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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과 다윗 Ⅰ (삼상 18:1-9)
영적적용 : 새 자아론
요약
요나단이 다윗을 도움은 영혼을 향한 의지의 적극적인 지지를, 그가 벗어준
왕자복은 이제 자기 주권을 포기하는 겸손을, 또 갑옷을 줌은 주님을 향한 견
고한 의지를, 또 다윗을 사랑하여 칼과 활과 띠를 줌은 주님을 사랑하되 마음
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사랑함을, 일체 지혜로 행함은 항상 성령께 묻고
성령안에서 예배하는 생활이 되어야 함을, 그러나 시작된 사울의 박해는 태동
하는 영적인 삶에 대항하는 육신적인 주도권 싸움이므로 경계해야 한다.
설명
본문은 구체적으로 영혼에 영성이 입혀지는 원리를 보여준다.
1. 영혼에 대한 의지의 강력한 지지가 필요하다.
1절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했습니다.
1) 요나단 - 새로워진 의지를 뜻한다.
2) 사랑함 - 새 의지는 쓴뿌리 처리 후에 나타난다.
2. 의지의 철저한 겸손이 필요하다.
4절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1) 왕자복 - 자기 주권을 부인하는 겸손이다.
2) 군복 - 강력하게 하나님 중심의 영을 돕는 의지이다.
3) 칼과 활과 띠 -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해 사랑함이다.
3. 항상 성령 안에서 예배해야 한다.
5절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로 군대의
장을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1) 지혜의 의미 1 - 하나님께 여쭘을 가리킨다.
2) 지혜의 의미 2 - 항상 성령 안에서 예배하는 생활을 가리킨다.
4. 육신의 주도권 싸움을 경계해야 한다.
6-9절에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
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
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
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했습니다.
1) 갈등 - 육신이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싸움이다.
2) 할 일 - 요나단처럼 영을 도와 하나님 주권을 이루어야 한다.
강해
오늘은 사울과 다윗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쓴뿌
리 처리에 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영적인 성장과 함께 나타나는 새 자아
와 아울러 육신의 거스리는 현상에 관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럼 새 자아란 무엇일까요?
1. 주님을 생명처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1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했습니다.
여기 요나단은 인간의 새 자아 즉 새 의지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영
혼과 육체로 만드셨지만 그 때 생겨난 것이 인간의 의지입니다. 이 의지는 영혼과
육체의 중간에 있어서 영혼을 따르기도 하고 육신을 따르기도 하는 중간적인 존
재입니다. 그래서 영을 따르면 영에 속한 사람이요, 육신을 따르면 육에 속한 사
람이 됩니다. 그 만큼 의지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 의지가 새로워
져야 합니다. 이 새로워진 의지를 새 자아라고 불러 보겠습니다.
2. 새 자아는 주를 위해 살고 죽기로 충성하는 마음입니다.
3절에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했습
니다.
그런데 다윗이 골리앗을 처리함을 기점으로 요나단이 그를 생명과 같이 사랑함
을 알아야 합니다. 즉 요나단은 쓴뿌리를 처리한 후에 나타나는 새로운 의지의 예
표입니다. 이 의지는 성령의 감화로 발생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위해 죽도록 사랑
하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의지가 영을 따른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롬8:04-8에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
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
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여기 '영'은 '프뉴마'로서 성령
혹은 인간의 영을 포함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영혼에 함께 하신 성령
으로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그 외에도 죄의 원리 혹은 육신과
대조되는 세력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영을 따른다란 의미는 '영을 본받아' '영혼과
함께'라는 의미입니다. 이 의미를 모르고 왜 우리가 성령을 따르지 않고 인간의
영을 따르는가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의지는 마음의 쓴뿌리를 제거하므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을 그토록 사랑하지만 나중에 아버지인 사울왕과 함께 행동하다가 길보아산
전투에서 죽습니다. 여기서 요나단의 양면성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영에 속한 의
지로는 살고 육에 속한 의지로는 죽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롬6:11에 "이
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
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했습니다. 즉 요나단은 죽지만 그의 아들
므비보셋은 언약에 의해 살아 남아서 다윗이 상에서 먹습니다. 이것은 죄를 향한
의지는 죽지만 다른 형태 즉 의를 향한 의지는 영원히 사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다윗을 생명과 같이 사랑했다는 것은 문자적인 의미로는 그들
은 서로의 공통성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서로가 입장이 같을 때 친구가
되고 그 친밀함이 오래 유지됩니다. 그들은 둘 다 하나님과 동역한 대단한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다윗을 생명과 같이 사랑하게 된 시점은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를 때부터입니다. 이처럼 성도가 쓴뿌리를 처리하고 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생겨납니다.
왜냐하면 롬8:12-14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
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영 중심으로 살고자 하는 겸손
하고 강력한 요나단이 우리 속에 있어야 합니다.
2. 영에 속한 삶이 되려면 의지의 겸손이 필요합니다.
4절에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벗어준 왕자복은 이제 자기 주권을 포기하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리킵니다. 즉 자신이 왕이 될 수 있었지만 다윗을 돕는 것이 하나님 중
심임을 그는 깨달은 것입니다. 얼마나 겸손한 태도입니까? 또 갑옷을 줌은 주님
중심의 영혼을 향한 견고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또 다윗을 사랑하여 칼과 활과 띠
를 줌은 칼은 사상 활은 생각 띠는 힘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주님을 사랑하되 마
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의지가 이제 영
혼의 영성에 견고한 의지를 입혀주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의지는 영혼을 적극
협력해야 합니다. 이 견고한 의지가 입혀질 때 영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3. 영에 속한 삶이 되려면 항상 성령 안에서 예배해야 합니다.
5절에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로 군대의
장을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했습
니다.
여기 다윗의 계속적인 충성과 승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 지혜대로란 '깨
닫다, 형통하다, 신중하다' 등의 의미로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행
동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특기였습니다. 언제나 다윗은 묻는 것이 특기
고 사울은 안 물으려는 것이 특기입니다. 그러니까 백발 백중 승리할 것 밖에는
더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울은 그를 군대의 장을 삼았는데 모든 사람들이 이를
합당하게 여겼다고 했습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성도에게 영적으로 가장 지혜로운 삶이 무
엇인지를 보여줍니다. 힌트를 몇 가지 드린다면 이것을 하면 군장 즉 영적권세를
갖게 됩니다. 또 사울이 어디로 보내든지 라고 한 것처럼 우리가 어떤 형편에 처
해 있든지 언제나 이것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합당하게 여기듯 이것이 모
두에게 은혜를 끼칩니다. 이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 안에서의
예배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엡5:15-21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
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
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
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
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
종하라"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가장 지혜로운 삶이란 성령 안에서 날마다 예
배하는 삶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집에 있든지 길에 있든지 일터에 있든지 마음 속에서 이 예배생활
을 해야 합니다. 그 때 다윗이 군장이 된 것처럼 영적권세가 임합니다. 모두에게
은혜를 끼칩니다. 그리고 모두가 합당하게 여기며 칭찬합니다. 그래서 롬14:17-18
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
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
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지상에 살지만 영적으로는 천국의 영역
에서 산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 백
성으로서 철저한 예배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생활이 바로 영에 속한 삶의
요건입니다.
4. 그러나 육신은 그 주도권을 영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6-9절에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
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
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
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
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일 중의 하나는 윗 사람에게 오해를 받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원인은 본인보다는 주의 깊지 못한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일어납니다.
사울이 다윗을 사랑함은 사실이었으나 승전하고 개선할 때 여인들이 사울보다 다
윗을 더 찬양한 그것이 사울을 불쾌하게 했고 비로소 자기 왕국에 대한 강한 위
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신령한 세계에서의 갈등이란 한 마디로 영과 육의 주도권 싸움이라고 정
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육신은 인격의 지배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치열한 싸
움을 벌입니다. 그래서 성장의 과정에서는 의지가 영에 속했다 육에 속했다는 반
복합니다. 백마고지와 같습니다. 그래서 의지는 피의 혈전장입니다. 그래서 하나
님의 뜻과 육신의 욕망 사이에서 서로 잡아 당기고 당기는 갈등 속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누구에게나 성장과정에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러나 속히 성장하여 갈 등을 끝내야지 평생 그 갈등만 하고 있어서는 안될 것입
니다. 그래서 마음은 은혜로서 굳게 함이 아름답다고 했고, 잠4:23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가르치려고 수많은 두 종류의 싸움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
면 가인과 아벨, 야곱과 에서, 한나와 브닌나, 사울이 다윗 등이 그것입니다. 그런
데 덜 된 의지는 중간에서 관망하다가 하나님도 섬기면서 세상도 섬기려는 기회
주의적인 속성을 발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요나단처럼 적극적으
로 영을 도와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가 육신의 탐욕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
나셨고, 또한 성령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요나단처럼 영혼을 생명처럼 사랑하고
돕는 의지의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 언제나 예배하는 지혜로운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육신의 지배를 과감히 뿌리치고 성령을 따르는 귀한 성
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