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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아지면 달라진다 클레이 셔키 Clay Shirky
1964년생. 뉴욕 대학교 언론대학원 교수.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스쿨의 방문교수로 재직. 예일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 이 책 <많아지면 달라진다>가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의 시민혁명이 가능했던 근본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한 책으로 평가받으면서 클레이 셔키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학자로 떠올랐다. 국제 정치전문지<포린 폴리시>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성 100인’으로 선정했고, 경제 전문지 <포춘>은 스티브 잡스, 마이클 주커버그, 제프 베조스와 함께 IT 분야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로 언급한 바 있다
[1] 1조 시간을 가진 새로운 대중의 탄생
1. 텔레비전을 보는데 2000억 시간을 낭비하는 미국인들
1720년대 런던은 도시 전체가 술에 흠뻑 빠져 있었다. 온 도시가 진을 마셔대는 사람들로 흥청거렸는데, 그런 분위기를 주도한 사람들은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런던으로 온 사람들이었다.
런던에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진은 일종의 마취제였다.
한 잔 살 돈이 없으면 진을 적신 천을 사는 방법도 있었다. 여인숙들은 술에 취한 사람들이 잠깐 잠을 잘 수 있도록 짚자리를 시간 단위로 빌려주는 장사를 했다. 진은 갑자기 낯설고 때로는 가혹하기까지 한 삶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치는 일종의 사회적 윤활유였다. 즉, 힘겨운 삶을 사람들이 와르르 무너지지 않고 조금씩 무너지도록 떠받치는 버팀목이었다. 그것은 도시 전체의 시민 사이에서 일어난 집단 술판이었다.
1720년대 후반부터 시작하여 30여 년 동안 진의 생산, 소비, 판매를 금지하는 법을 줄줄이 만들었다. 그러나 그 전략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진 판매를 불법으로 정하자 여성들이 술병을 치마 밑에 숨기고서 진을 팔았고 ~~~ 캐비닛 안쪽에 보이지 않게 숨어 있는 주인에게 암호를 대고 돈을 건네면, 진을 한 모금 얻을 수 있었다.
인구 집중에 힘입어 커피하우스와 레스토랑이 도시 전체에 속속 들어섰다. 정당들은 도시 빈민을 당원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에게 동정적인 후보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들은 도시 인구 밀도를 더 이상 위기로 보지 않고, 그냥 하나의 주어진 사실로, 심지어는 기회로 보기 시작할 무렵에야 일어났다. 사람들은 도시 생활의 처참한 현실을 잊기 위해 스스로를 마취시키려고 진을 마셔댔지만, 점차 그 소비량이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사회 구조 덕분에 처참한 현실이 개선된 것이 부분적인 이유였다.
한 종류의 사회가 다른 종류의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을 부드럽게 해준 결정적 윤활유 역할을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시트콤이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인구가 쓸 수 있는 누적 여가 시간이 크게 늘어난 주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고등 교육을 받은 인구 자체가 늘어난 것이고, 또 하나는 일하는 시간은 줄어든 반면 수명은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근교화(도시에서 탈출하여 이웃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것)와 구직을 위한 주기적 재이주의의 결과로 전통적인 여가 시간 사용 방식이 위축되는 현상을 낳았다. 전후에 소풍이나 볼링 대회 같은 것이 과거의 관습으로 사라져감에 따라 미국인의 누적 여가 시간은 연간 수십억 시간에 이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많은 시간을 어디에 썼을까? 대부분 텔레비전을 보는 데 썼다.
여가 시간은 많은데 관심을 확 끌 만한 일은 적었으므로, 선진국 사람들은 마치 그것이 의무이기라도 한 양 모두 텔레비전을 열심히 보았다.
전 세계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일 주일에 20시간 이상을 텔레비전을 보는 데 쓴다. 미디어의 역사에서 오직 라디오만이 텔레비전에 필적할 만큼 모든 곳에 보급되었는데, 라디오 청취는 그래도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하는 등 다른 활동을 하면서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텔레비전은 귀뿐만 아니라 눈까지 빼앗기 때문에, 그렇게 열성적이지 않은 사람조차도 텔레비전 앞에 꼼짝도 않고 앉아 있게 만든다.
알코올과 카페인도 적당한 양을 섭취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양이 지나치면 치명적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텔레비전 문제도 개개 프로그램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그 양이 문제다. 개인의 문화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바로 양에서 나온다. 우리는 그저 좋은 프로그램이나 나쁜 프로그램을 본 게 아니다. 우리는 시트콤, 연속극, 인포머셜(정보 광고), 홈쇼핑을 비록해 온갖 것을 다 보았다. 그 순간에 어떤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는지 고민하기 전에 일단 텔레비전을 보기로 마음을 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매 시간, 매일, 매년, 평생 동안 얼마나 많이 보느냐 하는 것이다. 1960년에 태어난 미국인은 텔레비전을 시청한 시간이 이미 약 5만 시간에 이르렀을 테고, 죽기 전까지 약 3만 시간을 더 시청할 것이다.
오늘날 선진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세 가지는 일, 잠, 텔레비전 시청이다. 텔레비전을 많이 시청하는 것은 불행의 원인이 된다는 증거가 상당히 많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경향은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2007년에 <경제심리학 저널>에 실린 텔레비전 시청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까? 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에서 행동 경제학자 브루노 프레이, 크리스턴 베네시, 알로이스 스투처는 불행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보다 텔레비전 시청 시간이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시청 때문에 당장은 매력적이지 않더라도 장기적 만족을 더 많이 주는 다른 활동들을 하지 못한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에 많은 텔레비전 시청 시간은 물질에 대한 갈망과 불안감 증가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시청하는 바람에 그 활동이 여가 시간으로 할 수 있는 나머지 활동, 특히 친구와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활동을 대체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보는 사람들을 가상의 친구들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시청은 고독감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으면서도 혼자서 할 수 있는 활동이기 때문에 인기를 끌만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와 인간관계가 긴밀한 농촌 공동체에서 근교 지역으로 사회가 확산되면서, 통근 근무 패턴과 잦은 이사로 인한 상대적 단절이 심화되자, 텔레비전 시청은 더욱 증가했다. 일단 집안에 텔레비전을 들여놓으면, 텔레비전을 더 시청한다고 해서 추가되는 비용은 없다. 이래서 텔레비전 시청은 쳇바퀴가 된다.
전체 미국인이 일 년 동안 텔레비전 시청에 쓰는 시간은 대략 2000억 시간이다.
주말마다 광고를 보는데 쓰는 시간만 해도 약 1억 시간이나 된다.
우리는 밖에 나가 놀거나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음악을 나눌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런 활동들은 그냥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에 비해 문턱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선진국 시민의 생활은 수동적 참여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일을 할 때에도 사무실에서 빈둥거리는 시간이 많고, 집에서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텔레비전 앞에 앉아 지낸다. 이런 태턴은 우리가 다른 활동을 하기보다 수동적 참여자가 되길 원했다고 가정하면 아주 쉽게 설명된다.
그렇지만 이제 텔레비전 역사상 처음으로 일부 젊은이 집단은 기성세대보다 텔레비전을 덜 보고 있다. 고등학생, 브로드밴드 사용자, 유튜브 사용자 등을 대상으로 한 여러 인구 통계에서 그러한 변화가 나타났는데, 기본적인 관찰은 늘 똑같았다. 빠른 대화형 미디어(인터렉티브 미디어 또는 상호작용하는 미디어라고도 함)에 접근 할 수 있는 젊은이 집단은 순수한 소비를 전제로 하는 미디어에서 행동을 옮겨가고 있다. 심지어 비디오를 온라인으로 볼 때조차도 얼핏 보기에는 텔레비전 시청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내용에 대한 평을 하고, 친구들과 공유하고, 분류를 하고, 점수나 순위를 매기고, 전 세계의 다른 시청자들과 토론할 수 있다. 많이 인용되는 온라인 에세이 ‘로스트는 왜 완전히 새로운 미디어인가’에서 댄 힐이 지적한 것처럼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은 단순히 시청자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들은 협력하여 그 프로그램과 관련된 내용의 목록을 만들었고. 그것을 ‘로스트피디아’라고 이름 붙였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에도 네트워크로 연결된 많은 회원들이 서로 함께 참여했는데, 이러한 참여는 수동적 소비와는 다른 활동이었다.~~~~사소한 선택을 수백만 명이 함께 하자 그것들이 모여 거대한 선택읻 ㅚ었다. 전체 인구 집단 사이에서 참여를 향한 누적적 이동이 일어나 위키피디아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2. 밀크셰이크 오류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에 대해 오해하는 것들
멕도널드 사는 밀크셰이크 판매를 늘리기 위해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봐달라고 연구자들에게 조사를 맡겼다. 밀크셰이크를 좀 더 길쭉하게 만들어야 할까? 아니면 더 달게? 혹은 더 차갑게? 연구자들은 대부분 제품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지만 제럴드 버스텔은 밀크셰이크 자체는 싹 무시하고 대신에 고객에 초점을 맞추어 조사했다. 그는 맥도널드 가게에서 하루에 18시간 동안 죽치고 앉아 어떤 사람이 어느 시각에 밀크셰이크를 사는지 조사했다. 그렇게 해서 놀라운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는데, 이른 아침 시간에 밀크셰이크를 사가는 사람이 많았다. 오전 8시에 밀크셰이크를 마시는 것은 베이컨과 달걀로 아침을 때우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인의 이미지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버스텔은 아침에 밀크셰이크를 사러온 고객들의 행동에서 세 가지 단서를 얻었다. 밀크셰이크를 사러 온 사람은 항상 혼자였고, 밀크셰이크 외에 다른 것은 거의 사지 않았으며, 가게 안에서 밀크셰이크를 마시고 가는 사람은 없었다. 아침에 밀크셰이크를 사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들로, 일터로 차를 몰고 가는 도중에 그것을 마시려고 샀다. 이런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 나자 그 행동은 충분히 수긍이 갔지만, 다른 연구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그런 행동이 밀크셰이크나 아침 식사에 대한 통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버스텔과 그 동료들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제품에 올바른 일 찾아주기‘ 라는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열쇠는 제품만 따로 떼어내 바라보는 방식을 포기하고, 아침 식사에 대한 전통적인 통념에서 벗어나는데 있었다. 대신에 버스텔은 아주 간단한 한 가지 질문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침 8시에 고객은 어떤 일에 쓸 목적으로 밀크셰이크를 구입하는가?” 운전하는 동안 뭔가를 먹으려면, 한 손만으로 잡고 먹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너무 뜨거워서도 안 되고, 먹기에 거추장스러워도 안 되고, 기름기가 많아도 안 된다. 맛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다 먹을 때 까지 시간이 좀 걸려야 한다. 전통적인 아침 식사는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고객들은 아침 식사의 신성한 전통을 무시하고 원하는 일을 해줄 대상으로 밀크셰이크를 찾았던 것이다. 버스텔을 제외한 나머지 연구자들이 이 사실을 놓친 이유는 두 종류의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실수를 “밀크셰이크 실수”라고 부르기로 하자. 첫 번째 실수는 제품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중요한 것은 모두 제품의 속성에 있다고 가정하고서 고객이 그 제품에 원하는 역할을 무시한 데 있었다. 두 번째 실수는 사람들이 아침에 늘 먹어온 음식의 종류에 대해 편협한 견해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즉, 모든 습관은 전통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습관은 우연한 사건들이 누적되어 생긴다는 개념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밀크셰이크 자체나 아침 식사의 전통은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는 일을 원하는 고객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 일이란 아침 출근 시간에 에너지를 보충해주고 즐거움을 주는 음식인데, 그들은 바로 그 목적을 위해 밀크셰이크를 구입했다. 우리는 미디어에 대해 생각할 때 똑같은 문제에 부닥친다. 웹이나 문자 메시지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밀크셰이크 실수를 저질러 도구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쉽다.
3. 많아지면 달라진다. 위키피디아 1만개를 만들 수 있는 1조 시간의 위력
19세기 후반에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시위가 벌어질 때 노동자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던 구호는 8시간은 일, 8시간은 잠, 8시간은 우리가 원하는 일이었다.
물리학자 필립 앤더슨의 표현을 빌리면, “많아지면 달라진다. more is different"어떤 것을 아주 많이 합쳐놓으면 그 집단은 새로운 행동 방식을 보인다.
카메라를 가진 사람 중에서 누군가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을 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자기중심적 견해에서 나온 답을 바탕으로 추측한다면, 그 확률은 아주 낮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 확률을 바탕으로 추측한다면, 전체 확률 역시 아주 낮아 보일 것이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가져올 문화적 변화를 상상하는데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겪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기중심적 견해가 잘못된 접근 방법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가진 사람 중에서 누군가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을 볼 가능성은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의 수에다가 그 중 카메라를 가진 사람의 비율을 곱한 값과 같다. 첫 번째 값은 사건에 따라 위 아래로 변동이 심하지만 , 두 번째 값은 최근에 크게 증가했다. 전 세계에서 카메라를 가진 사람의 수가 2000년에는 수백만 명이던 것이 지금은 10억 명 이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휴대 전화에도 카메라가 내장돼 있기 때문에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의 수도 크게 증가했다.
4.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 두 가지
이 책은 전 세계의 누적 여가 시간을 함께 모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자원을 다룬다. 우리가 이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전환 두 가지가 이미 일어났다. 하나는 전 세계의 교육 받은 인구 사이에 연간 1조 시간이 넘는 여가 시간이 생겨난 것이고, 또 하나는 보통 시민들이 여가 시간을 공유하면서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을 가진 활동을 추구할 수 있게 해주는 공공 미디어가 발명되고 확산된 것이다.
우리의 공유 여가 시간과 능력을 활용해 뭔가를 만들려면 서로 통합 조정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에, 인지 잉여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단지 개인들이 선호하는 것을 모아 쌓아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서로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과 서로 함께 일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사용자 집단의 문화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문는 인지 잉여에서 창출한 가치 중 공동체적 가치나 시민적 가치가 각각 얼마나 되는지 결정한다.2~4장에서 수단과 동기, 기회를 이야기 하고 나서. 그 뒤에 이어지는 두 장에서는 사용자 문화에 관한 문제와 공동체적 가치와 시민적 가치에 관한 문제를 다룰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이론적인 마지막 장은 인지 잉여를 성공적으로 사용한 사례로부터 배운 교훈 몇 가지를 자세히 다룬다.
[2] 수단: 왜 그들은 소셜 네트워크에 열광하는가
1. 왜 동방신기 팬들은 촛불 시위에 동참했는가.
2003년, 미국 여러 곳에서 광우병 발병 사례가 보고되자, 대한민국은 미국 산 소고기 수입을 금지했다. 수입 금지 조처는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는 5년 동안 계속되었다. 대한민국은 세 번째로 큰 미국 산 쇠고기 수출 시장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양국 정부 사이에 불편한 사안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부시 대통령은 자유 무역 협정의 선행 단계로 대한민국이 미국 산 쇠고기를 다시 수입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 합의로 그 문제는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으나, 얼마 뒤에 대한민국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특이한 것은 시위자들이었는데, 단지 그 수뿐만 아니라 구성원의 분포도 눈길을 끌었다. 이전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시위는 대부분 정치 집단이나 노동 단체가 주도했다. 그러나 광우병 시위에 참여한 절반 이상은 십 대였는데, 촛불시위 소녀들은 아직 투표권도 없을 정도로 어렸고, 어떤 정치 집단에도 소속되지 않았으며, 이전에 대중 정치 활동에 참여한 적도 없었다. 이들의 참여는 광우병 시위를 대한민국 최초의 친가족적 시위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한 달이 넘는 시위 기간에 많은 사람들은 어린 자녀와 아기까지 데리고 온 가족이 참여했다. 세계 각국 정부는 국내 불안요소를 점검할 때 십대 소녀들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 소녀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 소녀들은 늘 그곳에 존재했지만, 이전에는 그렇게 대규모로 조직된 적이 없었다. 민주주의는 시민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시민의 만족에 의존해 굴러간다. 시민들이 사는 것에 만족해 거리로 몰려나오지 않아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간다.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면, 그것은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신호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십대 소녀들의 참여는 무엇이 변했느냐 하는 질문을 낳는다. 아직 투표권도 없는 소녀들을 몇 주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오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대한민국 정부는 재야 정치 ㄷ나체와 간첩들이 한미 관계를 손상시키려는 목적으로 배후에서 시위를 선동했다고 비난했지만, 촛불 시위가 그렇게 큰 규모로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자, 그러한 주장은 공허하게 들렸다. 무엇이 십대 소녀들을 그렇게 과격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을까? 십 대의 행동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만나는 영역을 주로 연구하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의 일본인 문화인류학자 미미 이토는 13세 소녀에게 촛불 시위에 나선 동기를 묻자 “동방신기 때문에 이곳에 나왔어요”라고 말했다고 인용했다. 동방신기는 정당도 아니고 정치 활동 단체도 아니다.
동방신기는 소녀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미국에 소고기 시장을 개방했을 때, 동방신기의 온라인 팬 사이트인 카시오페아는 회원 수가 무려 100만 명에 이르렀는데, 그곳 게시판에서 소고기 개방 소식을 듣고서 시위에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 “동방신기 때문에 이곳에 나왔어요.”라는 말은 동방신기가 날 이곳으로 보냈어요. 라는 말과 다르다. 동방신기는 어떤 종류의 대중적 참여 활동이나 참여 활동을 권한 적이 없다. 그 사이트 는 십 대 소녀들에게 정치를 포함해 어떤 주제든지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뿐이다. 소녀들은 자신들의 건강과 소고기 시장 개방을 둘러싼 정치적 쟁점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 (실제로는 서로를 분노케 했다) 이명박 정권이 국가적 굴욕을 감수하면서까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협상에 합의했다고 본 그들은 뭔가 행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동방신기의 웹사이트는 수십만 명의 젊은이가 모일 수 있는 장소와 이유를 제공했다. 학교 운동장과 커피숍에서 주고받으면서 그냥 사라지고 말 대화가 이곳에서는 전문 미디어 회사들만 누리던 두 가지 특성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접근성과 영속성이었다. 접근성은 어떤 사람이 쓴 글을 다수가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하고, 영속성은 어떤 글이 오래 남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이 인터넷에 연결되면 접근성과 영속성이 크게 높아지는데.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인터넷 연결이 가장 잘 된 나라이다. 평균적인 서울 시민은 런던이나 파리, 뉴욕의 평균적인 시민보다 컴퓨터 휴대전화를 통해 더 빠르고 더 우수하고 더 광범위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에 접석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 국민의 의사를 묻는 절차를 제대로 밟지나오고 소고기 수입 금지를 해제한 것과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이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일부 집ㄷ나은 여전히 이명박 정부와 정책에 불만을 품었지만, 대통령이 담화를 통해 직접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은 실수를 인정하고 여러 장관을 경질하자, 시위의 동력이 약해지면서 마침내 수그러들었다.
서울에서 보통 시민들은 “전에는 청중으로 알려진 사람들” 사이에 침묵을 존중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사용했다. 우리는 언론 매체가 우리에게 사건을 알려주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광우병에 대한 불안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했고, 이후에 금지 조처를 해제했다라고 만 말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동안 미디어는 단지 정보를 제공하는 소스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통합 조정이 일어나는 장소가 되었다. 청계광장으로 나온 청소년들은 동방신기의 게시판과 다음, 네이버, 싸이월드를 비롯해 그밖에 많은 온라인 공간을 이용해 대화를 나누었다. 또, 그들은 휴대 전화로 연상과 문자도 보냈는데, 단지 정보와 의견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온라인과 거리에서 행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그들은 정부가 일을 처리하는 환경을 바꾸어 놓았다.
십대 소녀들이 전문 조직이나 주최자의 도움 없이 국가 정부를 무력화시키는 행사를 조직하도록 오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곧 새로운 세상이 왔다는 것을 뜻한다. 이토는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들이 시위에 참여한 것은 일상생활의 구체적 조건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공유한 미디어 팬덤과의 연대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젊은이들이 온라인에서 하는 일은 대부분 하찮고 경박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그들이 하는 일은 연결하고, 소통하고, 긍극적으로는 동원하는 능력을 쌓아간다. 포케몬에서부터 대규모 정치 시위에 이르기까지, 이 역사적 순간과 오늘날 떠오르는 세대의 특징은 미디어 표현의 독특한 형태뿐만 아니라 그 표현이 사회적 행동과 연결된 방식이다.」
2. 낡은 생각에 집착하는 사람들 카풀 사이트를 고소한 버스회사
PickupPal.com은 새로운 정보를 통합 조정하는 채널중 하나로 같은 방향으로 여행하는 운전자와 동승자를 서로 연결시켜주는 카플 사이트다. 운전자가 가격을 제안하고 거기에 동의하면 , 시스템은 두 사람이 서로 접촉할 수 있게 해준다.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이 시스템의 이면에는 서로 만족스러운 합의를 위해 여행 경로와 시간이 얼마나 일치해야 하는 지에서 부터 개인 정보를 너무 많이 노출하지 않고 운전자와 동승자를 접촉하게 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세부사항이 숨어 있다. 중요한 성공 요소 중 하나는 규모인데, 잠재적 운전자와 동승자 수가 기준 값 아래로 내려가면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는다. 반면에 기준값을 넘어서면 그 수는 늘어날수록 좋다.
2009년 말에 픽업 텔의 사용자 수는 107개국에서 14만여 명에 달했다.
통근 문제를 통합 조정 문제로 바라보면 집단적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다.
3. 그텐베르크 경제학 아무나 쉽게 생산자가 될 수 없었던 시대
4. 전문가가 만든 책 VS 아마추어가 만든 책
미국 국립도서재단은 매년 연말에 미국 문학에 큰 공헌을 한 작가에게 미국 문학 특별 공로상을 수여한다. 2008년 수상자는 1976년에 <여전사>를 출판한 맥신 홍 킹스턴이었다. 킹스턴은 출판된 지 30년도 더 지난 작품의 가치를 그제야 인정 받았다.
그해에 킹스턴은 자신의 고향 하와이 주를 방문한 버락 오바바를 위해 그를 칭송하는 글을 썼다. 그런데 그 글을 받은 신문사들은 모두 그것을 지면에 실어주길 거절했다. 그런데 킹스턴은 그 거절이 이전처럼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킹스턴은 문학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웹사이트인 Open. Salon.com으로 갔다. 그리고 그저 자판을 두들기면서 입력을 하고 Publish라는 버튼을 누르기만하면 되었다. 정말로 그런 버튼이 있었다. 그랬더니 정말로 내 글이 출판되었다.
출판은 이전에는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허락하는 사람은 바로 출판업자였다. 그렇지만 이제는 달랐다. 출판업자는 지금도 여전히 작품을 선택하고 편집하고 마케팅 하는 등 많은 기능을 담당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개인적 글쓰기와 공적 글쓰기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다. 킹스턴이 잇다른 퇴짜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자기 글을 출판하는데 성공한 사례에서, 우리는 항상 존재했지만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진실을 본다. 이전에는 가상작가라 해도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는 일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었다. ~~~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시외 통화 요금이 크게 내린 뒤에도 내 친척 중 나이 많은 분들은 여전히 멀리서 전화가 오면 “이외 통화”라고 강조했다. 시외 통화 요금이 대폭 내린 뒤에도 사람들이 시외 통화가 원래 가치가 높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데 에는 몇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와 비슷하게 출판이 아주 어렵던 것에서 아주 수월한 것으로 변하고 나서도 낡은 시스템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출판 자체가 원래 진지한 행위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마추어가 하는 출판을 종종 경박한 것으로 간주한다. 출판에 드는 비용과 노력 때문에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시절에는 출판을 진지한 행위로 여겼다. 그 시절에는 실수를 너무 많이 저지르면 퇴출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런 요소들이 사라지면, 그에 따르는 위험 역시 사라진다. 경제 변화에서 입증되었듯이, 한때는 본래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활동이 사실은 아주 우연한 상황에서만 가치를 지녔던 것으로 드러났다.
5. 구텐베르크 이후의 경제학 누구나 쉽게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시대
대한민국에서 촛불 시위를 일어나게 한 것은 소셜 미디어가 아니었고, 픽업텔의 사용자들을 환경에 관심을 돌리게 한 것 역시 소셜 미디어가 아니었다. 그런 결과는 공적 대화를 펼치는 방식을 변화시키길 원하고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한 시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6. 생산과 공유의 즐거움을 좇는 사람들
얼마 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공공미디어는 모두 구덴베르크 경제학을 따랐기 때문에, 우리는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미디어가 존재하려면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가정했다.
글이나 비디오, 의학적 증상, 자동차 좌석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은 돈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다른 것이 동기가 되어 그런 행동을 한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가를 받길 원하며 실제로 대가를 받는다. 자신이 만든 것을 무료로 제공하는 아마추어들에게는 그것들을 모아서 모든 사람이 공유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는 현실이 불공평하게 보일 수도 있다. 전통적인 미디어는 최소한 콘텐츠 제공자에게 대가를 지불하지만 아마추어들에게 콘텐츠를 공유하게 해주는 새로운 서비스의 경우, 수입은 콘텐츠 생산자에게 가지 않고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플렛폼 소유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 사람들은 공짜로 일을 할까?” 하는 질문이 당연히 떠오른다. IT 분야의 글을 쓰는 저명한 작가인 니컬러스 카 Nicholas Car는 이 패턴을 디지털 셰어크로핑 Sharecropping이라고 명명했다. 셰어크로핑이란 이름은 남북 전쟁 이후에 미국 남부에 널리 보급된 소작제도에서 따온 것으로, 셰어크로핑 제도는 소작농이 토지 및 그 밖의 생산 수단을 지주에게서 대여 받아 지주의 감독을 받으며 일한 뒤, 생산물을 지주와 일정 비율로 분배하는 제도였다. 디지털 셰어크로핑에서는 플랫폼 소유주가 이익을 챙기는 반면 콘텐츠 제작자는 이익을 분배받지 못하는데, 카가 볼 때 이것은 아주 불공정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해 이해 당사자들은 그다지 분노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과 비디오와 글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기꺼이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디지털 셰어크로핑에 대한 불만 중 일부는 전문가들의 질투에서 나온다. 하기야 전문 미디어 제작자들은 아마추어들과 경쟁하게 된 상황이 달가울 리가 없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우리는 전문 미디어에서 나온 개념을 사용해 아마추어의 행동을 설명하지만, 아마추어의 동기는 전문가의 동기하고는 다르다. 만약 롤캣의 제공자인 ICanHasCheezeburger.com이 15세기 출판 모형의 최신 버전이라면, 그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을 무보수로 제공한다는 사실은 기묘할 뿐만 아니라 불공정하다. 그런데 그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면 어떨까? 만약 그들이 자신의 노동이 생산 행위보다는 공유 행위가 되길 바라는 순수한 기부자라면? 즉, 그들의 노동이 사랑의 노동이라면? ICanHasCheezeburger.com은 전통적인 미디어 아울렛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내부 논리가 <타임>같은 전문 미디어 아울렛과 동일하진 않다. 동네 술집에 비유해 설명해보자. 술집은 상업적 목적으로 운영하는 곳이지만, 파는 제품은 집에서 직접 만들면 훨씬 값이 싼 것들이다. 술 집 종업원이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해봐야 병을 따거나 접시를 나르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술집에서는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에 맥주를 파는데도, 왜 술집 산업 전체가 붕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왜 사람들은 집에서 값싼 맥주를 마시는 쪽을 선택하지 않을까? 유튜브 소유주처럼 술집 주인도 자신이 파는 제품과 서비스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기묘한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 가치는 바로 고객들이 서로를 위해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람들이 집에서 마시는 맥주보다 술집에서 마시는 맥주에 기꺼이 돈을 더 많이 지불하는 이유는 술집이 술을 마시기에 즐거운 장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혹은 그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술집을 찾아 간다. 집에서 홀로 있는 것보다는 술집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더 즐겁기 때문이다. 그 유혹은 아주 강렬하여 사람들은 다소 비싼 가격을 지불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셰어크로핑 논리에 따르면 술집 주인이 고객을 착취하는 셈인데, 제공된 맥주에 대해 고객에게 기꺼이 비씬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콘텐츠’ 중 일부는 바로 술집에서 고객들끼리 나누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고객은 아무도 없다. 대신에 그들은 술집 주인이 사교적인 환경, 즉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데 대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려 한다. 그렇지만 디지털 셰어크로핑 논리가 적용될 때도 간혹 있다. 가끔 사람들은 카가 그래야 한다고 예측한 것과 똑같은 생각을 한다. 디지털 셰어크로핑 논리를 바탕으로 한 불만 표출의 대표적 사례는 아메리카 온라인 이라는 온라인 서비스 자원 봉사자들이 보여준 행동이다. AOL은 친목을 도모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이미지 덕분에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급성장했다. 순수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 커뮤니티 리더들은 항상 그 사이트의 공개 채팅 룸과 그 밖의 장소에 상주하면서 토론을 이끌고, 모욕적이거나 공격적인 언행을 감시하고 전반적으로 서비스가 잘 굴러가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199년에 그 리더들 중 두 사람인 브라이언 윌리엄와 켈리 핼리사는 자원 봉사자들에게 노동의 대가로 최소한 최저 임금이라도 지불해야 한다면서 1만여 명의 자원 봉사자를 대표하여 AOL에 소송을 걸었다. 윌리엄스와 핼리시를 비롯해 거의 모든 리더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써가며 다년간 자원 봉사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 왜 나중에 와서 착취를 당했다고 주장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사이가 틀어진 관계가 모두 그렇듯이 그 답은 변질에 있었다. 인터뷰에서 윌리엄스는 서비스가 상업화되었다고 비난했다. 갈수록 AOL은 공짜 노예 노동을 바탕으로 그저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된 것처럼 보였다. 전에는 그렇게 온갖 곳에 광고가 넘쳐나지 않았고, 사람들이 서로 모이기 위해 모여드는 훨씬 풍요로운 커뮤니티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커뮤니티 위주로 돌아가는 사이트에서 광고위주로 돌아가는 사이트로 변하자, 커뮤니티 리더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그들이 디지털 셰이크로핑 논리를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AOL이 가시적인 감사 표시를 중단했을 때였다.(커뮤니티 리더 수 천 명이 참여한 이 소송은 10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으며,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연결되는 느낌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런 현실을 감안하면 디지털 셰이크로핑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마추어는 그저 작은 전문가에 불과한 게 아니다. 사람들은 종종 대가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이유로 어떤 일을 즐겁게 한다. 아무추어 미디어는 전문 미디어하고 다르다. 우리에게 어떤 것들을 공유하도록 도와주는 서비스가 번성을 누리는 것은 우리가 하고 싶어 하던 것을 더 쉽고 때로는 더 값싸게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 시장의 기능중 하나는 우리가 시장 밖에서도 소중하게 여기는 일을 하는 데 참여할 수 있도록 플랫폼(그것이 술집이 되었건 웹사이트가 되었건 간에)을 제공하는 것이다. 15세기의 미디어 생산 모형은 내재적 비용과 위험을 감안할 때 모든 단계에 전문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공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젠 더 이상 그렇지 않다.
7. 소셜 네트워크가 가져온 충격
나는 뉴욕 대학에서 대학원의 학제간 강의로 인터렉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프로그램을 가르친다.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10년 동안 학생들의 평균나이는 너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 내 나이는 일년이 지날때마다 한 살씩 늘어난다.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거나 노래를 지을 수는 있었지만, 그것을 널리 알릴 방법이 없었다. 대중을 향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서로 쉽게 연결하는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만들겠다는 동기도 시들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가 출판에 도전한 저자는 부자이거나 허영심이 많은 사람으로 간주 되었다. 팸플릿을 출판하거나 피켓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이상한 시선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였던 윌리엄 새파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수년 동안 차를 몰고 매사추세스 가도를 달리면서 부통령 관저 건너편 거리에 늘 결연한 표정으로 고독하게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남자를 보았다. 피켓에는 자신이 성직자에게 추행을 당했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겠거니 하고 그냥 지나쳤다. 나는 그렇게 종교계의 세기적 추문에 대한 단서를 무시하고 말았다.” 보통 사람들이 침묵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면 학생들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머리로는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한다는 것을 안다. 공적으로 말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그들로서는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참여 행동과 비교해 그것이 얼마나 다른지 상상하기 어렵다.
2005년 7월 5일, 런던 지하철과 버스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자 영국 정부는 이 끔찍한 참사가 일종의 전력 서지 때문에 발생했다고 발생했고, 몇 시간이 지나도록 그 입장을 유지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러한 설명은 대중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메시지였을 것이고, 그동안 시간을 번 정부는 사건을 더 자세히 조사한 뒤 진실을 반영하여 원인을 발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뒤 80분 동안 퍼블릭 도메인에 폭발물이 원인임을 시사 하는 블로그의 글이 1300건이나 올라왔다.
테러 발생 뒤 두 시간이 지나기 전에 런던 경찰국장 이언 블레어는 폭발 사고가 테러리스트의 소행임을 공식 인정했다. 사건을 완전히 파악한 단계도 아닌데, 측근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렇게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그의 발표를 기다리지 않고 사건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전 같으면 경찰은 일반 대중에게 사건의 진상을 공개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5년에는 일반 대중이 이미 나누고 있는 대화에 동참할지 말지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블레어가 일찌감치 사건 진상을 공개하기로 결정 한 것은 일반 대중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한 낡은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산하고 공유하는 대중의 새로운 행동에 놀라는 사람들은 사람의 행동이 쉽게 변하지 않는 안정한 범주라고 가정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람의 동기는 세월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지만, 기회는 사회적 환경에 따라 조금 변할 수도 있고 많이 변할 수도 있다. 기회가 거의 변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행동도 거의 변하지 않지만, 기회가 많이 변하면 사람의 실질적인 동기를 자극해 행동도 많이 변한다.
인지 잉여를 활용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던 소비자라는 낡은 지위에서 벗어나 점점 더 관대하고 공적이고 사교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원재료는 늘어난 여가 시간이다.
이제 우리는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고 이 도구들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새로운 도구가 새로운 행동을 직접 낳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3] 동기 :그들이 돈도 안 되는 일에 시간을 쏟아 붓는 이유
1. 스타를 위한 생일 선물이 자선 단체로 발전하기까지
조시 그로반이 미국에서 낸 4장의 음반은 지금까지 200만 장 이상 팔렸다. 그로반은 재능이 뛰어나고 간정 표현 능력이 좋으며 매력적이다. 그의 팬 부대에는 십 대 소녀에서부터 그들의 할머니뻘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포한돼 있다. 이처럼 다양한 연령대의 청중은 전통적인 미디어를 사용해서는 쉽게 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동방시기와 마찬가지로 그로반의 팬들 역시 기존의 팬이 종종 새로운 팬을 끌어들이며, 자신들이 만들어낸 미디어 환경에서 입을 통해 마케팅을 펼친다.
예술가가 팬을 찾으려고 웹을 활용하는 이야기는 이제는 흔한 일이 되었다. 흥미로운 일은 그 팬들이 함께 모일 때 일어난다.
팬들이 조직적인 방법으로 기부한 돈으로 그로반 재단이라는 비영리법인을 설립했다.
그들은 또 다른 성공을 낳았다. 자산 사업을 위한 또 다른 그로바나이트 단체가 생겨났다. 자선을 위한 그로바나이트의 산하 단체인 아프리카를 위한 그로바나이트는 아프리카에서 가난과 에이즈와 맞서 싸우는 조직들을 위해 기금을 모금한다. 이 단체는 첫 해외 공연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간 그로반이 넬슨 만델라를 만나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자선사업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뒤에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아프리카를 위한 그로바나이트가 모금한 액수는 15만 달러가 넘는다.
2. 데시의 퍼즐 실험 돈을 줘야 행동한다는 오래된 착각
1970년, 로체스터 대학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아주 간단한 실험을 했다. 그것은 소마Soma라는 퍼즐 게임을 이용한 실험이었다. 소마는 목제 정육면체를 일곱 조각으로 쪼개놓은 것이다. 조각은 T모양,L모양 등 각자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일곱 조각을 결합하여 정육면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또, 적절히 결합하면 수백만 가지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소마로 하는 게임은 완성된 모양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일곱 조각을 결합하여 그 모양을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데시는 바로 이 과제를 바탕으로 자신의 실험을 설계했다. 데시는 실험 대상자에게 소마 조각들로 만들어야 하는 모양 서너 가지의 그림을 주었다. 실험 대상자가 소마 조각들에 익숙해지면 데시는 조가들을 결합해 그림에 있는 서너 가지 모양을 만들라고 지시했지만, 어떻게 하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데시는 수십 명의 실험 대상자에게 이 과정을 반복했는데, 그들은 모두 주어진 모양을 만드는 게 실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았다. 데시는 실험 대상자가 거의 한 시간동안 과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에 방을 떠나면서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기다리라고 했다. 방에서 나온 데시는 일방향 거울을 통해 실험 대상자를 관찰했다. 휴식 시간동안 실험 대상자가 하는 행동을 관찰 하는 게 바로 실험 목적이었다. 데시가 방에서 나가고 난 뒤에 실험 대상자는 자유롭게 행동 할 수 있었다. 데시는 실험실 안에 잡지와 재떨이를 비롯해 실험 대상자의 관심을 끌만한 물건을 놓아두었다. 손만 뻗치면 쉽게 이용할 수 있었지만, 많은 실험 대상자는 퍼즐에 계속 몰두했고 , 평균적으로 8분의 휴식 시간중 약 절반을 퍼즐을 푸는데 썼다. 데시는 휴식시간에 한 활동을 기록한 뒤 실험 대상자들을 돌려보냈다. 이것은 실험 대상자가 퍼즐을 푸는 데 자발적 참여 행동을 얼마나 보여주는지 판단하는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데쉬는 같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두 번째 소마 퍼즐 실험을 했는데, 이번에는 먼젓번 실험과 한 가지 조건이 달랐다. 전체 실험 대상자 절반에게는 먼젓번과 정확하게 똑같이 퍼즐을 풀게 했지만, 나머지 절반에게는 한 가지 모양을 완성할 때마다 상금을 1달러씩 주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휴식시간을 주었고, 8분의 휴식 동안에 혼자서 하는 행동을 은밀하게 관찰했다. 상금을 약속받은 실헌 대상자들은 이 실험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여겨 휴식 시간에 퍼즐을 푸는데 평균적으로 이전보다 1분을 더 썼다. 그 뒤 데시는 세 번째 실험을 했는데, 이번에는 맨 처음에 한 것과 똑같은 조건으로 실험을 했다. 모든 실험 대상자에게 퍼즐을 풀게 하되, 상금은 없었다. 모든 실험 대상자는 똑같은 지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실험에서 상금을 약속 받았던 사람들은 휴식 시간에 퍼즐을 푸는데 관심이 뚝 떨어졌다. 퍼즐을 푸는데 쓴 시간은 그때보다 평균적으로 2분이 줄어들었다. 즉, 상금을 약속했을 때 증가한 시간에 비해 상금이 없어졌을 때 감소한 시간이 2배나 많았다. ~~~ 세 번째 실험에서는 자발적으로 퍼즐을 풀고 싶은 의욕이 크게 감소한 것이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자발적 참여를 설명하기 위해 설계한 실험을 자유 선택 테스트라고 부른다. 이것은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기회를 주었을 때, 그 사람이 특정 행동을 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는 실험이다. 데시의 실험에서는 퍼즐을 푸는데 보상을 제공하면 자발적으로 같은 행동을 선택할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실험은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라는 두 종류의 동기를 구별하는 심리학 이론을 뒷받침해주었다. 내재적 동기는 행동 자체에서 보상을 느끼는 동기를 말한다. 소마퍼즐 실험에서, 휴식 시간에도 계속 퍼즐을 푼 실험 대상자는 그것을 제대로 푸는 일에서 얻는 만족감이 동기가 된 것이 분명하다. 외계적 동기는 어떤 일에 대한 보상을 행동 자체가 아닌 외부에서 구하는 것이다. 어떤 행동에 대해 돈을 지불하는 것은 외재적 행동의 고전적 사례이다. 상금을 약속 받은 실험 대상자가 휴식 시간에 더 열심히 퍼즐을 푸는 데 매달린 것은 이 때문이다.
외재적 동기를 증가시키면 내재적 동기가 감소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후 다른 학자들도 구축효과를 연구하여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1993년, 사회학자 브루노프레이가 스위스 시민에게 만약 정부가 자신이 사는 지역에 핵폐기물 저장 시설을 짓겠다고 제안하면 그것을 받아들이겠느냐고 물었다. 스위스 시민의 대답은 거의 반반으로 나왔다. 그 다음에는 핵폐기물 저장 시설을 유치하면 정부가 보상금을 지불한다는 조건을 덧붙이자 , 약 3대1의 비율로 반대가 더 우세했다. 핵폐기물 저장시설 유치를 시민의 의무로 제시했을 때보다 지역사회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행동으로 제시했을 때 반대의견이 크게 높아졌다. 나중에 프레이와 그의 동료인 로렌츠 게트가 실시한 연구에서, 자발적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제공하는 실제 상황에서는 평균적인 자원 봉사자가 기여하는 노동 시간이 크게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다.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장인 마이클 토마셀로는 최근에 외재적 보상을 그 사람이 좋아하는 행동과 연계시킨 뒤 보상을 없앨 때 나타나는 구축효과가 생후 14개월밖에 안 된 어린이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실험적 증거를 내놓았다. 어떤 일을 좋아서 할 때와 돈 때문에 할 때, 그 행동에 차이가 있다는 개념은 어떤 일을 직업으로도 해 보고 취미로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계의 많은 사람은 데시의 결론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1970년 당시 동기 부여에 관한 가설들은 지극이라는 단순한 개념을 바탕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즉, 기존의 행동에 새로운 보상을 추가하면 사람들이 그 행동을 더 많이 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 이론적 틀은 종류가 다른 동기들을 구별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가장 보편적인 동기 부여 요인은 늘 돈이었다. 현금 보상이 다른 종류의 동기를 구축할 수 있다는 데시의 결론은 기존의 관행에 도전장을 던졌다. 구축 효과에 대한 그의 실험과 그 뒤에 이어진 연구는 학계에서 큰 논쟁을 일으켰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3. 그들을 움직이는 것 1 자율성과 유능성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 그리고 금전적 보상에 의한 구축 효과에 관한 데시의 가설은 자선을 위한 그로바나이트의 탄생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 자선 단체들은 돈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결정하는 데에서 다양한 차이를 보인다. 즉, 실제 수혜자에게 돌아가는 몫과 일상적인 운영비용과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급여를 얼마로 책정하는가 하는 것은 단체마다 제각각 다르다. 미국 자선단체협회는 자산 단체가 기부금 중 40%를 비용으로 쓰고 나머지 60%를 기부하면 합격점을 준다. 그리고 비용을 15% 이내로 제한하고 85% 이상을 기부하는 자선단체는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자선을 위한 그로바나이트는 어떨까? 동료 팬들이 기부한 돈 중에서 비용으로 쓰는 액수는 얼마나 될까? 단 한 푼도 없다. 즉, 0%이다. 그들은 급여를 전혀 받지 않으며, 필요한 노동력은 돈 대신에 시간을 기부하려는 그로바나이트에게서 얻는다.
내재적 동기는. 어떤 활동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보상에 사람들이 동기를 느끼는 여러 가지 이유를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이다. 데시는 개인적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내재적 동기 두 가지를 지적한다. 자율성( 자신이 무엇을 할지 그리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것)에 대한 욕구와 유능성(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욕구가 그것이다. 소마 퍼즐 실험에서 휴식시간에도 퍼즐을 풀려고 계속 노력한 실험 대상자들은 자율성에 대한 욕구와 유능성에 대한 욕구에 모두 동기를 느꼈다. 이런 현상은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비디오 게임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을 게임에 빠지게 하는 주요 요인은 그래픽스나 잔인한 폭력이 아니라, 게임에 숙달되면서 얻게 되는 통제력과 유능성의 느낌이다. 반면에 금전적 보상을 받고 소마 퍼즐을 푼 사람들은 내재적 동기가 크게 감소했다. 그들이 느끼는 자율성은 예측 가능한 예측 가능한 외재적 보상에 밀려났다. 마찬가지로 유능성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일단 금전 적 보상을 받으면 사라졌다. 금전적 보상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소마 퍼즐을 더 잘 풀려고 하면, 그 자체를 위해 과제[를 수행한다는 가치가 크게 떨어져 자유 선택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만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자신감과 유능 성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이 일을 해 냈고 그것도 아주 잘 했다고 생각하는데 에서 얻는 느낌은 전문가가 자신을 위해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고 생각하는데 에서 얻는 느낌보다 훨씬 강렬하다.
웹이 등장한 초기 시절에 지오시티즈라는 사이트가 사용자들에게 글과 그림, 사진을 비롯해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게시하는 개인 홈 페이지를 제공했다. 이 사이트가 출범할 당시 뉴욕의 한 웹 디자인 회사에서 제작 부서를 담당하고 있던 나는 지오시티가 곧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비게이션에서부터 레이아웃 디자인에 이르기 까지 쓸 만한 웹사이트 디자인 작업을 많이 보아온 나는 일부 아마추어가 하는 일은 전문 디자이너가 만드는 제품의 질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전문가들이 만든 온갖 홈페이지가 이미 웹에 널려 있는데, 평범한 홈 페이지를 원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지오시티 홈페이지의 평균적인 디자인 질에 대한 내 판단은 옳았지만 , 지오시티즈의 인기에 대한 판단은 완전히 빗나갔다. 지오시티즈는 금방 큰 인기를 끄는 사이트가 되었다. 나는 디자인의 질이 웹페이지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웹페이지는 질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다. 뛰어난 디자인은 분명 장점이지만 , 직접 뭔가를 만드는 데에서 얻는 만족감이나 무엇을 하면서 배우는 만족감은 그것을 능가할 수 있다.
4. 그들이 움직이는 것 2 -멤버십과 관대함
하버드 대학의 법학자 요차이 뱅글러와 뉴욕 대학의 철학자 헬렌 니센봄은 2006년에 “공유에 기초한 개인 생산과 장점”이라는 논문을 썼다. 공유에 기여한 개인 생산은 벵글러가 자발적 기여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에 붙인 이름이다.
두 사람은 사회적 동기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누었는데, 하나는 연결성, 즉 멤버쉽을 중심으로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유와 관대함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벵글러와 니센봄은 사회적 동기가 개인적 동기를 강화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소마퍼즐을 푼 사람에게 “아주 잘했어요.” 라거나 “평균보다 훨씬 나아요.”와 같은 칭찬의 말은 실험 대상자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고, 심지어 그 효과는 말을 통한 피드백이 끝난 뒤에도 지속되었다. 말을 통한 피드백은 돈처럼 또 하나의 외재적 보상에 불과하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존중하는 사람에게서 진심이 담긴 말을 듣는 것은 연결의 느낌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내재적 보상이 된다.
그로바나이트 기부자와 지지자는 내가 했다는 것과 우리가 했다는 두 가지 메시지를 모두 얻는다.
아마추어가 디자인 한 것은 전문가가 디자인한 것보다 맴버쉽의 느낌을 더 높일 수 있다. 이것은 “You can play this game too." 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그다지 세련된 디자인은 아니지만 ,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비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더 강하다.
큰 계획을 추진하는 데에는 당연히 허드렛일도 많이 필요한데, 감사의 글 게시판은 연결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사람들에게 그 일을 하도록 동기를 제공한다. 그저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집단에 가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거나 하는 일반적인 자원 봉사자보다는,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맡아 할 때 더 큰 의욕과 보람을 느낀다.
자선을 위한 그로바나이트에서 버튼과 자석 발송을 담당하는 폴리엔 패터슨은 그 업무량이 아주 많다 보니 커뮤니티 내에서 이 일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사이트 소개 페이지에서도 패터슨은 “버튼과 자석의 통합관리”를 담당한다고 소개되어 있고, 감사의 글에서는 “자선을 위한 그로바나이트를 위해 필요할 때마다 모든 버튼과 자석을 발송하는 폴리라고 감사를 표시한다. 이러한 인정은 그로바나이트들이 기금 모금이라는 더 어렵고 큰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공동체의 아교 역할을 한다. 이 감사 퍼레이드는 너무 짤막해 보일 수 있지만 , 그 효과가 성공적이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사용자에게 돈뿐만 아니라 시간이나 전문 지식을 기부하도록 도와주는 사이트도 많다. NetSquared.org는 국제적 원조나 개발을 위해 일하는 비정부 단체를 지원하고,Idealist.org는 사람들이 지역사회 개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찾도록 도와주며, Care2.com은 환경구상을 지원한다. 온라인 소액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Kiva.org는 개인들에게서 받은 기부금을 자본금으로 삼아 개발도상국 사람들에게 무이자 소액 대출을 제공한다. 2008년에는 모금액이 크게 늘어나 잠재적 수혜자들에게 제공할 액수를 넘어섰다. 이 바람에 카바는 더 이상 집행할 소액 대출 계획이 없어서 기부자들의 기부 제의를 거절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선 단체에 자신의 시간을 직접 기부한다.BeExtra.org의 사용자들이 그런 예인데, 이들은 휴대전화를 사용해 박물관 전시회에서부터 환경악화에 관련된 문서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진을 분류하는 일을 돕는다.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자선 행위들이 나타난 것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그들의 시간과 재능과 돈을 기부하도록 도와주는 도구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이 들도록 하는 동기도 중요하다.
5 . 누구나 쉽게 수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세상
아마추어는 능력에서 전문가와 차이가 나지만, 동기도 다르다. 사실, 아무추어amateur란 단어 자체도 ‘사랑하다’란 뜻의 라틴어 amator에서 유래했다. 아마추어리즘의 본질은 내재적 동기에 있다. 아마추어가 되려면 어떤 것을 좋아해서 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동기는 아마추어들이 서로 집단을 이루어 함께 일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큰 집단을 어떤 목적에 몰두하게 하려면 완전히 그 일에만 매달리는 사람이 필요하다.(중간 관리자가 필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일정규모를 넘어서면 집단을 효율적인 조직으로 유지하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에 전문적인 관리자가 필요하다. 전문 관리자를 두면 급여를 주어야 하고, 급여를 주면 수입과 회계를 비롯해 모든 절차가 다 필요하다. 즉, 어떤 것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무리와 어떤 것을 정말로 좋아하면서 함께 힘을 모아 뭔가를 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조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늘 그렇지만 어떤 활동의 진입 장벽이 높으면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대규모 통합 조정이라는 장벽은 대체로 아마추어와 전문가를 갈라놓는 요인이었다. 기금을 모금하건 음악을 만들건 다른 취미활동에 몰두하건, 그저 좋아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게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활동한다. 아마추어들이 모여서 활동하는 곳은 교회 지하실이나 공공 도서관, 오락실, 차고 같은 곳이 많다. 그렇지만 전문가의 활동은 좀 더 눈에 잘 띈다. (사실, 많은 전문가 집단은 시장에서건 미디어에서건 대중의 시선을 끄는 걸 명시적인 목표로 추구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두 가지 행동 양식에 익숙해졌다. 내재적 동기 때문에 활동하는 사람(아마추어)은 비교적 개인적 환경에서 활동하는 반면, 외재적 동기 때문에 활동하는 사람은 비교적 공적인 환경에서 활동한다.
과거에는 아마추어의 동기가 개인적 행동으로 실재로 연결되지 않았다. 아마추어의 조직적 활동을 방해하는 낡은 제약 조건이 그런 활동을 대체로 부정적 선택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내재적 목표를 공적으로 추구하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면, 아마추어는 대체로 공적 활동을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우리는 늘 자율적이고 유능하고 연결되길 원했다. 소셜 미디어가 그런 욕구들을 실현시켜주는 환경이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교회 지하실에서 모임을 가져온 자선 단체가 공공 영역에 접근하는 방법은 전문 자선 단체와 다를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전문 기관의 웹사이트만큼 쉽게 이 단체의 웹사이트에 접근할 수 있다.
집단행동을 통합 조정하는 일이 어렵던 시절, 대부분의 아마추어 집단은 소규모에다 비공식적인 상태에 머물렀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서로를 찾고 생각과 행동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있다.
글로벌 이란 단어는 주로 세계적 이란 뜻으로 쓰이지만, 정말로 크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은 국내 기업보다 크고, 글로벌 시장은 국내 시장보다 참여자가 더 많다. 그렇지만 이것은 규모의 부수 효과에 불과하다. 큰 조직은 운영이 어렵고, 더 커질수록 운영은 더 어려워진다.
그렇지만 세계화는 반드시 크기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범위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상호 작용을 통합 조정하는 어려움이 크게 줄어든 세상에서, 소규모 글로벌 조직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는 목적으로 자원 봉사자가 되어 영어 자막을 제공하는데, 이를 팬 서빙fansubbing이라 부른다. 팬서빙 네트워크는 소규모이면서 세계적이며, 각기 다른 팬서버 집단들이 특정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이나 작가에 초점을 맞춰 집중적으로 일한다.
Yahoo.com은 크론병을 앓는 사람들을 위해 메일링 리스트를 마련해 근심과 정보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유럽과 북아메리카,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회원이 수백 명이나 있다.
온라인 공예품 바자인 Etsy.com(https://www.etsy.com/)에는 세계 각지에서 상인들이 몰려든다. 2008년, 미국은 옷과 장난감에 대해 더 엄격한 화학적 시험을 거치도록 법을 개정했다(2008년 소비자 제품 안전 개선 법, CPSIA). 보통 법 개정이 일어나면 모든 공예업자는 CPSIA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려고 난리를 피울 테지만, Etsy는 판매자에게 가상 진열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가상 냉온수기(냉온수기 주위에 사람이 모여들어 연결이 일어나는 것처럼 가상 냉온수기는 소셜 네트워크가 실질적인 연결을 맺어주는 기능을 빗댄 표현이다.)도 제공한다. 판매장 토론장에는 SPSIA에 대해 여러분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또는 CPSIA 테스트-CPSIA에 적응하기와 같은 대화가 폭발했다. 이러한 대화는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웨일스, 캐나다, 오스트렐리아의 참여자도 끌어 들였다
참여자 중에서 거래 법규 준수 문제를 잘 아는 변호사를 거느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은 개인 공예가였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었지만, 서로 힘을 합해 법의 의도와 효과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소셜 미디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6. 해리 포터 팬픽션이 50만 개나 존재하는 이유
만약 내재적 동기가 사람의 본성에서 기본적인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만족시키는 것이 곧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이라면, 그런 동기를 만족시키는 도구의 사용이 널리 확산될 것이다. 특히 소셜 미디어가 충분히 낮은 비용으로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면, 설사 그 만족이 잠깐 동안만 지속된다 하더라도 내재적 동기에 보상을 주는 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FanFiction.net은 기존의 픽션 작품에 나오는 상상의 세계를 무대로 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이다. 이 커뮤니티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은 해리 포터의 우주를 무대로 삼아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다. FanFiction.net에는 해리 포터 이야기가 50만 가지 이상이나 있다. 수백 편 이야기는 대략 롤링J. K Rowling의 원작 소설 길이와 비슷하게 10만 단어 이상으로 쓰였다. 이곳은 그저 이야기만 모여 있는 곳이 아니다. 회원들끼리 늘 대화를 나누는 커뮤니티도 주최한다. 그로바나이트들 사이의 공식적 통화가 “고맙습니다. thank you 라면 팬픽션의 통화는 관심이다.”에 이야기를 읽고 평해 주세요 Please read and review my story라는 간청이 너무나도 흔하기 때문에 그것을 줄여서 “R&R"로 표현한다.
7. 그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질문을 바꿔라
온라인 공간에서는 누구라도 3분 동안 자판을 친 뒤 단추를 한 번 누르기만 하면 자신의 생각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 만약 거기에 있는 것들을 다 읽으려고 시도한다면, 일부라도 채 읽기 전에 기진맥진 하고 말 것이다.
2009년 말 유튜브에는 매분 평균 24시간 분량의 비디오가 업로드 되었다. 트위터에는 매일 약 3억 단어가 올라온다.
사람들은 내재적 동기가 충분히 강하기 때문에 그것에 보상을 주는 경험으로 마음이 기우는 경향이 있다.
기명 투표는 보통은 투표 결과를 바꾸지 않으면서 개인들에게 울분을 발산하게 하는 장치이다.
권위에 맹종하는 것은 삶의 의욕을 잃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반항심에서 예상 밖의 행동을 한다.
우리는 혼자서건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서건 개인적으로 내재적 동기를 추구하는 데 익숙하다. 그렇지만 내재적 동기와 개인행동 사이의 연결 관계는 결코 튼튼한 게 아니다. 공공 영역에 진입하기가 힘들던 시절에는 이 둘 사이의 구분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추어들로 이루어진 느슨한 집단은 어떤 일을 공적으로 이루려고 노력했을지 모르지만, 조직의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았다. 지금은 그 장벽이 충분히 낮아져서 누구든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찾고 협력할 수 있다. 인지 잉여를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도구들, 즉 참여를 가능하게 하고 참여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도구이다. 그런데 그러한 도구를 사용하고자 하는 동기는 아주 오래된 내재적 동기로, 이전에는 개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었지만 지금은 공공 영역으로 분출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질적인 것이 되려면, 이 미완의 능력에 기회가 필요하다.
[4] 기회 : 그들을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다.
1.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노인들’이라는 기사의 함정
우리는 모두 내재적 동기, 즉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좋아서 어떤 일을 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다. 이제 우리는 소통과 공유를 위한 도구들을 갖고 있는데, 이 도구들은 내재적 동기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다. 그렇지만 수단과 동기만으로는 현재 인지 잉여가 새롭게 활용되는 상황을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다. 기회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여기서 기회란 이전에는 소비만 하던 곳에서 서로 힘을 합쳐 참여하는 능력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기회를 만들어 낸다. 서로에게 잘 대해줌으로써 우리가 서로 힘을 모으면 개인들이 각각 혼자서 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설사 최첨단 도구를 사용해 통합 조정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사교적이고 관대한 행동의 핵심 요소는 사람의 성격이다. 기술에 초점을 맞추어 그러한 행동을 해석하면 핵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기술은 그런 행동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 원인은 아니다.
예를 들면, 2000년대에 “노인들도 인터넷을 좋아한다”, “괴짜 노인들은 자극적인 게 필요하다 : 노인이 온라인에 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랑을 찾으려고 인터넷을 하는 노인들이 늘어난다”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비롯해, 고령자들이 실제로 소셜 툴을 상요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를 다룬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1990년대 중반에 많은 사람들은 50세가 넘은 사람 중에서 컴퓨터나 네트워크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90년대에 “노인들이 이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면 그 대답은 흔히 ”아니다“였다. 그런데 그 가정은 틀린 것이었다. 왜냐하면 질문 자체가 잘 못 되었기 때문이다. 올바른 질문은 ”노인들이 친구와 가족과 소통하는 새로운 방법을 받아들일까? “ 가 되어야 한다. 이메일 자체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전기 자체를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신에 우리는 전기가 해줄수 있는 일들을 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메일이 해줄 수 있는 일들, 즉 집에서 보내온 소식, 아이들 사진, 토론, 논쟁, 연애, 뒷공론을 비롯해 인간의 조건에서 생겨나는 온갖 것을 원한다.
왜 이 모든 사람들은 공짜로 일하는가? 란 질문은 사람의 행동이 주로 개인적, 금전적 동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하는 합리적 이유는 돈 때문이므로 , 어떤 일을 공짜로 하는 현상은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론적 틀에서는 누가 왜 자신의 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리거나 위키페디아의 항목을 편집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여기에 문제는 행동 자체가 아니라 동기이다. 사람들이 왜 이 일들을 ‘공짜로’ 하는가라는 질문을 거두고, 왜 그들이 이 일들을 하는가라고 물어야만 광범위한 내재적 동기가 드러난다.
소셜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노인들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집단적 놀라움은 기술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시각 상실’과 큰 관계가 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단지 새로운 정보를 얻어서가 아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세계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통합한다. 어제는 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내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새로운 정보이지만 놀라운 정보는 아니다. 우리가 놀라는 것은 새로운 정보가 우리가 이전에 믿고 있던 가정에서 벗어날 때이다. 다시 말해서, 놀라움은 믿음이 무너질 때 드는 느낌이다. 우리가 놀라는 것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관한 우리의 가정이 완전히 쓸모없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적절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한다. 또한, 과거에는 거추장스럽더라도 그것을 감수하고 했던 낡은 방식의 행동을 그만 두게 된다.
우리의 행동 중 많은 것은 전화번호를 외우는 것과 같다. 그 행동은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불편 때문에 유지되지만, 불편이 사라지고 나면 그 행동도 즉시 사라진다.
새롭고 놀라운 행동들은 공통 요소가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사람들은 내재적 동기를 보상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러한 기회는 기술 덕분에 가능했지만 그것을 만들어 낸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행동은 사회적 동물로 살아온 우리의 삶에서 오래 지속돼온 패턴을 대체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패턴이 연장된 것이다.
2. 놀라운 혁신을 이끌어내는 다수의 힘
새 기능은 한 사람의 뛰어난 영감에서 발견되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협력적인 집단에서 탐구와 개선을 통해 발견되고 완성된다.
3. 최후통첩 게임과 독재자 게임
행동경제학이라는 광대한 실험 인지 과학은 사람이 항상 이기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며, 거래 자체에도 감정적 요소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최후통첩 게임은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이다. 낮선 사람과 게임을 한다고 상상해 보라. 각자 주어진 역할이 있다. 상대방은 제안자이고, 나는 거기에 반응한다. 연구자가 상대방에게 10달러를 주고서 그 돈을 두 사람이 어떻게 나누어 가질지 결정하라고 지시하면서 게임이 시작된다. 나는 상대방이 제안한 내용을 바꿀 수 없다. 오로지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절만 할 수 있다. 만약 제안을 받아들이면, 상대방은 제안한 금액 중에서 자기 몫을 챙기고, 나는 그 나머지를 받는다. 만약 제안을 거절하면, 두 사람 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는 이 게임의 결과를 분명하게 예측한다. 상대방은 자신이 9달러를 가지고, 나에게 1달러를 받으라고 제안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거절하는 것보다 1달러라도 챙기는 게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1달러는 상대방이 챙김 몫에 비하면 너무 적은 액수이긴 해도, 한 푼도 못 받는 것 보다는 낫다. 그들이 내세운 논리는 이렇지만, 현실에서 게임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제안자는 대개 4~5달러를 제안하고, 응답자는 일반적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제안자가 턱없이 낮은 액수를 제안하년, 응답자는 대대 거절하는 쪽을 선택함으로써 두 사람 모두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제안한 액수가 적을수록 거절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 가설을 더 강화한 한 변형 게임에서는 컴퓨터가 제안자 역할을 하는데, 중요한 사실은 응답자가 그 사실을 안다는 점이다. 이 경우에는 응답자가 컴퓨터의 제안을 대부분 받아들여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챙기려고 한다. 응징을 해야 할 사람이 없고, 거절에 담긴 분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기계한테 그런식으로 보복해보아야 아무런 만족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버전의 게임에서는 참여자의 뇌를 스캐닝하면서 게임을 해보았다. 불공정한 제안을 거부한 응답자는 만족을 경험하는 일에 관여하는 배부 줄무늬 체의 활동이 증가했는데, 이것은 우리가 변절자를 응징하는 것에서 만족을 얻으며, 그런 느낌을 얻기 위해 다른 보상을 기꺼이 포기할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에서 윤리적 기준의 큰 버팀목은, 공정한 행동이나 좋은 행동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짓을 하는 사람을 처벌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설사 그런 처벌을 하려면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는 게 필요하다 하더라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는 이런 행동은 사회에 혜택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것을 이타적 처벌이라 부른다. 설사 그렇게 하는데 시간과 에너지 혹은 돈이 든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나쁜 짓을 처벌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4. 사람들은 언제 이기심을 버리는가.
도넛이 담긴 쟁반을 놓아두었을 때, 근처에 종이를 오려 만든 눈이 지켜보고 있으면 사무실 직원들은 도넛을 덜 집어간다. (이것은 ‘양심은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라는 멩켄의 가설) 덴마크의 코펜하겐 공항은 같은 원리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공항의 규칙을 지키게 하는데, 마분지로 만든 공항 직원 인형에게 “카트를 끌고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마세요”와 같은 팻말을 들려 세워놓았다. 펫말에 담긴 정보량은 이전과 다름이 없지만 사람 그림이 그것을 들고 있으면 펫말에 적힌 규칙과 요청 뒤에 진짜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적절한 환경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자신의 행동을 잘 조절할 수 있다.
5. 아무 대가 없이 우리의 삶을 개선시키는 사람들
6. 냅스터의 교훈 -사람들은 적절한 기회가 생기면 당연히 행동한다.
200년대 초에 냅스터라는 음악 공유 소프트웨어가 나타나 급격히 성장할 때, 우리는 보편적인 믿음이 새로운 행동을 이해하는 것을 어떻게 방해하는지 보았다. 사용자들끼리 음악을 서로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냅스터는 보스턴의 노스이스턴 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하던 19세의 대학생 숀 패닝이 발명했다. 그 메커니즘은 아주 간단했다. 냅스터 사용자들은 자신의 컴퓨터에 있는 노래 목록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 목록을 다른 냅스터 사용자들의 목록과 합치면 전 세계의 냅스터 사용자들이 소유한 모든 음악의 마스터 목록을 만들 수 있다.
냅스터 사용자 수가 2년이 지나기 전에 수천만 명으로 늘어나 그 당시 가장 빨리 확산된 소프트웨어였다.
200년대 초에 상반된 해석 두 가지가 나왔다. 하나는 젊은이들이 모두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지적 재산권이라는 신성한 관례를 무시한다는 설명이었다. 또 하나는 젊은이들이 공유 정신에 풀 빠진 나머지 냅스터가 제공한 공유 기회에 기꺼이 참여한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는 둘 다 틀렸다.
전체 대중문화 규범에서 매우 취약한 개념 한 가지는 근본적인 세대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오늘날의 30대는 X세대, 20대는 Y세대에 속하며, 양 세대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고, 두 세대는 또 베이비 붐 세대하고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분류한 이름들이 지닌 개념적 매력은 상당히 크지만, 실제로 설명적 가치는 거의 없다. 그런대도 이 개념은 일종의 점성술처럼 수십 년간 유행했다.
물론 세대 간 차이는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세대에 따라 사람이 달라서 그런 게 아니라 기회가 달라서 그럴뿐이다. 인간의 본성은 느리게 변하지만, 우리의 본성에는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메커니즘도 광범위하게 포함돼 있다.
X세대는 이전 세대의 모범적인 노동 윤리가 부족하며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래서 그 당시 게으름뱅이라는 뜻으로 슬래커라고 불렀다. 시사문제 해설자들은 우리 사회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슬래커를 가리키면서 사회가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절망감을 표시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X 세대가 회사를 세우고, 벤처기업에 합류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기 시작했다. X세대는 슬 래커가 아니라 창업자 정신이 넘쳤다!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그렇게 오해했단 말인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그 당시 20대가 살아온 환경을 고려하지 않았다. 1987년의 주식시장 붕괴 뒤에 미국 경제는 간헐적으로 회복기미를 보이기도 했지만, 1990년대 초에 이르러 완전한 불황으로 접어들었다. 불황기에는 장래성이 없는 일자리라도 구해서 친구들과 함께 값싼 맥주를 마시면서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 아주 합리적인 반응이다. 아마도 이 세대는 깊은 불황 속에서도 능력과 수완을 잘 발휘하는 사람이 되길 원했겠지만, 사람은 그렇게 행동할 기회가 없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불황이 끝나자 기회라는 환경이 극적으로 변했다. 보수가 좋은 일자리를 구하거나 회사를 새로 세우거나 벤처 기업에 합류하기가 훨씬 쉬워졌는데, 이전에 슬래 커라 불리던 X세대는 열정적으로 이 모든 일에 뛰어 들었다.
7. 파키스탄 시민들은 왜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을까
1973년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는 ‘약한 유대의 힘’이라는 획기적인 논문에서 사람들은 가까운 친구나 가족보다는 우연히 아는 사람을 통해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친구가 비만이면 나도 비만이 되고, 친구가 운동을 하면 나도 운동을 하고, 심지어 친구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우리는 직접 아는 사람을 뛰어넘어 그 너머에 있는 소셜 네트워크 구성원들의 성향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도 높아지며, 심지어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행복해도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습관과 성향은 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접촉을 통해 퍼져나간다는 점에서 전염성이 있다.
우리는 수동성 쪽이건 능동성 쪽이건 서로의 기회를 만들어내는데, 이전부터 늘 그래왔다.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기회를 제공하는 인터넷이 있다는 점인데, 인터넷은 작은 집단이 이전에 비해 훨씬 적은 비용으로 그리고 어려운 문제도 별로 없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제공한다.
[5] 문화: 그들을 더 단단하게 연결하는 힘
1. 탁아소 실험 -시장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나지와 루스티치나는 주류 학계의 억지 이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떤 행동에 부정적 결과를 결부시키면, 그러한 특정 반응이 줄어든다. 그리고 부정적 결과를 제거하면, 중단되었던 행동이 다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실험 대상이 되었던 하이파의 탁아소 열 곳은 오후 4시까지 운영했는데,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온다고 해서 벌금 같은 것을 부과하진 않았다. 그니지와 루스티치니는 탁아소가 문을 닫는 시간을 전후해 관찰하면서 부모들이 얼마나 자주 늦는지 조사했다. 탁아소 한 곳당 늦게 오는 부모는 일주일에 평균 7~8명이었다. 그 다음에 그들은 탁아소 여섯곳에서는 늦게 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하게 했다. 그래서 탁아소들은 10분 이상 늦게 오면 벌금을 매기겠으며, 벌금은 청구서에 자동으로 포함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벌금의 효과는 즉각 나타났는데, 부모가 늦게 오는 일이 더 증가했다. 첫 번째 주에는 늦게 오는 건수가 11건으로 늘어났고, 두 번째 주에는 14건으로 늘어났으며, 세 번째 주에는 17건으로 늘었다. 실험을 시작한지 한 달쯤 되자 일주일에 약 20건으로 절정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벌금 제도를 시행하기 전에 비해 약 3배에 이르는 수치였다. 그 후로는 벌금 제도를 유지하는 동안 그 수치는 조금 오르락내리락했지만, 14건 아래로는 내려오지 않았으며 거의 매주일 20건 가깝게 유지되었다.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 결과는 예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벌금은 10세겔로 소액이었지만, 그래도 분명히 억지 효과가 약간 있을 것이다.
그니지와 루스티치니는 벌금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존재한 부모와 직원 간의 거래를 “불완전한 계약”이라고 불렀다.
벌금은 아이를 맡기는 것을 공동의 일에서 단순히 돈을 주고 서비스를 사는 거래로 변질시킨다. 그래서 부모는 직원의 시간을 일종의 상품으로, 그것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상품으로 여기게 된다. 즉, 부모는 벌금이 자신이 야기한 불편에 대한 충분한 대가라고 여겼고, 벌금만 내면 직원의 선의를 이용한 행동 때문에 혹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벌금 제도를 석 달 후에 폐지하였는데, 그 이후에도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오는 일은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았으며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탁아소 직원을 그 사람의 개인 사정도 존중해야 할 인격체로 보는 대신에 일단 단순한 시장 거래 참여자로 보도록 유도한 뒤에는 부모가 직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그러한 시각은 벌금 제도가 없어진 뒤에도 그대로 남았다.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다. 단지 “친절한 것이 좋다.”라는 차원에서 그런 게 아니다. 우리의 행동은 어떤 기회는 촉진하고 어떤 기회는 억제하는 환경에 기여한다. 하이파의 탁아소 문화에서는 단순한 한 가지 변화가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이전의 “불완전한 계약”에서는 부모와 직원은 비공식적이지만 서로 받아들일 만한 거래에 동의했다. 그런 문화에 명시적인 벌금을 포함시키자, 부모는 직원을 사회적 유대와 상업적 유대가 뒤섞인 파트너로 보기보다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서로에 대한 행동은 시장 논리만으로는 완전히 기술할 수 없다.
2. 보이지 않는 대학과 연금술사의 결정적 차이
3. 공유의 경제학 -더 나은 지식을 얻기 위해 필요한 조건 네 가지
4. 누가 아마추어 문화를 무시하는가.
공유 지식의 확산에 대해 흔히 제기되는 ㅂ나대 논리는 전문 기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흔히 “위키피디아를 보고 수술 방법을 배운 사람에게 뇌수술을 맡기겠는가?”라는 예를 든다. 그렇다면 뇌수술이 필요할 때에는 정식 외과의사에게 맡기는 게 좋다는 사실을 변호사들이 흔히 그러듯이 진실이라고 규정하기로 하자. 그런데 우리는 굳이 그럴 필요조차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나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아마추어 뇌신경외과 의사는 뇌수술에 관한 것이 아닌 대화에만 등장한다. 이 논리가 실제로 주장하는 것은 전문가와 아마추어 사이에 큰 차이가 존재할 때, 우리는 전문가를 선호해야 한다는 것이며, 뇌수술은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뇌에 메스를 갖다 대는 일은 오직 전문가에게만 맡겨야 하지만, 뇌의 다양한 부위 이름들을 아는 것조차 이와 비슷하게 제한해야 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내가 끔찍한 목소리로 내 아이들에게 “생일 축하합니다”를 불러주는 이유는 플라시도 도밍고나 라일 러벳보다 노래를 잘 불러서가 아니라, 재능 있는 이 가수들이 나만큼 내 아이들을 살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서툴더라도 함께 서로를 위해 하는 일이 훨씬 잘 할 수 있는 전문가한테 그 일을 맡기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다.
전문가의 기술이 아마추어의 공유나 소속감보다 높은 평가를 받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사람들은 규모가 크고 오래 지속되는 공유를 더 가치 있게 여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마추어의 참여를 항상 선택 가능한 것으로 기대하게 되면,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
5. 의사의 지식과 권위에 도전하는 환자
복잡한 병에 걸린 환자는 전문가에게 진단과 치료를 받길 원하고 의사가 처방하는 치료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의사는 환자가 원하는 정보를 모두 알려줄 만큼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바로 이런 경우에 공유와 소속감이라는 아마추어의 가치 두 가지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생각도 할 수 없던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
PatientsLikeMe.com은 이름 그대로 비슷한 만성 건강 문제를 지닌 환자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도움을 주는 사이트다.
환자들은 장기적 치료나 복잡한 치료에 대처하는 방법을 서로 배울 수 있고, 치료법 연구를 위한 임상 시험 환자로 지원함으로써 새로운 요법을 시험하는 비용을 낮추고 개발 속도를 앞당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새로운 요법을 시험하는 임상 시험은 전통적으로 20명 미만의 환자로 구성된 특정 시험 집단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지만 페이션츠라이크미(https://www.patientslikeme.com/)를 사용하는 사람은 5만 명 이상이나 되어 특정 질병별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6]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1. 집단의 딜레마 -공동의 목표와 개인의 만족이 공존할 수는 없을까
자발적 참여에서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가치를 이끌어 낼 수 있게 된 것은, 서로간의 연결 능력이 개선되고, 참여를 통해 가능한 일을 상상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공적 발언 비용이 크게 줄어들고 인터넷을 통해 연결된 사람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작은 기여들이 모여 생겨난 막대한 기여를 영속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시대의 주요 특징인 이 현상은 계속해서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 낸다. 전환이 일어날 때마다 의심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인지 잉여를 함께 모으면 가치 있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개념을 공격했다. 설사 그것이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제도와 경쟁할 만큼 인지 잉여를 공유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이유로 일종의 사기라고 주장했다. 마이크로 소프트 사의 스티브 발머는 소프트웨어의 공유 생산을 공산주의라고 공격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편집장을 지낸 로버트 맥핸리는 위키피디아를 공중 화장실에 비유했다. <아마추어들의 유사종교>*우리나라에서는 <인터넷 원숭이들의 세상>이란 제목으로 소개.를 쓴 앤드루 킨은 블로거를 원숭이와 비교했다.
가능한 일을 생각하는 상상력의 수준을 높이려면 항상 도약이 필요하다. 아마추어 집단의 규모가 작고 조직 비용이 높던 시대에는 공유가 대규모 가치나 영속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효율적이지 않았다. 집단은 통합 조정하기가 어려웠고, 아마추어들의 노력이 낳은 결실은 보존하거나 발견하거나 퍼뜨리기가 어려웠다.
2. 어느 여성 히치하이커의 죽음
3. 놀이에서 정치까지 소셜 네트워크 제대로 이해하기
넓은 스펙트럼 위에 다양한 공유 형태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 필수 형태 네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이전에는 통합 조정이 불가능했던 개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개인적 공유이다. 그 예로는 ICanHasCheeseburger를 들 수 있다. 둘째는, 협력자 집단 내부에서 일어나는 공동체적 공유이다. 산후 우울증을 앓는 사람을 돕는 Meetup.com집단이 그런 예이다. 셋째는 공적 공유로, 이것은 협력자 집단이 공적 자원을 만들길 적극적으로 원하는 경우이다. 아파치 소프트웨어 프로젝트가 바로 그런 예이다. 마지막으로 시민적 공유는 한 집단이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경우로, 핑크 차디 캠페인인 바로 여기에 속한다. 개인적 공유에서 공동체적 공유, 공적 공유, 시민적 공유에 이르는 스펙트럼은 참여자를 위해 만드는 가치와 비참여자를 위해 만드는 가치에서 차이가 난다. 개인적 공유의 경우, 가치의 전부 혹은 대부분이 참여자에게 돌아가는 반면,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에 자리 잡은 시민적 공유는 참여자들이 속한 사회에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려고 특별히 설계된 것이다.
개인적 공유는 가장 단순한 종류의 공유이다. 참여자와 수혜자가 모두 개인적으로 행동하지만, 서로의 존재에서 개인적 가치를 얻는다.
디지털 도구는 공유자들에게 요구하는 추가 조건 없이 공ㅇㅍ를 위한 장기적 잠재력을 만들어낸다.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는 것은 설사 아무도 그것을 보지 않더라도 공유 행위가 된다. 이미지와 텍스트, 비디오 등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는 아무도 보거나 읽지 않는 것이 많이 포함돼 있지만, 그런 자료를 이용하게 하는 데에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며, 언젠가는 어떤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
4. 위험에 빠진 위키피디아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에 대처하는 법
어떤 사람이 관심을 끌려고 위키피디아에서 활동한다. 더블린에 사는 22세의 학생인 셰인 피츠제럴드는 위키피디아에서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자르의 항목에 가짜인용문을 덧붙였다. 그러자 그 인용문은 전 세계 각지에서 자르의 고인 약력에 나타났다. 자신이 싫어하는 견해를 바꾸거나 침묵하게 만들길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화에서부터 이슬람교, 마이크로소프트, 갈릴레이에 이르기까지 온갖 주제를 다루는 위키피디아 페이지들은 내용을 대폭 뜯어고치거나 완전히 삭제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늘 큰 위협을 받고 있다. 가끔 경제적 가치를 노리고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특정 기업에 호의적인 내용을 덧붙이고 불리한 내용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위키피디아 항목을 편집하려고 시도한다. 개인과 집단 사이의 이러한 갈등은 인지 잉여를 공적 및 시민적 용도로 사용하는데 따르는 긴장을 반영한다.
[7] 변화는 이미 일어났다. 문제는 상상력이다.
1.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20억 명이 연결된 세상
이 책은 새로운 자원에 대해, 그리고 사회가 그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쓴 것이다. 그 자원은 주 40시간 근무제의 확산과 함께 팽창하기 시작한 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인구 증가와 건강 개선, 교육 기회 증가, 경제적 여유 확산과 함께 더욱 성장한 누적 여가 시간뿐만이 아니다. 그 여가 시간은 그것을 제대로 이용할 수단이 부족했기 때문에 인지 잉여가 되지 못했다. 사실, 선진국의 누적 여가 시간은 늘어났지만, 소풍, 이웃 간의 교제, 볼링 대회 등 과거에 우리를 서로 연결시켜 주던 사회 구조 중 많은 것이 해체되어갔다. 참여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축소되자 여가 시간 관리는 대체로 개인적 문제가 되어, 우리는 그것을 활용하기 보다는 그저 소비하는데 치중했다.
오늘날 여가 시간이 인지 잉여로 변하고 있는 현상은 단지 새로운 사회적 도구하고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대중의 참여와 공유와 토론을 지원하는 미디어는 새로운 것이지만, 그렇게 하겠다는 동기가 없이 단순히 수단만 가지고서는 대단한 일을 할 수 없다.
2. 혁명의 역설 -예측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는 법
1990년대에 이루어진 많은 연구는 잠재적 사용자들에게 만약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 대답으로는 “정보를 찾는데 쓰겠다.”거나 “숙제를 하는데 사용하겠다.”는 종류가 가장 많았다. 그렇지만 이미 온라인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았더니, 그 대답은 아주 다르게 나왔다. “ 친구와 가족과 연락을 유지하는 데”, “사람들과 사진을 공유하는 데”, “ 관심이 같은 사람끼리 대화를 나누는 데.”와 같은 대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우리는 직접 사용해보기 전에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가지고 무엇을 할지 예측하는 데 서툴다.
3. 소셜 네트워크에서 성공하기 위한 조건
분산 집단 대화를 위한 플랫폼을 재공한 최초의 미디어는 1960년대 초 일리노이 대학에서 도입한 플라토라는 컴퓨터 시스템이었다.
지금까지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사회적 사용에 대해 그 맥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온 개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사용자들이 절대로 시스템 설계자가 기대하거나 원하는 방식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플라토도 그랬고, 페이스북도 그렇다. 또 하나는 사람들은 성공적인 커뮤니티를 만드는 비결을 발견함으로써 복잡성을 정복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점이다.
최초의 서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2004년에 출범한 SixDegrees.com이다. 이 시스템은 경쟁력있는 소셜 네트워크로 성공하진 못했는데, 그 이유는 기술이 프렌스터보다 나빴기 때문이 아니라, 1996년에는 온라인 사교생활을 편안하게 여기는 사람이 충분히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유튜브는 2005년까지만 해도 당시에 존재하던 많은 비디오 공유 서비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유튜브가 비디오 공유와 동의어가 된 데에는 경쟁 서비스에 비해 어떤 기술적 장점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 당시 큰 인기를 끈 뮤직비디오 ‘레이지 선데이’를 올린 그런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그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기술적이거나 계획적이라기보다는 사용자의 주도로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었다.
소셜 소프트웨어의 경우, 확실한 성공 비결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간 상호 작용에 대해 새로 알아낸 게 아주 많다. 새로운 소셜 미디어를 만드는 비법은 그런 교훈을 성공을 보장하는 지침보다 행운이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사용하는 것이다.
[시작] 시작하자마자 복잡한 사회적 상호 작용을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반면, 잘못될 가능성은 아주 높다. 출발을 잘 하는 비결은 소셜 미디어를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이해하는 데 달려 있다.
1. 작게 시작하라
소셜 미디어에서 진정한 자연 법칙은 크고 훌륭한 시스템에 이르려면, 크고 평범한 시스템으로 시작해 그것을 점점 개선하는데 주력하기 보다는 작고 훌륭한 시스템으로 시작해 그것을 점점 키워가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왜? 라고 물어라
3. 행동은 기회에 따라온다
행동은 기회를 통해 걸러진 동기이다. 여러분이 새로 만든 서비스에 사용자들이 왜 참여하길 바라는지 판단을 내린 뒤에도, 그들이 이해하고 좋아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가능하면 개인적 동기와 사회적 동기를 모두 충족시키는게 좋다.
4. 사회적 가치를 디폴트에 포함시켜라
딜리셔스는 사용자들을 위해 두 가지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했다. 첫째, 각 사용자에게 웹의 특정 페이지를 찾고 기억할 수 있게 해주었고, 둘째, 모든 사용자에게 다른 사용자가 저장해놓은 웹페이지를 모두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서비스는 급속도로 성장하여 불과 2념만에 사용자 수가 수십명에서 수백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렇지만 개인 웹페이지 목록을 저장하는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이미 1990년대에 Backflip.com이란 회사가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렇지만 백플립은 딜리셔스와 달리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다. 어떤 차이점이 있었을까? 백플립은 개인적 효용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사용자에게 자신의 북마크를 공유할 수 있는 선택권을 제공했지만, 공유하려면 사용자가 먼저 그것을 선택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는 사용자가 거의 없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딜리셔스는 그런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대신에 모든 사용자의 북마크를 항상 공유했다.
[성장]
소셜 시스템은 역동적인 것과 죽은 것 두 가지가 있다.
1. 100명의 사용자가 10명의 사용자보다 더 힘들고, 1000명의 사용자보다도 더 힘들다.
2. 사람은 제각각 다르다. 사람이 많아지면 더 많이 달라진다.
[적응하기]
4. 모든 것을 시도하라
5. 변화는 이미 일어났다. 문제는 상상력이다. ■
[Review]
스페인어책을 번역하는 딸은 모호한 문장이 나오면 그쪽 문화권 친구들에게 이메일을 통하여 조언을 구한다. 얼마 전 멕시코 부호에 대한 책 <카를로소 슬림 >를 쓸 때는 멕시코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오늘날 온라인 공간에서는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짧은 시간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고 단추를 한 번 누르기만 하면 별도의 비용 없이도 자기 생각을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
소셜 미디어 접근할 수 있는 도구들이 광범위하게 만들어지고 공유자들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생각은 모이고 장기적 잠재력을 만들어 낸다. 이미지와 텍스트, 비디오 등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는 아무도 보거나 읽지 않는 것이 많이 포함돼 있지만, 언젠가는 어떤 사람과 소통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책이 출판될 시기인 2010년 즈음, 유튜브에는 매분 평균 24시간 분량의 비디오가 업로드 되었고, 트위터에는 매일 약 3억 단어가 올라왔으며 그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도구들에 올린 단편의 글은 즉시로 전 세계의 신문 머리기사를 장식한다. 조간신문 기사 하나에 수백 수천 참여자의 의견이 모이고 있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기 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예측하기도 한다. 카톡으로 모든 대화를 하고, 조금이라도 궁금한 일이 생기면 들고 있는 핸드폰부터 꺼내 드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적, 폭발적으로 우리 주위에 다가오게 되었으므로 적극적 도구 사용자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에도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전 세계에서 가장 선두에 있는 우리나라는 소셜 미디어의 선 두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미 그런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2002년 월드컵 붉은악마, 이 책에도 소개된 2008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광우병 사태나, 현재 당면하고 있는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는 내용은 다를지라도 같은 맥락에서 “소셜 미디어” 도구들이 없었더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며, 향후 세계 학자들에게 큰 관심으로 부상할 것임이 틀림없다.
소셜 미디어는 쓰나미와 같다. 참여자들은 어떤 면에서는 이 책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사실(내용)보다는 분위기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도 있다. 이 책의 제목이<많으면 달라진다.>라고 한 것은 그런 의미가 있다. 젊은이들이 온라인에서 하는 일은 대부분 하찮고 경박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그들이 하는 일은 연결하고, 소통하고, 궁극적으로는 동원하는 능력을 쌓아간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두 계층 간의 차이는 사건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려는 전통적 방식과, 함께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물결을 중시하는 젊은이들의 새로운 시대정신과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점에서 소셜미디어는 많은 우수한 장점도 있지만, 특정 이익을 따라 악의적으로 정보를 왜곡하는 위험요소도 많다.
이 책은 크게 나누어 소셜 미디어의 탄생, 활용사례, 참여자의 심리적 요인, 위험 요소.... 등 일곱 분야로 나누어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이 책이 출판된 것은 불과 5년 남짓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14년에 출판되었지만, 책의 내용 대부분은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기에 크게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 문제를 포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오늘의 혼미한 세상을 좀 더 밝은 눈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이미 이 분야에 있어서 최고 권위를 얻었다. 뉴욕대 교수 하버드 객원교수 이며 포천지에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된 바 있다.
<책 본문>
오늘날 선진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세 가지는 일, 잠, 텔레비전 시청이다. 텔레비전을 많이 시청하는 것은 불행의 원인이 된다는 증거가 상당히 많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경향은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 텔레비전 역사상 처음으로 일부 젊은이 집단은 기성세대보다 텔레비전을 덜 보고 있다. 고등학생, 브로드밴드 사용자, 유튜브 사용자 등을 대상으로 한 여러 인구 통계에서 그러한 변화가 나타났는데, 기본적인 관찰은 늘 똑같았다. 빠른 대화형 미디어에 접근 할 수 있는 젊은이 집단은 순수한 소비를 전제로 하는 미디어에서 행동을 옮겨가고 있다.
이 책은 전 세계의 누적 여가 시간을 함께 모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자원을 다룬다. 우리가 이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전환 두 가지가 이미 일어났다. 하나는 전 세계의 교육 받은 인구 사이에 연간 1조 시간이 넘는 여가 시간이 생겨난 것이고, 또 하나는 보통 시민들이 여가 시간을 공유하면서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을 가진 활동을 추구할 수 있게 해주는 공공 미디어가 발명되고 확산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인터넷 연결이 가장 잘 된 나라이다. 평균적인 서울 시민은 런던이나 파리, 뉴욕의 평균적인 시민보다 컴퓨터 휴대전화를 통해 더 빠르고 더 우수하고 더 광범위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에 접석할 수 있다.
젊은이들이 온라인에서 하는 일은 대부분 하찮고 경박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그들이 하는 일은 연결하고, 소통하고, 긍극적으로는 동원하는 능력을 쌓아간다.
대한민국에서 촛불 시위를 일어나게 한 것은 소셜 미디어가 아니었고, 픽업텔의 사용자들을 환경에 관심을 돌리게 한 것 역시 소셜 미디어가 아니었다. 그런 결과는 공적 대화를 펼치는 방식을 변화시키길 원하고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한 시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왜 이 모든 사람들은 공짜로 일하는가? 란 질문은 사람의 행동이 주로 개인적, 금전적 동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하는 합리적 이유는 돈 때문이므로 , 어떤 일을 공짜로 하는 현상은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론적 틀에서는 누가 왜 자신의 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리거나 위키페디아의 항목을 편집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여기에 문제는 행동 자체가 아니라 동기이다. 사람들이 왜 이 일들을 ‘공짜로’ 하는가라는 질문을 거두고, 왜 그들이 이 일들을 하는가라고 물어야만 광범위한 내재적 동기가 드러난다.
새롭고 놀라운 행동들은 공통 요소가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사람들은 내재적 동기를 보상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러한 기회는 기술 덕분에 가능했지만 그것을 만들어 낸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행동은 사회적 동물로 살아온 우리의 삶에서 오래 지속돼온 패턴을 대체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패턴이 연장된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기회를 만들어 낸다. 서로에게 잘 대해줌으로써 우리가 서로 힘을 모으면 개인들이 각각 혼자서 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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