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신에 서라.
(수 4:1-24)
1.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3.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 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 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오늘도 "구원의 확신에 서라"는 제목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요단강과 길갈에 세울 증거의 열두 돌을 취하여 세울 준비를 시키는 말씀입니다. 돌을 세우게 하신 목적이 7절에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기념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24절에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즉 그 목적은 다름 아니라 후세 국민들을 위한 교육용이었습니다. 즉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로 요단강을 건넌 구원의 백성이라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구원의 확신이 중요합니다. 구원의 확신 없으면 구원 받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후13:5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했습니다.
열두 돌이 보여 주는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
1. 이미 이루신 사건에 대한 확신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의 열두 돌을 2곳에 세우라 하셨습니다. 9절에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했고, 20절에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요단강 속에 12개를 세우고, 또 요단강 밖 길갈에 12개를 세웁니다. 즉 구원의 확신은 요단강 밖에도 있고 안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요단강 밖의 12개의 돌의 의미입니다. 이 돌들은 보이는 돌들이기 때문에 후일에 자손들이 물을 것입니다. 6-7절에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후일에 자손들이 이 돌을 보고 질문합니다. 그 때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즉 이 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언약을 맺고 여호수아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넌 것을 기념한 돌이라. 너희들이 가나안 땅 백성이 된 것은 너희들이 이미 그 조상 안에 있었으므로 너희들도 가나안 땅 백성이 된 것이라고 설명해야 합니다.
이처럼 주님이 이루신 구원 공로를 객관적 구속사라고 합니다. 즉 조상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 자손들도 함께 건넌바가 된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시고 예수님의 공로로 나는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 객관적 구속사는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사건으로 우리가 확신해야 할 진리입니다.
뉴스타트 건강법의 대가 이상구 박사가 안식교에서 나왔는데 그 이유는 안식교는 인간의 행위에 근거한 조사심판이라는 교리에 얽매여 구원의 확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 전에는 누구도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성경에 근거도 없는 해괴한 교리입니다.
그가 안식교를 나온 직접적 동기는 죽음을 앞에 둔 교인이 찾아와서 지금 죽으면 천국 갈 수 있느냐고 물어서 요5: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신 말씀으로 권면한 것이 알려져서 안식교 목사들의 공격으로 더 이상 안식교에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건 안식교의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확신이란 각인의 영적상태를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 영적상태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내 마음 상태 따라 어떤 때는 구원 받은 것 같고 어떤 때는 구원을 못 받은 것 같고 갈피를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 상태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복음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전15:1-2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롬5:1-2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했듯 믿음으로 그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이 때 필요한 믿음이 바로 확신이고 확신이 바로 믿음입니다. 못 믿거나 안 믿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자기 상태가 근거가 아니라 예수의 복음에 근거한 믿음이 근거가 됩니다. 그래서 롬4:5-8에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죄에서 넘어진다 해도 주님이 나를 이 모습 이대로 받으셨다고 믿음으로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안 넘어지게 그 죄에서도 구원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예수 안에서 천국 백성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상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 구속사에 대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 믿음에 설 때 그 천국을 경험하고 누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성찬예식입니다. 고전11:26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진리의 복음에 의존하여 확신에 서시기 바랍니다.
2. 구원의 확신은 우리 속에도 있습니다.
9절에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했듯이 요단강 밖에도 세우지만 요단강 안에도 12개를 세웁니다. 이번에는 요단강 안의 12돌의 의미입니다. 이 돌들은 보이지 않는 돌들이기 때문에 요단강 자신만 아는 비밀입니다. 즉 요단강 밖은 객관적 구속사라면 요단강 안의 돌은 주관적 구속사입니다.
다름 아닌 믿음을 가리킵니다. 히11:1 말씀처럼 믿음이 증거입니다. 우리 믿음이 12개의 돌처럼 확신해야 합니다. 마음에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는 그 믿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12돌이 있는 것이고 믿음이 없다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시고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믿음의 증거는 자기만 아는 비밀입니다.
그래서 벧후1:8-9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했습니다. 이 정도면 아주 구원을 풍성히 누리는 것이고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심이 믿어만 져도 구원 반열에 올랐고 구원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구원의 확신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데 그 믿음에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그건 아주 위험한 소리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 자녀의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골고다 언덕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달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되 확신 있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다 된 것이 아닙니다. 믿음 안에서 보면 이제 시작입니다. 이제 그 진리를 믿는 믿음 안에서 더욱 자라가시기 바랍니다. 더 배우고 더 믿고 더 확신하고 더 감사하고 더 찬양하고 더 순종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더욱 자라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