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이 사랑방 이야기(314) 무인도(상)
전남 목포 영산강 포구
심 대인의 객주는 사시사철 문전성시를 이룬다.
드넓은 객주에는 대창고가 셋이요 소창고는 열둘, 화주가 잠자는 객방이 무려 스물네개다.
밤이 되면 구석진 객방 하나는 주막이 되고 엉덩이를 흔들며 화주들의 밤을 설치게 하는
수상쩍은 여인네들도 어슬렁거린다. 팔도강산의 온갖 물산들이 바리바리 이 객주로
산더미처럼 집화했다가 뱃길로 흩어진다. 객주 주인 심 대인은 돈이 들끓는 이곳의 왕이다.
심 대인은 고향 나주 본가에 본처를 처박아두고 이곳 객주에서 새파란 첩을 데리고 산다.
이 복잡한 객주를 실제로 관리하는 사람은 젊은 총각 집사 창준이다.
그는 얌전하지만 계산은 칼이다. 치부책 서른두권에 깨알 같은 글씨로 완벽하게 정리를 해놔
들락날락거리는 화주들과 말다툼 한번 없다.
열여덟살 창준이는 집안이 망해 심 대인 밑에서 집사로 일하지만 양반집 도련님 같은
훤칠한 허우대에 네살 적부터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문필 실력은 소과에 붙고도 남을 만하다.
품성 또한 온화해 그 복잡한 객주 살림을 꾸려가며 그 많은 사람과 접하면서도 아무도 척진 사람이 없다.
모두가 집사 창준이를 좋아하는데 단 한사람, 심 대인만이 창준이를 개처럼 대하고 소처럼 부려먹는다.
이름 한번 제대로 부른 적이 없이 언제나 이 자식, 저 자식, 이놈, 저놈….
하지만 창준이는 심 대인이 죽으라면 죽는시늉을 한다.
병들어 누워 있는 아버지와 온 식구들의 목줄이 창준의 새경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는 어리지만 이 객주의 안방마님 격인 심 대인의 애첩은 집사를 친절히 대한다.
이것 또한 심 대인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다.
심 대인은 배도 여러 척 갖고 있어 제물포로, 신의주로 남해를 돌아 강릉, 함흥까지
객주에 집하한 물산들을 실어 나른다.
이뿐이랴, 어디 바다 건너 중국 단동으로, 머나먼 남쪽바다 섬나라 류큐왕국까지 뱃길이 닿는다.
삼월 열이튿날, 가장 큰 배 대맹선이 강진청자, 섬진강 오매에다 담양 죽세공품, 안동소주 등을 싣고
류큐왕국 나하로 떠나게 돼 있었다. 이번 뱃길에는 사공들과 집사 창준이만 가는 게 아니라
심 대인과 애첩 홍매도 함께 가게 됐다. 집사 창준이는 며칠째 밤을 새워 꼼꼼하게 하역 작업을 마치고
돼지머리를 놓고 용왕님께 제를 올린 후 대맹선의 닻을 올렸다.
바람 한점 없는 조용한 신안 앞바다를 대맹선은 미끄러졌다.
뱃머리에서 진홍빛 낙조를 넋이 빠져 보고 있는 애첩 홍매의 엉덩이를 심 대인이 솥뚜껑 같은 손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나흘째 밤, 구름에 별들이 가려지더니 서남쪽에서 습한 갈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모두 나와 상 닻을 내리고 뱃머리를 우현으로 돌려라~.”
선장의 고함은 뇌성벽력에 묻혀버리고 번갯불에 잠깐 보였던 형상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버렸다.
하늘에서는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며, 바다는 으르렁거리며 미친 듯이 춤을 췄다.
배는 부서져 산산조각이 났다.
창준이는 어릴 적 해남 바닷가에서 자라 물개처럼 헤엄을 잘 쳐 그 암흑 속에서도 큰 판자를 주워
심 대인에게 안겼다. 그리고 홍매에게도 판자를 구해줬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바다는 호수처럼 조용하고 동쪽에서 붉은 해가 떠올랐다.
바닷가 은모래 위에 세사람이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먼저 깨어난 사람은 집사 창준이었다.
야자수가 너풀거리고 원숭이들이 신기한 듯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리,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요? 갈증이 나시더라도 절대 바닷물을 마시면 안됩니다.”
홍매는 반라의 몸이 돼 두손으로 젖무덤을 가렸다.
원숭이가 사람을 겁내지 않는 걸 보고 창준이는 이곳이 무인도란 걸 눈치챘다.
창준이는 백사장을 지나 숲으로 들어갔다가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나리, 샘을 찾았습니다.”
심 대인이 걷지 못하겠다 해 창준이가 그 배불뚝이 육중한 덩치를 업고 샘까지 갔다.
물을 마시고 나서 심 대인이
“야 이놈아, 저 해안에 떠다니는 우리 물건 건져 올리지 않고 뭐 해?”라고 고함치자
창준이는 고개를 다리 사이에 박은 채 대답이 없다.
“야, 이 자식아 내 말 안 들려?”
심 대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때 놀라 자빠질 일이 벌어졌다.
벌떡 일어난 창준이가 두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심 대인을 내려다보며 호통을 쳤다.
“야 이 개놈의 새끼야, 저것들을 건져 올려 원숭이한테 팔 거야?”
(하편 315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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