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10일차 사랑고트에서 해돋이 감상하기
5시 50분에 뜬다는 해를 맞이하기 위해 시간 맞춰 전망대에 올랐다. 조금 일찍 나온 덕에 가장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낮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영봉들이 멀리 희미하게 우뚝우뚝 솟아 제각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몰려들어 위 아래로 꽉 차서 사진을 찍어 대느라 정신이 없다. 해는 아직 보이지도 않는데 안나푸르나 남봉은 벌써 황금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만큼 높아서 해도 빨리 보나보다. 이후 마차푸차레, 히운출리와 6천미터급 봉우리들도 황금빛으로 물들더니 동쪽의 어느 산봉우리 사이에서 한점 밝은 빛이 보이더니 점점 커져 세상을 밝힌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해가 나오면서 잘 보이던 설산들이 바로 모습을 감추어버렸다는 것이다. 고산지대의 특성상 이른 아침에 더 잘 보인다는데 요즘 스모그가 심해서 그나마도 바로 모습을 감추어버리는 것 같았다.
너무나 익숙한 한국말 하시는 아저씨 두 분이 있어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통성명을 하면서 같이 내려오게 되었다. 지극히 사교적인 언니가 그대로 보낼 리가 없다.
“우리 숙소가 바로 아래에 있는데 잠깐 들러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가세요.”
“네, 좋습니다.”
대절한 택시는 기다리라고 하고 입구 식당에 앉아 조식을 나눠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국에서 사시는 A씨는 조용한 퇴직자의 삶을 사시는데 인도에서 크게 요식업으로 성공한 친구 B씨를 찾아가 머물다가 일주일간의 네팔여행을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보아하니 돈은 B씨가 내고 A씨는 그저 곁에 있어만 주면 고마운 존재? A씨는 그런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와 성공담을 자랑해준다. 두 분의 초대로 이따 오후에 포카라에서 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우리는 해돋이도 보고 아침식사도 든든히 먹었겠다 주변 산책에 나섰다. 사랑고트 마을은 조용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한참 걷다보니 사랑고트 뷰 호텔이 나왔는데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정원도 잘 가꾸어져 있어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로비도 엄청나게 넓고 호화롭고 수백명이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은 완벽한 세팅을 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손님은 1명도 안 보였다. 누구를 위한 세팅이고 유지나 제대로 되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듣자하니 이런 외진 곳에 있는 큰 호텔들은 일본인 단체관광객들을 위한 호텔이라고 하는데 일본 단체객들도 줄고 요즘 스모그가 너무 심해서 호텔들이 타격이 클 것이다.
모처럼 나타난 손님이라 다들 너무 친절하게 맞아주는데 도저히 그냥 나올 수가 없어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들어갈때만 해도 멀리 히말라야 설산들이 희미하게 보이더니 테이블에 앉자마자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리도 날씨가 좋아 아이스크림과 요거트를 시켰다. 아이스크림은 어찌나 작은지 눈깔사탕 세 개 정도인데 맛은 또 어찌나 좋은지 열 개도 먹었으면 좋겠다. 요거트는 양도 적당하고 맛도 좋았다. 종업원이 유튜브로 실시간 방영된다며 주소를 찍어주고 가서 벽에 걸린 카메라를 보고 손을 흔드니 휴대폰에 바로 나온다. 한국에 있는 친구나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보게 하라는데 뭐가 보여야 연락을 하지. 청명한 가을날의 모습이 기대된다. 그때는 뒤로 설산들이 병풍을 두른 듯 다 보이고 그 풍경 속 한 폭의 그림에 담겨져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게 될 것이니까.
호텔을 나와 마을 여기저기를 더 둘러보았는데 산간마을이라 집도 초라하고 밭도 메마르고 영세하다. 티나 커피를 마시고 가라는 구멍가게 아주머니의 손짓에 툇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어렸을 적 우리 동네 구멍가게 하고 똑같다. 머리에 농기구를 이고 밭으로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미소를 지으면 우리도 손을 흔들고 미소를 지으며 보내드렸다. 다랑이 모양의 작은 밭에는 옥수수 배추 등이 자라고 조랑말이나 소, 염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다 지나가는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작지만 참 정겨운 마을이다.
오후 네시쯤 케이블카를 타고 마을로 내려갔다. 내려오는 경사면이 급경사인 곳이 많아
아찔함을 몇 번은 느껴야 한다. 깎아지른 듯한 산속에도 농사짓는 편평한 땅도 많고 예쁜집들도 많고 얼기설기 길도 잘 내져 있어 놀라웠다. 어쨌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새가되어 산을 주욱 훑어본 것이다. 새들이 부럽다. 새들은 늘 날아다니면서 공중에서 이런 모습들은 보면서 살 것이 아닌가?
한참을 걸어 두 분 숙소를 찾아가니 하루 여정을 마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힌두교 파고다도 좋다는데 한번 가보세요.’ 생각없이 한 언니 말을 듣고 가다가 산속에서 죽을뻔 했다고 우리에게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한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산속을 열심히 달려갔는데 막상 가보니 별로 볼것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을 추천할 때는 정말 신중해야할 것이다.
한국식당을 찾아 해매다 보니 결국 써미르와 왔던 곳 바로 이전 숙소 앞이다. 김치볶음밥은 양이 너무 많은데다 짜면 기름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아 도저히 손이 안가고 , 돼지갈비 바비큐는 살점을 발라놓으면 한 숟가락도 안 될 양이다. 2만원짜리 등심바비큐를 시켰는데 두 점씩 먹으니 끝이다. 이곳에서는 고르카와 투보르그 맥주를 마시고 자리를 옮겨 샐러드에 예티맥주를 마셨다. 한번 달리면 고고씽을 외치는 인도 사장님 덕분에 잘 먹고 또 호숫가에 있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으로 또 자리를 옮겼다.
“아니, 여기에 이런 곳도 있었어? 이런 곳이 바로 나의 취향이야. 기분이다. 뭐든지 시켜 다 살테니까.”
또 맥주를 마셨다. 이번에는 코로나 맥주.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기를 기원하며 건배를 하였다.
12시가 넘어 택시를 타고 산길을 달려 사랑고트 숙소에 오니 문이 잠겼다. 못들어갈까봐 겁이 덜컥 났는데 다행히 주인이 바로 열어주어서 한시름 놓았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여자들이 밤늦도록 술 마시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였으니 주인아저씨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당연한 일. 어쨌거나 아직까지 거의 하루도 조용히 그냥 지나간 날이 없는 버라이어티한 여행자의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