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0일 주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다. 축일명대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임금)이심을 기리는 날이다. 예수님께서는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백성을 억누르는 임금이 아니라, 당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시며 백성을 섬기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실현하셨다. 스스로 낮추심으로써 높아지신 것이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정하였다. 한국 천주교회는 1985년부터 해마다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간(올해는 오늘부터 11월 26일까지)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신자들이 일상생활 가운데 성경을 더욱 가까이하고 자주 읽으며 묵상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등불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연중 마지막 주일로,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심을 기리는 날입니다. 그분의 다스림은 절대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이웃을 섬기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세우시고 그분의 십자가를 통하여 만물을 화해시켜 우리가 하늘 나라에서 당신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
<주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35ㄴ-43 그때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35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당신의 어리석은 백성을 기억해 주소서.
사실 한 나라의 왕이 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될 수 있는 신분이 아닙니다. 하늘이 주시는 특별한 은총이 있어야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단종애사’를 얘기하면서 충의(忠義)를 가르치며, 사육신의 성삼문을 말할 때는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불의한 왕과 불충한 신하를 규탄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왕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 언제나 마음에 새길 수 있었고, 나이가 들어서 맹자의 왕도(王道)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왕도(王道)란 인(仁)과 덕(德)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로, 중국의 유가(儒家)들이 이상(理想)으로 삼았던 정치사상을 말합니다. 덕을 정치의 원리로 삼는 사상은 이미 《서경(書經)》이나 《논어》 등에서도 보이지만, 왕도를 패도(覇道)와 대비시켜 명확하게 말한 것은 전국시대의 맹자(孟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의(仁義)라는 덕에 의하여 난세를 통일하고 사회에 질서와 안정을 가져오려 하였던 왕도사상은 맹자의 정치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것입니다. 맹자는 왕도와 패도를 엄격히 구별하여 “힘으로써 인을 가식하는 자는 패(覇)자인데 그는 반드시 대국(大國)을 가지려고 한답니다. 덕으로써 인을 행하는 자는 왕(王)인데 왕자(王者)는 큰(大)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힘으로써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자는 심복(心服)시키는 것이 아니며, 덕으로써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자는 마음속에서 참되게 복종시키는 것이다”(公孫丑篇)라고 말하였습니다.
맹자의 왕도에 따르면 인의(仁義)의 덕이 안으로 충실하여 그것이 선정(善政)으로 나타나는 것이 왕도이며, 인정(仁政)을 가장하고 권력정치를 행하는 것은 패도(覇道)라고 하였습니다. 맹자는 왕도를 이루는 전제로서 경제적 조건에 주목하고, 그 조건의 한계와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여 “항산(恒産)이 있는 자는 항심(恒心)이 있으며, 항산이 없는 자는 항심도 없다”고 말하면서 인민에게 일정한 재산, 즉 경제적 안정이 없으면 그들에게 도덕적 생활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맹자는 토지를 인민에게 공평히 분배하는 정전법(井田法)을 주장하는 한편, 교육제도도 언급하여 모든 국민이 안정된 생활과 풍부한 교양을 지니고 도덕적 질서를 지켜 나간다면 그것이 곧 왕도정치의 이상이라고 하였습니다.
맹자의 왕도정치를 생각해보면 왕이 된 사람이 지켜야 할 것을 요약하면 <모든 백성이 안정된 생활과 풍부한 교양을 지니고 도덕적 질서를 지켜 나가도록 하는 것>이 왕도정치의 요약이며 왕의 직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역사를 통해서 많은 왕과 황제가 있었으나 이상적인 왕은 언제나 요순(堯舜)임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순임금은 왕도정치의 이상이지 아무도 그 왕도를 실현하지 못했고, 무수한 독재자들이 왕이 되고, 황제가 되어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위해서 왕의 직분을 수행한 왕이 없었다고 단정하여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의 한심한 작태를 꾸짖고 있습니다. 그가 그 직위에 합당한 직무를 잘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를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선택한 국민을 우롱하였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하고 간구하는 우도(右盜)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주님은 왕 중 왕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멸시하고 조롱하며, 주님의 진면목을 모르고 다 같은 짓을 합니다. 그러나 같이 십자가에 달린 사람 중 하나는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합니다. 간구하는 것을 들어주실 왕이심을 고백합니다. 명패를 보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메시아로서 주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는 왕도(王道) 자(者)는 국민의 경제적 안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절한 세금을 징수하고,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정치가는 자신의 이익이나 편익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백성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 놓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제도를 확립하고 많은 사람들이 교육제도의 혜택을 받아 교육의 수준을 높이고 도덕과 질서를 가르쳐 예의염치(禮儀廉恥)를 가르치고, 수오지심(羞惡之心)과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지고 백성을 사랑으로 완전히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왕의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려면 부득불 필요하면 영토의 확장이나 기술자의 모집이나 강제로 노역에 임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질서와 복종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왕도와 맹자의 왕도를 생각한다면 많은 공통점이 있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왕도는 세상 사람을 차별 없이 구원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적 이념과 권력의 실체와는 상관없이 십자가의 희생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에로의 초대’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육을 많이 받게 하고, 하느님과 하느님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계속하시지만 재산의 균등한 분배나 부의 균등한 분배보다는 나눔의 실천을 강조하십니다. 백성을 위해서 먼저 자신을 나누십니다. 이론이나 권고사항으로 나눔을 말씀하시지 않고, 당신 자신이 직접 나누시며 하느님나라의 적절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와 사랑을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왕이 가장 먼저 희생되시는 분이셨습니다. 백성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시는 주님을 마음에 새기는 그리스도 왕 축일에 그동안 말만 앞섰던 자신을 반성합니다. 그리고 우도처럼 기도합니다.
주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당신의 어리석은 백성을 기억해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