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하 지음/ 신국판/ 본문 328쪽/ 값 14,000원/ 2011년 6월 9일 초판 발행/
ISBN 978-89-8120-449-5(03810)
시인의 감성으로 엮어낸 학창시절과 동창사회
오래도록 열망의 세월을 보내다가 쉰 살을 넘겨 늦깎기 시인으로 데뷔했던 지은이가 학창시절과 동창사회를 감칠 맛 나는 이야기로 그려냈다. 하루 이틀, 한두 차례가 아니라 2001년 4월부터 2008년 6월 유명(幽明)을 달리할 때까지 무려 8년에 걸쳐 매달 학창시절의 추억과 동창들의 졸업 이후 삶을 연재했던 것이다. 지은이는 문예반에서 활동했던 고등학교 시절과 문학청년 시절의 열정을 고스란히 늦깎기 시인의 신바람으로 되살려 제목 그대로 ‘그때 그 시절, 그리운 이야기들’을 희로애락의 한바탕 드라마로 승화시켰다.
한 울타리 속에서 지낸 3년의 의미
《청조인(靑潮人)》이라는, 월간으로 발간되는 동창회지에 8년 동안 연재했던 원고의 양은 200자 원고지 2,000장에 육박할 정도로 방대했다. 물론 지은이가 연재했던 원고를 상당 부분 줄이고 순서를 바꿔 재편집을 했지만 원래의 취지를 훼손하지는 않았다. 시차(時差)가 있더라도 모교(母校)라는 공간에서 3년씩 비슷한 과정의 생활을 하고 졸업한 동창생들이 왜 남다른 우정과 친분을 유지하는지에 대해 이 책은 너무나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다만 부산고등학교라는 특정 학교와 청조인(靑潮人)을 자처하는 부고인들의 이야기라는 것이 이 책의 강점이자 약점인 점은 어쩔 수가 없을 듯하다. 지은이가 연재를 시작하면서 썼던 글의 일부를 덧붙인다.
바다, 그 영원한 모성
나는 지금 떠나온 바다, 십대의 바다, 교정 벤치에서 바라보던 그 순수의 바다를 생각한다.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도 질서를 잃지 않고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고전古典의 바다, 폭풍에 나울치다가도 다시 평온을 되찾는 수평의 바다, 공부가 안 될 때나 실의에 빠졌을 때, 바다는 먼 해조음으로 다가와 지친 마음을 달래주었다. 실로 바다는 우리 부고인의 영원한 모성이요, 그리움의 본산이다.
우리는 비좁은 초량 언덕길을 3~6년간 오르내리며 눈만 들면 보이던 초록빛 바다, 있을 땐 잘 몰랐던 바다의 존재, 모든 가능성을 안고 출렁이던 청조靑潮의 바다를 죽도록 잊지 못한다. 물 들면 다섯이요, 물 나면 여섯이 되는 신기한 오륙도가 코앞에 보이고 오동나무, 미류나무 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던 풍경들, 먼 이국에서 달려와 창검 같은 돛대들을 치켜들고 정박하고 있는 뭇 기선들은 또 얼마나 우리들의 젊은 가슴을 뛰게 하였던가.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따로따로 살고 있지만, 누구든 이 교문을 나온 사람이면 아슴푸레한 그 기억의 바다를 잊지 못한다.
‘기억의 끈을 이어 전류처럼 흐르다/ 함께 가진 것이 많아 차라리 슬프다’는 유자효 시인의 ‘재회’라는 시처럼, 정신의 연골이 여물고 육체가 눈뜨는 인생의 여명기에 우리의 뇌리에 하나하나 새겨진,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이 영상들은 이제는 그 교정을 함께 했던 동창 선후배가 아니면 되찾을 수가 없다. 그 바다가 어디 가는 것도, 모교가 자리를 옮기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 때 그 시간을 그 자리에서 함께 한 추억의 동위원소를 공유하고 있는 학우가 없고서야 무슨 감흥과 흥취가 있으랴. 우리는 남달리 청춘의 씨앗이 여물어가던 시기에 그 바다를 공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복이요, 큰 인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그 바다가 보이는 교정에서 벌어졌던 이바구들을 찾아가려 한다. 망망대해에서 바늘귀를 찾는 심정으로 옛 기억들을 하나씩 더듬어 이 글을 쓰려고 한다. 그 많은 이야기를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생각하면 다시 아득해지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