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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土地 > 발췌문
지온 김인희
김훈장의 울음은 이조 오백 년 저변에서 지탱해온 불길이 꺼져가는 데 대한 만가(輓歌)였는지도 모른다.
최고 도덕인 효사상은 조상으로 하여금 자연 종교에서의 제신(諸神)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였으니 신앙의 대상이라면 그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는 어떠한 종교든 자리를 내어줄 것을. . .
오톨박이가 되어 헤메거나 혹은 병들거나 상처받아 힘이 약해진 맹수는 유독 사납다. 서희의 경우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무료하고 지루한 나날, 서책에 묻혀 시간을 보내는 생활은 그를 위해 다행한 일이었으며 거기에서 얻어지는 지식은 또 지혜를 기르는 살찐 토양이 되어 주었다.
악이란 정신적 욕망에서든 물질적 욕망에서든 간에 그릇된 정열이어서 우둔할밖에 없고 찢어발길수 밖에 없는 허무의 의상을 걸치고 있다.
농발 대신 저기 막대기를 괴었느니라. 후일 너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만일을 위해 마련해주는 게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그것을 쓰게 되고 못 쓰게 되는 것은 오직 신령의 뜻이 아니겠느냐?
세월이 길고 보면 당장에 급하다고 햇병아릴 잡아먹을 수는 없지. 길러서 알을 낳게하고 많은 닭을 쳐야 한다.
풀뭇간에서 땀을 흘리는 대장장이도 부정하고 인내 아니 한다면 어찌 서릿빛 칼을 만들겠느냐?
천성이 악독하고 교활한 자에게는 지식도 그 악독과 교활에 쓰이는 법이다. 연장도 쓰기 나름 아니겠느냐? 지식도 그와 마찬가지로 쓰기 나름이야.
초봄 들판에서 나물을 캐는 고사리 같은 손은 정에다 정을 돌려줄 줄 알지만 시궁창에 흰밥 쏟아버리는 아낙은 허기든 사람에게 식은 죽 한 그릇 베풀줄 모른다.
풍전등화 같은 목숨. 하루살이 같은 인생. 연해주와 만주 땅을 유랑하는 백성들. 남의 땅에 뿌리 박기도 어렵거니와 뿌리가 내린들 튼튼할 까닭이 없다.
용이는 월선을 위한 바람막이 같은 자신을 깨달을 적에 일상의 추악한 단면을 외면할 만큼 인내심이 깊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단 말고, 불쌍한 것!’ 순수하게 옛날과 같이 순수하게 용이는 월선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내리다 보고 올려다본다. 눈만 살아있다. 월선의 사지는 마치 새털같이 가볍게, 용이의 옷깃조차 잡을 힘이 없다. 용이 돌아와서 이틀 밤을 지탱한 월선은 정월 초이튿날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
용이의 불운이 시국 탓이라기보다 그 자신의 운명, 그 자신의 가치관, 그 자신의 성질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관수는 용이 모습에서 핍박받는 제 조상을 보는 것이고 훗날의 자신을 보는 것이다. 모든 것을 체념해 버린 건조하고 쓸쓸한 웃음이다.
사방은 눈부신 황혼이다. 울창한 원시림에 묻혀있던 용정촌에 처음 낫과 도끼질을 한 사람은 조선인이었다고 했다.
그 어느 것보다 홍이의 마음의 고향은 월선이다. 그 헌신적인 모성애는 여러 가지 불행한 인간관계를 넘어서게 했으며 홍이 마음을 명경처럼 영롱하게 지켜준 사람, 영원한 어머니 공월선(孔月仙)!
가장 악랄한 잔인무도한 악인이 선량하고 정직한 아우를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아름다운 추억과 사랑의 슬픔과 기쁨을 가져보아라하는 관용이었다. 플라토닉러브를 동경한 명빈의 감상도 있었을 것이다.
효사상은 사랑이라는 인간 본연의 바탕 위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야 할 꽃인데, 사랑이 없는 곳엔 바위에 계란치기다.
일본의 유화정책-총칼로 죽이느니보다 산송장을 만드는 것이 얼마만한 이득을 가져오느냐를. 힘을 분열시키는 것은 정복자들의 금과옥조야.
길상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깨달았을 때 서희는 가파로운 고갯길에서 땀을 닦으며 쉬고 있는 것 같은 자신을 느끼는 것이다.
문학이다, 음악이다, 예술이다. 그런 말을 하지 않는 유식한 여자는 아마도 최서희 그 사람일 것라고. . .
아무리 교육을 받고 높은 지위에 있다 하여도 비천함은 고쳐지지 않는 법이다. 그것은 인성이 나쁘다는 것이며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것이다.
모습은 달라졌어도 주갑의 한 맺힌 목소리는 변함없이 청아하고 보잘것없는 한 인간이 홀연 고귀한 모습으로 주변을 압도한다. 바람 부는 날 수수깡 같은 몸을 흔들며 주갑은 나간다.
독약에 사탕을 발라 내민 총독부의 문화정치에 민족주의자들이 마비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뻔한 일이겠지만.
음풍농월(吟風弄月)하던 시절은 아닐세. 광대 갖바치도 직능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아니 될 것이야.
나는 벌목꾼이요, 나는 미장이요, 자기 직능을 똑똑히 말못할 만큼 자신이 없다면 그건 어딘가 잘못돼 있는 거야. 잘못 살고 있다는 얘기지.
<민족개조론> 놀랄 정도로 졸문이더군. 너절해. 그 글의 십 분지 일만 가지고도 할 말 하고 남았을 게야. 젊어서 그랬겠으나 아는 것 자랑이 심해. 설교자의 옷을 늘 입고 있어서 진실이 가려져 버렸다는 느낌 때문에 싫습니다.
글은 칼이 될 수 있는 거고 꽃도 될 수 있는 건데 칼은 무디어졌고 꽃은 종이꽃이 된 거지. 경련처럼 이는 그리움!
부모의 큰 죄는 바로 자신의 죄요, 부모의 악업으로 얻은 재물로 자신이 연명 되고 있다는 그 뼈를 깎는 고통. 더러운 곡식을 아니 먹으려고 수없이 기도했던 자살. 그러나 생명에의 집착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포기하였고 더러운 물 더러운 곡기를 미친 듯 빨아당기지 아니했던가. 병수는 죽지 못하는 치욕 때문에 미쳐 날뛰었다. 그를 구원한 것이 바로 이 소목일 이었다. 이제 명수는 용서를 받은 것이다. 자학은 일(예술)에서 승화되었다. 일은 그에게 만남이었다.
사람의 일이란 관 뚜껑에 못질을 해놔야 그래야 말할 수 있는 거 아니겠소? 칠십 팔십이 되고 다 살았다 다 살았다 함시도 험한꼴 볼라카믄 얼매든지 본케. 관 뚜껑에 못질하기까지는 장담 못하제요.
오랜 병고 끝에 용이 머지않아 죽을 것이란 사실이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병고 말고는 용이 말년이 비교적 풍파 없이 조용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를 위해 마음 아파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누구 가슴에 못질을 한 일도 없었으며 깊이 관여하지도 않았고, 어딘지 도인(道人)같이 표류했던 그이 일상은 사람들에게 병고로 빚은 음산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인실이 사랑한 오가다. 소년 같은 사내. 집 잃은 고아 같은 사내. 한국의 남자들한테서는 좀체 없는 나이 어리지도 않은데 어린애 같고 신중하면서도 솔직하고 소심한 것 같으면서도 엉뚱하고.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고. 그래도 난 내가 당신에게 가는 것을 허락할 수 없어요.
한이야 후회하든 아니하든 원하든 원치 않든 모르는 곳에서 생명과 더불어 내가 모르던 곳, 사람 모두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온 생명이 응어리진 것.
인생을 관조하듯 표표한 모습으로 죽음을 기다리던 아비. 홍이는 아비 이용이야말로 가장 멋진 사내였다고 스스럼없이 생각한다. 열사도 우국지사도 아니었던 사내. 농부에 지나지 않았던 한 사나이의 생애가 아름답다. 사랑하고, 거짓 없이 사랑하고 인간의 도리를 위하여 무섭게 견디어야 했으며 자신의 존엄성을 허물지 않았던 그 감정과 의지의 빛깔. 홍이는 처음으로 아비 모습을, 그 진가를 보는 것 같았다.
사람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면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는 거야. 그 하나는 먹는 것 입는 것 다 잊어버리는 상태. 그리하여 짚불 잦아지듯 사라지는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주렁주렁 단다는 거야. 허기든 사람같이 뭣이든 계속해서 먹고, 전에 안 하던 화장을 하고 반지나 장신구 같은 것을 있는 대로 끼고 달고 옷은 화려하게, 절망의 시간을 빨리 먹어 치우자는 잠재의식의 소행이라는 거야.
연도 연줄이 있어야 창공을 날지 연줄이 끊어지면 나뭇가지에 걸리거나 지붕위에 떨어져서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범이 우리속에 갇혀서 고기나 받아먹고 그리살면 무엇하겠나?
구석구석에 몰아넣고 굳게 마개를 틀어막아 놓은 여러 가지 갈등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위기를 느낀다.
보석을 뿌려 놓은 듯한 하늘가에 산허리가 금을 긋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각기 하나씩 자기 별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우주의 질서는 벌레나 풀잎에도 축소된 상태로 작용하고.
담금질하듯 정수리를 태우던 복더위는 갔고, 흙담을 타고 올라갔다가 늘어진 호박 덩굴은 누릿누릿, 잎새들이 많이 성글어 뵌다.
내부의 언어들은 실에 꿰 볼 만한 값어치도 없는 구슬같이 구르고 흩어지고 있었다.
미모와 조신스런 행동거지 본래에 타고난 심성 때문에 명희는 남의 눈 밖에 난 일이 별로 없었고, 모멸을 당한 일도, 거칠게 다루어진 일도 없었다.
형무소 –도적놈들이 샛별 같이 빛나는 사람들을 잡아두는 곳이다.
선의의 사람을 대할 때는 뭔지 모르게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 왜 이런 사람들이 세상엔 많지 않을까. 왜 이런 사람들의 생각이 통하지 않을까.
순결하구나. 들꽃 같구나. 나는 느낄 수 있어. 너 마음이 슬픔에 가득 차서 깨끗하게 씻겨져 있는 것을.
제 앞만 쓰고 사는 것이 장부겠습니까. 많은 사람을 위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이 장부의 마음이라 저는 알고 있습니다.
기쁨이 그를 겸손하게 하였고 양보하게 했을 뿐이다. 소유하자는 생각도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가다는 이미 소유했다는 확신 속에 있다. 인생의 비밀을 두 손안에 꽉 쥐고 있었다.
살아가는 동안 마디가 하나씩 하나씩 생기다가 그라고 나믄 가는기라.
그의 사고방식, 그의 가치관이 모래성에 불과했던 것을, 권위나 재물이나 힘으로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이제 깨달았을 것이다. 탐욕은 손에 넣기 쉬워도 진실은 잡기 어렵다. 해서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맑은 물줄기에서 타락한다. 숫자만 기억하고 숫자만 믿으려 한다.
이곳저곳에 모래 무덤을 만들어 보듯 찬하는 이곳저곳에 나누어서 생각의 무덤을 만드는 것이었다.
조선은 선비와 농민으로 대표되고 일본은 무사와 상인의 나라.
일본의 무사들이 칼을 갈고 어느 길모퉁이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죽일 때 조선의 선비들은 글을 읽고 먹을 갈았습니다. 상무 정신이 당신들 나라의 오늘을 있게 했다면 성인군자의 길을 닦던 조선의 선비들은 당신네들 침략을 막지 못하고 오늘의 비운을 당하게 했어요.
일본의 춤은 손목, 발목의 춤이더군요. 조선의 춤은 전신의 율동이예요. 탈춤의 도약을 보면 그건 터져나오는 힘이예요.
명은 하늘이 주신 거고, 사람이 잘 묵어야 하루 밥 세 끼, 저승길에 이고 지고 갈기가, 나이 들어봐라. 재물 그거 별거 아니네라.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돌아보고 하믄은 잘못한 거만 짐이 되제. 그저 푼수껏 사는 기이 젤이다.
‘저는 그분한테 생병보다 중한 것을 주었습니다. 더이상 줄 것이 없어요.’ 생명보다 중요한 것, 그것은 단순히 여자의 순결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찬하는 안다. 조국에 헌신할 것을 맹세한 여자가 그 조국에 반역행위를 했다는 뜻이 더욱 깊다는 것을. . .
이제 조선에서의 종래의 지식인, 지도적인 지식이이었던 선비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 자리를 이어받을 동경 유학생들, 그들의 갈등과 고뇌는 개인적으로 비극이지만 그것은 또 조선 민족의 비극이다. 합리주의적 지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이 묻혀올 일본의 가치관이 역사를 난도질하고 민족 정신을 파괴할 위험 부담은 심각하다.
사회 자체가 거대한 에고이즘의 덩어리라는 말은 맞는 말이네. 전폭적인 긍정으로 감상주의에 흐르는 것도 대단히 위험한 일이야. 더더구나 민족주의를 휘두르고 나가는 사람들에겐. . . 사회주의자들도 마찬가지야. 민중에게 절망하는 것도 그러하나 큰 기대를 거는 것도 어리석어. 실체를 뚫어보지 않고 하는 일은 결국 붕괴된다.
그러나 깡그리 남의 것으로만 치장한 일본 형편에 줍기도 쉽고 버리기도 쉬운 속에서 단련된 지식인을 대하기란 어렵지요. 외부에서 가해지는 물리적인 힘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보다 지식인들 스스로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관념을 도려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조선 호랑이. 암호랑이지요. 당당하게 가는 여자. 인생을 가득 끌어안고 군더더기 없이. 인실은 또 하나의 죄와 벌의 자락을 끌고 갔다.
셋방을 얻으려고 찾아왔을 때나 가끔 골목을 오가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았을 때 권노인은 여느 여자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수수한 입성에 화장기라곤 없고 여의어서 쓰러질 것 같았지만 옛날 길서상회 안주인(서희)의 그 고귀함. 강인함과 일맥상통하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중국인의 목을 잘라 수십 개를 쌓아놓고 피 묻은 칼을 든 자신의 모습을 찍어 가족에게 보낸다. 한데 말이야. 중국인의 남근(男根)을 짤라 마치 시가처럼 목잘린 중국인의 입에 물린 사진, 상상을 해 보아! 언젠가 일본은 천벌을 받을 것이오. 후일 세계에서 최초로 그들은 원자탄 세례를 받지 않았는가!
상대가 약하다 싶으면 사악하기가 뱀 같고 늑대같이 포악해지지만 상대가 강하다 싶으면 순식간에 쥐새끼로 표현하는 일본인의 습성.
재물로 가문이 빛나는 것은 아니요. 재물은 없어졌으나 인물로 가문이 남은 거요.
사람들은 흔히 나이가 가르친다는 말을 한다. 서희는 모가 깎이여 부드럽고 포근했으나 역시 노화와 술수의 흔적이 있었고 명희는 여기저기 흐트러진 신경의 부스러기들을 모아 뭉쳐놨는지 의젓하고 제법 관록이 있어 보였다. 나이가 가르친 것일까. 서릿발 같은 서희와 청초한 명희.
범속하지 않은 명운이란 사람에게만 한한 것이 아니며 천지만물, 억조창생, 생을 받은 그 모든 것에도 해당이 되는 것인즉, 천년을 사는 거목의 신령함이 있는가 하면 같은 나무로 태어나서 진작부터 베어져 불간으로 들어가는 불운이 있고, 동네 어귀에서 세상구경, 귀가 시끄러운 나무가 있는가 하면 벼랑 끝에 홀로 있기도 하고.
만물이 본시 혼자인데 기쁨이란 잠시, 잠시 쉬어가는 고개요 슬픔만이 끝없는 길이네. 저 창공을 나는 외로운 도요새가 짝을 만나 미치는 이치를 생각해보아라. 외로움과 슬픔의 멍에를 쓰지 않았던들 그토록 미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강줄기 같은 행로의 황홀한 꿈이네.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란 말도 못들어 보았느냐?
어쩌면 그 사람 운명 앞에 큰대자로 누워버린 사람 아닐까요? 아주 편하게요. 해서 자유롭게 거동하며 복종도 반항도 아닌 생각한 대로 구름 가듯이.
그게 세월인 거야. 잡히지 않는 안개 같은 그게 세월일 거야.
연민은 순수한 애정의 출발일 게다. 젖을 물리는 어머니의 마음도 연민일 것이다. 사별의 슬픔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슬픔도다 연민에서 오는 슬픔이 한층 더 진할 것 같구나.
눈보라를 보내고 바람을 보내고 빗줄기를 보내더니 어느덧 자연은,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현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효행이 부모의 권리가 된 데 문제가 있는 것지요. 권리 말입니다. 심청전을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하고 말살해야 합니다. 가장 추악한 에고이즘, 에고이즘의 극치 아닙니까!
네. 그래요. 전쟁이 끝나고 인실씨를 만날 수 있다면, 두 사람이 살아남았다면 그 사람과 내 아들을 끌고 나는 북극으로 갈겁니다. 빙하를 건너서요.
이 애는 축복받은 생명이다. 이렇게 무구하고 신비스럽게 자라주지 않았는가. 이 아이는 우리들 사랑의 등불이야. 세상을 밝혀줄 것이다. 인실의 뜨거운 눈물과 나의 비원을 받아 태어난 아이. 이 영롱한 생명은 세상을 밝혀줄 것이다. 조선인은 풀잎 같이 엎드려서 태풍이 지나가는 것을 기댜려야 해요.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폐간이 되었는데 오히려 새로운 잡지들이 나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지요? 자리를 마련해줄 테니까 대일본제국에 대한 충성을, 피 한 방울까지 성전을 위해 바쳐라. 그렇게 떠들라는 거지 뭐겠어요.
얼굴이 새까맣고 반백이 된 중늙은이. 본댁 티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낯가림을 하는 아이처럼, 그리고 수굿했던 김두만의 본마누라. 그 자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월화는 가슴 아프게 느꼈던 것이다. 호적이야 어찌되었건 귀밑머리 마주 풀고 일부종사한 여자의 당당함을 원화는 느꼈던 것이다. 늙고 못생겼으며 난쟁이같이 볼품없는 체구 그 어디에선가 풍겨나는 당당함. 인생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시어머니 후광 속에 있던 그. 이웃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시동생, 손아래 동서 그리고 조카들에게 떠받침을 받고있는 기성네 처지는 견고한 성만 같았다.
길상이 그린 관음탱화에서 눈을 떼고 백씨를 바라보던 명희는 여간하여 그 예배가 끝날 것 같지 않아서 다시 관음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순간 명희는 참으로 기이한 충격을 받는다. 그렇게 현란하게 보이던 관음상이 폐부 깊은 곳, 외로움으로 명희 이마빼기를 치는 것이었다. 어째서일까? 명희는 자기 마음 탓이려니 생각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뭐라 형형하기 어려운 감동이었다. 숙연한 슬픔, 소소한 가을바람과도 같이 영성을 흔들며 알지 못할 길고도 깊은 아픔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원초적이며 본질적인 것으로 삼라만상에 대한 슬픔인 것 같았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풀잎은 바람이 잘 때까지 엎드려야 하고 파도가 거세어지면 돛을 접어서 파도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법, 인간사도 그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용기도 중요한 것이기는 하나 그보다 지혜로움이 앞서야 하고, 이런 얘기를 하면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풍월 읊는다 하며 비웃을지 모르나, 머리속에 도판을 그리기보다 땅을 먼저 밟아야 하네.
명산 산봉우리에 쇠말뚝을 박은 왜놈들, 그네들은 사악하게도 조선에서 무엇을 끊어놔야 하는가를 알고 있었던 게야. 국토를 점령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 혼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게야.
누군가를 섬기면서 산다는 것이, 이토록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일까.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며 마음으로 산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양현을 범하지 못했던 것은 그를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영광은 깨닫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잊어지리라 영광은 그렇게 생각했으며, 자신의 집념을 조용히 파괴하고 있었다. 영광은 자기 자신을 상자 속에 집어넣듯 웅크리며 다독거리며 간신히 균형을 잡는다.
그 할머니 사시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은 것은 사실이예요. 그 분은 자신의 불행까지 사랑한다고 할까, 천지만물 모든 것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았어요. 겨울 긴긴 밤에 목화씨를 발가매면서도 밥을 짓고 아궁이에 솔가지를 뿐질러 넣을 때도, 아들에게 옷을 갈아입힐 때도, 그 정성이 하나의 의식같이 보이는거예요. 할머니 자신은 조금도 의식하지 않았지만 말이예요. 나도 저와 같이 시간을 가득하게 살아보고 싶다. 그런 생각 여려 번 했어요. 싱그러운 풀 같고 흐르는 강물 같이.
밤낮으로 정성을 다하여 장롱 하나를 만들어놓고 나면 배가 고프다 했지요? 그 배고픔은 위장에서 오는 것이 아닌 마음에서 오는 배고픔이라 했소. 어쩌면 눈이 저렇게 깨끗할까? 병수 눈동자에 서리는 따사로움과 영롱함에 이끌리듯 바라보는 것이었다. 내 불구의 몸은 나를 겸손하게 했고 겉 보다 속을 그리워하게 했지요. 모든 것과 더불어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는 물과 더불어 살게 되었고 그리움 슬픔 기쁨까지 그 나뭇결에 위탁한 셈이지요.
병수는 길상이 그린 관음탱화 앞에 선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최서희의 모습이 안개같이 떠도는 것 같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아름답고 유현한 관음보살이었을 뿐이다. 머나먼 곳에서 비쳐오는 빛과도 같이, 구원과도 같이 아름다운 관음보살. 깊이 모를 슬픔이며 환희 같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덧 경이로움과 감동은 떠나갔다. 대신 길상의 외로움이 가을밤처럼 숙연하게 묻어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이상하게도 병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자신의 외로움과 동질적인 길상의 외로움이 겹쳐지면서 외롭지 않다는 묘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영혼과 영혼이 서로 닿아서 느껴지는 충일감 같은 것이기도 했다.
가락과 장단은 움직이며 살아난다는 것일세. 기량과 모양은 열심히만 하면 대게 그쯤은 될 수 있어. 나무 조각 쇠붙이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여느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의 예삿일은 아니다. 그것에 가락이 있고 장단이 있으면 그래야만 명공(名工)일세. 절 처마 밑의 풍경을 생각해보게.
왜놈은 수천 년 역사에서 티끌 하나 우리에게 해준 것이 없다. 구걸해 가져가고 도적질해서 우리 것 가져가고, 그들 국가의 기반이 우리 것으로 하여 이룩되었는데 그럼에도 티끌 하나는커녕 고마움의 인사말 한마디 없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아왔다. 그들의 역사는 거짓으로 반죽한 생명 없는 토우(土偶)다. 그 잔혹한 종자들이 오늘 우리를 어떻게 하고 있나? 이제 우리는 생명이나마 간신히 부지했던 우마(牛馬)의 처지에서도 벗어나 전쟁물자가 되었다. 전쟁물자! 일선으로 끌려간 수많은 순결한 우리의 누이들, 그들의 육신은 쉿 덩이, 기계가 되고 말았다. 고철이 되어 이름 모를 산하에 버려지고, 기계라 부를 수밖에 더 무엇으로 표현하리. 참나무같이 단단하고 오월 나뭇잎같이 싱그러운 우리의 형제들은 어찌 되었나. 그들 역시 쓰다가 고철이 되고 삭아서 탄광촌 숲속에 굴러 있네. 일본이 패전하면 명심하고 또 명심할 일은 코딱지 하나도 그들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 두 번 다시 재앙을 겪지 않기 위하여. 본래 그들은 남에게 줄 것이 없고 받아야만 하는 처지, 그러나 국으로 받아먹었나? 그들은 머지않아 망할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법칙이며 물리의 현상이다. 우리 민족은 결코 죽지않을 것이다.
“어머니! 이, 이 일본이 항복을 했다 합니다!”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이냐. . . .”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다음 순간 모녀는 부둥켜안았다. 이때 나루터에서 읍내 갔다가 나룻배에서 내린 장연학이 뚝길에서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며 걷고 있었다. 모자와 두루마기는 어디다 벗어던졌는지 동저고리 바람으로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끝>
두 달여 동안 박경리선생님과 칩거했습니다. 거대한 문학의 산맥을 감히 완주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26년을 거쳐 당신을 녹여낸 土地! 하여 거룩한 의식을 받들 듯이 반듯한 자세로 책을 대했고 활자 하나하나 놓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선생님께서는 절박한 심정으로 土地를 쓰셨을 것이라고 미루어 받들었습니다.
숨죽이면서 읽고, 먹고, 자고 또 읽었습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살았습니다. 결국에는 마지막 한 권 남기고 몸살을 앓고 말았습니다.
노트에 빼곡하게 적었던 내용 간추려 옮깁니다. 후에 <독서감상문>을 다시 쓰겠습니다.
첫댓글 후에 <독서감상문> 다시 쓰겠다고 한 약속
지키겠습니다.
책의 메모를 옮겨 적었기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