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6966]허백정홍귀달선생시-答大虛[답대허]
答大虛[답대허]
虛白亭 洪貴達 허백정 홍귀달
天地生吾覆載吾。천지생오부재오
有身何處不安軀。유신하처불안구
江南築室嗟何晚。강남축실차하만
未必戶鄕是我區 미필호향시아구
虛白亭 洪貴達 허백정 홍귀달 선생은 1438년(세종 20)
경북 상주시 이안면 여물리(당시 함창현 양적리) 에서
태어났으며, 1504년(연산군 10) 손녀를
궁중에 들이라는 왕명을 어긴 죄로 경원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조사를 위해 한양으로 압송되던 도중 6월 22일 단천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자는 겸선(兼善)이고, 호는 허백정 또는 함허정이며, 본관은 부림(缶林)이다.
10세 때에는 관찰사를 지낸 예천출신의 주백손(朱伯孫) 선생 에게서 『논어』를 배웠고,
20세 때 상산김씨와 결혼하였다. 22세 때 진사가 되고, 23세 때 성균관에 유학한 뒤
24세 때인 1461년(세조 7) 강릉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그는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4대에 걸쳐 관직을 지냈는데,
대사헌을 거쳐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대제학을 지냈으며,
이조와 호조, 공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고 의정부 좌·우참찬을 지냈다.
외직으로는 경주부윤과 충청, 강원 및 경기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허백정은 34세 때 『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35세 때는 전라도안찰사로 다녀오면서 시 70여 수를 지어 『남행록』으로 묶었다.
39세(1476) 때에는 원접사 서거정의 종사관으로 중국 사신 기순 등을 맞이하여
실력을 한껏 드러냈다. 42세 때 남산 아래에 허백정(虛白亭)을 짓고 살았으며,
44세(1481) 때에는 천추사로 중국 사행을 다녀왔다.
이때에도 그는 여러 수의 기행시를 남겼다.
52세 때 부친상을 당하여 시묘살이하면서 삼년상을 치렀다.
56세 때 다시 정조사(正朝使)로 뽑히게 되자
병으로 사임을 청하다가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연산군 즉위 초 허백정은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무오사화 때에도 잠시 파직되었을 뿐 크게 화를 입지 않았다.
그는 김종직과 그의 제자인 조위, 김일손 등 이른바 영남 사림파 출신 관료들은 물론
훈구 세력 척신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연산군 때에도 별 무리 없이 관직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연산군이 정사는 내버려둔 채 점차 방탕하고 포악해지는 것을 보고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연이어 간언과 상소를 올렸고,
이로 인해 오히려 점점 더 눈 밖에 나게 되어
결국 죽음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원문=虛白亭文集卷之一 / 詩
答大虛
天地生吾覆載吾。有身何處不安軀。
江南築室嗟何晚。未必戶鄕是我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