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9-03
야욕(野慾) 같이 찾아드는 탐욕(貪慾)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무거워서 겉치레와 같았던 겨울옷을 집어넣고, 얇아진 옷을 꺼내어 입을 때가 돌아왔다. 집과 들의 언저리에 곧게 서있는 나무들은 우리들과 사뭇 다르다. 겨울동안 자기 몸을 소진해가야만 스스로를 지탱하여 갈수 있기에 헐벗어갔던 나무들은, 땅으로부터 물과 양분을 받아 이끌어 올려 몸속에 지녀가며 몸을 뒤덮여갈 순과 잎을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어느 나무들은 잎보다 꽃을 먼저 우리 눈에 선사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무의 결실이 되어 이기적(利己的)인 사람들에게 주고 세월을 타고 제자리에서 흘러갈 것이다. 사람의 손에 집혀지지 않은 실과들은 잎과 함께 나무 밑에 떨어져 썩어져가는 거름이 되어 나무의 스스로의 유지에 보탬이 될 것이다. 이처럼 서있는 나무들은 다른 대상들을 위하여, 움직이지 않으나 능동적으로 살아가지만, 움직이는 동물(動物)들은 다른 것에 기대어 기생(寄生)해가며 살아가는 수동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용(利用)이라는 말은 과히 좋은 말은 아니다. 도구를 이용하던 사람들은 생물(生物)까지도 마른 도구처럼 비하(卑下)시켜가며 이용하는 과오를 범한다. 더 나아가서는 누구를 이용해먹는다는 극한말까지 공공연한 세상 속에서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다. 온 세상은 나에게 한껏 안겨다주는 만발의 봄이 될 터인데, 나는 세상에 무엇을 뿌려가며 살 것인가?
다음과 같은 선문답이 있다. “소승이 행자 때 스님과 문답 중에, 알고 저지른 도둑질이 나쁘냐? 아니면 모르고 하는 것이 나쁘냐?는 질의에 당연히 소승은 모르고 한 것이 나쁘다고 답을 했으나 그게 아니더군요. 해서 이 이치를 깨우치는데 3일 동안 밤낮으로 스님하고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알고한 도둑질은 언젠가는 참회할 씨앗이라도 있지만 모르고 한 도둑질은 그 잘못을 모르기에 영원히 참회를 못한다는 이치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탐진치(貪嗔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탐(貪)은 욕심을 내는 것이고, 진(嗔)은 화내는 것이며, 치(痴)는 어리석은 것이란다. 이런 것들이 사람의 큰 허물이란다. 그 도둑처럼 사람의 탐욕(貪慾)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사람들 사이에 큰 문제이다. 성서에서도 탐심(貪心)은 우상숭배다라고 하였다(골로새서 3:5下). 그러면서 그 말 앞에는 땅에 있는 몸의 지체에서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이 불끈불끈 솟아난다고 하였다(골로새서 3:5上). 두발로 걸어 다니는 우리들에게는 즐겨가며 빠져드는 탐닉(耽溺)이라는 말을 끌어다 쓰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욕심 중에 물욕(物慾)이 있다. 나는 “눈먼 돈”이라는 말을 종종 들을 때가 있다. 우리와 같은 사회시설은 재주만 있으면 눈이 멀어 떠돌아다니는 돈을 많이도 끌어다 쓸 수 있단다. 그것은 내가 말장난을 하자면 재주(才-)가 재주(財主)꾼으로 엉뚱하게 둔갑을 한 사람일 것이다.성서를 이야기할 때 물질적 부유함 또는 욕심을 가리킬 때 사용되던 말이 맘몬(Mammon)이다.누가복음서 16장 13절과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그 재물이 맘몬이라는 인격을 부여받은 것처럼 보인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누가복음 16:13).”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태복음 6:19-21).”그래서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방법으로 보통 사람들은 적선(積善)을 말한다. 또 교회에서는 헌금(獻金)을 이야기한다. 참 어려운 이야기인데 축적(蓄積)은 고여 있는 물과 같은 것인가 보다. 성서는 또 그런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이 그 좋아한다는 땅. 땅을 팔고 사는 속에서 한몫을 챙기려는 불로소득의 사람들에게 성서는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하나님의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寓居)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위기 25:23).” 돈은 돌고 도는 게 돈이란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한곳에 누적되어 쌓여있으면 고여 있는 물처럼 되어 사람을 썩게 만들 것이다. 교회에 가면 십일조헌금이라는 게 있다. 소득의 십분의 일을 교회에 헌금으로 내는 것인데, 교회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그 헌금을 모으는데 목적이 있기보다는 그 헌금으로 모아진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에 더 큰 주안점이 있다고 본다. 그 물음의 답도 성서는 이야기 한다.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 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명기 14:28-29).” 바로 빈약(貧弱)한 사람들에게 함께하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말로 사다새라는 펠리컨(pelican)이라는 주둥이의 부리가 길고 뾰족한 큰 새가 있다. 그 새는 부리 아래쪽의 턱 밑에 큰 주머니가 달려있는데, 그 주머니에 모유를 저장해 놓았다가 그것을 자기 새끼에게 준다. 그런데 겨울이 되어서 주변에 먹을 것이 없는 환경이 되어서 새끼가 병약하게 되었을 때에는 어미는 부리로 자기 가슴의 털을 다 뽑아내고 가슴살을 찍어서 새끼에게 먹이게 되고, 그러면서 자기는 새끼들을 위하여 죽어간단다. 그런 모습 속에서 펠리카니즘(Pelicanism)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는데, 곧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이타적(利他的)인 사랑이다.
공 동 체 이 야 기
온 새 미 로
살림교회가 새터공동체의 살림을 돕기 위하여 2009년 삼월 첫 일, 삼일절이면서 동시에 주일에 우리 곁에 또다시 왔다. 나는 그 예전에 어느 모임에서 농사를 일삼다시피 하시는, 함께 사시던 할아버지로부터 농사월력을 말하자면 4월 1일은 으래 감자 심는 날이라고 하셨던 말씀을 지금까지 잊지 않고 기억한다. 그러면서 그때쯤 감자를 심어왔는데, 6월 하지쯤에 캐는 감자로는 늦은 감이 없지 않아 보인다. 조금 더 날짜를 당겨 3월 중하순 경에 심는 것이 좋은듯하여 오늘 3월 1일에, 과히 넓은 면적이 아니기에, 밭에 그전에 있던 골을 따라 거름을 뿌리고, 삽과 괭이 등으로 흙을 둘러엎은 다음, 풀이나지 않게 하기위하여 검은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손으로 흙을 파 해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해본사람은 잘 알 일이고, 아니 옆에서 보기만하는 사람도 힘겨운 일이라는 것을 공감은 못하더라도 짐작 은 할 것이다.
시내에서 아버님이 감자 두 박스를 사서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 시내 진주문교회에서 3월 16일에 오셔서, 잘 만들어진 밭에서 한 골에 두 줄로 열을 맞추어 감자를 심었다. 감자를 다 심고 버려진 빈 박스에서 나는 다음의 글귀를 읽을 수 있었다. 그 감자박스의 이름이 “온새미로”라는 큰 글씨와 함께 그 말에 다음과 같이 토를 달았다.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김새 그대로 자연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 라는 뜻의 순수 우리말”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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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권희숙 채경일 주송례 진영택
김정화 박소웅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무래 박종만
박병민 진선미 박한솔 박진솔
* 여러 가지의 육신과 정신적 아픔 중에 있는 새터공동체 식구들의 건강한 몸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충전교회.추부제일교회.동산교회.향림원푸드뱅크.김기홍.정무래.최영애.라홍채.박종만.진영택.최성재.김정화.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3인).양오석.채윤기(박현실).공주원로원.세광교회.수영교회.장진성.보은교회(정민외8인).대전성남교회중등부(김영균외7인).살림교회(박상용외10인).대전충남지방통계청.향림원푸드뱅크.진명구.최선희.동춘교회4남선교회(정호숙).향림원푸드뱅크.금산주부클럽(4인).임영호.신건태.대전성남교회.동춘교회6여전도회.진주문교회여전도회(11인).대한적십자금산군추부봉사회(3인).대덕교회.금산군모란회(5인).주식회사EG(이광형).대전노회.대성교회여전도회(4인)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