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현장을 가다
3). 답사에서 맺은 인연
최 화 웅
지난 10월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답사에서 고창, 정읍, 전주 등지를 두루 돌면서 많은 분들과 인연을 맺었다. 불가에서는 옷깃을 한번 스치는 것도 500 겁(劫)의 인연이라고 말한다. 그 만큼 인연은 귀하고 소중하다. 겁은 고대인도 산스크리트 ‘kalpa'의 음역인 겁파의 약칭이다. 겁이란 ’‘천지가 개벽한 때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라는 뜻으로 매우 길고 오랜 시간을 두고 하는 말이다. 본래 인도에서 범천(梵天)의 하루, 곧 인간계의 4억 3,200만 년을 두고 한 겁이라고 했다.
인연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들 사이에 서로 맺어지는 관계‘라고 풀이한다. 그러고 보면 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라는 말이 피부에 더 가까이 와 닿는다. 불가에서는 ’결과를 내는 직접적인 인(因)과 간접적인 원인인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연기(緣起)라고도 쓴다. 인연을 흔히 사랑의 연분으로 해석한다. 인연이란 생각의 자유로움이 넓고 깊은 세상에서 스스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리라. 작가들은 연분을 맺고 끊는 과정의 감정을 시와 노래로 사무치게 노래한다. 피천득은 소년 같은 솔직한 마음과 순수한 감성으로 아름다운 인연을 간직하고 최인호는 끝까지 ”그대, 억겁의 세월을 건너 나에게 온 사람아“라고 절규하지 않았던가?
나는 이번 답사를 통해 전주에 살고 있는 ‘마음의 영성’ 카페회원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 봄 제주도보순례의 보고 때 강정마을에서 문정현 신부님을 잘 못 소개한 일을 지적해주신 고마움을 잊지 않고 이번 답사를 통해 에세이집 <하늘 향해 서다>를 전하고자 부산을 떠나면서 미리 약속을 했다. 그리고는 전주로 가는 중간 중간 전화를 주고받았다. 그 밖에는 답사과정에서 도움을 받았던 현지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답사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으로 카페 닉네임 ‘청초이’인 최경숙 율리아나 윤형환 스테파노 부부와의 만남은 소중하게 이어졌다. 정읍의 동학농민혁명기념관과 황토현전적지를 돌아보고 저녁 해거름에 전주로 떠났다. 부안, 신태인, 김제, 원평을 거치는 길이 모두 옛 동학농민군들의 진격로와 겹쳐 남다른 감회에 젖은 채 전주로 향했다. 저녁을 고궁에서 전통비빔밥을 먹기로 하고 서둘러 차를 몰았다.
네비게이션의 트러블로 몇 차례 뺑뺑이를 돈 탓에 예정시간 보다 30분 늦게 도착했다. 청초이님은 전주은화학교 교사로 일하고 남편 윤 스테파노는 전남 나주의 한국수자원공사에 근무하는 주말부부로 전주교구 ME대표부부로 봉사하고 계시는 분들이었다. ‘고궁’에서 맛깔스런 음식을 나누며 다른 손님들이 다 돌아간 줄도 모르고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윤 스테파노씨는 우리를 만나기 위해 반차까지 냈단다.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윤 스테파노씨가 전주 모주와 막걸리를 권하고 마다하지 않는 나의 기분을 맞춰서 화기애애한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안 서울 실비아님과의 통화로 우리의 만남은 절정에 달했다. 국혜원 실비아님과 박재윤 사비노님은 지난 3월 제주도보순례 때 봄햇살이 눈부신 윤슬을 피운 온평리 해안길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사이다. 결혼 30주년 기념여행을 왔을 때의 일이었다. 전화는 자연스럽게 아내 엘리에게도 넘겨져 한동안 못보다 만난 자매들처럼 정담을 나누었다. 저녁을 끝내고 청초이 부부의 안내로 전동성당을 거쳐 나란히 한옥마을로 차를 몰았다. 청초이의 소개로 동료교사인 임금례 선생님이 운영하는 ‘소리풍경’게스트하우스의 하나 남은 토끼방에 들었다. 우리는 밤이 깊도록 차를 마시며 전주의 정취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기온이 갑자기 떨어진 아침에 눈을 뜨자 개구장이들처럼 요 밑으로 기어들어가 온돌에 몸을 지지며 오랫만에 정겹던 어린시절로 돌아갔었다.
이른 아침 태조로를 따라 아름다운 언덕 오목대에 올랐다. 한옥마을이 한눈에 다 들어오고 널찍한 전주시가지가 한없이 평화로웠다. 아침은 ‘소리풍경’에서 제공하는 브런치를 마다하고 윤스테파노가 권한 전주콩나물해장국집 ‘백년가’에 들렀다. 아침 식당을 지키는 부부가 우리 교우였다. 한기표 야고보씨가 옆자리로 다가와 한옥마을의 유래와 빠른 걸음으로 보다 넓게 보는 한옥마을코스를 소개해주었다. 그리고는 한옥마을 끝자락에 있는 동학혁명기념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우리의 방문을 부탁해줘 막힘이 없었다.
전동성당을 거쳐 은행로를 따라 기념관으로 걸었다. 기념관은 천도교에서 동학혁명 100주년을 맞아 세운 큰 건물이었다. 동학을 설명하는 벽보에는 눈에 익은 오윤의 판화 ‘북춤’이 우리를 반겼다. 기념관 2층 전시실을 둘러본 뒤 이윤영 관장의 안내로 전북 지역의 동학농민전쟁의 전개과정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한 시간 넘게 마주앉아 동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명하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헤어지면서 나에게 ‘동학혁명기념관 안내서’와 이현희 박사의 <3.1혁명, 그 진실을 밝힌다>를 방문기념으로 받았다.
그 밖에도 고창군 문화관광과를 찾았을 때는 동학농민혁명담당 이영윤계장과 담당자 하윤미씨로부터 고창지역의 동학농민혁명 자료집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와 <동학농민혁명과 고창>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로 농민이 권력을 잡고 농민을 위한 자치기구였던 ‘집강소를 가다’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 정읍의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는 문희경 해설사로부터 <동학농민혁명과 전북>,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개관기념 도록>과 <동학농민혁명 문화탐방> 등 현장에 살아있는 소중한 자료와 책자를 받을 수 있었다. 자동차 트렁크에는 대자 베드로와 함께 마실 고창 복분자를 비롯한 전주 모주와 전주 막걸리, 그리고 청초이 부부가 선물한 군산주연 무장아찌 박스를 싣고 귀갓길을 재촉했다. 전조등이 밝히는 어두운 밤길을 거침없이 달렸다. 아내가 운전하는 옆자리에서 편안하게 바흐의 첼로곡을 들을 수 있었다. 까만 차창에는 우리의 모습과 배들평야가 디졸브되면서 혁명시인 김남주의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스크롤이 올라가고 있었다.
광 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닥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첫댓글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이 새삼 떠오르는 휘영청 달 밝은 밤입니다.
메신저로도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힘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달빛에 취하고, 한잔 막걸리에 취하고, 또다시 그리움님의 글에 취해서 마침내 삶의 궁극마저도 취하고 마는 밤입니다.
소중한 인연 잘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꿈꾸는 밤 되십시요!
미르님! 오늘 따라 하늘이 드높고 태양이 눈부셨어요.
그대 향한 그리움이 제 마음에 가득 차고 넘쳐 흐릅니다.
늘 함께 있고 싶어 일렁이는 내마음이 그리움으로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소년 같은 솔직한 마음, 가을꽃 같은 청아하고 순수한 감성, 한 하늘 아래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맺어진 우리의 인연이 영원하길 기도해 봅니다.
하늘 향해 우리의 사랑을 외쳐보세요.
ㅅㄹ ㅎ^^*
인연을 귀하게 여겨 주시는 그리움님 마음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네요..
저희 후배부부들이 좋으신 선배부부님과 맺게된 인연에 더욱 감사하지요.^^♥
오드리님! 우리의 인연은 가을하늘처럼 맑고 순수한가 봅니다.
더구나 우리의 소중한 인연은 무엇보다 고결하고 우아해야 합니다.
그 속에 그리움을 타고 출렁이는 마음을 영원히 간직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 우리의 인연 아름다워라!!
Have a good day^^*
저도 작년에 전주에 가서 전주 비빔밥을 먹고온 기억이 납니다. 다음 기회에는 한옥 마을과 동학혁명기념관을 꼭 한번 가보독 하겠습니다. 500겁의 인연을 말씀하시니 저와 국장님의 만남도 얼마나 소중한가를 절실히 느낍니다. 옷깃의 스침보다 더한 나눔의 시간을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명금당님! 전주에 가보셨드랬군요. 참 좋으셨죠?
오늘도 주님 안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인연에 감사합니다.
데레사 자매님도 잘 계시죠? 인사 전해주십시오.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선생님! 이 가을 선생님 내외분과의 만남으로 행복하고 더욱 풍요롭습니다.
서로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일련지요?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저희 부부 일상의 삶에 향기가 나고 윤기가 나는 듯 합니다.
또 다른 만남을 꿈꾸며 선생님과 사모님께 깊은 감사드리고 건강하시길 기도드려요. ^*^
청초이님! 저희들도 그래요.
부산으로 돌아온 이후 대자부부와 저녁을 함께 하며 전주 이야기를 해줬더니 자기들도 끼워달라는군요.
우리의 자랑스런 윤 스테파노 형제님에게도 안부 전해주십시오.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시구요.^^*
그리움님을 한마디로 표현하라하면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들이 어쩜 그리 박자가 잘 맞으시는지 글을 읽을적마다 감탄합니다.
참나리님! 새삼 부끄럽습니다.
안신부님께서 한 20년 전에 붙여준 별명이었어요.
그럴 때마다 남이 느끼는 박학다식하다는 말에 비해
아는 것을 빼고는 모르는 게 너무 많은 헛점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스스로에게만은 솔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더 많은 책을 읽고 느끼고 생각하며 특히 상상의 나래를 펴고 감동의 나라로 날아가렵니다.
가을이 영근 강화의 들녁이 눈에 그리움으로 어른거립니다.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