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 ‘만종’의 감자바구니는 아기 무덤이다? <만종>은 아기를 잃은 부부의 슬픔을 그린 것이다 ?
황혼의 들녘, 밭일을 마치고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에 기도하는 부부를 그린 <만종(晩鍾)>. 이 그림은 19세기 프랑스 농민의 일상을 즐겨 그린 밀레 (Jean Francois Millet, 1814~75)의 대표작이다. 수확한 감자를 담은 바구니를 발치에 놓고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은 평화롭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데 그림 속 감자 바구니는, 사실 죽은 아이의 무덤이었다? 이런 충격적인 주장을 내놓은 사람은, 20세기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달리는 그가 직접 쓴 책을 통해 <만종>이 부부가 아이를 잃고 관을 묻기 전 마지막 기도를 올리는 비극적인 그림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1963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실시한 X-선 검사 결과 감자 바구니 앞쪽에는 네모난 형태의 상자가 발견됐는데... 그 모습은 당시 사용하던 관과 흡사하다. 밀레는 정말 아기의 관을 그리려 했던 것일까? 아니면 하루의 수확을 감사하는 기도를 그렸던 것일까? 프랑스 농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화폭에 담아냈던 밀레의 대표작 <만종>. 그림 속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파헤쳐본다.
채동선의 ‘고향’은 ‘고향’이 아니었다
채동선의 ‘고향’ 하나의 곡에 3개의 가사가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채동선의 ‘고향’ 채동선 (蔡東鮮: 1901- 1953)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서정성 깊은 선율로 노래한 가곡 <고향>.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 민족의 상실감을 대변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은 곡이다. 그러나 <고향>은 한국전쟁 후 원래의 노랫말로 불리지 못했다는데... 이 곡은 처음 1933년 채동선 작곡, 정지용 작사의 곡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작사가인 정지용이 납북되면서 가사 사용이 금지된 것이다. 하지만 이미 교과서에 발표된 상황이라 출판사들은 ‘박화목의 망향’으로 가사를 급하게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가곡 <고향>의 변화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채동선 곡의 상당수는 정지용의 시가 사용됐다. 이 노래들의 가사를 전부 바꿔 가곡집을 발표하게 되면서 또 한 번 ‘이은상의 그리워’라는 가사가 덧붙여지게 된다. <고향>으로 발표됐지만 <고향>으로 불리지 못한 채동선 작곡, 정지용 작사의 <고향>! 그 곡에 담긴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와 이야기를 들어본다.
1901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나 1953년, 한국 전쟁 중, 부산에서 53세 로 짧은 생을 마감한 작곡가 채동선, 그는 암울한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결코 굴함이 없이 한민족의 정신을 자신의 작품 속에 담아냄으로서 민족혼을 불사른 우리 시대의 선각자이다.
채동선곡/정지용시/소프라노 박계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운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국이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하늘만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한점 꽃이 인정스리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이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Millet, ‘The Gleaners’. 1857, Musée d'Orsay,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