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키우지 않는 이유/ 민 혜
봄 햇살이 천변에 가득하다. 대지는 푸릇푸릇한 새 생명들로 살 거죽이 트는 중이다. 봄볕 아래 산보객들이 줄을 잇는다. 애견과 함께 걷는 이들도 자주 눈에 뛴다.
내 시선은 사람보다 개들에게 쏠리는데 어떤 견주는 무려 네 마리나 거느리고 간다. 견공들은 모두 옷을 걸치고 있어 애완견 패션 전시장이 따로 없는 것 같다.
나는 한 놈 한 놈 눈여겨보며 천천히 걸어간다. 눈알이 굴러 떨어질 듯한 시추와 보스턴테리어가 지나간다. 이어 3m쯤 전방에서 성깔 깨나 있어 보이는 빨간 재킷을 입은 누런 털의 포메라리안이 오는가 싶더니, 내 뒤에서 오던 골든 리트리버가 남자 주인과 함께 나를 앞질러 갔다. 골든리트리버, 내가 키우고 싶어 하는 개다.
개들은 연이어 나타났다. 방금 스친 포메라리안과 골든 리트리버는 사람으로 치면 소인배와 대인배처럼 보인다. 덩치도 그렇지만 생김새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그렇다. 어린 시절에 개와 고양이를 비롯해 새와 토끼까지 길러본 경험이 있어 그런지 동물들만 보면 나는 단숨에 동심으로 돌아간다.
다시 저만치서 이마 주름이 주글주글한 퍼그가 감색 옷을 입고 뒤뚱거리며 오고 있다. 퍼그는 예전에 키워본 개다. ‘두기’라는 이름의 퍼그와 살던 집은 숲이 우거지고 대지가 천 평 가량 되었다. 친구의 친정 부모님이 살던 집이었는데 두 어른이 돌아가신 후 2년여 우리 가족이 살았다.
두기는 그 친구가 아파트에서 키우던 개인데 자기 친정집에 데려다 놓아 이사한 뒤론 우리 개가 되었다. 울안엔 본채 말고도 세를 준 두 채의 집이 있었고 각각 개들을 키워 개들이 네 마리나 되었다. 두기와 달리 나머지 개들은 잡종견이었다.
사람의 관상을 말 할 때 족제비상이니 돼지상이니 여우상이니 하지만 개들도 저마다 상이 있고 그 얼굴값을 하는 것 같다. 두기는 수컷이고 엉뚱한 면이 있었는데 놈은 울안의 세 마리 개와 자기가 격이 다르다는 걸 아는 녀석 같았다.
가령 담 밖에 사람들이 지나가면 다른 놈들은 목이 찢어지라 짖어댔지만 두기 녀석은 커다란 눈동자만 굴리며 상황만 주시하였다. 짖는 건 아랫것이나 하는 거라는 듯 시침 떼고 앉아서 잡견들 행태나 지켜보다가 외부 사람이 대문 안으로 들어오면 그때는 줄이라도 끊어댈 듯 짖어대었다.
개 네 마리가 합창하듯 짖으면 울안은 온통 개 소리로 가득 찼다. 아랫것들 세 녀석은 소프라노고 두기는 바리톤. 세 녀석들은 숨도 안 쉬고 내리 날카롭게 곧 죽을 듯 짖어대지만 두기는 나름 품격을 지니며 적당한 간격의 쉼표를 지켜가며 우렁차게 짖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엔 자기 집 지붕으로 올라서서 진두지휘하듯 짖곤 했다.
그 시절엔 개들에게 사료보다 주로 밥을 먹여 키웠는데 두기는 아랫것들과 달리 아무 거나 덥석덥석 받아먹질 않고 밥그릇에 비린내라도 풍겨줘야 먹는 녀석이었다. 어느 주말인가 식구들과 소불고기를 해 먹게 되었다. 나는 두기 밥을 먼저 챙겨주고 식구 밥은 나중에 차렸다.
고기 냄새를 맡은 녀석은 제 밥은 쳐다보지도 않고 왕 구슬 같은 눈동자를 디룩거리며 거실 쪽만 들여다보았다. 고기 한 점을 줄까하다가 날로 녀석의 입맛이 까다로워지는 것 같아 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녀석은 시위라도 하듯 제 밥그릇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전날 준 밥이 그대로 수북했다.
나는 새 밥을 주지 않고 녀석의 동태를 지켜보았다. 아침이 지나고 점심을 넘기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물그릇에 입만 축일 뿐 밥그릇은 외면했다. 덩치가 있는 놈이라 배가 꽤나 고팠을 텐데도 녀석은 질기게 버티며 심리전을 펼치고 있었다. 결국 녀석의 시위에 내가 지고 말았다. 고기 몇 점 밥 위에 얹어주자 녀석은 흡입하듯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싹 쓸어 먹는 게 아닌가.
두기를 키우기 전에도 잠깐 주택에 살면서 지인이 선물한 발발이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었다. 잡견이었어도 똘똘하고 충직했다. 신축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어 이사를 가게 되자 개 문제로 고민이 생겼다.
아무래도 마당 있는 집이 개에게 나을 것 같아 이사를 앞둔 어느 날 레오(녀석의 이름)에게 밥을 주며 한 마디 했다. 사흘 뒤엔 우리가 아파트로 이사 간다고. 하지만 너에겐 이 집이 더 좋을 것이니 새 주인과 정붙이며 잘 살라고.
그 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듯 레오가 밥 먹기를 거부했다. 사흘 내리 그랬다. 아무리 맛있는 걸 주어도 입만 잠깐 대곤 제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 게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녀석을 새 주인에게 부탁하고 떠났지만 애를 떼놓고 온 것처럼 녀석의 표정이 계속 눈에 밟혔다.
이사 간 뒤 우리 식구들은 날마다 레오가 보고 싶어 녀석의 얘기를 화제에 올렸다. 꿈속에서 레오가 나타나 콧날 시큰한 적도 두세 번이나 있었다.
마당 너른 친구의 친정집에 사는 동안 잠시 맡아 키우던 두기와도 아파트로 가느라 다시 헤어졌다. 기운 펄펄하고 운동량이 많은 두기를 아파트에 가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 뒤 녀석의 꿈도 몇 번이나 꾸었다. 품안으로 두기가 달려오기에 녀석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다 그 소리에 잠이 깬 적도 두어 차례. 어찌나 가슴 아프던지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재차 마음 굳혔다.
동네 천변을 거닐 때면 두기 같은 개도, 레오 같은 개도 만난다. 학창 시절에 키웠던 진돗개도 만난다. 내가 키웠던 녀석들은 벌써 저 세상으로 떠났을 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다. 개 때문에 눈물 흘리며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금도 개를 키우기는 한다. 골드리트리버. 평생을 살아도 아무 문제없을 봉제 인형 개. 웬만한 개 덩치만큼 큰 덩치의 ‘봉달’이란 녀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