인의 능력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라는데......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은 그져 후회와 한숨만 나오는군요
인삿말에 제 심정 하다보면
아침엔 눈물만 나오네요.....
눈물이 나서..열심히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