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213편
*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및
선시(禪詩)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訟)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現)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을
올려놓으니
그 깊은 뜻이야
어찌 우리가 모두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마는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 祖師)
선시(禪詩)와
임종게(臨終偈) 및
오도송(悟道頌) 설해(說解)
"
깊고 미묘한 가르침
(甚深且微金剛敎)
원효(元曉大師) 대선사
심심차미금강교
甚深且微金剛敎
금승앙신략기술
今承仰信略記述
원차선근변법계
願此善根遍法界
보리일체무유결
普利一切無遺缺
매우 깊고 우뚝하여 미묘한
금강삼매(金剛三昧) 가르침을
지금 우러러 믿고 받들어
간략히 적어서 기술하였으니
바라건대 이러한 선근이
모든 법계에 두루 펼쳐져
널리 일체의 모든 중생을
빠짐없이 이롭게 하옵소서.
"
위(上記)의
시(詩, 게송, 禪詩)는
신라(新羅)
원효대사(元曉大師)
대선사(大禪師) 스님의
『금강삼매경론』
말미에 기록(記錄) 되어있는
게송(偈頌, 禪詩)이다.
한국불교의
새벽(曉始)을 연 원효스님의
탁월한 업적(業跡, 발차취)은
자타(自他)가
공히 인정(公認)하는
바이지만
원효 대사(元曉大師)께서
실제로 남긴 게송(偈頌, 禪詩)은
몇 수(數) 되지 않는다.
미타증성게
(彌陀證性偈)를 비롯하여
몇 개가 전해지고 있는데
작품(偈頌) 모두가
대자대비심(大慈大悲心)에
입각(入覺)한
오로지
중생구제(衆生求濟)의
원력(願力, 축원, 발원, 바램)이
깊이 서려 있다.
위(上記)의
시(詩, 게송, 禪詩)에서도
미래세(未萊世)에
좋은 과보(果報, 인과응보)를
받게 될
선근(善根)이
법계(法界)에 가득하여
일체 중생(一體 衆生)
모두를 이롭게(利他衆生) 해
달라고 하는
간절(懇絶)한
원력(願力, 축원, 발원, 바램)이
깊이 서려서 피력되어
담겨져 있다.
※
원효(元曉,
617 ~ 686) 대사(大禪師)
설서당(薛誓幢)은
삼국시대
신라(新羅)의
고승(高僧大德)이자
학자(學者),
사상가(思想家), 작가(作家),
시인(詩人)이요
정치가(政治家)이며
승려(僧侶 沙門)이다.
서기 617년
신라 금성 불지촌(佛地村)
율곡(栗谷)에서 태어나
출생(出生)하였으며
686년
70세(70歲)의 나이로
입적(入寂, 열반 해탈)
하였다.
배우자(부인)는
신라의 요석공주이며
자녀는 설총(아들)
아버지는 설담날
어머니는 조씨 이다.
원효(元曉)는
법명(法名)이고
속성(俗姓)은
경주 순창 설씨(薛氏)
속명은
사(思),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이며
별명(別名)은 모(毛)
호(號)는 화정(和諍)이다.
별도의
외칭(外稱)으로
"
소성거사(小性居士)
복성거사(卜性居士)
서곡사미(西谷沙彌)
백부논주(百部論主)
해동법사(海東法師)
해동종주(海東宗主)
서당화상(誓幢和尙)
고선대사(高仙大師)
"
라고
다양하게
호칭(號稱)되어
불렸다.
후일(後日)
고려시대에는
원효보살(元曉菩薩)
원효성사(元曉聖師)
라고 존칭되었다.
고려(高麗) 숙종에 의해
대성화정국사
(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가
원효(元曉大師)에게
내려졌다.
스스로 지은 별명은
소성거사(小姓居士)이며
한국에서는
보통 법명을 따라
원효대사(元曉大師)로
불린다.
그의 어머니 조씨가
그를 수태(배태)했을 때
꿈 속(夢中)에
유성(流星)이 품 속으로
스며 드는 것을 보고
원효(元曉大師)를
임신(姙娠)하였으며
만삭(滿朔)이 된 몸으로
집근처인 상주(湘州) 경산현
압량군(押梁郡)의
남불지촌(南佛地村)
율곡(栗谷) 마을의 밤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갑자기
원효(元曉大師)를
낳았는데
《삼국유사》에 이르기를
그 때 오색구름이 땅을 덮었다
기록(記錄)하여 전한다.
어머니 조씨는
남편의 털옷을 밤나무에 걸고
원효元曉大師)를 낳았는데
이 나무를
사라수(娑羅樹)라 불렀다.
그 곳 밤나무의 밤은
크기도 매우 크고 굵으며
맛이 특이하여
사라율(裟羅栗)이라고
불렀다.
원효元曉)는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남보다 특출났으며
기억력이 뛰어났다.
일찍이
고향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유교를 가르치는 태학에
입학하였다.
원효는
스승을 따라 배울 것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부친(父親) 담날과
조부 잉피공의 기대를 받으며
화랑으로 활동하였다.
15세 때
또는 28세 때
어머니 조씨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삶과 죽음에 대해
오래 고민하다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황룡사에
들어갈 때 집을 희사하여
초개사(初開寺)를
세우게 했으며
자신이 태어난
사라수 옆에도 절을 세워
사라사(裟羅寺)라
하였다.
출가를 결심했을 때
아버지 설담날과
할아버지 잉피공의 실망이
대단하였다 하며
그에게는
형 설을신이 있었으므로
처음에는 출가를 반대하였으나
그의 뜻이 확고하자
허락하였다.
영취산의 낭지(郎智)
흥륜사의 연기(緣起)
고구려
반룡산(盤龍山)의 보덕(普德)
등을 찾아다니며
불도를 닦으니
뛰어난 자질과
총명함이 드러났다.
고려 대각국사 의천
(大覺國師 義天) 스님에
의하면
백제 땅
전주 사대산(孤大山)으로
옮겨 간 보덕화상(普德和尙)의
강하(講下)에서
「열반경」과「유마경」
등을 배웠다고 한다.
저술한
작품(著作)은
《금강삼매경론》
《대승기신론소》
《해심밀경소》
《열반경종요》
등(etc)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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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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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