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그 푸른 빛의 바다여
(영하 50도의 밤을 건너 만난 천상의 춤)
우림 이상목
영하 45도, 체감온도 영하 50도.
옐로나이프의 겨울은 말 그대로 혹한이었다.
그러나 그 매서운 추위 속에도 밤하늘에는 누구도 쉽게 허락 받지 못하는 천상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8시.
얼음 호수 위에 카메라를 단단히 세우고, 어둠 속에서 기다림을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고된 기다림이 다섯 시간에 이르러 새벽 1시가 되었을 때였다.
저 멀리 어둠의 장막을 헤치고 초록빛 한 줄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거야!”
순간 심장이 먼저 셔터를 눌렀다.
손가락이 셔터를 찾는 순간, 오로라는 하늘을 가르며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마치 거대한 초록빛 천이 밤하늘에 펼쳐지고, 보이지 않는 신의 손길이 그것을 흔드는 듯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카메라가 얼어붙어 먹통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첫날 밤, 단 한 컷도 건지지 못한 채 나는 하늘에서 너울대며 줄을 타는 광대 같은 오로라를 바라보기만 했다.
새벽 6시가 되어서야 장비를 거두고 호텔로 돌아왔다.
허탈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이상한 설렘이 피어났다.
내일은 반드시 담아내리라.
둘째 날.
카메라를 해동하고 릴리즈를 다시 정비했다. 저녁을 든든히 먹고 오로라 예보를 확인하니 밤 8시부터 오로라가 춤을 춘다는 소식이었다.
어제의 장소를 지나 더 깊은 산속, 이름 모를 얼음 호수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오로라가 시작되었다.
아, 그 환상의 군무라니!
초록빛 물결이 하늘을 타고 흐르고, 한 줄기 빛이 다른 빛을 부르면 수천 개의 빛이 화답하듯 일제히 출렁였다.
추위도 잊은 채 연신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퍽!
릴리즈 케이블이 얼어 터져 나갔다.
카메라는 겨우 30분을 작동하고는 다시 멈췄다. 메모리마저 얼어붙어 화면에 화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급히 차 안으로 돌아왔다.
히터를 틀고 한 시간 동안 카메라를 녹였다.
그제야 화면에 희미하게 화상이 살아났고, 셔터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손가락 끝이 얼어붙었다.
감각이 사라졌다.
차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셔터를 누르고, 다시 얼어붙은 손을 녹이고….
그 일을 새벽 5시까지 반복했다.
그렇게 담아낸 사진은 고작 서른 컷.
허기진 배를 달래며 돌아오는 길, 몸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마음만은 이상하게 충만했다.
셋째 날, 마지막 밤.
나는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 오늘도 오로라가 떠 다오!
그리고 다시 얼음 호수로 달려갔다.
추위와 싸우며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 것일까?
밤 10시가 되자 레벨 4의 오로라가 밤하늘을 가득 채우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초록빛 장막이 하늘 끝에서 끝으로 번지고, 굽이치고, 솟구치며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늘이 바다가 되고, 별이 물고기가 되고, 나는 그 푸른빛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작은 배가 된 듯했다.
흔히 오로라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우리는 사흘 동안, 매일 밤 오로라를 만났다.
이날은 심기일전했다.
장비를 다시 점검하고, 촬영 계획을 세운 대로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마침내 백여 컷의 오로라를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었다.
돌아보면 그 사흘 동안 나를 버티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영하 50도의 추위도 아니었고,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음식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 긴 기다림의 8할은 단 하나,
‘오늘은 반드시 찍어내고야 말겠다’는 마음이었다.
사진은 기다림의 예술인지도 모른다.
얼어붙은 손끝으로 셔터를 누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기다리는 일.
수없이 실패하면서도 다시 카메라를 세우는 일.
그리고 마침내 한 장의 사진 속에 그 순간을 붙잡아 두는 일.
그래서일까.
그날의 추위가 그립다.
그 허기가 그립고, 그 긴 기다림이 그립다.
무엇보다 얼어붙은 밤하늘을 가르며 춤추던 그 초록빛 영혼이 그립다.
언젠가 다시 그곳에 서고 싶다.
다시 카메라를 세우고,
다시 긴 기다림을 시작하고,
다시 그 푸른빛의 파도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옐로나이프,
내 시원의 푸른 바다여!
그대가 다시 춤추는 밤,
나도 다시 그대의 빛을 따라
셔터를 누르리라.
첫댓글
사진으로만 봐도 가슴이 너울너울 춤 추는데
신의 선물을 두 눈으로 받았으니
참으로 축복입니다!!
감사합니다. 아직도 그날의 감동이 아른거리네요 캘거리 밤 하늘에도 요즘엔 자주 오로라가 출몰하니 축복이지요.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극한의 체험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탐구하는
북극의 고요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읽는 내내 숨이 멎을 듯했습니다.
언제 한번 그룹으로 도전해 보시지요. 감사합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무어라 형용할 길이 없습니다. 꼭 한 번 체험해 보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꼭 체험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