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 8,2-3.14ㄴ-16ㄱ; 1코린 10,16-17; 요한 6,51-58
찬미 예수님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복된 한 주간 보내셨나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주일을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로 지내고 있는데요, 두 축일에 들어가 있는 ‘지극히’라는 단어는, ‘거룩한’의 최상급을 번역한 말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와 성체의 신비 모두 그리스도교의 가장 거룩한, 가장 깊은 차원의 신비입니다.
20여 년간 몽골에서 선교하시다 지난 5월 26일 선종하신 우리 교구 김성현 스테파노 신부님의 추모 미사가 6월 2일 봉헌되었습니다. 미사 후에, 김성현 신부님을 아시던 수녀님들과 선교사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신부님의 약력이 오늘 대전 주보 마지막 면에 나와 있는데요, 신부님은 조치원 성당 보좌이던 1999년, 근처에 있는 작은 자매 우애회 수녀원의 기도방을 자주 찾으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수녀님께 전화해서 ‘오늘 밤에 가서 기도할테니까 성체조배실 문 잠그지 말아 주세요’고 부탁하신 적도 있다고 하는데요, 몽골 선교에 대한 열망이 하느님의 부르심인지 아닌지 식별하기 위해 밤에 그렇게 기도하러 오셨다고 합니다.
또한, 신부님의 약력을 보면 2013년부터 3년간 한국에 계셨는데,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따느라 공부하신 기간입니다. 몽골 정부로부터 종교인 비자를 받으려면, 현지인 다섯 명을 고용했다는 증빙서류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용주로, 윗사람으로 입국하는 것이 선교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신 신부님은 한국어 교사로 초청을 받아, 오히려 당신이 고용되어 입국하기를 원했습니다.
몽골에서 어린이 미사를 드리면서 “내가 몽골 말이 서투니까, 강론 끝나면 내 발음 틀린 거 지적해 달라”고 하면, 아이들이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강론을 듣다가, 끝나자마자 ‘이거 틀렸다, 저거 틀렸다’하고 놀려대며 지적해 주었는데, 이것이 신부님께는 큰 행복이었다고 합니다. ‘내가 저들을 위해 내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나에게 내어주는 것이 있어야 동등한 관계가 형성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성자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신비를 신부님이 많이 전해 주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는데, 윗사람으로 군림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오셨고, 일방적 사랑을 베푸시면서도 딱 한 가지를 부탁하셨는데, 그것은 ‘내가 너에게 베푼 것을 다른 이에게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오셨지만, 이에 만족하시지 않고 당신을 더 낮추셔서 빵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것을 재현하는 것이 이 미사입니다.
어느 성당 제의방에서 이런 글을 보았는데요, “사제여, 이 미사가 너의 첫 미사인 것처럼, 너의 마지막 미사인 것처럼 봉헌하라.”는 글입니다. 며칠 전에 미사를 봉헌하다가 문득 ‘이것이 나의 마지막 미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퍼뜩 났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그날 아침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셨을 김성현 신부님과, 미사를 봉헌하시다가 피살되신 성 로메로 대주교님이 떠올랐습니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미사라면, 어떻게 봉헌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들자 몸도 마음도 숙연해졌습니다.
우리도 ‘이것이 나의 마지막 영성체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성체를 영하면 어떨까요. 오늘 영해도 내일 또 영하고, 그 다음에도 또 영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고귀한 가치를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님(1881-1955)은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권위자시기도 했는데, 만물이 그리스도를 향하여 진화하고 있다는 신학적 통찰로 과학과 신학과의 대화에 깊은 공헌을 하셨습니다. 사상이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는 이유로 장상들로부터 경고를 받으신 적도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신부님을 인용하심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교회의 뛰어난 학자로 인정받으시게 되었습니다.
샤르댕 신부님은 지질학 연구를 위해 내몽골의 오르도스 사막을 탐험하다가 미사를 드릴 빵과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에 다음과 같이 기도하며 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주님, 이번에는 아시아의 대초원 안에 들어와 있지만, 또다시 저는 빵도 포도주도 제단도 없이 이렇게 서서, 그 모든 상징들을 뛰어넘어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순수 실재를 향해 저 자신을 들어 올리려 합니다. 당신의 사제로서, 저는 온 땅덩이를 제단으로 삼고, 그 위에 세상의 온갖 노동과 수고를 당신께 봉헌하겠습니다.
저쪽 지평선에서는 이제 막 솟아오른 태양이 동쪽 하늘 끝자락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불이 찬란한 빛을 내며 떠오르면, 그 아래 살아 있는 땅의 표면은 다시 한번 잠에서 깨어나 몸을 떨며 또다시 그 두려운 노동을 시작합니다. 오 하느님, 저는 새로운 노력이 이루어 낼 소출들을 저의 이 성반(聖盤)에 담겠습니다. 또 오늘 하루 이 땅이 산출해 낼 열매들에서 짜낼 액즙을 이 성작(聖爵)에 담겠습니다.
이제 곧 지구 곳곳으로부터 올라와 ‘영’(靈)을 향해 모아질 온갖 힘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영혼의 깊은 속, 그것이 저의 성반이며 성작입니다. 새날을 맞이하라고 지금 빛이 흔들어 깨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들과 신비로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
이 하루 동안 더욱 커질 모든 것들. 이 하루 동안 더욱 작아질 모든 것들. 오늘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들까지도 주님, 이 모든 것을 한껏 저의 품속에 끌어모으려 하는 것은, 그것들을 당신께 봉헌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저의 봉헌물이고, 당신께서 바라시는 단 하나의 봉헌물입니다…. 주님, 저희를 ‘하나’가 되게 해 주소서.” (떼이야르 드 샤르댕,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 김진태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15-16쪽)
샤르댕 신부님은 지구를 제단으로 삼으셨고, 빵 대신 모든 피조물의 노동을 성반에 담아 봉헌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를 위해 인간은 노동을 하고 벌들을 수고롭게 꿀을 모아야 합니다. 또한 포도주 대신에 모든 피조물의 수고를 담아 봉헌하셨는데, 노동이 능동적으로 행하는 것이라면, 수고는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포도가 짓이겨질 때 포도주가 되는 것처럼, 모든 피조물은 원치 않는데 당해야 하는 수고와 고난으로 자신만의 액즙을 만들 것입니다. 레지오 단가에서는 이 수고를 ‘남모르는 땀 내 피와 눈물’이라고 표현합니다. 빵과 포도주 대신 바쳐진 노동과 수고를 능동과 수동, 행하는 것과 당해야 하는 것, action과 passion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샤르댕 신부님은 온 우주 모든 피조물의 노동과 수고를 미사 때 봉헌하셨고 아버지께서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제대 앞의 꽃꽂이는 그리스도의 성체를 형상화했는데요, 이 꽃꽂이를 보면서 성체가 온 우주라는 샤르댕 신부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성체를 영할 때, 예수님 사랑의 상징을 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을 영하는 것이고, 우주의 창조주이자 진화의 정점이신 그리스도를 영하는 것입니다. 성체를 영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에 온 세상과 하나 되고, 성체를 영하는 모든 이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이, 세상을 떠나신 분들과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4-56)
첫댓글 하느님 품에 가신 스테파노 신부님!
주님 닮은 신부님께 존경과 사랑을 드립니다.
성체를 모실 때
세상을 떠난 모든 이와도 하나가 된다는 말씀에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