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별자리는]
나뭇가지는 새싹을 내뱉고 여기저기 색깔로 그림을 그린다. 봄 향취가 짙어 가는 날 새움을 돋우어 주는 가랑비까지 더해준다. 차 한잔을 마시고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오가는 작은 고깃배를 따라 고개를 돌려본다.
대학 친구의 전화다. 며칠 전 카페에서 지나간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가까이 있는 동기들 얼굴이나 보자고 하며 운을 떼었는데 생각보다 이른 날짜에 성사가 된 모양이다. 그동안 가끔 일 년에 몇 차례 아니 한두 번 볼 정도였다. 사는 곳이 수도권과 남부 권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우연히 고향에 내려온 길에 동참하게 된 아이도 있고 다른 계획을 미루고 함께 해 준 녀석도 있다.
모이는 곳은 읍 지역에 마련해 둔 주택이다. 비가 내리는 날씨라 온돌방에 불을 지핀다. 약속 시각까지 집 안 곳곳에 잡초며 가재도구를 정리한다. 느긋하게 마당을 거니는데 동기들이 하나둘 도착을 한다. 모두 처음 오는 이들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친구를 맞이한다. 한 사람이 더 오기로 하였는데 오늘은 빠졌단다. 집안으로 들어서서 마당을 둘러보면서, 마당 있는 집이 편안하다며 자신들도 여러 차례 집을 보러 다닌 적이 있단다.
각자의 짐을 내려놓고 이른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차를 몬다. 낙동강 철교를 지나 둑길을 따라 우리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 보리밥 식당에 도착하였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훼방꾼이다. 갖가지 나물 반찬이 곁들여 나온다. 청국장을 넣어 비벼 먹는 차림이다. 식물성 재료만으로 입맛을 맛깔스럽게 채워준다. 접시가 금방 비어져 주방으로 다가가 그릇에 채워온다. 저마다 독특한 입맛을 자랑하듯이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엄지인 척한다.
점심 후에는 개비리 길 산책이다.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는 타고 가기로 한다. 좁고 꼬불꼬불한 길을 찾아가는데 비옷을 입고 걷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한다. 차를 길 한쪽에 세우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따라간다. 강물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봄 풍경에 운치를 더해준다. 초입보다 길은 더 좁아지는데 그나마 빗방울이 가늘어져 한결 낫다. 마삭 덩굴 군락지에 발걸음이 멈춰진다. 세 순이 손톱만큼 자라 푸른 빛이 빗물에 더욱더 생생하다. 대숲이 눈 앞에 펼쳐진다. 길가 나무에 매달린 둥근 종 모양의 쇳덩이를 돌로 두드려 본다. 뎅 뎅 소리에 길가는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돌아본다. 자, 이제 수업 시작입니다!. “모두 교실로 들어가세요” 괜스레 옛날로 돌아가 본다.
강변 팔각정에는 산책객이 둘러앉아 있다.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하트 모양의 구조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다. 색깔이 다양한 우산을 쓰고 추억을 한 장면을 채운다. 반환점까지는 몇십 분 더 걸어야 하는데 여의치 않아 출발지로 되돌아간다. 좁은 길에 자연스럽게 둘씩 짝을 지어 주변 풍경에 빠진다. 밭에는 유실수 꽃이 붉게 수 놓았다. 캠퍼스로 돌아간 느낌이다.
발걸음이 무겁다. 집으로 차를 몰아 달구어진 온돌방에 몸을 맡긴다. 충분히 데워진 방은 여섯 명이 궁둥이를 서로 붙여 둘러앉았다. 아랫목은 뜨거워진 열기에 이불을 깔고 앉는다. 장작을 한꺼번에 많이 넣은 탓이다. 저녁 준비가 시작되었다. 수육 삶기와 고기와 채소가 겹겹이 쌓은 요리다. 각자가 맡은 음식에다 열심이다. 된장을 풀어 넣은 수육은 코끝을 자극한다. 채수 국물이 으뜸이다. 찰밥에 고기와 채소가 어울려 맛난 저녁 시간이다. 직접 말려 준비한 꽃차가 화룡점정이다. 판매하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는 맛이다. 정성을 느낀다. 친구를 위해 준비해 준 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우당퉁탕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어설프게 준비했지만 웃음이 계속된다.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에 나선다. 가로등 불빛을 안내 삼아 가볍게 발걸음을 옮긴다. 서늘한 날씨에 몸이 움츠러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길이 돌려진다. 온돌방으로 몸을 넣는다. 저녁 시간 게임이 올려진다. 몇 가지 나왔지만, 선택은 48페이지 그림책 맞추기다. 첫째 판부터 순조롭지 못하다. 점수가 많이 나게 되었는데 패가 맞지 않는다. 하나가 모자란다. 결국, 승자 없이 새 판이 시작되었다. 여섯 명이 참여하는데 동전과 지폐가 나가기만 하고 들어온 적이 없다. 부엌에 일을 볼 때까지 결국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하고 게임이 끝나 버렸다.
대학 졸업 후 첫 음성 통화가 이루어졌다. 그동안 수도권에서 지내다 고향으로 돌아와 집 지을 계획을 하는 A, 대부분 퇴직을 하고 별다른 일없이 지내는 이들과 달리 아직 후학을 지도하는 B와도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애석하게도 밤하늘의 별빛을 누리지 못해 아쉽다. 밤이 깊어질 때까지 학창 시절 저마다의 경험이 풀어져 나온다. 내가 말한 것은 잊어도 남에게 들은 말은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서로의 첫인상을 떠올린다. 어느덧 밤은 깊어 아궁이에 장작을 몇 개 더 넣어 방을 데운다.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내 집을 방문한 친구들에게 포근한 마음으로 지내도록 마음을 쓴다.
새벽 잠을 깼다. 수탉 울음소리에 닭장 문을 열어 쌀겨 모이를 한 바가지 안긴다. 넘겨다 본 알통에는 간밤에 낳은 달걀이 보인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 닿는다. 사람 수대로 꺼내어 아침 요기로 삶는다. 달걀은 물이 끓을 때 넣으면 껍질이 잘 벗겨진다는 지식을 새로 얻었다. 과일과 누룽지를 삶아 아침 밥으로 대신한다. 각자의 관심사가 모여진다. 명리를 오랫동안 해 온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당연히 자녀들의 운세가 으뜸이다. 아이는 언제쯤 가져질 것이며 결혼 운까지 흥미롭다. 복 채 이야기에 공짜는 없단다. 친구들에게 많이 받을 수는 없고 한 장이면 충분하단다. 나름 믿음이 간다. 다음 만남때는 부탁을 해 봐야겠다.
각자의 일정이 있어 바로 출발하는 친구가 떠나고 뒤이어 하나 둘 짐을 꾸린다. 예정과 달리 오늘 일정이 아예 취소되었다. 싸우는 친구보다 아쉬워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했던가. 서로의 건강을 다짐하며 1박 2일의 외출이 마감된다. 단톡방에 무탈한 도착을 기원하는 글을 올린다. 가까운 시일에 온돌방의 기운을 또 맞이하고 싶다는 답이 올라온다. 서로 하고 있는 일을 격려하고 언제 만날 지 다짐한 것은 없지만 오늘 헤어지면서 또 다른 날을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