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백두대간 32차(추풍령~우두령, 역산행)
산 행 일 : 2015. 05. 09.(토)
산행코스 : 우두령 ~ 여정봉 ~ 바람재 ~ 황악산 ~ 궤방령 ~ 가성산 ~ 눌의산 ~ 추풍령
(거리 22.7km)
산행참가 : 19명.
<산행코스> 이미 한번 걸었던 대간길이라 그런지 쉽고 편한 것을 찾는 분들의 목소리가 한층 톤을 높이고 더욱이나 황악산에서의 2015년 시산제를 위한 제물들까지 지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 추풍령에서 우두령으로 진행해야 하는 대간 남진길을 역진으로 진행하여 우두령에서 추풍령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우두령의 해발고도가 730m쯤이고 추풍령의 고도가 210m이니, 500m쯤을 올라갈 것인지 아니면 내려갈 것인지의 차이다. 특히나 이번 구간의 황악산에서 금년도 시산제를 예정하고 있어서, 배낭에 제수음식을 십시일반 지고 가야 하므로 오름길을 줄이자는 의견이 한층 힘을 얻었다. 대간 남진의 의미를 되새겨 정상적으로 추풍령 출발을 주장했지만, 내심 쉽고 편한 게 손을 뻗으면 잡히는데야.., 모른척하고 내 주장을 접고서 에둘러 '회원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이란 거창한 핑계를 곁들여 편한 역진 진행을 선택했다.
양재를 출발한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김천 부근에서 알바를 하는 바람에 예정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우두령에 도착하고, 이내 버스에 불이 밝혀지며 부산한 소리에 눈을 뜨고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03:59 산행 준비를 마치고 서늘한 바깥공기에 몸을 맡기니, 예전에 없던 에코브리지가 시야에 들어오고, 또다른 대간꾼들을 실어 온 듯한 버스가 건너편에 주차되어 있다.
10여 년 전 어느 추운 겨울날, 대간 북진길에 산해의 종착지인 우두령(당시는 질매재라 불렀다)에 도착하여 바람을 피해 라면을 끓여 먹던 장소로 기억되는 곳에는 철망 울타리가 쳐져 있고, 그 앞에서 백두들은 긴~ 산행을 위한 몸풀기를 하고 있다.
04:02 도로를 따라 에코브리지 아래를 통과하여 영동군 쪽으로 이동하니, 예전에 없던 흰 소(牛) 상(像)이 세워져 있고 '백두대간 우두령'이라 새겨져 있다. <우두령(牛頭嶺, 720m)>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과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을 잇는 901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로,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하여 우두령이라 한다. 우두령은 질매재라고도 불리는데, 질매라는 이름은 이 고개의 생김새가 마치 소(牛)의 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 때 안장처럼 얹는 길마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질매는 길마의 이 고장 사투리다. 이 말이 한자화하여 우두령이라고 표기된 것으로 보이는데, 지도에는 두 이름이 별개로 표기되어 있다.
04:03 황소상 건너편의 삼성산 방향 들머리로 들어서며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한다.
04:23 절 정비된 등로를 따라 능선 위로 올라서니 나무벤치도 설치되어 있다.
04:30 첫번째 이정표가 있는 870봉쯤에 올라서니, 우두령에서 1.2km 왔고, 바람재가 3.6km 남았단다.
04:45 별다른 특징이 없는 봉우리를 두어 개 지나는데, 등로 주변의 잡목들은 이제서야 새싹을 틔우고 있다. 아마도 이곳의 고도가 높아서 나무들도 겨울잠에서 늦게 께어나는 가 보다!
04:55 잠시의 가파른 오름길을 치고 오르니, 삼성산 성상에 올라선다. <삼성산(三聖山, 985m)> 경북 김천시 대항면 주례리와 충북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영동군 쪽으로 경희대 연습림 조림지가 있다. 삼성산이란 이름은 산의 동북쪽 기슭에 있는 삼성암(三聖庵)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유래에 관한 또 다른 설은, 산의 동쪽으로 3개의 산이 조망된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예기도 있는데, 정상 주변은 잡목으로 둘러져 있어서 확인할 길은 없다.
05:18 삼성산을 뒤로하고, 이제 막 새 생명들이 움트기 시작하는 대지를 밟으며 여정봉을 향한다.
05:24 김천시에서 인적이 드문 산임에도 불구하고 등산로와 이정표를 잘 정비해 놓았고, 군데군데 나무벤치도 설치해 놓았다.
앞쪽으로 가야 할 형제봉이 새벽 여명에 모습을 드러낸다.
05:28 별다른 특징 없는 봉우리에 올라서니,이정목에 '여정봉(1,030m)'이라 표시되어 있다.
05:35 여정봉을 내려서니, 1970년대 주한미군 통신기지로 쓰이다가 폐쇄되어 방치되었던 시설들을 철거하고, 복원사업이 진행 중인 곳(바람봉)을 막아 놓은 울타리가 앞을 가로막는다. 백두대간 복원사업이라 하니 막아 놓은 직진의 능선길을 두고 좌측 우회길로 들어선다. 시산제 거행을 예정한 황악산도 보인다.
05:38 백두대간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인 바람봉을 좌회하여 바람재로 내려서는 백두들.
05:39 조망이 좋을 것 같은 쉼터에 도착하여, 내려다본 우측 대항면 주례리 방향의 골짜기.
05:43 바람재 건너편으로 가야 할 황악산을 조망하며 바람재로 내려선다.
05:51 널찍한 공터와 쉼터가 있는 바람재에 도착한다. 바람에 날려 흔들거리는 바람재 이정석에서 백두 여전사들과 회장님이 대표로 인증을 한다.
<바람재>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주례리와,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궁촌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예전에는 성황당이 있어서 성황당고개라고 불리기도 했다. 바람재는 두 봉우리 사이 고도가 낮은 안부에 있는 고개로, 북서~남동 방향으로 열려있는 폭 약 500m의 좁은 통로 모양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편서풍이나 북서 계절풍이 통과하면서 풍속이 매우 빨라지는 곳이다. 이 같은 지형 조건으로 풍속이 빠른 바람이 부는 곳이어서 바람재 또는 풍령(風嶺)이라 하였다. 바람재 북동쪽에는 황악산(1,111.4m)과 형제봉이 솟아 있고, 남서쪽으로는 높이 약 1,030m에 이르는 여정봉과 삼성산이 이어진다. 바람재는 고갯마루의 높이가 약 810m로, 1,000m가 넘는 높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상대적으로 고도가 낮은 안부에 자리 잡고 있다.
바람재는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새로운 무전기의 교신 거리와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종종 찾는 곳이라 한다. 50W 정도의 무전기로도 일본과 교신이 될 만큼 전파가 잘 터지는 곳이 바람재라 한다. 그런 연유로 과거 주한미군 통신기지가 자리하기도 했다. 좁은 바람재 정상까지 길을 낸 것도 그들이었다 한다.
바람재에서 싱그러운 오월의 바람을 맞으며 쉼을 하는 백두들.
06:10 바람재를 뒤로하고, 신선봉 능선 갈림길을 향해 가파른 오름길을 이어간다.
06:18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신선봉 능선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는 신선봉(936m)과 망월봉(580m)을 지나 능여계곡으로 내려서면 직지사에 닿게 되는데, 직지사가 있는 운수리(雲水里)는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이 언제나 구름이 머물고 골짜기에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06:32 신선봉 갈림길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고 서둘러 형제봉을 향하는데, 늘 후미에서 회원들을 챙기는 만식형과 보성씨를 만난다.
06:36 형제봉의 아우봉쯤에 도착하여 돌아본 석교산 방향.
이제 막 새싹을 틔우는 숲길을 잠시 더 진행하면,
06:37 형제봉의 형(兄)봉쯤에 도착한다.
<형제봉(兄弟峰, 1,020m)>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있어서 형제봉이라 불리는 듯하다.
가야 할 황악산 방향 조망.
다음 구간 가게 될 석교산 방향 조망.
06:49 황악산 오름길에서 돌아본 형제봉 방향. 형제봉과 여정봉 뒤편으로 다음 구간 가게 될 대간길의 봉우리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06:50 황악산을 향하는 백두들.
06:55 황악산 정상에 도착한다.
<황악산(黃岳山, 1,111m)> 김천시 대항면과 영동군 매곡면, 상촌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예로 부터 학이 많이 찾아들어 황학산(黃鶴山)이라고도 불린다. 김천 시내에서 서쪽으로 12km쯤 떨어진 곳에 있으며,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운수봉, 백운봉, 형제봉, 신선봉 등이 양쪽으로 말발굽처럼 이어져 있다. 능선이 완만하고 산괴(山塊)가 커서 웅장한 느낌을 준다. 산세는 완만해서 암봉이나 절벽이 없고, 수목으로 울창하여 해발 1,100m가 넘는 산답게 동쪽으로 능여계곡 등의 깊은 골짜기들 마다 비경을 감추고 있는 산이다. 산 전체에 수목이 울창하고, 특히 동쪽에 있는 직지사(直指寺)로 향하여 흐르는 계곡은 매우 경관이 좋다. 직지사 서쪽 200m 지점에 있는 천룡대로부터 시작되는 능여계곡은 봄에는 산목련.진달래, 가을에는 단풍으로 메워지며, 직지사에서 1km 지점에는 옛날 사명대사가 즐겨 찾았다는 사명폭포가 있다. 여기에서 갈라지는 내원계곡과 운수계곡에는 작은 규모의 폭포들이 많아 계곡미를 더하여 준다. 산 동쪽은 직지사를 가운데 두고, 능여암, 운수암, 내원암 등의 암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삼도봉(1,177m), 대덕산(1.290m)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연봉을 이룬다.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편마암으로 되어 있어 높은 산을 형성하게 되었다. 산의 북쪽에는 괘방령, 남쪽에는 우두령이 있어서 김천시와 영동군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되고 있다.
황악산의 '황(黃)'자는 靑(청), 赤(적), 白(백), 黑(흑)의 다섯 방위의 색 가운데 중앙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황악산 아래 직지사는 동국제일가람으로 불리었다고 하니, 직지사가 나라의 중심부에 있다는 뜻이다. 나라의 중심 직지사의 뒷산 이름에 황(중앙) 자가 포함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岳자는? 사실 황악산은 전혀 岳스럽지 않다. 부드러운 육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岳) 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온갖 추측이 난무하다. 그 가운데 추풍령 이후 처음으로 우뚝 솟은 산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대간은 추풍령에서 키를 크게 낮춘다. 전통지리학자 어느 분은 이러한 모습을 수도꼭지에 호스를 꽂아 물을 멀리 보내고자 할 때, 호스를 손가락으로 누르는 형국이라고 한다. 즉 추풍령은 龍(산줄기)을 멀리 뻗도록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곳이며, 추풍령에서 터져 나온 기(氣)가 뻗어 가장 먼저 웅장한 자태를 보이고 있는 곳이 여기 직지사 뒷산이기 때문에, 악(岳) 자가 포함된 황악산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펌)
07:00 서둘러 황악산 정상 인증을 마치고,
07:08 정상 바로 아래 널찍한 평지의 가장자리에 있는 전망바위에서, 2015년도 백두산우회 시산제를 준비한다. 십시일반 지고 온 제수 음식을 꺼내어, 정성이 가득 담긴 시산제 준비를 마치고, 2015년도 백두산우회 시산제를 거행한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철쭉으로 주변을 장식한 가운데, 올 한 해도 안전한 산행을 기원드린다. 전망바위에서 내려다본 능여계곡 조망. 신선봉 능선 조망. 김천의 진산인 황악산 정상까지 와서 올리는 시산제에, 신령께서도 우리의 정성 어린 기원을 감압하실 것으로 믿으며 시산제를 마무리하고, 음복례를 진행한다. 하늘도 감동하셨는지, 검은 구름 사이로 한줄기 서광을 내려 비춘다.
07:58 쌀쌀한 날씨에 서둘러 음복례까지 마감하고, 2015년도 시산제에 참가한 면면들을 신령님께 각인시킨다.
08:00 시산제를 마무리하고 추풍령을 향한 대간산행에 나선다.
08:05 앞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곤천산(1,030m)으로 이어지는 능선 분기봉이다. 대간길은 봉우리로 오르지 않고 우측 사면길로 이어진다. 곤천산 분기봉을 우회하여 내려서는 백두들.
08:08 우측으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바라본 삼성산 방향.
지나온 황악산 방향.
황악산에서 바람재 방향으로 이어진 대간능선 조망.
괘방령을 향하는 능선 너머로, 김천시내쯤이 어렴풋이 조망된다.
08:15 앞쪽이 백운봉쯤으로 짐작되는데 등로는 좌측으로 우회하여 이어진다.
<백운봉(白雲峰, 770m)> 경북 김천시 대항면과 충북 영동군 매곡면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황악산의 동봉(東峰)이자 직지사 백련암의 배후에 자리한다. 황악산의 한 봉우리로 경승지인 능여계곡이 가장 잘 조망되는 위치에 있다. 이곳에서의 '백운'은 일반명사에 가까운 고유명사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08:19 백운봉으로 짐작되는 봉우리를 우회하여 내려서는 백두들.
08:27 직지사 갈림길을 지난다. <직지사(直指寺)> 직지사는 경북 김천시 대항면의 황악산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 불교 1천6백 년 역사와 그 세월을 같이하는 고찰이다.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418) 아도화상에 의하여 도리사와 함께 개창되었다. 그 사명(寺名)을 직지(直指)라 한 것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 하며, 또 일설에는 절을 창건한 아도화상이 일선군(지금의 선산) 냉산(冷山)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에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하였다 하여, 직시사(直指寺)라 이름했다는 설도 있다. 또는 고려의 능여화상이 직지사를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지(測地) 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08:47 운수봉(천덕산) 직전 안부 쉼터에서 쉼을 하는 백두들. 이곳에도 우측 직지사로 이어지는 능선 갈림길이 있다.
08:53 여유로운 쉼을 뒤로하고 잠시 올라서니 운수봉에 도착하는데, 지도에는 천덕산이라 표시된 봉우리다. 운수봉 이정표. <운수봉(雲水峰, 680m)> 김천시 대항면과 영동군 매곡면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다. 직지사의 부속 암자인 운수암의 북쪽 봉우리다. 직지사가 있는 능여계곡의 행정 구역이 대항면 운수리이므로 마을 이름과 관련되어 있어 보이며, 황악산 자락에 딸려있는 조그만 봉우리인데 각종 이름에 차용된 것이 의아스럽다. 또한 산 이름에 '물 수(水)'자를 쓰는 특이한 곳이므로, 운수봉(雲水峰)은 언제나 구름이 머물고 골짜기에 물이 흐르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운수봉은 천덕산(千德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임진왜란 때 정병 양성을 위해 성을 쌓은 곳으로, 피난 온 천여 명의 주민이 이 산의 덕을 입었다 하여 천덕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예전에는 황악산을 천덕산이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운수봉 정상석은 설치된지 오래되었는지, 아랫부분이 훤히 드러나 있다.
09:02 잘 정비된 통나무 계단길을 따라 안부로 내려섰다가 올라서면,
09:10 '여시굴'이라는 안내판이 나오고, 안내판 옆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여시굴이 있다. 여우가 이렇게 바위를 뚫고 굴을 팠을 리는 없고, 이곳은 금광 개발을 위해 굴착한 곳이라고 한다.
09:15 잠시 더 편안한 능선길을 따라가면,
09:23 여시골산 정상에 도착한다. <여시골산(620m)>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 윗어둔이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약 1.7㎞, 항천리 묘내 마을에서 서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백두대간 줄기의 봉우리다. 김천시와 영동군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 능선은 여시골산 일대를 중심으로 추풍령과 괘방령이 있는 북쪽 지역에서는 700~800m 이하의 비교적 낮은 능선을 이루고, 여시골산 남쪽으로 황악산, 형제봉, 삼도봉을 지나는 지역에서는 1,000m 이상의 고봉과 800~1.000m 높이의 능선을 이룬다. 옛부터 여우가 많이 살아서 여시골이라 불린 골짜기가 있는 산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짐작된다. 여시는 여우의 경상도 사투리다.
09:49 여시골산에서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서니 임도가 나오고, 우측 임도를 따라 내려서니, 앞쪽으로 가야 할 가성산이 우람하게 웅크리고 있다.
09:51 괘방령 건너편으로 가야 할 가성산이 위압감을 더한다. 514번 지방도가 내려다 보이는 괘방령 날머리에 도착한다. <괘방령(掛榜嶺)> 충북 영동군 매곡면과 경북 김천시 대항면을 잇는 977번 지방도가 지나는 이 고갯길은, 지금이야 한가로운 길이지만 한때는 꽤나 시끌벅적한 고개였다고 한다. 관로(官路)였던 추풍령과 달리 상로(商路)로 쓰였는데, 특히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모두들 추풍령을 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추풍낙엽(秋風落葉)을 연상시키는 추풍령보다는 급제자들의 이름을 거는 괘방(掛榜)이라는 이름에 집착했을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런 추측도 후대의 의미 부여이기가 쉽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괘방(卦方)으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지명 표기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걸 괘(괘)' 자 掛榜이든 '점괘 괘(卦)' 자 卦方이든 한글 표기는 '괘방'이어야 하는데, 궤방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오기로 보인다.
10:00 괘방령 우측 김천 방향.
좌측 영동 방향. 괘방령 좌측 편에는 '괘방령 산장'이 있고, 산장 앞에는 정자와 돌탑이 있는 쉼터가 있다. 괘방령 안내판.
10:20 쉼터에서 잠시 쉼을 하며 후미를 기다려, 괘방령 인증을 남긴다.
10:21 시산제를 지낸 후 농주도 한잔 걸친 상태라 그런지, 노곤해지며 가성산 들머리로 들어서는 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牛)의 기분이랄까!
10:37 괘방령에서 서서히 고도를 높이던 대간길은, 418봉에 올라 직좌틀하여 안부로 내려선다.
10:54 좌측은 공수리 오리골로, 우측은 김천시 봉산면 신암리로 이어지는 옛고개를 지난다.
11:04 가파른 된비탈을 올라서면 능선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 오름길 능선을 따른다.
11:24 우측으로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 좌틀하여 진행한다.
11:30 낮은 안부를 지나 다시 오름길을 잠시 오르면, 오래된 묘지를 지나게 된다.
11:50 가성산이 저기 일까! 급경사의 된비탈을 한번 더 치고 오르면, 능선 분기봉에 오르게 된다.
12:17 특징 없는 능선길이 끝없이 이어지더니, 우측으로 조망이 트인 곳이 나타나며 김천시 방향이 조망된다. <김천시(金泉市)> 백두 대간의 동남부에 위치한 김천은 당초 산간 부락에 불과했으나, 조선초 역마제도가 생긴 후 교역의 요충지로 탈바꿈하였다. 삼한시대에는 감문국, 주조마국, 문무국, 배산국, 어모국이 감천 유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다. 신라 조분왕 때, 장군 석우로가 감문국을 정벌하고 감문군을 설치했으며, 조선조에 김산군으로 이름을 바꿨다. 지금의 김천은 지난 1995년 과거의 금릉군과 통합된 후, 시로 운영되고 있다. 금릉이라는 지명은 중국 동진의 수도로서 경관이 빼어 났다고 알려진 금릉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지며, 김천은 옛날 이 고장에 금(金)이 나는 샘이 있어 김천이라는 이름이 생겼는데, 샘에서 나는 금은 나라에서 모두 가져가 버려 부역이 두려운 이곳 사람들이 샘을 메워버렸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김천을 일컬어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이라고 한다. 삼산(三山)은 황악산, 금오산, 대덕산이며, 이수(二水)는 감천과 직지천을 가리킨다. 김천에 있는 수도산은 별로 중요한 산으로 치지 않았던 것 같다. 김천은 삼국시대부터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가 되어, 많은 사람이 왕래하고 문화가 교류되어 내륙장이 발달하면서 술과 음식도 발달하게 되었다. 김천을 대표하는 술은 과하주가 유명하며, 물이 좋아 맛도 좋다고 명성이 높다. 과하주란 무더운 여름을 탈없이 날 수 있는 술이라는 뜻에서 얻은 이름이다. 조선 중기부터 양반가에서 많이 마시게 된 술인데, 경북 김천과 전주의 과하주가 유명하다. 소주는 독하고 약주는 알코올 도수가 낮아서 변질되기 쉬우므로 만들어진 술이지만, 김천의 과하주는 전주의 과하주와는 달리 소주를 넣지 않고 금천 샘물만으로 만든다고 한다.
12:19 긴 산행과 더워지는 날씨에 힘들어하는 영식형.
12:22 '저 봉우리일까?'를 몇 차례 되뇌는 사이에, 어렵게 가성산 정상에 도착한다. <가성산(枷城山, 716m)> 경북 김천시 봉산면 신앙리와 충북 영동군 매곡면 공수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독립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동북쪽 경사면에는 김천시립공원묘원이 있는데 규모가 꽤 크다. 동쪽 아래로 고속도로와 철도가 경쾌하게 뻗어 있다. 동쪽의 가성마을과 외가성마을에서 유래하는 봉우리로, '가성(枷城)'은 화령권의 '작점'이나 '사기점'처럼 소규모의 진지가 있었던 곳을 일컫는 지명이다.
가야 할 눌의산 방향의 대간 능선.
북서쪽 영동군 매곡면 방향. 황악산에서 지낸 시산제 제수 음식으로 기력을 보충해 보는 백두들.
12:44 가성산에서의 긴 쉼을 마무리하고, 가성산 인증을 남긴다.
12:51 오랜 쉼으로 기력을 보충하니, 장군봉을 향한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 보인다.
13:18 편안한 능선길에 이은 안부를 지나며, 다시금 급경사 오름길을 치고 오르니 장군봉에 도착한다. <장군봉(長君峰, 625m)> 이곳 장군봉은 무사 장군(將軍)이 아니라, 장가 성씨의 총각이라는 뜻의 장군(長君)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형적으로 부드러운 육산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13:48 장군봉을 내려서며 잠시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지더니, 다시 오름길이 이어지며 무명봉에 올라서게 된다.
14:09 바위들이 듬성듬성 나뒹구는 능선길을 오르면, 눌의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역시 대간 산행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며 힘들게 눌의산 정상에 도착하는 영식형! 앞서간 백두들은 이미 추풍령을 향했는지, 눌의산 정상에는 자그마한 정상석만이 홀로 남겨져 있다. <눌의산(訥誼山, 744m)> 충청북도 영동군의 추풍령면과 매곡면, 경북 김천시 봉산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눌의산은 조선 시대에 걸쳐 '눌이(訥伊)'라고 표기되어 왔다. 『신증 동국여지승람』(황간)에 '눌이항산봉수(訥伊項山烽燧)는 고을 동쪽 20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경상도 금산군 고성산에 호응하고, 서쪽으로는 소이산에 호응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도 눌의산이 기록되어 있고, 다른 이름으로 눌이항산, 누리산, 느릅산, 선개산이 기록되어 있다. 눌의산은 백두 대간 능선에 있는 산이지만 그리 알려진 산은 아니다. 추풍령 뒤쪽에 자리 잡은 산으로 등산인들의 발길이 뜸하여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산의 이름인 '눌의(訥誼)'는 '말 더듬을 눌(訥)' 자와, '올을 의(誼)' 자를 쓰는데, 한자어로 '정의가 눌하다 혹은 더디다'는 뜻이니, 추풍령 령(嶺) 마루를 사이하는 충청도와 경상도의 양쪽 인정의 교류가 뜸하다는 것을 뜻한다. '말씨는 친절해도 더듬거린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단어이다. 정상에 봉수대가 있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주변 조망이 뛰어나다. 또한 옛날에는 요긴한 거점 구실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나라에 긴급을 다투거나 외적이 침범했을 때, 활활 타는 봉화를 피워 올려 제 몫의 역할을 다했을 눌의산의 늠름함이 살아있는 듯하다.
북쪽 추풍령면 방향 조망.
14:17 남겨진 후미들이 함께 눌의산 인증을 마치고,
14:46 추풍령 방향으로 하산길을 시작한다.
15:10 가파른 능선을 한참동안 내려서고서야, 완만한 능선길이 시작된다.
15:13 앞쪽으로 마암산이 조망된다.
15:15 수레길을 만나 좌틀하여 진행하면,
15:17 좌측으로 마암산에서 용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뚜렷이 조망되고, 뒤쪽으로는 잠시 전에 내려온 눌의산이 우람하게 버티고 있다.
15:20 앞쪽으로 경부고속도로가 보이고, 대간길은 경부고속도로 지하통로로 이어진다. 경부고속도로를 지하통로로 통과한다.
15:22 지하통로를 나와 좌틀하여 잠시 진행하면,
15:25 4번 국도 아래를 지나, 경부선 철도를 통과하는 대평지하차도가 나온다. 차량통행이 뜸한 대평지하차도를 통과한다. 대평지하차도 내 이정표.
15:32 대평지하도를 나와, 대평삼거리에서 우틀하여 추풍령 노래비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15:34 추풍령 도착. <추풍령(秋風嶺, 221.3m)>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과 경북 김천시 봉산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다. 해발 고도는 221m이고, 소백과 노령의 분기점으로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며, 예로부터 영남 지방과 중부 지방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지금도 경부선 철도의 추풍령역이 있고, 4번 국도가 통하며 경부고 속도로의 중간지점으로 추풍령 휴게소가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군사적 요충이 되어 의병장 장지현이 의병 2,000명을 이끌고 왜군 2만 명을 맞아 분전 끝에 물리쳤고(1차 전투), 다시 밀려온 4만 명의 왜군에게 패하여 장렬히 전사한 곳이다. 추풍령은 백두 대간의 긴 허리 부분의 고개이다. 그러나 추풍령은 노래 말처럼 그렇게 높은 고개가 아니다, 물론 예전의 고개는 험준하고 높은 고개였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겠지만, 지금의 추풍령은 그렇게 험준하지가 않다.
<추풍령 삼거리> 이곳은 본래 죽령, 조령과 함께 영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잇는 중요한 고갯길이었다. 일반적으로 추풍령은 영남과 한양을 잇는 고갯길 중에 가장 작은 고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인구 변동에 따른 큰 변화가 시작된다. 조선 초기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경상도 각 읍의 인구수를 성주-경주-김해-안동-진주-밀양-선산-예천-창원이라 기록했으나, 18세기 후반의 자료인 '호구총수'의 기록에 따르면 경주-상주-진주 대구-성주-밀양-안동-선산-고성-의령의 순으로 인구 서열이 변한다. 전반적으로 교통이 편리한 읍의 인구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의 교통 체제가 초기에는 죽령-계립령 선에서 서남진하여 추풍령으로 이동한다. 이는 조령의 높이가 약 400m인데 반하여, 우회로이긴 하지만 추풍령은 200m여서 수레교통이 가능하고, 충청도의 삼남대로와 연결된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북서 내륙의 교통이 쇠하고, 대구와 김천이 상업도시로 발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대한제국 말엽에 경부선 철도가 가설되고, 이후 4번 국도와 경부고속도가가 지나가는 명실상부한 나라의 고갯길이 되었다.
고개를 구분하여 말할 때, 주로 령(嶺), 현(峴), 치(峙)로 구분한다. 엄밀하게 나누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으나, 대체적으로 '령'은 큰 고개를 부를 때 사용하고, '현'은 '령'보다 작고, '치'는 '현'보다 더 작은 고개를 의미할 때 사용한다. 헌데 추풍령에는 '령(嶺)' 자가 붙어 있으니 꽤 큰 고개이다. 그렇게 고개는 크면서 고도는 낮은 탓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금강과 낙동강을 가르는 백두대간 마루금 상에 있는 추풍령에는 사람 사는 분주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정감어린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도착한 백두들이 후미를 기다리며 쉬고 있는 추풍령 삼거리 옆 쉼터의 정자.
16:2 김천에 있는 목감탕으로 이동하여 땀을 닦고,
15:01 석쇠불고기로 유명한 김천시 감문면의 배시내로 이동하여, 나름 유명하다는 석쇠불고기 전문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겸하여, 산행 뒤풀이를 한다. 석쇠불고기! 지역에서는 나름 괜찮은 먹거리로 통하는 듯한데, 긴 산행과 늦은 점심으로 뭘 먹어도 맛있었겠지만, 기대보다는 훨씬 미흡한 듯하다.
싸늘한 날씨에도 2015년 시산제를 무사히 마치고, 고도차가 제법 있는 대간길을 무탈하게 완주하여, 다행스럽고 감사한다.^^
|
첫댓글 후반부 괘방령서 추풍령은 시산제 여파로 정말 힘들었어요. 이 구간서 회장님의 신상에 변화가 감지된걸로 기억하는데 사진상은 정말 좋으신데요. 회원님들 모두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