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티 나는 여자 - 이오순
두석 부자父子는 하객들을 맞느라 정신이 없다. 인숙은 축하한다는 말로 인사를 했을 뿐이다. 어디를 봐도 인숙이 아는 사람은 없다. 식장 안으로 들어간 인숙은 맨 앞에서 둘째 줄에 앉았다. 마치 가족이나 된 것처럼. 그냥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문 쪽 하객들이 아직 웅성거렸지만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양가 어머니께서 화촉을 밝히기 위해 나란히 입장하시겠습니다.”
순간 인숙은 귀를 의심하며 얼른 돌아보았다. 사회자의 말대로 두 어머니가 손을 잡고 치맛바람을 살살 끌면서 단상을 향해 걸었다. 하객들도 시선을 따라가면서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인숙의 얼굴이 묘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앞자리에 앉은 걸 후회하면서 자꾸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평소에는 희끗한 꽁지머리를 묶고 다녀 화가처럼 보였던 두석이, 오늘은 짧은 신사머리에 염색까지 해서인지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화가였던 아내가 세상을 뜨고 두 남자만 살아온 지 2년, 두석에게 여친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인숙의 눈은 온통 두석 옆에 앉은 여자에게 가 있었다. 머지않아 재혼을 한다더니 앞당겨 어머니 자리에 앉혔나 보다.
여자는 온몸에 귀티가 흘렀다. 혼주 석에 나란히 앉아서도 두석이 뭐라고 하면 여자는 두석의 무릎을 살짝 치면서 웃는다. 여자가 흰 장갑 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곤거릴 때마다 두석은 여자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여자는 뒤로 머리까지 젖히며 웃기도 한다. ‘오늘 저놈 장가보내고 우리도 얼른 재혼합시다.’ 인숙은 두 사람이 그럴 거라고 여겨졌다. 더구나 아들의 직장이 지방에 있으니 두석은 얼마나 홀가분할까? 요즈음 여자가 두석의 집에 드나든다는 것을 느낌으로 아는 인숙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인숙이 두석 집을 드나든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마음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 살림을 둘러보곤 했다. 혼삿날이 다가오자 인숙은 며느리를 맞는 것처럼 분주했다. 신혼부부 이부자리며 거실 방석을 새로 장만했다. 화가인 엄마가 있었으면 미적 감각을 더해 오죽 잘해주었으련만, 판사인 아들이 장가를 간다고 좋아했으련만․․․, 어쩐지 신랑이 안쓰러웠다.
어미 없이 결혼식을 하는 날 새어머니 될 사람이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인숙은 신랑을 바로 볼 수 없어 자꾸 어깨를 낮추며 눈길을 피했다. 신랑 신부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두석과 여자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두 사람이 미워서 인숙은 불편한 얼굴로 힐끔거렸다. 두석이 재혼을 하면 인숙은 그 집에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집안 살림을 여자가 할 테니까.
사진을 찍을 때다. 주례선생님은 양가 부모님들도 나와서 양쪽으로 서라고 한다. 신랑 옆에 여자, 그 옆에 두석이 섰다. 인숙은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때 주례선생님의 목소리가 마이크에서 울려나왔다.
“신랑 어머니 박 화백도 천상에서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지금 신랑 옆에는 고모님이 서 계십니다. 하객들께 절하십시오.”
인숙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사진을 찍는 내내 인숙은 등을 곧추세우고 귀티 나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턴지 내 이름이 좀 촌스러운 것 같아 이름을 하나 지었다. 혼자 지어서 혼자만 알고 쓴다. ‘인숙’이라고․․․.
(에세이문학 2015겨울 205-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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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