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계족산, 오산 (전남 구례군) 산 행 일 : 2018. 03. 24.(토) 산행코스 : 간전농공단지 ~ 중상봉 ~ 계족산(702m) ~ 광대머리바위 ~ 국시봉 ~ 천왕봉 ~ 둥주리봉(둥지리봉) ~ 자래봉 ~ 오산(542m) ~ 사성암 ~ 죽연마을 (19.6km, 10시간) 산행참가 : 19백두.
<산행지도>
보통 넷째 주 토욜 산행은 월말에 가게 되는데, 금년 삼월에는 토욜이 5번 있어서, 네째주 산행에서 진해 장복산의 진달래를 보기에는 조금 이르다는 느낌 때문에 살짝 망설이고 있었다. 신낙남정맥의 곁가지인 굴암산에서 옥녀봉과 금병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먼저 가기로 결정하려는 찰나, 창병씨와 통화를 하게 되어 '산수유축제' 보러 가자는 이야기에, 사성암이 있는 오산에서 계족산 능선 종주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창병씨로부터 지도를 받아서 산행기를 검색해 보니, 한 번에 종주를 한 산꾼들은 많지 않고, 보통 세 번 정도의 당일 산행을 하는 곳이었다. 쉽지 않은 산행이 예상되었지만, 총거리가 20킬로 정도라서 크게 우려는 하지 않고, 결행을 결정했다.
미세먼지 경보 때문인지 늦은 밤에 집을 나서려는 데도, 마스크를 가져가라고 성화다. 산책도 아닌 산행길은 숨이 턱에 차는 경우가 많은데, 마스크를 끼고서 어떻게 숨을 쉬냐며 뿌리치고 대문을 나섰다. 동안 날씨 걱정은 않았는데, 양재에서 버스에 오르며 갑자기 미세먼지가 걱정이 되었다. 그게 미세먼지가 코로 들어가서의 걱정이 아니라, 미세먼지 때문에 조망을 즐길 수 없게 될까 봐 걱정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하루 종일 미세먼지로, 제대로 된 조망을 놓친 게 여간 아쉽지 않았다.
양재에서 버스에 오르니 기사분이 바뀌었다. 그런데 산행지가 구례라고 하니, 구례가 고향이라며 산행 들머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단다. 얼씨구나, 잠이나 푹 자야지 하며 잠을 청하는데, 버스가 취한 듯 비틀거리는 느낌에 잠에서 깨어, 말도 걸고, 소리도 내고, 휴게소에 들르자고 조르기도 하며 구례 산행 들머리 몇백 미터 전방 도로에 도착했고, 들락날락하는 분들의 문 여닫는 소리에 그나마 잠시의 쪽잠도 포기하고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버스로 산행 들머리인 '간전농공단지 계족산 등산로 입구'로 이동하여, 계족산 오산 종주산행을 시작한다.
등산로 입구에 세워진 계족산 등산 안내도. 산행 들머리에 서 있는 이정표에는, 계족산 정상까지 거리가 3.3km로 표시되어 있다.
들머리에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 농로를 따라 오르는데, 주변 밭에는 매화나무가 매화꽃을 달고 있다. 지금은 밤이라 이제 막 피어나는 봄을 확인할 수 없지만, 밝아지면 봄의 전령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걸음을 이어간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 산길로 접어드니,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진다.
병풍바위 삼거리를 지난다. 병풍바위는 동쪽 해평마을 쪽에서 보면, 바위 절벽이 병풍을 펼쳐 놓은 듯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정목의 중평마을 방향 등로는 병풍바위 아래로 이어진다.
계족산 주능선에 올라서니, 화정갈림길 이정목이 나온다. 우측 능선길이 화정마을로 이어지는 듯하고, 계족산은 좌틀하여 올라간다.
주능선 등로에 접어드니 다소간 경사는 완만해지고, 중상봉을 향한 호젓한 능선 오름길이 이어진다.
육산 오름길에 암릉 구간도 몇 차례 지난다.
중평마을 갈림길이 있는 중상봉(495m)에 도착한다. 주변이 나무로 둘러져 있어서, 밝은 낮이었어도 별다른 조망은 없을 듯하다.
등로 우측으로 섬진강 건너편 마산면 방향의 불빛이 시야에 들어온다.
잘 단장된 광산 김씨 묘가 있는 522봉(화정봉)을 지나면,
우측으로 화정마을 방향 갈림길이 있는 화정재를 지나게 된다.
등로 좌측에 전망이 좋을 듯한 바위가 보이지만, 어둠 속이라 그냥 지나친다.
고도가 높아지며 밤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느껴지는지, 계족산 정상 직전에 선두팀들이 후미를 기다리며 쉼을 하고 있다.
이동통신중계탑과 산불감시카메라가 있는 계족산 정상에 도착한다.
<계족산(鷄足山, 703m)> 전남 구례군 문척면과 간전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서쪽 사면에서 금정천이 발원해 북류하다가 섬진강에 합류한다. 『봉성읍지』에 "계족산(鷄足山)은 현의 동쪽 20리에 있다."라고 하여 그 이전부터 현재의 지명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봉성지』에 "뒤에 과봉(窠峯)이 있고, 오른쪽에 명곡봉(鳴谷峯)이 있다. 위에 있는 석벽의 모습이 닭 벼슬과 같다. 좌우로 나뉜 줄기가 닭의 발과 같은 고로 이름이 생겨났다."라고 하였다. 천 길 바위 절벽을 품은 구례 명산으로, 섬진강변의 계족산은 지리산과 광양 백운산 사이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아기자기한 암릉과 멋들어진 전망바위들, 그리고 걷기 편한 길과, 흔히 볼 수 있는 쭉쭉 뻗은 낙엽송과 적송이 뱉어내는 숲의 향기가 매혹적이다. 게다가 큰 산들과 강이 주변에 두루 펼쳐져 있으니, 이 작은 산에서 산행하는 것만으로도 대자연의 웅대한 힘을 크게 느낄 수 있다 한다.
계족산 정상에서 북쪽 방향으로 구례읍과 마산면, 토지면 방향 조망이 좋을 듯한데, 아직은 어둠이 짙게 드리우고 있어서 가로등 불빛만이 시야에 들어온다.
먼저 도착한 선두 그룹은 볼 게 없다며 길을 떠나고, 후미들이 도착하여 계족산 인증을 남긴다.
계족산 정상을 뒤로하고, 급경사를 따라 내려서니,
커다란 나무가 있는 안부를 지나게 된다.
730봉 오름길에 좌측으로, 호남정맥 능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호남정맥 도솔봉은 2010. 5. 8. 일자 산행에서 올랐었다.
730봉을 오르며, 돌아본 계족산 모습.
730m, 계족산 상봉에 올라선다. 등로는 정상 우측으로 비껴 지나가지만, 정상에 삼각점이 있고, 조망도 좋을 것 같아 정상으로 오른다.
730봉(상봉) 정상부 전경.
남쪽 간전면 효곡리 방향 조망.
가야 할 능선도 대충 가늠된다.
730봉에서 조망을 담는 사이에, 후미들이 다음 봉우리를 오르고 있다.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으니, 앞쪽으로 광대바위가 나온다. 직접 오르기는 쉽지 않을 듯하고, 우측으로 돌아서 오르면 가능할 듯도 하다.
좌측은 깎아지른 절벽이라 우측 사면으로 등로가 이어진다.
돌아본 암봉.
좌측 효곡리 방향으로, 호남정맥 똬리봉에서 북동쪽 밥봉 방향으로 이어진 능선이 가늠된다.
광대바위에서 조망을 즐기는 백두들이 내려다 보인다.
이쪽 보고 포즈~~
앞쪽 봉우리 너머로 천황봉으로 이어진 가야 할 능선이 가늠된다. 이렇게 잘 보아 두었는데, 앞쪽 암봉에서 직진방향으로 알바 길에 접어들었다.
효곡제 방향.
바위를 내려오니, 이곳이 광대바위라는 이정목이 있다.
앞쪽 암봉 너머로 천황재도 뚜렷이 가늠되고,
우측으로 중산리계곡 건너로 오늘 산행에서 최고 난이도를 자랑할 둥주리봉(우측)도 조망된다.
우후방으로는 지나온 730봉(상봉)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진 지능선과, 그 너머로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가 될 오산도 살짝 보인다.
메어진 밧줄에 의지해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면, 광대바위전망대에 서게 된다. 돌아본 광대바위 방향.
광대바위 전망대 이정표.
마침 밥봉 능선 위로 아침해가 떠 오른다. 후미에서 홀로 가던 손 점장이 일출이 나오겠냐며 포즈를 잡는다.
칼로 두부를 썰어놓은 듯 산등성이 한쪽면의 하얀 바위 절벽이 눈에 들어온다. 40~50미터는 됨직한 커다란 수직 절벽이 광대바위다. 광대바위의 광대는 예능인을 이르는 '광대'가 아닌, 얼굴의 두드러진 부위를 가리키는 '광대뼈'의 광대를 뜻하는 모양이다.
미세먼지 자욱한 하늘로 떠오르는 아침해가 밥봉능선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겨본 밥봉능선 위로 모습을 드러낸 태양!
광대바위를 뒤로하고 삼산재로 향한다.
좌측으로, 국시봉에서 삼산리 방향으로 이어진 지능선에 그려진 임도가 그린 듯이 보인다.
우측으로는 둥주리봉에서 솔봉 방향으로 이어진 능선이 조망되고,
그 우측으로는 자래봉과 오산도 보인다.
암봉을 내려서며 좌측 삼산리 방향으로 표지기가 걸려있지만, 이곳을 삼산재로 착각하고 직진 방향의 능선을 따라 알바 길에 나선다.
앞서간 분들이 모두들 직진의 능선길로 갔기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고난의 알바 길을 확신에 차서 내려간다.
서 있기 조차 힘들 정도의 급경사 내림길을, 아무런 의심 없이 내려서는데, 좌측으로 뚜렷한 능선이 이어진다. 잠시 망설이며 조금 더 진행하다가...
따르던 능선이 좌측 능선과 비슷한 높이로 낮아지자 지도를 꺼내어 본다. 15분 정도 급경사 내림길로 알바 한 사실을 인지하고 되돌아 가려했으나, 같이 가던 손 점장이 도저히 못 돌아가겠다고 하여 좌측 주능선 방향으로 트레버스를 시작한다.
어렵게 좌측으로 보이던 능선으로 트레버스 하여 올라섰는데, 이 능선이 아니다. 좌측으로 이만한 또 다른 능선이 이어져 있는 게 보인다.
한참 힘들게 트레버스를 하는 도중에, 손 총무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알바길로 들어서서 많이 내려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어차피 터골재 쯤에서 탈출을 예상했으므로 '그냥 내려가서 둥주리봉이나 안산으로 올라가라' 이르고는, 또 수직의 사면을 따라 좌측으로 보이는 지능선으로 트레버스를 이어간다.
그렇게 지능선 네개쯤을 트레버스 하여 천신만고 끝에 주능선에 올라선다.
돌아본 삼산재 방향 능선 갈림길 봉우리. 저 봉우리에서 화살표 방향으로 내려왔어야 하는데, 좌측 능선으로 알바를 갔다가 왔다. 희~유 힘들어!
선두는 어디쯤 가는지 알 수가 없고 후미팀은 중산리 계곡으로 내려갔으니, 단출하게 남은 둘이서 아침식사를 한다.
단출한 식사를 마치고 한방!
산산재(삼산리 능선갈림길)를 지난다. 이곳 능선갈림길을 직전 봉우리 능선갈림길로 착각하여 알바를 했었으니..ㅉㅉ
짧은 오름길을 올라 국시봉(456m) 정상에 올라보니, 딱히 특이할 게 없는 봉우리로 이름만 특이한 봉우리다.
국시봉으로 오르려면 밧줄을 잡고 바위를 올라야 한다.
국시봉에서는 동북쪽 방향으로만 시야가 트이는데, 오늘 후반부에 걷게 될 둥주리봉에서 오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조망된다.
국시봉 정상 인증은 손 점장이 홀로.
손점장이 올 들어 처음으로 봤다는 진달래! 딱 한송이만 피었는데, 기념촬영을 하였으나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돌아본 계족산 방향으로 알바를 시작한 암봉과 광대바위 730봉(상봉)이 보인다.
국시봉 바위에 올라서 돋음발을 하면, 오늘 가야 할 천황봉 방향의 능선도 보인다.
국시봉을 뒤로하고 가파른 내림길을 따라 내려서면,
터골재가 나온다.
알바를 함께한 손 점장이 터골재에서 중산리 방향으로 탈출을 하겠단다. 앞서 뜻하지 않게 탈출한 분들과, 합류도 가능하니 그리하라 하고는 홀로서 매재마을 방향으로 천황봉을 향한다.
능선길 우측으로, 둥주리봉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능선 등로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수북이 쌓인 낙업들이 무릎이 넘게 빠져서 낙엽 럿셀을 해야 할 정도다.
좌측 효곡제 방향으로 똬리봉에서 밥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뚜렷이 가늠되고,
도솔봉에서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능선이 장쾌하게 보이며,
월출봉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능선은 이디로 이어지는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완만한 오름길 능선을 따르며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사이에 밧내재봉에 도착하여 홀로서 인증을 남긴다.
밧내재봉에서 본 가야 할 천황봉 방향.
밧내재봉을 뒤로하고 작은 언덕 정도의 봉우리를 넘으면,
매재능선 삼거리가 나온다. 좌측은 매재로 이어져서 호남정맥 월출봉으로 이어지고, 천황봉은 직진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이정표의 둥주리봉.오산 방향이 우측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보면 천황봉이 우측으로 이어질 듯이 보이고 직진 방향은 지능선쯤으로 보여, 잠시 동안 길을 판단하느라 지체한다. (보이는 것과 실제는 차이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매재능선 삼거리에서 길을 찾느라 5분 남짓 주저하다가 직진의 능선으로 들어서서 조금 내려오면, 매재마을에서 천황봉으로 향하는 등로와 만난다.
삽재봉을 오르며 돌아본 매재능선삼거리봉 방향. 저 봉우리에서 능선은 우측으로 휘어져 이어져 온다.
자그마한 봉우리 정상 나뭇가지에 '삼재봉(583m)'이란 표지기가 걸려 있다.
삼재봉을 뒤로하고 잠시 내려서면, 커다란 송전탑이 있는 삽재에 도착한다.
삽재 이정표.
천황봉 오름길은 조금 가파르게 이어지는데, 바닥에 소나무 잎사귀가 두텁게 쌓여 있어서 미끄럽게 느껴진다.
천황봉(652.2m) 정상에 도착하여 홀로서 인증을 남긴다.
순천 황전면에서 세워 놓은 정상석 옆에는, 황전면 주민들로 구성된 천황봉 산악회에서 등로를 개발하였다는 안내판이 있다.
황전면에 설치한 천왕봉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에서 100m 정도 이동하면,
구례군에서 설치해 놓은 천왕봉 정상석이 있는 회룡삼거리 봉우리가 나온다. 높이가 거의 비슷한 천황봉이 두 개인 것이다.
회룡삼거리 봉우리에서 본 중산리계곡 방향.
<중산(中山)마을 - 중산리> 중기, 성자, 신치의 3개 자연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중기 마을에는 임진왜란 당시 연일정씨 1가가 왜란을 피하여 정착하였으니 성자 마을은 웃성자, 넙박골, 성자의 작은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금녕김씨가 맨처음 웃성자에 정착하여 부락을 형성하였고, 여순반란사건으로 웃성자와 넙박골 주민이 성자로 소개되었으나 수복 후 원위치로 돌아갔다. 산치 마을은 임진왜란 전에 천왕치라는 곳에 김해김씨 5~6호가 정착한 후, 임진왜란 말기에 영월 엄씨가 동굴땅(산치)에 입주하여 번창하였다. 원래는 동굴땅(산치) 성자동, 중터(중기), 천황재 웃성주골 등으로 불렸는데, 임진왜란 시부터 중기, 성자, 산치로 불려 왔으며, 마을 안쪽으로 고봉 준령이 솟아 있고 마을 한가운데 내가 흐른다 하여 중기라 하였고, 중기부락의 중자와 산치부락의 산자를 따서 중산리라 칭하였다고 한다.
계족산 방향. 터골재에서 탈출한 손 점장은 중산리계곡 어디쯤에서 터덜터덜 가고 있을 터!
지나온 천황봉(우측 끝)
회룡삼거리가 있는 천황봉을 뒤로하고, 천황재를 향해 조금 진행하니 천황재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바위가 나온다.
중산리계곡 방향.
계족산 방향.
북서쪽 571봉 너머로 순천완주고속도로도 보이는데, 천황재는 저 571봉에서 우틀하여 내려서야 한다.
남서쪽으로 조망이 트이며, 순천시 황전면 방향이 시원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뚜렷한 능선길을 따라 내려오면 임선삼거리를 지난다.
작은 돌탑이 있는 571봉에 도착하는데, 직진 방향의 능선길이 희미하게 이어진다. 이 길이 아니다 싶어서 지도를 보니, 이 봉우리에서 천황재는 우틀하여 내려가야 한다.
571봉에서 돌아나와, 표지기가 한두 개 걸려있는 우측 사면 내림길로 들어선다.
571봉 내림길도 급전직하(急轉直下)로 떨어진다.
급하게 고도를 낮추던 등로가 완만해지며 능선 사면으로 평탄하게 이어진다.
우측으로 터골재가 보이고,
등로에는 활짝 핀 진달래가 반긴다.
천황재 우측 아래에 최근에 지은 농가주택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천황재에 도착한다.
<천황재(354m)> 동쪽 구례군 문척면 중산리 산치 마을에서 서쪽 순천시 황전면 대치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의 남쪽에 있는 천황봉에서 그리 불리게 된 듯하다. 우측 산치 마을은 매재골이라 부르며 동불댕이라고도 한다. 매재골은 산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을 의미하며 한자로 표기한 것이 산치(山峙)이다.(구례군 홈피에서 펌)
여기쯤에서 산행을 마쳤으면 좋겠는데, 오산까지 6.5km가 남았단다. 그 정도쯤이야 우찌 우찌 갈 수는 있겠다 싶었는데, 둥주리봉을 오르며 오판이었음을 절감하게 된다.
진달래가 작은 꽃봉오리를 키우고 있는 능선길을 따라 둥주리봉으로 향하는데, 잠시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급경사로 바뀌며, 커다란 바위 전망대가 머리 위로 보인다.
둥주리봉이 690m이고 천황재가 354m이니 336m를 그냥 치고 올라야 하는데, 바로 위로 보이는 바위 전망대까지의 거리가 350m쯤이다. 허걱!
당겨본 성지마을 전망대가 마치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듯이 보인다.
우측으로 황전면을 내려다보면서 둥주리봉 방향으로 급경사 오름길을 시작한다.
얼마나 급경사였으면 밧줄까지 매어 놓았겠는가, 밧줄을 잡지 않으면 굴러 떨어질 듯 가파른 경사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등로 옆 바위에는 부처손(바위손)이 따스한 봄기운을 느끼게 한다.
지나온 등로가 거의 수직에 가깝게 느껴진다.
천신만고 끝에 900m를 오는데 50분이나 걸려서 성지마을 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대에서 본 천황봉 방향.
터골재 방향.
계족산 방향.
성지마을 전망대 이정표.
뻐근해져 오는 다리도 쉬고, 얼마 남지 않은 물을 아껴마시고는, 성지마을 전망대를 뒤로하고 둥주리봉을 향한다.
둥주리봉으로 보이는 봉우리에 정자가 보인다.
성지마을 전망대에서 둥주리봉으로 이지는 능선은 완만한 능선길이다.
서쪽 순천시 황전면 방향으로 순천완주간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소나무 그늘이 있는 전망바위에서 쉬어가고 싶지만, 시간이 빠듯할듯하여 천천히 둥주리봉으로 걸음을 이어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세먼지가 짙어지는지, 계족산 방향의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앞쪽으로 보이는 용서능선 갈림길 봉우리는 좌측 용서능선 방향으로 우회하여 오르게 된다.
좌측 아래 용서마을로 이어지는 용서능선 갈림길을 지난다. 용서는 지은 죄나 잘못을 묻지 않고 덮는다는 '용서(容恕)'가 아니라, 용(龍)이 살던 곳이라는 뜻이란다. 즉 용의 서식지라는 예기다.
능선 삼거리에서 본 암릉. 아마도 저 암릉 때문에 좌회하였던 듯하다.
정자가 있는 둥주리봉 정상에 도착한다.
<둥주리봉(690.2m)>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둥주리는 짚으로 엮은 큰 둥우리라고 한다. 둥우리는 옛날 닭이나 병아리를 기를 때, 대나무나 싸리로 엮어 만든 것이다. 짚으로 엮어 씨앗이나 곡식을 넣어두는 것도 둥우리라고 불렀다. 산세 때문인지, 산 중턱에 있는 옴팍한 공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산 이름이 둥주리를 닮았다고 하여 그리 불린단다.
우선 아무도 없는 둥주리봉 정상부 전경을 담고,
정자에 올라 바라본 가야 할 안산 방향.
터골재 방향.
천황봉 방향.
둥주리봉을 뒤로하고 배바위를 향하는데 등로가 내림길로 바뀌니 다리에 경련의 조짐이 느껴진다. 얼마 남지 않은 물을 아끼려 등로 옆 응달에 녹지 않고 남아 있는 눈(雪)을 조금 입에 털어 넣고는, 파스를 꺼내어 양쪽 다리에 붙이고서 걸음을 재촉한다.
커다란 암릉이 앞을 막아서며 등로는 좌측으로 우회하여 이어진다.
칼로 잘라서 올려놓은 듯한 기암을 지나니,
앞쪽으로 배바위가 나타난다.
<배바위> 동쪽의 중산리 계곡에서 보면 거대한 배가 산 위에 걸린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배바위는 나무계단을 따라 오른다.
배바위에 올라서 바라본 안산은 아직도 아득히 멀어만 보인다.
우측 아래로 중산리 계곡이 까마득이 내려다 보인다.
<중산(中山)마을 - 중산리> 중기, 성자, 신치의 3개 자연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중기 마을에는 임진왜란 당시 연일정씨 1가가 왜란을 피하여 정착하였으니 성자 마을은 웃성자, 넙박골, 성자의 작은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금녕김씨가 맨처음 웃성자에 정착하여 부락을 형성하였고, 여순반란사건으로 웃성자와 넙박골 주민이 성자로 소개되었으나 수복 후 원위치로 돌아갔다. 산치 마을은 임진왜란 전에 천왕치라는 곳에 김해김씨 5~6호가 정착한 후, 임진왜란 말기에 영월 엄씨가 동굴땅에 입주하여 번창하였다. 원래는 동굴땅(산치) 성자동, 중터(중기), 천황재 웃성주골 등으로 불렸는데, 임진왜란 시부터 중기, 성자, 산치로 불려 왔으며, 마을 안쪽으로 고봉 준령이 솟아 있고 마을 한가운데 내가 흐른다 하여 중기라 하였고, 중기부락의 '중' 자와 산치부락의 '산' 자를 따서 중산리라 칭하였다고 한다.(펌)
중산리 계곡 건너편으로 지나온 계족산도 조망된다.
배바위 북쪽 끝에는 나무데크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배바위 전망데크에서 본 안산 방향으로 솔봉과 지래봉이 켜켜이 보인다. 체력은 바닥인데 저기를 우찌 갈꼬!
돌아본 둥주리봉 방향.
배바위를 내려서니 배바위삼거리 이정표가 있다. 오산까지 3.3km면 한 시간에 갈 수도 있는 거리인데, 지금의 컨디션으로는 얼마나 걸릴지 짐작이 안 된다.
이내 중산능선 갈림길이라는 이정표를 지난다.
중산능선 갈림길에서 등로는 좌측 사면길 처럼 보이는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안부로 내려와서 보면 이곳이 중산능선길임을 알 수 있다.
우측으로 벌목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솔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데, 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우측으로 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동해마을 갈림길이 있는 안부쯤에서 임도로 내려서고,
우측 임도를 따라 잠시 진행하면, 화장실과 좌측 방향 능선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임도를 두고 우측 언덕으로 오르면,
솔봉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실제 솔봉은 이곳이 아니라 벌목이 되고 있는 동쪽의 봉우리가 맞는 듯하다.
완만한 능선을 잠시 따르면 솔봉 직전 안부에 도착하는데, 등로는 직진의 솔봉으로 오르지 않고 좌측 사면으로 이어져 있다. 솔봉을 오르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돌아본 둥주리봉 방향.
호젓한 솔봉 우회 사면길을 따라 가는데, 손 점장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중산리 계곡에서 오산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천천히 가라고. 약간 미심쩍기는 하였지만 뒤에서 오고 있다는 예기에, 걸음을 늦출 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기며 약간의 여유를 부리며 산행을 이어간다.
솔봉 우회길이 끝나고 다시 능선길과 만난다.
작은 암봉을 안전시설을 따라 우회하여 지난다.
돌아본 솔봉과 둥주리봉 방향.
가야 할 자래봉 방향.
자래봉 오름길에 '선바위구름다리2'라는 이정표를 지나고,
이내 '선바위구름다리1'이라 표시된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지도상 이곳쯤이 자래봉 인 듯한데, 자래봉 표지는 보이지 않는다.
<자래봉(524m)> '자라 오(鰲)' 자를 쓴 오산과 구분하기 위해 자라봉이라 불리던 것이 지역 사투리로 변형되어 자래봉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다시 편평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앞쪽으로 보이는 작은 봉우리를 지나게 된다. 네이버 지도에 앞쪽의 봉우리도 자래봉이라 표시되어 있다. 어느 봉우리가 진짜 자래봉인지 헛갈리지만 지금은 그를 확인할 겨를이 없다.
사성암 방향 갈림길이 있는 '자래봉삼거리'를 지난다. 이제 오산이 800m밖에 남지 않았다고 표시되어 있는데,
8km처럼 느껴지는 것은 안산 우측의 매봉 때문일까!
작은 돌거북이 지키고 있는 매봉 정상에 도착한다.
건너편 오산 꼭대기 위로 날으는 페러글리이딩을 보며 손 총무님께 전화를 걸어, 손 지점장이 거기 있냐고 물었더니, 함께 있단다. 애고 이를 어쩌냐. 뒤에 있다고 천천히 왔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분들이 거의 하산을 완료한 상태라니!
전망 정자가 있는 오산 정상에 도착한다.
<오산(鰲山, 541.7m)>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에 있는 산으로, 오산은 자라가 섬진강 물을 마시기 위해 목을 길게 빼고 있는 형세라고 한다. 전설 속의 자라는 영물로 '천 년을 사는 동물'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구례 사람들은 지리산 노고단이나 만복대, 계족산 등의 크고 웅장한 산을 두고, 오산(鰲山)을 구례의 진산으로 꼽는다. 오산(鰲山)은 그리 높지도 험하지도 않으나, 비경이 많아 가족동반이나 단체소풍 코스로 사랑을 받아왔으며, 죽연마을에서부터 지그재그로 산길을 돌아오다 보면, 발아래 감도는 섬진강 물에 눈이 부시고, 더 높이 오르면 지리산 줄기를 배경으로 한 구례 일대의 전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정상에는 서기 582년 연기조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진 암자가 있는데, '원효, 도선, 진각, 의상대사 등 네 성신이 수도를 하였다'하여 사성암이라 불리고 있으며, 이 사성암을 중심으로 풍월대, 망풍대, 배석대, 낙조대, 신선대 등 12 비경이 일품이라 한다.
오산 정상 전망대 옆의 이정표.
정자에서 바라본 둥주리봉 방향.
동쪽 계족산 방향.
북쪽 아래로 섬진강가에 자리한 구례읍이 조망되는데, 미세먼지로 아쉬움만 키운다.
지나는 산객에게 부탁하여 오산 정상 인증을 남기고 죽연 마을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좌측 아래로는 '은모래강'이라는 별칭을 가진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고,
널찍한 소나무숲 쉼터를 지나면,
사성암으로 이어지는 데크목 계단길이 나온다.
데크목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섬진강과 지리산이 시원스레 조망되는 전망대가 나오는데,
미세먼지로 조망이 흐릿하여 지리산 방향 조망도만 사진에 담아 둔다.
오늘의 종착지인 죽연마을 앞을 흐르는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고,
구례읍 방향도 조망된다.
커다란 바위 암릉을 돌아서 지나면,
사성암 산왕전 전각이 나오고,
전각 좌측에 도선굴이 있다.
<사성암(四聖庵)>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에 있는 암자로, 구례읍에서 약 2km 남쪽인 죽마리 오산(鰲山)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원래 오산암이라 불렀는데,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본사 화엄사를 창건하고 이듬해 사성암을 건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성암 사적(四聖庵史蹟)》에 4명의 고승, 즉 원효(元曉)·도선국사(道詵國師)·진각(眞覺)·의상(義湘)이 수도하였다고 하여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 또한 송광사 제6세인 원감국사 문집에는 사성암이 있는 오산(獒山) 정상에 참선을 행하기에 알맞은 바위가 있는데, 이들 바위는 도선, 진각 양국사가 연좌수도 했던 곳이라고 나와 있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 이래 고려까지 고승들의 참선을 위한 수도처였다고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성암은 바위를 뚫고 나온 듯한 '약사전(지금은 유리광전으로 개칭하였음)'과 바위 위에 살짝 얹어 놓은 듯 단아한 '대웅전' 등, 모든 구조물이 산과 하나되어 고운 자태를 뽐낸다. 대웅전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돌면 아래로 섬진강이 돌아 흐르고, 구례읍과 지리산 노고단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여기에는 도선국사가 참선했다는 '도선굴'과 암벽에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또 지장전 뒤에는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원바위(일명 뜀바위)가 있다. 드라마 '추노'와 박경리의 원작의 '토지' 등의 촬영지로도 유명세를 더하는 곳이다.
산왕전 전각을 지나면 소원바위가 나오는데, 한 무리의 인파가 소원을 비는지 소원바위를 바라보고 있다.
<소원바위> 뗏목을 팔러 하동으로 내려간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내를 잃은 설움에 숨을 거둔 남편의 애절한 전설이 있는 곳이다. 그 후 이곳이 소원 바위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곳이 되었단다. 예전에는 이 소원바위 위에 올라서 바위와 바위 사이를 훌쩍 뛰어넘으면 소원(득남)을 이루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하나, 최근 사고의 위험으로 출입을 금지하고, 소원바위 아래에서 소원을 빌게 해 놓았다.
소원바위 모습.
소원바위 안내판.
소원바위를 돌아 나오면, 사성암의 전각들이 모습을 나타낸다.
지장전 전경.
지장전 앞마당에서 보이는 자래봉 방향.
지장전을 뒤로하고 내려서면, 수령이 800년이나 된 귀목나무가 있다.
귀목나무 쉼터에서 내려다본 섬진강.
돌계단을 잠시 내려서면 앞쪽으로 사진에서 보던 사성암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성암 앞쪽으로는 둥주리봉이 조망된다.
계단을 내려서며 본 사성암의 주 불전인 '유리광전(옛 약사전)' 모습.
바위에서 불거져 나온듯한 '유리광전' 모습.
'유리광전'으로 올라갈까 하다가, 시간이 지체될 듯하여 무심한 얼굴로 인증을 남긴다.
사성암 전각들을 뒤로하고 돌아 나오면 오산 활공장이 나온다.
활공장에서 바라본 죽연마을 앞 섬진강 조망.
구례읍 방향.
사성암 입구에 도착하여, 우틀하여 죽연마을로 이어지는 등산로로 들어선다. 죽연마을에서 이곳까지 마을버스가 운행되는데 편도 3,000원 이란다.
우측 전망대로 이어지는 임도를 가로질러 내려서면,
나무 그늘이 시원할 듯한 커다란 나무를 지나게 되고,
우측으로 전망대가 보이는 곳에서 직진의 죽연마을 등로로 내려간다.
돌탑들이 늘어선 너덜지대를 지나면,
좌측 사성암 주차장과 우측 죽연마을이 보인다.
잠시 후 자그마한 너덜지대를 지나면,
임도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 아래 방향은 사성암 주차장으로 이어지고, 죽연마을은 직진 방향 임도를 따라야 한다.
갈림길의 이정표에는 오산등산로 입구라 표시되어 있다.
잠시 임도를 따르면 죽연마을이 그린 듯이 펼쳐진다.
돌아본 오산 방향.
문척면에서 설치한 사성암 등산 안내도가 있다.
매화나무가 꽃봉오리를 터트리고 있는 밭 사이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죽연마을 오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죽연마을 바이오랜드 주차장에 도착하니, 애마가 기다리고 있다.
오산 등산 안내도를 카메라에 담고, 버스 옆에서 기다리던 백두들에게서 막걸리를 연거푸 세간이나 얻어 마시며 길고 힘들었던 계족산에서 오산까지의 종주 산행을 마무리한다.
구례읍의 사우나에서 짙게 베어 나오는 땀냄새를 씻고,
근처의 '복사골 명가'라는 고깃집에서 삼겹살과 소맥으로 줄어든 체중을 원상태로 환원시킨다.
길고 힘들었던 산행만큼 안주와 술도 줄기차게 줄어드는 푸짐한 뒤풀이 시간을 갖는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힘들었던 금번 산행에 대해 예기하며, 특히나 천황재에서 둥주리봉 오름길의 경사도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운다. 산전수전 다 격은 인생 이야기가 뿌듯하고 보람차듯이, 힘들었던 산행의 기억은 오랫동안 회자된다. 아마 둥주리봉 예기도 오랫동안 백두들의 기억속에 살아있을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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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오랫만에 산행다운 산행을 했습니다.(우리는 알바로 조금은 편했습니다.) 즐감했습니다.감사 감사 감사드립니다.
이날 후미에서 동행하던 친구와 백덕현사장이 결등이라 제가 모처럼 마음 먹고 선두로 나서봤지요 . 그런데 그 둥주린지 봉주린지 하는봉 오르다가 아주 사망신고 하는 줄 알았지 뭡니까! 다들 기억나시지요? 낙엽은 미끄럽고 경사는 급하고... 근자에 그렇게 힘들게 오른 봉이 없었던거 같애요. 결국 저는 미끄러지면서 앞으로 꼬꾸라져 배낭옆주머니에 있던 물통 절벽으로 보내고 눈물 흘렸습니다. 유일한 물한통이였는데 ㅜ ㅜ 나중 창틀러가 한통줘서 완주 할 수 있었답니다. 이날은 또 백두 등산 역사에 처음 있었던 날이지요 후미가 선두를 축지법으로 앞지르는 묘기를 보여준날 ㅋ ㅋ 이대장님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알바 했는데도 다녀온 후 한동안 다리가 뼈근했던 힘든 산행 이었지만 그또한 기억에 남는 시간 이었습니다..
요즘 김사장님을 홈피에서 자주 보게되네요 아주 좋습니다. 수시로 들리세요. 시간되면 채팅도 하고 ㅎ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