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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드러낸 연모의 노래 ‘장상사(長相思)’>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장상사(長相思)는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드러낸 한시 작품이다. 장(長)은 오랫동안의 의미이고 상사(相思)는 어떤 대상을 그리워하는 것이니 ‘깊어진 연모(戀慕)’, ‘긴 그리움’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보통 만 리 먼 국경지역의 경비나 전쟁터로 간, 소식 없는 님에게 ‘멀고 긴 이별의 정한(情恨)’을 노래한 한시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여성적인 화자를 설정하여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의 정서를 구구절절 표현했다. 만일 여기서 임이 임금이라면 이 작품은 연군지정(戀君之情)을 드러낸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라고도 볼 수도 있다. 특히 유배 중(귀양살이)일 때 쓰인 장상사(長相思)는 대부분 그러했다.
또한 장상사(長相思)는 악부(樂府) 잡곡가사(雜曲歌辭, 잡스러운 곡조의 시문학) 중의 하나이다. 남조(南朝)와 당나라 때에 많은 작품이 나왔는데, 주로 남녀 간이나 붕우 간에 오래도록 떨어져 그리워하는 심정을 읊은 것이다. 조선초기 학자 성현(成俔 1439~1504)의 <장상사(長相思)>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당나라 이백(李白 701~762)의 <장상사(長相思)>를 의작한 듯하다.
때론 장상사(長相思)를 악부잡체(樂府雜體)라고 하는데 악부잡체는 악부 가운데 가(歌), 행(行), 곡(曲), 음(吟), 사(詞), 요(謠), 편(篇), 인(引), 원(怨), 탄(歎) 등의 명제(命題)로 분류할 수 없는 작품들을 묶어 놓은 항목을 일컫는 말이다.
○ 다른 시체와 다른 「장상사(長相思)」만의 특징을 살펴보면, 먼저 형식이 자유롭고 구어체로 소박미를 풍기는 민가풍의 소탈한 시체(詩體)이다. 또한 그럴싸한 시제 대신 첫 구절을 제목으로 삼는 민가의 특징을 가졌다. 한 구(句)의 글자를 보통 3언(三言) 오언(五言) 칠언(七言)으로 주로 쓰나, 구절(句節) 사이의 특별한 규정이나 법칙이 없어 아주 자유로운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남조(南朝)와 당(唐)나라 시인들의 작품이 많으며, 처음에 항상 ‘장상사(長相思)’라는 세 글자로 시작한다. 예전에는 36자(字) 또는 100자 또는 103자로 짓는 경우가 많았다.
◉ 이번 지면을 빌려, 당(唐) 시인 이백(李白 701~762)의 <장상사(長相思) 2수(二首)>와 조선 초기 학자이자 대표적인 문학가였던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 1439~1504)의 <장상사(長相思)>, 그리고 조선후기 문인⋅학자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의 <장상사(長相思)>와 조선후기 대표적인 지성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장상사(長相思)>, 그리고 구한말⋅개화파 문신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의 <장상사(長相思)>, 마지막으로 조선중기 한문학의 대가였던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의 <장상사(長相思)> 2수(二首)를 차례대로 소개하겠다.
● 다음 칠언악부(七言樂府) 연모의 노래 <장상사(長相思) 2수(二首)>는 두보와 함께 중국 최고의 고전시인이자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청련거사(靑蓮居士) 이백(李白 701~762)의 작품이다. 이 〈장상사(長相思)〉 2수(二首)는 《이태백전집(李太白全集)》의 제3권과 제6권에 각각 나누어 실려 있다. 국경지대로 출정 나간 남편을 연모하는 아내의 처지에 시인이 감정이입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2수(二首) 모두 그리움의 정을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여, 《당시별재집(唐詩別裁集)》의 편재를 따라 《당시 3백수(唐詩三百首)》에는 함께 실은 듯하다.
저작시기에 대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시풍으로 보아 개원(開元, 당나라 현종 연호) 17년(729년) 29세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2수(二首) 모두 헤어진 임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형식이 자유롭고 구어체로 소박미를 풍기는 민가풍의 소탈한 이 시는 그럴싸한 시제 대신 첫 구절을 제목으로 삼는 민가의 특징을 가졌다.
제1수(首)는 배경묘사를 통해 분위기를 전달한 후, 임이 장안에 있다는 서술에 주목하여, 꿈속에서도 찾아가기 힘들만큼 첩첩이 막힌 임과의 거리를 서술하여 그 그리움이 얼마나 깊은 지를 표현하고 있다. 때론 장안에서 유리된 이백이 임금을 그리는 작품으로 이백의 절망감ㆍ좌절감이 담겨 있다고 보기도 한다. 제2수(首)는 연연산(燕然山)으로 출정 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부인을 화자로 내세워 오직 일편단심의 애끓는 그리움을 드러내며, 얼릉 돌아와 주길 바라는 애타는 연정을 묘사하였다. 봉황(鳳凰)과 원앙(鴛鴦)처럼 부부가 헤어질 수 없다는 곡의 뜻은 무한하지만, 이를 전해줄 이가 없으니 봄바람에 실어 그대가 계신 연연산(燕然山)으로 보내고 싶을 뿐이다.
1) 장상사[長相思] 2수(二首) 끝없는 그리움 / 이백(李白 701~762)
첫 수(其一)
長相思 언제나 그리운 님
在長安 장안에 있네.
絡緯秋啼金井闌 가을 귀뚜라미 우물가에서 울고
微霜淒淒簟色寒 살며시 내린 서리에 대자리 차가울 때
孤燈不明思欲絶 외로운 등불 희미하여 그리움에 애간장 끊어질 듯.
卷帷望月空長嘆 휘장 걷고 달을 보며 긴 한숨소리
美人如花隔雲端 꽃처럼 예쁜 그대 구름 끝 저 편에 계시니
上有靑冥之長天 위로 높고 푸른 하늘
下有淥水之波瀾 아래엔 파랗게 넘실거리는 물결
天長路遠魂飛苦 아스라한 하늘 끝 먼 길 저편에 혼백이 헤매지만
夢魂不到關山難 꿈속에도 험난한 관산을 넘지 못하네.
둘째 수(其二)
長相思 오래도록 그리워
摧心肝 애간장 다 끊어지네.
日色已盡花含煙 해는 이미 넘어가고 꽃은 안개 머금었고
月明欲素愁不眠 달 밝아 더욱 흰데 근심으로 잠 오지 않네.
趙瑟初停鳳凰柱 조슬(趙瑟)은 잠깐 봉황주에 멈춰두고
蜀琴欲奏鴛鴦弦 촉금(蜀琴)으로 원앙현(鴛鴦弦)을 타려해요.
此曲有意無人傳 이 노래 담은 뜻을 전할 사람 없어
愿隨春風寄燕然 바람에 부쳐 당신 계신 연연(燕然) 땅으로 보내고 싶소.
憶君迢迢隔靑天 당신 생각하니 푸른 하늘 너머 멀고 먼 곳
昔日橫波目 옛날의 그 고운 눈매가
今成流淚泉 지금은 눈물의 샘이 되었소.
不信妾腸斷 소첩의 애끊는 마음 못 믿기시면
歸來看取明鏡前 돌아와 거울 앞의 내 모습 보시옵소서.
[주1] 장상사(長相思) : 악부 《잡곡가사(雜曲歌辭)》의 이름으로, 남녀 혹은 친구 사이에 오랫동안 이별하여 그리워하는 내용이 많다.
[주2] 낙위(絡緯) : 귀뚜라미이다. 귀뚜라미가 날개를 떠는 소리가 실을 잣는 소리와 흡사하다고 하여 낙사랑(絡絲娘) 또는 방직랑(紡織娘)이라고도 한다.
[주3] 금정란(金井闌) : 장식이 화려한 우물의 난간을 말한다.
[주4] 사욕절(思欲絶) : 그리움이 극점에 다다른 것을 형용한다.
[주5] 미인(美人) : 그리워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임금’ㆍ‘聖君’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주6] 조슬(趙瑟) : 현악기의 일종으로, 전국시대에 조(趙)나라 여인들이 거문고(瑟)을 잘 연주했으므로 ‘조슬’이라고 하였다.
[주7] 봉황주(鳳凰柱) : 봉황의 형상을 조각한 금주(瑟柱)이다. 봉(鳳)은 수컷을 황(凰)은 암컷을 지칭하는데, 여기서 ‘봉황(鳳凰)’은 부부를 의미한다.
[주8] 촉금(蜀琴) : 한나라 때 촉(蜀)나라 사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연주하던 거문고를 말한다. 사마상여의 거문고 연주에 탁문군(卓文君)이 반하여 함께 도망친 고사가 있다.
[주9] 원앙(鴛鴦) : 전설에 의하면 원앙은 암컷과 수컷이 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는 영원히 함께 하기를 바라는 부부를 의미한다.
[주10] 연연(燕然) : 몽고에 있는 항애산(杭愛山)을 지칭한다. 동한(東漢)의 두헌(竇憲)이 흉노를 원정하러 가서, 이 산 위에 공을 새긴 석비를 세웠다. 여기서는 남편이 수자리 살고 있는 변새지역을 가리킨다.
[주11] 석일(昔日) : ‘昔時’라고 되어 있는 本도 있다.
[주12] 횡파(橫波) : 여자의 눈이 움직이는 것, 즉 곁눈질을 말한다.
[주13] 금성(今成) : ‘今作’이라고 되어 있는 本도 있다.
● 다음 악부(樂府) 잡곡가사(雜曲歌辭) <장상사(長相思)>는 조선 초기 학자이자 대표적인 문학가였던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 1439~1504)의 작품이다.
이 시는 여성 화자를 등장시켜 임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고 있다. 때론 여성화자와 임의 관계를 임금과 신하와의 관계로 볼 수 있기에,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로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적절한 비유와 상징적인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장상사(長相思)」는 악부(樂府)의 편명으로 「고원사(古寃思)」 25수의 하나이다. 고시(古詩)에서는 ‘長相思’ 세 글자를 많이 사용하여 시의 화자가 일방적으로 그리운 님을 사모하는 정을 형상화한 시이다. 고대 현악기의 일종인 공후(箜篌) 가락을 타며 호소하듯, 날마다 언덕에 올라가서 연모의 정을 하늘로 날려 보내지만 마치 종이 연과 같이 바람에 펄럭이며 빙빙 돌고만 있어 님에게 전할 길이 없음을 슬퍼한다. 날아가는 새가 되어, 밝게 비추는 달빛 되어 우리 님 창문에, 휘장에 가고 싶다. 오늘도 긴긴 밤 잠 못 이루며 애간장만 태운다.
2) 장상사[長相思] / 성현(成俔 1439~1504)
長相思 길이 서로 그리건만
思不見 만날 수가 없는 사람
心如紙鳶風中戰 내 마음 종이연이 바람 앞에 떨리는 듯,
有席可捲石可轉 자리는 말 수 있고 돌은 굴릴 수 있지만
此心鬱結何時變 답답한 이 마음은 언제나 풀리려나.
所思遠在天之陬 그리운 임 멀고도 먼 하늘가에 계시는데
雲天綠樹晴悠悠 흰 구름과 나무들만 아득할 뿐일세.
悠悠不盡愁 끝이 없는 시름에
獨坐彈箜篌 홀로 앉아 공후 타니
箜篌如訴復如泣 공후(箜篌) 가락 호소하듯 우는 듯이 퍼지는데
彈罷不覺羅衫濕 곡 끝나자 저고리에 눈물이 배었구나.
願爲雙飛鳥 쌍쌍이 날아가는 새가 되어서
向君牕前立 우리 임 창문 앞에 서고 싶어라.
願爲明月光 밝게 세상 비추는 달빛이 되어
穿君帷箔入 우리 임 휘장 안에 들어가고파
悲歌無寐夜何長 슬피 노래 부르면서 긴긴 밤 잠 못 드니
魂夢不渡遼山陽 꿈에서도 요산(遼山) 남쪽 건너가지 못하누나.
長相思 길이 서로 그리느라
空斷腸 애간장만 끊어지네.
● 다음 ‘陌’과 ‘職’을 통운(通韻)한 <장상사(長相思)>는 조선후기 문인⋅학자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의 악부잡체(樂府雜體)이다. 그는 악부시(樂府詩)를 통해 자신의 문학적 취향과 개성을 여실히 드러내었고, 자타가 인정하는 악부시의 대가였다. 정두경(鄭斗卿)에게 있어서 악부시야말로 그를 이해하는 첩경이 된다.
이 시는 낭군과 어쩔 수 없이 남북으로 멀리 떨어져 만나지 못하는 정한을 노래하였다. 시적화자인 부인은 남녘 월계(越溪) 가에 살고 낭군은 아득한 병주(幷州) 땅에 머물고 있다. 예전에는 연리배(連理杯)로 함께 마셨는데 지금은 망부석(望夫石)을 보며 슬퍼한다. 올해도 거문고를 안고 녹수곡(綠水曲)을 연주하며 또 가는 봄을 보낸다. 날마다 낭군이 그리워 눈물로 옷을 적실뿐이다.
3) 장상사[長相思] / 정두경(鄭斗卿 1597~1673)
長相思 오래도록 우리 낭군 생각하노니
各南北 서로 간에 남쪽 북쪽 떨어져 있네.
妾是越溪女 첩은 바로 월계(越溪) 가에 사는 여잔데
君爲幷州客 낭군께선 병주(幷州) 땅의 나그네 됐네.
雲山迢迢 구름 산은 아득하니 멀고도 멀어
萬重隔 만 겹으로 겹친 산의 저쪽에 있네.
昔時共醉連理杯 지난날엔 연리배(連理杯)로 함께 마셔 취했는데
今日空悲望夫石 오늘날엔 망부석(望夫石)을 보며 괜히 슬퍼하네.
憂來向芳洲 수심 생각 들어 물가 나아가서는
采采蘋花白 마름꽃을 따고 따매 꽃은 하얗네.
援雅琴兮奏綠水 금을 당겨 안고서는 녹수곡(綠水曲)을 연주하고
折楊柳兮送春色 버들가지 꺾어 들고 가는 봄을 전송하네.
長相思 오래도록 우리 낭군 그리거니와
淚沾臆 흘린 눈물 나의 옷을 흠씬 적시네.
[주1] 월계(越溪) : 본디는 월(越)나라의 미녀인 서시(西施)가 깁을 빨던 곳을 가리키는데, 후대의 시문에서는 흔히 아름다운 여인이 살고 있는 주위의 시냇물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주2] 병주(幷州) : 중국 구주(九州) 가운데 하나로,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보정(保定)과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ㆍ대동(大同) 일대의 지역을 가리키는데, 시문에서는 흔히 당(唐)나라의 가도(賈島)가 병주에서 오래 살다가 떠난 후 시를 지어 그곳을 고향처럼 그리워한 데서 유래하여, 제2의 고향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여기서는 낭군이 머물고 있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주3] 연리배(連理杯) : 신혼부부가 합환주(合歡酒)를 마실 때 쓰는 술잔이다.
[주4] 망부석(望夫石) : 멀리 길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죽어 돌이 되었다는 전설적인 돌. 또는 그 위에 서서 기다렸다는 돌.
[주5] 녹수곡(綠水曲) : 악부(樂府)의 금곡(琴曲) 이름으로, 일명 〈녹수곡(淥水曲)〉이라고도 한다. 또 〈백저가(白紵歌)〉라고도 한다.
[주6] 원아금혜주록수(援雅琴兮奏綠水) : 이 부분의 원주에 “이 부분이 어떤 데에는 ‘登白蘋兮待夕期’로 되어 있다.” 하였다.
● 다음 ‘鹽’과 ‘豔’을 통운(通韻)한 <장상사(長相思)>는 조선후기 대표적인 지성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작품이다. 36자(字)로 구성하였고 매 구(句)마다 ‘鹽’과 ‘豔’을 압운(押韻)으로 사용해 노래의 장단과 흥을 돋우게 하였다. 다산(茶山) 선생께서 그리운 벗을 생각하며 지은 악부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혹시나 벗이 올까 주렴을 걷어본다. 섬돌 가에는 풀만 날로 자라는데 살구꽃 복사꽃이 뾰족이 피어난다. 섬섬한 새벽 비에 꽃망울이 터졌다. 혹시 벗과 함께 완상(玩賞)할 수도 있으니 아희더러 만지지 말라고 해야겠다.
4) 장상사[長相思] 벗을 생각하며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朝褰簾 아침에 발을 걷어보고
暮褰簾 저녁에도 발을 걷어보고
冉冉春雲礙綠櫩 부드러운 봄 구름이 푸른 댓돌을 가지고 있어
日令庭草添 뜰에 풀만 날로 자라고 있네.
桃花尖 복사꽃도 뾰족
杏花尖 살구꽃도 뾰족
舀破芳心曉雨纖 섬섬한 새벽 비에 꽃망울이 터졌으니
不敎兒去拈 아희더러 가 만지지 말래야지.
● 다음 ‘尤’를 압운(押韻)한 <장상사(長相思)>는 구한말⋅개화파 문신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 1835~1922)가 경자년(1900년, 광무4) 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할 때 지은 것이다. 위의 시와 같이 36자(字)로 구성하였고 매 연(聯)마다 ‘尤’를 압운(押韻)으로 사용해 노래의 장단과 흥을 돋우게 하였다.
1900년 제주도 여름 날 저녁에, 서서히 구름 걷히니 아득한 바다하늘이 드러난다. 누각 위로 맑은 보름달이 떠오르니 시인의 눈을 씻어주고 고향생각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준다. 임은 오늘, 만 리 밖의 나를 생각하며 보름달을 보고나 있을라나? 술잔 멈추고 흰머리만 긁적인다.
5) 장상사[長相思] 여름에 처음으로 달을 보다. / 김윤식(金允植 1835~1922)
瘴雲收 장기 구름 걷히니
海天悠 바다 하늘 아득하다.
佳月嬋娟懶上樓 어여쁜 달 천천히 누각 위로 올랐건만
見人還似羞 사람을 보더니 아직은 수줍은 듯,
拭吟眸 시인의 눈 씻어주고
撥鄕愁 향수 잊게 해주네.
萬里今宵同見不 만 리 밖에서도 오늘 밤 함께 보고 있을까
停盃搔白頭 술잔 멈추고 흰머리 긁적이네.
● 다음 ‘尤’를 압운(押韻)한 <장상사(長相思)> 2수(二首)는 조선중기 한문학의 대가였던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의 작품이다. 각 한 수(首)를 36자(字)로 구성하였고 매 구(句)마다 통운(通韻)한 압운자(押韻字)를 사용해 노래의 장단과 흥을 돋우게 하였다.
첫 수(其一) 압운자(押韻字)는 ‘刪’과 ‘寒’이고 내용을 살펴보면, 늦은 밤엔 바람도, 달빛도 가득하고 별들도 초롱하다. 임 생각에 문을 닫는데 길도 멀고 생각도 끝없다. 변방의 물소리가 애달프게 들리는 듯한데 귀밑머리 희어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님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둘째 수(其二) 압운자(押韻字)는 ‘歌’과 ‘麻’이고 내용을 살펴보면, 한 겨울 얼음과 쌓인 눈이 강을 막아 돌아오지 못하고 시름겨운 세월만 흘러간다. 먼 하늘가에서 서로를 그리는데 이별의 길 멀고 돌아올 길도 멀다. 분분한 세상일 슬퍼만 하지 말자. 애타는 인정(人情)도 흘러가는 물결 같을 것이다.
6) 장상사[長相思] 2수(二首). 후고(後稿) / 신흠(申欽 1566~1628)
風滿山月滿山 바람도 산에 가득, 달빛도 산에 가득
星斗蒼茫更漏䦨 별들은 초롱초롱, 밤 시간도 늦었기에
幽愁空掩關 남몰래 시름하면서 문을 닫는다네.
路漫漫意漫漫 길은 머나멀고 생각도 끝이 없는데
隴水東西何日還 농수(隴水) 동쪽인가 서쪽인가 어느 때나 오려는가
長憐雙鬢斑 두 귀밑머리 희어져 가련하이.
기이(其二)
氷塞河雪塞河 얼음이 강을 막고 눈이 강을 막고
舊恨新愁添歲華 묵은 한 새 시름에 세월만 가네.
相思天一涯 하늘 한 쪽에서 서로 그리면서
別路賖歸路賖 이별의 길 멀고 돌아올 길도 먼데
世事紛紛莫浪嗟 분분한 세상사 함부로 슬퍼만 말자
人情同逝波 인정이란 흘러가는 물결 같은 것.
[주] 농수(隴水) : 변방에 군역을 가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어 흘러내리는 물길을 울음소리에 비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