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경제
그린란드는 목축의 한계 지역이었기 때문에
노르웨이인들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복잡한 통합 경제를 발전시켜야 했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시간가 공간의 통합이었다.
계절에 따라 다른 행위가 계획되었고, 농장마다 생산품을 픅화시켜 다른 농장의 생산품과 교환했다.
봄부터 시작해보자,
5월 말과 6월 초에 바다표범을 사냥햇다. 봄은 짧지만 중요한 계절이었다.
이주성을 가진 하프 바다표범과 두건 바다표범이 떼를 지어 피오르드 외곽지에 나타났고,
정주성을 띤 참깨점박이 바다표범은 새끼를 낳으려고 해안으로 기어올라와 쉽게 잡을 수 있었다.
6월부터 8월까지의 여름은 상당히 바쁜 계절이었다.
가축들을 목초지로 끌고 가 풀을 뜯게 했고,
가축들이 생산한 젖을 저장할 수 있는 유제품으로 만들어야 했다.
일부 남자들은 배를 타고 래브라도에 가서 목재를 구했고, 일부는 북쪽으로 가서 해마를 사냥했다.
아이슬란드나 유럽에서 교역을 하려고 짐배가 오는 계절이기도 했다.
8월과 9월 초는 더 바빴다 건초를 베고 말려서 저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9월중에 소들을 목초지에서 축사로 데려다놓고, 양과 염소도 축사에서 가까운 곳까지 끌고 와야 했다.
9월과 10월은 순록을 사냥하는 시기였다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계속되는 겨울은 축사에서 가축을 돌보고, 옷감을 짜며,
목재로 집을 짓거나 보수하고, 여름에 사냥한 해마의 엄니를 가공하는 계절이었다.
게다가 사람이 겨우내 먹을 유제품과 말린 살코기, 가축을 먹일 건초,
난방하고 조리할 연료가 겨울이 끝나기 전에 바닥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멈추지 않아야 했다.
시간에서의 경제적 통합 이외에 공간적 통합도 필요했다.
가장 풍요로운 농장도 한 해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오르드 안팎, 고지대와 저지대, 서쪽 정착지와 동쪽 정착지,
부유한 목장과 가난한 목장 간의 교환을 통한 통합이 필요했다.
예컨대 최적의 목초지는 피오르드 안쪽의 저지대에 있었지만, 순록 사냥은 너무 추워서
건초를 재배하기 힘들어 목축에 적합하지 않은 고지대의 농장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한편 바다표범은 염무, 안개, 매서운 추위에 풀조차 거의 자라지 않는 피오르드 외곽에서 주로 사냥되었다.
피오르드가 결빙되거나 빙상으로 가득하면 피오르드 외곽의 사냥터와 피오르드 안쪽 목장 간의 교통이 두절되었다.
노르웨이인들은 사냥한 바다 표범과 바닷새를 비오르드 외곽에서 안쪽으로,
순록의 고깃덩이를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짊어지고 나르는 식으로 이런 공간적 문제를 해결했다.
예컨대 바다표범의 뼈가 내륙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목장의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되엇다는 것은
바다표범의 몸통이 피오르드 하구에서 수십 킬로미터나 운반되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내륙 깊숙이에 있었던 바트나베르피 농장에서는 바다표범의 뼈가 양과 염소의 뼈만큼이나 발견된다.
거꾸로 순록의 뼈는 사냥터가 있던 고지대의 가난한 농장보다 크고 부자였던 저지대의 농장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서쪽 정착지는 동쪽 정착지에서 북쪽으로 48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에이커당 건초 생산량이 동쪽 정착지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쪽 정착지는 해마와 북극곰의 사냥터에서 가까웠다.
해마와 북극곰은 그린란드가 유럽에 수출하던 주된 품목이엇다.
하지만 해마의 엄니는 동쪽 정착지의 유적에서 흔히 발견된다.
엄니가 주로 동쪽 정착지에서 겨우내 가공되었고,
유럽과의 교역이 가르다르를 비롯해서 동쪽 정착지의 목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서쪽 정착지가 동쪽 정착지보다 훨씬 작았지만 그린란드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건초 생산과 풀의 생장이 기온과 일조량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 따라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가난한 목장과 부유한 목장의 통합은 무엇보다 절실했다.
여름에 기온이 높고 일조량이 많다는 것은 건초를 더 많이 생산해서 더 많은 가축을 먹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가축이 여름에는 스스로 풀을 뜯어 먹고, 겨울에 먹을 건초를 더 많이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조건이 충족된 해에, 피오르드 안쪽으로 저지대의 남향에 자리 잡은 최적의 목장은
많은 건초를 생산해내 목장에서 일하는 가족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양을 넘어서는 가축을 키울 수 있었고,
피오르드 외곽에 위치하고 남향도 아닌 고지대에 자리 잡은 작고 가난한 목장에서도 충분한 건초를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온이 평균보다 내려가고 안개도 많이 낀 해에는 건초 생산이 모든 곳에서 크게 줄었다.
최적의 목장에서도 자신들의 가축을 먹이기에 급급한 양이나 약간 초과하는 양밖에 생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불리한 목장에서 생산한 건초는 가축들을 겨우내 먹이기에 부족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가을에 가의 일부를 도살했을 것이고,
봄에 한 마리의 가축도 살아남지 못한 최악의 경우까지 각오했을 것이며
실제로 그런 비극이 닥치기도 했을 것이다.
게다가 가축이 생산하는 젖을 모두 송아지, 새끼양, 새끼 염소에게 돌리면서,
농부들은 바다표범이나 순록의 살코기만 먹고 겨울을 넘긴 해도 있었을 것이다.
그린란드에서는 소를 위한 축사의 넓이가 목장의 질을 결정하는 듯하다.
예컨대 가장 많은 소를 키웠고 그만큼 공간 면에서 다른 목장들을 압도했던 최고의 목장은 가르다르였다.
모두 160두를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축사가 두 곳이나 있었다.
브라타 흘리드와 산네스 등과 같은 2등급 목장의 축사는 차례로 30두와 50두를 수용할 수 이었다.
하지만 열악한 목장에는 두서너 마리, 심지어 한 마리의 소밖에 수용할 수 없는 작은 공간이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기후가 악화된 해에는 상등급 목장들이 봄에 열악한 목장들에게
가축을 임대해주는 식으로 지원해서 열악한 목장이 제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325 - 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