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역사문화연구원 ‘공소’ 책자 발간
충남 내포지역은 한반도에 천주교가 처음 전래됐을 때부터 천주교 신앙의 중심이었다. 특히 병인박해(1866)를 포함해 100여년에 걸친 천주교 박해기 내포지역은 무수한 순교자를 배출하면서도 천주교 신앙의 든든한 요람이 돼 줬다. 오늘날 내포지역을 ‘한국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이자 묏자리’라 부르는 이유다.
내포지역이 천주교 신앙의 요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대를 이어 순교하면서도 목숨으로 신앙을 증거한 진실한 신자들이 모여 사는 교우촌이 많았기 때문이다. 천주교가 확산되기 시작한 18세기 말에 이미 삽교천변 간척지 마을 상당수가 천주교에 물들었다고 보고될 정도다. 이들 교우촌은 이후 공소로, 공소는 다시 성당으로 발전하면서 신앙생활의 구심점이 됐다.
공소(公所)는 대개 신자들이 많은 교우촌에 설립해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교회 운영의 하나로, 박해기와 같이 사목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거나 신부(사제)가 부족한 상황에서 유용한 방식이었다.
전례를 위한 건물(강당)이 따로 있기도 하고, 형편이 좋지 못하면 공소회장의 집을 이용했다. 신부가 상주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공소회장이 중심이 돼 이른바 공소예절이라 불리는 말씀 전례, 찬미 기도 등의 예식을 주관하며 신부의 빈자리를 채웠다.
박해기에 뿌리 내린 공소는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 체결로 종교 활동의 자유가 허락된 뒤로도 1960년대까지 증가하며 오랜 기간 신앙생활의 구심점이 됐다. 특히 상대적으로 교통의 발달이 더디고 신자가 많았던 내포지역에는 1960~70년대에 수백 곳에 공소가 설립돼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다.
하지만 성당 건립이 활성화되고 교통 여건이 좋아지면서 근래에는 급속히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교우촌을 기반으로 설립된 공소는 전통문화와 천주교 신앙이 결합한 독특한 형태의 문화를 낳았다. 대표적인 것이 한옥과 양옥의 양식이 혼합된 공소 강당, 전통 농경문화와 천주교 전례력이 결합한 독특한 형태의 농사력이나 세시풍속, 장례에서 보이는 연도 의식, 일 년에 두 차례 판공성사를 맞아 열리는 마을 잔치 등이다. 이는 종교유산이자 지역의 문화유산으로 공소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 내포지역에는 100여곳 이상의 공소가 남아 있으나 공소 기능이 살아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기능이 중지돼 공소 강당도 방치되거나 멸실 위험에 처한 경우도 많다. 오랜 세월 천주교 신앙과 전통문화가 습합돼 형성해온 소중한 문화유산도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당진·서산·아산·예산·홍성 등 5개 시·군을 대상으로 한 이번 가야산·삽교천 문화권 종합조사는 그간 지역의 주목받지 못했던 공소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기록하고, 문화유산적 측면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전수조사를 통해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가 높은 77곳의 교우촌 및 공소에 대해서는 현황조사표와 심화조사 보고서를 작성해 각 교우촌 및 공소의 형성과 변천, 생활상, 문화유산 등을 기록했다.
교우촌 및 공소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12명에 대해서는 교우촌에서의 삶과 생활상에 대한 구술채록을 실시해 종합조사 보고서로 엮어 내었다. 그리고 종합조사의 결과를 토대로 내포지역 천주교 공소의 의미와 가치를 일반에 널리 알리고자 ‘믿음으로 세우고 대를 이어 지켜온 내포천주교 신앙의 유산, 공소’ 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자는 누구나 쉽게 이용이 가능하도록 도내 주요 도서관 등에 배포하고, 충남역사문화연구원 홈페이지(www.cihc.or.kr)를 통해서도 열람이 가능하도록 서비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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