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칼럼] (88) 프란치스코 교황과 ‘9월의 저주’ / 존 알렌 주니어
메르켈 총리-푸틴 대통령 혼동 유다교 ‘토라’에 관한 언급 등 교황 발언에 대한 항의 잇따라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은 지난 9월 2일(현지시간) 불가리아 대표팀과의 월드컵 지역 예선전에서 1대1로 비겼다. 이탈리아가 손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됐던 경기에서 비기자 많은 해설가들이 ‘9월의 저주’라고 조롱했다.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9월의 저주’가 닥친 것 같은 느낌이다. 최근 여러 구설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교황은 9월 1일 방송된 스페인 주교회의 라디오 방송 COPE와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 상황과 자신의 건강 등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황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혼동해, 푸틴 대통령이 서구 세계가 다른 나라에 강제로 민주주의를 주입시키려 한다고 비난한 발언을 메르켈 총리가 말한 것으로 인용했다.이어 9월 2일에는 로마의 유다인 지도자가 교황의 지난 발언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교황은 8월 11일 일반알현 중 교리교육에서 “‘토라’(율법)는 생명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토라는 유다교 성서의 첫 다섯 권을 말하며, 유다인 삶의 여러 부분을 관장하는 법체계다.교황은 “율법은 하느님과의 약속을 실행하지 못하는데 율법이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영원한 생명을 원하는 약속을 추구해야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약속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의 이러한 발언에 이스라엘 랍비청(Chief Rabbinate of Islael)이 발끈하고 나섰다. 랍비청은 교황의 발언이 유다교를 경멸하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일부 따른 것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공의회 이후 교황들의 가르침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난했다.교황은 이 상처가 바로 아물길 바랐지만,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이 승리를 놓친 바로 그날 로마의 유다인을 이끄는 리카르도 디 세니 랍비가 다시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그는 “이런 구식 메시지는 적대적인 분열의 토대가 된다”며 “유다교는 형식적이며 율법제일주의이고 일상에서의 도덕적 원칙이 부족한 한물 간 종교라는 인식을 심어준다”고 지적했다.헝가리와 슬로바키아로 사목방문을 떠난 그 다음 주엔 더 큰 문제와 맞닥뜨렸다. 교황은 이미 순조롭지 못한 출발을 보였다. 교황은 COPE와의 인터뷰에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만날지 안 만날지 확실하지 않다고 답한 것이다. 교황은 “그를 만날지 모르겠다”면서 “정부 당국자들이 나를 만나러 오겠지만 누가 오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교황의 이 발언은 어딘지 조금 이상하다. 교황의 사목방문이 발표되면 언론들은 교황이 누굴 만날지 추측하는 기사들을 써내기 때문이다. 오르반 총리는 국수주의자로 유명하며, 난민과 이주민 수용을 반대해 교황과는 대조되는 인물이다. 두 인물이 서로 만나는 일에는 지난하고 상세한 협상이 필요하다.인터뷰 맥락상, 많은 사람들은 교황의 이 발언을 ‘의도적인 후려치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이탈리아 신문은 기사 제목에 교황이 ‘오르반에게 로 블로(low blow, 권투에서 허리 아래 부분을 치는 행위) 반칙을 했다’고 대서특필하기도 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시작부터 즉흥적인 발언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발언하기 전 폭넓은 자문을 구하거나 공보팀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대신 작성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교황은 어려운 주제에 관해 공보 비서관과 전략회의를 하지 않는다. 대신 실언을 할지라도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만약 교황이 COPE와 인터뷰를 하기 전에 공보팀과 조율을 했으면 메르켈 총리의 발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고, 누군가 진위를 확인했을 것이다. 또 가톨릭과 유다교 전문가가 토라에 대해 부드럽게 이야기하라고 조언했을지도 모른다. 외교 전문가는 곧 교황을 맞이할 정치인과 싸우지 말라고 권유했을 것이다.하지만 이런 일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식이 아니다. 교황은 COPE와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이러한 스타일에 대해 밝혔다. 교황은 자신은 준비된 원고를 읽지 않는다고 밝혔다. 교황은 “누군가의 앞에 있으면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들이 저절로 나오게 둔다”면서 “누군가를 만날 때 무슨 말을 할지 준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앞서 밝혔듯, 이러한 예측불가는 사람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교황청을 취재하는 언론인들은 이 예측불가성을 좋아한다. 교황이 입을 열 때마다 기사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유분방한 교황의 방식은 이전엔 없던 긴장을 일으킨다.어쨌든 2021년 9월 초는 교황에게 그리 빛나는 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나머지 9월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
존 알렌 주니어 (크럭스 편집장),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