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풍경은 몇 단계의 색채를 거느린다. 서녘 하늘부터 물든 노을이 사그라지고 허공은 잿빛으로 어스름할 때 짙은 파랑은 온 하늘을 덮는다. 밤이 되기 직전 진파랑은 고운 몽환같이 감동과 여운으로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평생을 따라다니는 상처로 곤비한 내게 천양의 푸른빛은 광활하며 자비롭다. 파랑은 내 안의 질척이는 불온함에 휘산 작용을 하는 듯하다. 파랑은 저녁을 닫고 아침을 여는 시그널이다. 일출 전 새벽하늘은 저녁의 푸른 색감처럼 유려하고 신성하다. 새벽하늘을 응시하면 바다를 보는 것 같은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새벽 하늘빛이 청라처럼 그윽해지면 동쪽 하늘가에서 샐빛이 뿌옇게 움튼다. 그 뒤 까치 노을이 붉게 물들면서 아침이 오는 것이다.
피카소의 청색 시대는 친구의 자살과 그가 머물던 파리의 화려한 뒤 배경에 가난과 타락, 근심과 폭력이 기인했다. 그 시대의 피카소 그림은 오직 푸른색 하나로 음영을 주면서 작품을 완성해 갔다. 채도를 낮추고 바랜 잉크 같은 탁한 기법으로 처리했다. 모델들은 모두 마른 외형에 파란 눈도 초점 없이 형형한 모습이다. 그는 누아르처럼 어두운 곳의 힘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변질되는지, 굶주림 앞에서 어찌 자멸하는지 작품 속에 녹여냈다. 블루는 우울하고 멜랑콜리하며 겨울 숲의 그늘처럼 차가운 색이다. 영어권에서 '나는 파랗다'는 우울하다는 얘기고, 우리나라의 언어 중에서 '파랗게 질렸'와 맥락이 같다고 본다. 공포나 두려움의 원천은 우울이다. 또한 파랑색은 진정효과가 있다고 믿을만한 학설에 나와 있다. 그리 보면 파랑색은 어떤 환경과 어떤 색과의 호환이 가능한 통섭의 색이다.
진파랑으로 어스름해지는 시간은 사위가 가물거리며 흐려진다. 그 시간대를 늑대의 시간이라고 불렀다. 푸른 지평에 어른어른 무엇인가 지나가는데,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고 한다. 늑대의 시간은 이제 멸절되었다. 용맹하고 영리한 늑대들은 사람들의 무차별적인 표적이 되었다. 늑대의 털과 가죽을 전리품처럼 환호했기에 사냥꾼들이 늑대의 씨를 말렸다. 어쩌다 살아남았던 늑대의 무리들이 서로의 안녕을 묻고 위급 시 신호를 보내는 애절한 하울링마저 전설이 되었다.
오래전부터 블루스의 거장 게리무어의 음악에 매료되었다. 그의 블루스는 슬프고 고독하며 야수적이다. 게리무어의 무대를 보면 엄청난 거구에 오만상을 쓴 표정이나 공격할 듯 하얗게 드러낸 치아가 날 것을 향유하는 짐승처럼 섬뜩하다. 심연까지 파고드는 기타의 하울링은 늑대의 포효와 같다. 그의 기타연주는 화려한 기교와 끊어질 듯 이어지는 파격적인 구성임에도 창졸간에 거대한 블루를 간두에 세우고 고독과 도발이 상치되면서 비장미를 이룬다. 블루스는 미국의 흑인들이 혹독한 노예 생활을 할 때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통한을 주절거리다가 서로 주고받고 하던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블루스는 어둡다. 사랑 대신 이별의 기억을 담아냈으니 처연하고 홀연하다. 게리무어는 무대 조명마저도 온통 음산한 코발트블루이다. 게리무어는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명곡은 영원하다.
나는 푸른 하늘과 맞닿은 바다를 좋아한다. 젊은 날 나는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살았다. 울산에서 셋방살이를 전전하다가 집 장만을 한 곳이 바다가 보이는 집이라니.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자다가도 베란다에 나갔다. 밤바다 수평선 가득하게 집어등이 불을 밝혀 있는 풍경은 이국의 화려한 황실의 축제 같았다. 베란다에서 확연하게 보이는 서늘한 푸른 바다가 내 안의 뜻 모를 분노와 방황을 진정시켜 주는 것 같았다. 늑대의 시간이면 가끔 홀로 바닷가를 찾았다. 짙푸른 하늘 아래, 짙푸른 바닷가 모래사장에 누우면 호젓하고 편안했다. 글을 쓰는 지인들이 모이면 얼마간의 술과 안주를 사서 무조건 바다로 갔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모임인데도 가슴이 충만했다. 파도에 야경이 스며들어 너울거리며 춤을 추었다. 그 후 바닷가를 떠난 내륙지방에서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밤늦도록 문우들과 어울리며 보냈던 시간들이 간절해졌다. 그날의 지인들은 여기저기 흩어졌는데 입을 모아 우리가 함께했던 젊은 시간들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토로했다. 그리움에 꿈에서 깨면 몽롱해져 발바닥에 모래가 묻지나 않았을까, 치마를 털면 조개껍데기가 나올까 기대하기도 했다.
언젠가 우연하게 불모의 땅에서 신기루를 보았다. 하, 짙푸른 긴 천들이 허공에 몇 겹으로 채우면서 바람에 나부끼는 순간을 잊지 못한다. 쪽물 든 광목천을 조심스럽게 스칠 때 나타난 곳은 폐교로 만든 자연염색 공장이었다. 쪽물뿐 아니라 감물, 나뭇잎, 황토 등 다양한 물감을 만들고 있었다. 주인에게 사정사정해 쪽 씨를 한 주먹 얻어왔다. 집 앞에 쪽 씨를 뿌렸고 나는 광목천을 떠다가 쪽을 염색하여 옷을 지어 입고 싶어졌다. 병이 깊어진 심신에 쪽빛 옷을 입는다면 치유가 될 것 같았다. 쪽물을 만드는 오령도 배워왔다.
그 쉬운 일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쪽 씨를 뿌리고 쪽이 무성하게 자라고, 파랑 꽃을 피우는 사이 가정은 극단적인 위기에 몰려있었다. 가정이 완전히 몰란한 뒤였다. 저열한 집안에 검정 정장의 사내드이 우르르 몰려와 온통 빨간 딱지를 붙였다. 부러질 듯 삐걱대는 목조건물의 천장과 벽에서 매일 큼직한 바퀴벌레들이 비처럼 내려왔다. 대학생이던 딸은 구질구질한 집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며 가방을 싸서 친구네 집으로 떠나갔다. 갓 제대한 아들은 아빠가 금방 갚는다며 자신 앞으로 많은 돈을 빌려 신용불량자가 되게 생겼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여기저기 빌려준 돈을 받으러 간가며 애 아빠는 석 달이나 넉 달이 되어서 돌아왔다. 나는 건강이 나빠져서 여러 번 수술을 했고, 시도 때도 없이 가슴에 불을 지핀 듯 공황 발작으로 위태롭게 보내야 했다. 푸른빛의 갈망은 그로 인해 더해 갔다.
순간은 사고이고 비극은 영원하다. 어찌어찌 나는 홀로 연고도 없는 이 도시에서 십 년을 보냈다. 오늘도 창가에서 짙은 파랑으로 이우는 저녁을 맞이하는데, 하늘 끝자리에서 몇 개의 줄이 생기며 푸른색이 풍성하게 뭉개지는 것을 보았다. 아, 그것은 내가 그리던 바다였다. 하늘에서 바다를 찾는다는 것은 발칙하고 행복한 일이다. 얼핏 섬망처럼 그 파랑 사이로 늑대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다 사라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