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세월 가은 40x25x23
오랜만에 인사올립니다. 안녕하시지요? 생활인으로 분주히 사느라
자주 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늘 그리운 님들은 마음속에 계십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건석하셔요.
심안여해 올림
----------------------------- 돌속에 담긴 세월 (石年)
처음부터 고택에 갈 생각은
아니었다. 아들 녀석을 데리고 집안 행사에 다녀오던 길에 녀석에게 선생의 잔향이라도 맡게 해 줄 요량으로 차를 돌려 조금은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어려서는 일 년에 몇 차례씩 들린 곳을 나이가 들어서는 먹고 사는 일에 세월을 보내느라 몇 년 만에 들렸지만 이곳만은 세월이 멈추어
버린 듯 모든 것이 그대로이다. 오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대청마루를 따뜻하게 달구어 놓았다. 마루장을 손으로 쓸어본다. 세월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스며든 매끄러운 마루장이 봄햇살을 머금어 금방 다림질한 홑이불처럼 따사롭다. 마치 고향집에나 온 듯 대청마루에 걸터 앉았다. 격조 있게 지은
사랑채 앞뜰에는 핏빛보다 더 강렬한 목단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아들 녀석은 옛집이 마냥 신기한 듯 여기저기를 뛰어 다니더니 목단 앞에
서있는 사각의 돌기둥을 발견 하고는 이리저리 살펴본다. “아빠 여기 글씨가 써 있네요 첫 자는 돌석자인데 다음글자는 뭐라고 쓴
거에요” 요즘 막 한자 공부에 재미를 붙여 한자만 눈에 띄이면 자꾸 읽어 보려고 하는 녀석의 호기심을 자극한 게다.
“그건 해
년자 란다” “해년은 이렇게 안생겼잖아요?” “응 예서로 해년은 그렇게 쓴단다” “그럼 돌석 해년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응 그건 돌의 해 또는 돌의 세월이란 뜻이란다, 그리고 그것은 추사 선생님 께서 직접 만드셨다는 해시계란다” “이게
해시계라고요? 와 신기하다. 그런데 돌의 해? 돌의 세월? 그게 무슨뜻이에요?” 나는 녀석의 질문에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 지 난감해
졌다. “글세.... 돌의 해란 무슨 뜻일까... 어떻게 설명을 해 주어야 네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말문이 막혀 난감한
그 순간 나에게는 환영 하나가 떠 올랐다.
세월의 세파에 지치고 쇄약해 졌으나 눈빛만큼은 형형하고 흰 수염에 도인의 풍모를 지닌
한 노인과 비슷한 또래의 스님 한분이 초가의 작은 방에 마주 앉아 있다.
“아이고 완당 그동안 얼매나 노고가 많으셨소잉 이제 유배도
풀리시고 이곳 과천에 거처도 마련 허셨응게 맴 편하게 지시오. 지친 몸도 좀 추스르시고잉 제주 유배풀리고 바로 얼마 안뒤서 북청유배를
떠났셨응게... 그러니께 고거이 몇 년만이지라잉”
“ 글쎄요 나도 언제부터인가 해를 세보지는 않았는데... 십년이 조금 넘지
않았겠소. 저 유배 풀렸다는 소식에 이리 한걸음에 달려와 주시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 제가 좋아하는 스님만든 떡차는 가져
오셨오?”
“아따 누가 차 구신 아니랄까베 이 땡초 얼굴 보자마자 차부터 찾소잉 물론 가져 왔지라 근이 차 보담 요걸 먼저
보시요잉, 몇 년전이 담양 절집에 가 있는 제자눔이 남한강 워디서 건졌다는 것인디 완당 보먼 즉잖이 좋아 헐것 같어서 지가 이참에 지고
와뿌렀오” 초의 선사가 내어 놓은 것은 적잖은 크기의 남한강 청오석 한 점이었다.
“아이고 스님도 참 대단허요 이 무거운
걸 지고 예까지 오셨단 말이요?”
우리나라 남한강에서만 난다는 청오석 한 점을 보자 추사의 눈이 번쩍 뜨였다. 검다 못해 푸른
빛이 도는 강질의 오석에 군대 군대 파임이 있고 이들은 알 수 없는 세월의 물씻김으로 그 표면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명품이로세!”
추사의 입에서는 신음 섞인 탄성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벗이 좋아하는 괴석 한 점을 보이려 일흔이
가까운 노구에 저 무거운 것을 지고 해남 땅끝에서 이곳 과천까지 한 걸음에 달려와 준 일생의 벗 초의의 마음에 가슴이 저려왔다.
울컥하고 저 가슴아래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이었다.
“돌 보다 그 마음이 명품이로세”
추사는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혼자말처럼 다시 탄성을 흘렸다.
괴석을 문갑 위 수반에 올리고 두 사람은 초의가
만들어온 떡차를 우려 나누어 마셨다. 다향은 작은 방안에 가득 퍼져 누옥을 거대한 우주의 한 가운데로 만들어 버렸다.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그 정적의 육중한 발을 초의가 잠긴 목소리로 밀어 올렸다. “ 저... 근디.... 근디 말이요, 얼마전이
백파시님이.... 백파시님이 입적을 해 부르셨오”
쿠궁!
추사는 가슴 한구석에서 무엇인가 커다란 덩어리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칠십을 바라보는 노구 만권서를 읽었고 해동의 유마거사라는 칭호에 걸 맞는 깨달음도 얻었다. 십년이 넘는
세월을 고통과 아픔을 겪으며 수도 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그에게 깨달음을 얻은 여든 여섯의 노승의 죽음이 무에 그리 아픔이나 충격이 될
수 있으랴마는 젊은 시절 비수를 날리며 처절하게 서로를 물어뜯는 논쟁으로 엮인 인연이 어느 샌가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으로 바뀐
마음속 도반의 입적은 슬픔이라기 보다는 차리리 쓸쓸함 이었다.
조선 사상사의 논쟁 가운데 유학의 퇴계와 고봉의 서한 논쟁과 쌍벽을
이루며 이후 백여년이 넘는 세월을 백파와 초의의 제자들의 대리전으로까지 이어진 불가의 위대한 사상논쟁의 불을 지른 것은 사실 추사가 아니라
초의였다. 백파는 사명대사 이후에 사그러져 가던 조선 선맥에 있어 그 등불을 다시 밝힐 우뚝선 봉우리 였으며 그 부흥운동의 시초를
<선문수경>의 저술로부터 시작하였다. 백파는 사명의 법맥을 전수한 불제답게 중국의 임제선사 이후 선의 전통으로 내려오던 조사선을 선의
근본으로 삼고자 하였다. 선이 깨달음의 궁국에 도달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규정하면서 선을 의리선 여래선 조사선으로 삼분하고 그중 조사선이
우위에 있다는 주장을 편 것이었다.
즉 세상의 지식에서는 어설픈 스승도 스승이 될 수 있으나 선의 진리의 세계에서는 확철대오한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깨달음에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승에서 제자로 다시 그 제자로 법맥을 이어가는 조사선이야 말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당시 다산으로부터 유학을 배우고 그의 실학사상을
뼈속까지 익힌 초의로서는 그러한 이분법적 사고가 반가울리 없었다.
그는 교와 선이 다른 것이 아니고 깨달은 곳이 교이면 여래선이
되고 깨달은 곳이 선이 되면 조사선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선을 여래선 조사선 의리선 그리고 격외선으로 사분하였다. 이러한 논쟁에 초의의
절친한 벗이자 불교철학의 석학인 해동의 유마거사 추사가 끼어들면서 이 논쟁은 격렬한 사상적 싸움으로 번진다.
게다가
56세,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천하의 추사는 백파에 대해 오히려 보는 이들에게 위태 위태함을 느낄만큼 인신공격에 가까운
<백파망증십오조>를 써 보내는데 아무리 석학 추사라 하나 어찌 이리도 교만하고 오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또 스님 소설(所說)이 이와 같음을 보니 선문의 모든 사람들은 자고 이래로 거개가 다 무식한 사람들 뿐이라 더
이상 이렇고 저렇고 따질 거리가 못되니 내가 이들을 상대로 이렇고 저렇고를 따지는 것이 철부지 어린아이와 떡을 다투는 것 같아서 창피하도다
이것이 스님의 망증 제 1이요.」
로 시작되는 백파망증 십오조는 점점 목소리가 고조 되다 제 십이조에 이르면 점입가경이
된다.
「스님은 매양 80년 공을 쌓은 나인데 그 누가 나를 넘어선 자가 있느냐고 호언 장담하더니 그 공쌓은 것이 고작 이것이냐
내가 묻누니 심안상속(심안상속)이 무슨 뜻이뇨?.. 아무런 심증도 없이 이것 저것 주워 보태서 입으로만 지껄이는 꼴이 점점 볼만 하도다. 이것이
스님의 망증 12조요.」
이정도가 되면 듣고 있는 이 마저도 민망해진다. 어찌 자신보다 연장의 선사에게 이렇듯 오만 방자한 말
펀치를 날릴 수 있단 말인가? 추사의 인격이 의심스런 부분이다. 그러나 누가 알랴! 대붕의 큰 뜻을.... 깨달음의
경지인 선은 일체의 관념의 파괴로부터 시작한다. 격외의 선은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여래를 만나면 여래를 죽이며 부처를 만나면 부처마저도
죽임으로서 일체의 관념을 버리고 마음의 끈을 과감히 끊어 버림으로서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 연유로 방산선사는 도를 물어
오는 선지식을 방망이로 내리치고 임제선사는 우레와 같은 “할!”의 고함소리로 정신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추사가 백파를 향해 던진
백파망증십오조 또한 백파를 향해 던지는 깨달은자 추사의 방과 할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방과 할은 범인이 보기에는 기괴해 보일지라도 깨달은자
사이에서만 심심상인으로 알아 볼 수 있는 선문답인 것이다. 이점에 대하여는 추사가 후일 지은 <백파율사대기대용비>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런대도 사람들은 이 뜻을 모르고 허망하게 살활과 기용을 갖고 백파가 고집했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하루살이가
느티나무를 흔드는 격인 것이다. 이래서야 어찌 백파를 안다고 할 수 있으랴! 내가 예전에 백파와 더불어 여러번 왕복 서한으로 변증한 것은
세상사람들이 헛되이 의논하는 것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이점에 대하여는 나와 백파만 알고 있을 따름이다....」
어디가 어떻게
다르다는 것은 구구절절이 쓰지 않았지만 이미 백파와 추사는 서로의 깨달음의 세계를 서로 인가한 것을 설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백파망증십오조를 받은 백파는 껄껄 웃으며 “추사가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 달려 드는구나” 하고 받았다 한다. 이도 한편으로 보면
추사를 한마디로 무시 하는 듯 보이나 이 또한 선 문답의 일종이다. 반디불과 수미산은 역시 분별의 세계이다. 분별의 세계에서 보면 절대 반디불로
수미산을 태울 수 없으나 반디불은 작고 수미산은 크다는 것 부터가 분별이다. 이러한 분별의 세계에서 벗어났을 때 반디불로 수미산은 얼마든지
태울 수 있는 것이 되고 만다. 백파는 추사 또한 그러한 분별의 세계를 벗어난 것 이라는 것을 인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말하지 않아도서로를 알고 서로를 느낄 수 있는 마음속의 도반이 열반을 한것이다.
초의는 며칠을 더 머물다 다시 해남으로
떠났다. 젊은 시절 다산의 소개로 만나 평생을 도반으로 지낸 정신과 학문이 서로 통하는 아름다운 벗, 홀로 지내는 나를 위해 제주 유배시에도
목숨을 건 뱃길을 건너와 준 것이 몇 차래 였던가. 이제 늙어 기력 또한 예전만 하지 못함을 스스로 느끼는 추사로서는 이 아름다운 벗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마지막일까....’ 파르라니 깎은 흰머리가 손톱 만해 지다 결국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초의의 뒷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초의가 떠난 후 추사는 며칠을 알아 누었다. 다시 기력을 찾고 일어났음에도 기운을 차릴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여여하고 쓸쓸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덧없는 몇 달의 세월이 흐르고 기운을 차리자 추사는 새벽 일찍 일어나 목욕을 하고
의관을 정제한 후 즐겨 쓰던 단계벼루를 꺼내 새로 연적에 물을 받아 연지에 따른 후 아껴두었던 중국의 벗 섭지선이 보내준 송대의 진묵을 꺼내어
갈기 시작했다. 순간 묵향이 방안 가득히 퍼지며 작은 방을 선계로 만들어 버렸다. 먹이 갈리자 종이를 펴고 종이 앞에 정좌하고 앉아
지긋이 눈을 감고 한참을 묵상하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천 수만의 문장이 부유하다가 정제되고 또 정제되어 정금처럼 단금질된 골수의 언어만이 그의
뇌리에서 차례로 정리되고 있었다. 순간 지긋이 감았던 눈을 뜨고 붓을 잡았다. 누가 말했던가 추사가 글씨를 쓸때는 송곳으로 바위를
뚤는듯 하였다고.... 부드러우나 힘있게 움켜쥔 그의 붓은 송곳이 아니라 차라리 칼이었다. 먹을 찍어 벼루에 몇 번 거스른후 큰 글씨의
해서로 써 내려 갔다.
華嚴宗主白坡大律師大機大用之碑 (화엄종주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
화엄의 종주!, 스님으로
들을 수 있는 극찬의 찬사이다. 그리고 백파를 대율사로 높이고 백파의 평생의 화두인 대기 대용을 비석의 이름으로 썼다.
大機大用은
백파율사의 평생의 화두로 백파는 대기(大機)를 마음의 청정함으로 규정하고 불(佛)의 세계로 보고 대용(大用)을 마음의 광명의 세계로 보아 이를
법(法)과 연결 시켰다. 그러므로 대기 대용은 불과 법을 아우르는 깨달음을 얻은 대 자유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대기대용은 백파의 처음과
끝이요 알파와 오메가다. 이러한 백파의 뜻을 추사는 완전히 이해하고 그에 대하여 인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같은 크기의
종이를 폈다. 이미 마음속에서 정리된 문장들은 종이에 붓을 대자 마치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듯 살아 춤추기 시작했다. 어려서는
동국진체를 익히고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중국에 가서 글씨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을 아우르는 당나라의 해서(唐楷)에서
글씨의 본을 세우고 송의 동기창 미불의 행서에서 유연함을 얻고 다시 팔분예(한나라 시대의 예서)에서 고졸함과 강인함을 얻은 칠십 노구의
신수(神手) 추사는 이제 글씨가 그가 되고 그가 글씨가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격조있고 장엄한 그의 문장은 온몸의 기를 담은 그의
붓끝에서 유연하며 장엄하고 강인하며 활기 넘치는 필과 획으로 살아 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근래에 율사로서 일가를 이룬이가 없는데
오직 백파만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고로 여기에 율사라 적은 것이다.
이렇게 쓰고 다시 백파의 화두인 대기 대용에 대하여
언급한다.
대기 대용. 이것은 백파가 가장 힘들인 곳인데 혹자는 기용과 살활을 지루하고 억지스럽다 하지만 이는 결코 그런것이 아니다
무릇 보통사람들을 대치함에 어느것이나 살활과 기용아닌것이 없으니, 비록 팔만대장경에 어느 것 하나 살활과 기용에서 벗어난 것이 없다. 그런대도
사람들은 이 뜻을 모르고 허망하게 살활과 기용을 갖고 백파가 고집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하루살이가 느티나무를 흔들려는 격인 것이다.
이래서야 어찌 백파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 내가 백파와 더불어 여러번 왕복서한으로 변증한 것은 세상사람들이 헛되이 의논 하는 것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나와 백파만이 알고 있을 따름이다. 비록 만가지 방법으로 입이 쓰도록 설득 시키려 해도 모두 깨닫지
못하니 어찌 백파를 다시 일으켜 서로 마주보고 한분 웃어 볼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백파의 비문을 지으면서 만약 대기대용 이 한구절을 뚜렷하게
쓰지 않는다면 이것은 백파로서는 부족하다 할 것이다. 설두,백암 등 문도들에게 이것을 써 주면서 과천에 사는 늙은이(果老-추사)는 다음과 같이
부기 하노라.
가난하기는 송곳 꽂을 자리도 업었으나 기상은 수미산을 덮을만 하도다 어버이 섬기기를 부처님 모시듯
하였으니 그 기풍 정말로 진실하도다 속세의 이름은 긍선이나 그 나머지는 말해 무엇하랴
완당학사 김정희가 찬하고 또
쓰다.
글은 단숨에 끝났다. 추사는 붓을 내려놓으며 가뿐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
내렸다.
오랜 숙제를 막 끝내어 마음이 가벼워 질 듯도 하였으나 한없는 고독과 쓸쓸함이 파도처럼 밀려오며 그의 온 몸을 전율하게
하였다.
그는 물끄러미 일전에 초의가 가져온 남한강 청오석을 바라 보았다. 저렇게 강질의 돌이 거대한 바위에서 저렇게 작아질
때까지 그리고 저렇게 매끄럽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그에 비하면 백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내 인생은
무엇인가...
어려서 월성위궁의 귀염둥이로 자라면서 손이 귀한 집의 유일한 아들로 큰집으로 양자를 가서 두 아버님을 섬기며 더 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젊어서는 신언서판을 모두 갖춘 기린아로서 우리나라의 어른들 뿐만 아니라 청의 스승들로 부터도 넘치는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탄탄대로 같을 것 같은 삶이 절정을 이루던 오십대의 나이에 부친은 윤상도의 옥사에 연류되어 돌아가시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
버렸다. 이후 십여년의 세월은 정말 오욕과 고통의 세월이었다. 돌아보면 영과 욕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영겁의 우주의 시간 속에서 한낱
하루살이에 불과한 인간의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시간의 흐름이란 인간의 인식 속에서 존재한다. 인간이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늙고 또 죽어가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의 삶속에서 늙음과 죽음의 현상이 없이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인간은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어제에 대하여 오늘은 또 하나의 다른 날 일 뿐이다. 그렇다면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도 결국
모두 인간의 인식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 모두가 허상이라는 것을 깨닿는 다면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으니 결국
삶도 없고 죽음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핵심인 유식철학의 정수가 아니던가...
‘저 돌맹이 하나에 온 우주의 시간이 다
들어 있으니...’
결국 돌 속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돌 속의 시간이 인간의 인식속에 들어오면 흐르는
것이된다 그러므로 돌속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또한 흐르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은 그러한 시간속에서 울고 웃으며 인간은
또 유구한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을...
추사는 다시 필의가 일었다. 다시 종이를 꺼내에 남은 먹을 찍어 힘찬 예서로
써 보았다.
石年 !
돌속에 담긴 시간... 흐르고 또 흐르고 흐르지 않는 시간....
“아빠!
집에 간가요?” 아들녀석이 부르는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듯 상념에서 깨어 났다. “가야지 그래 가야지”
“석년은 말이야
무슨뜻이냐 하면.....” 하고 말을 꺼내니 아들녀석은 무슨 소린가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제가 물었던 석년의 뜻을 물었던 것을
벌써 잊은게다.
그래
너는 자라고 나는 늙어 가겠지
추사가 자신의 세월을 치열하게 살아낸
것처럼... 그러나 그는 이제 가고 그의 삶의 흔적과 자취만이 남아 있는 것처럼... 그러나 후세에 추사를 알아보는 이가 있어 그의
삶을 흠모하고 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지금 내가 이땅에 살고 또 사라지면 네가 또 그렇게 살아
주겠지...
추사가 그리했던 것처럼....
아들녀석의 손을 꼭 잡아본다 부드러운 온기가 전해진다. 아들
녀석의 손을 잡고 솟을대문을 나오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돌아보니 석년이라 쓰인 돌기둥 해시계가 뉘엇이 넘어가는
봄날 짧은 햇살을 받고 마치 광대한 우주를 떠 바치듯 의연이 서 있었다.
(2011년 처서에
心安如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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