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는 출생시간 뿐 아니라 항해술 농업생산 등을 위해 해시계가 널리 활용이 되었습니다
특히 해시계는 들고 다니기 간편한 '미니 사이즈' 로 제작돼 양반들에게 널리 쓰였어요.
일반 평민들은 사용하기 어려웠고 사대부들 학자들 중심의 양반들을 중심으로 사용되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사진 속 물건이 바로 '휴대용 해시계' 랍니다.
세종 16년인 1434년, 해시계가 처음으로 제작됐어요.
이 해시계를 앙부일구 라고 불렀어요.
양반들은 휴대용 해시계를 소매나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다가
햇빛에 비춰보면서
시간과 절기, 방위 등을 알아냈어요.
궁궐 안이나 저잣거리에 설치된 해시계의 경우
15분 단위로 시간선이 표시된 반면,
휴대용 해시계는 대개 30분 단위로 시간선이 그려져 있었어요.
초 단위로 시간을 따지며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 기준으로는 참 신기한 얘기지요.
해시계에는...
오목한 받침그릇 안에 끝이 뾰족한 바늘이 꽂혀 있고
어려운 한자 대신 열두 띠 동물을 그려 넣어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시계를 읽을 수 있도록 했대요.
사람들이 가장 북적대는 한양의 광화문과 종묘 앞거리에 놓아 두었구요..
해시계는..
만들기도 쉬워 가정집 뜰에 설치하기도 했고
조그만 해시계를 부채 끝에 달랑달랑 갖고 다녔어요.
해시계는 누구나, 언제든지, 어디서나 시간을 볼 수 있어 참 편리했대요.
■서양에서는 회중·손목시계가 유행했는데…
서양에서는 가슴에 품고 다니는 회중시계가 16세기초 처음 발명된 후 18세기에 전 세계로 확산됐습니다. 이미 19세기 초가 되면 손목시계가 등장합니다.
■ 중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널리 사용이 되었다.
[그림 4]는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중국의 해시계 중에 대표적이며 가장 정확성이 있는 해시계다. 신안휴읍( 新安休邑 )에서 만들어졌으며, 네 개의 시반( 時盤 )이 동서남북에 설치되어 있으며 이 네 개의 시반은 절기마다 조절할 수 있는 경첩이 설치되어 있다. 필자의 연구로는 시계의 목적보다는 풍수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 같았으며, 이 해시계를 이용하여 점을 치기도 하였던 것 같았다.
[그림 5]는 전한시대( 前漢時代 )의 대표적인 휴대용 해시계다. 적도일구( 赤道日晷 ) 또는 평분일구( 平分日晷 )라 불리고 있으며 한 개의 시반( 時盤 )만 설치되어 휴대할 때는 시반을 접으면 두께는 15mm, 넓이는 50mm, 길이 90mm로 휴대하기가 간편하다. 이 해시계도 절기마다 시반을 조절할 수가 있으며 중국의 대표적인 휴대용 해시계로서 팽수이(Feng Shui)해시계 중에 가장 잘 만들어졌다는 평을 얻고 있으나 과학적인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적도일구는 글자 그대로 지구의 적도에 가까운 곳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이 시계는 필자의 실험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다. 전혀 시각이 표시되지 않을 때가 많았으며 시반에 시각이 표시된다해도 우리나라의 고도에서는 해시계로서 기능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이 휴대용 적도일구는 중국의 신안휴읍 지방에서는 그곳의 지방시를 정확하게 표시하였을 것이다
[그림 6]의 해시계가 있었다. 이 휴대용 해시계를 필자는 우리나라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다. 이화여대 박물관의 설명에는 조선 후기의 휴대용 해시계라는 설명이 있었는데 필자의 중국방문 중에 우연히 발견한 같은 종류의 이 해시계는 불행하게도 조선 후기의 작품이 아니라 중국의 청조 말기의 제품이었다.
이 휴대용 해시계가 이렇게 고증이 된 것도 아마 [그림 7]의 휴대용 해시계 때문이 아닐까? 이 휴대용 해시계는 마치 유럽의 해시계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17세기 해양무역이 왕성하였던 당시에 유럽의 선원들이 수작업으로 직접 만들어 사용했던 플립형 끈시표 휴대용 해시계와 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다.
부산여자대학교 교수 정 윤 호
[출처] 21. 세계의 해시계들|작성자 타임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