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 영광(고전 6장19-20)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6:19-20
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저는 이번 주간인 11월5일 저녁 8시25분에 처음으로 친손자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앞에 참 감사드리고 또 성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물론 외손자를 보았던 그 때도 감사했지만 이번에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신비한지 외손자를 볼 때에도 11월5일이고, 친손자도 11월5일에 낳았어요. 또 우리 사위가 결혼한 날도 12월26일, 우리 아들도 12월26일, 이렇게 결혼 날짜도 같아요.
물론 2년 차가 있지만 너무 신비하고 더욱이 태어난 병원과 의사도 같아요.
전혀 만든 것 아닙니다. 친손자는 미국에서 태어나도록 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중에 고국에 와서 건강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 아이를 보고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얘야 네가 살기 어렵고 힘든 세상에 왔구나 네가 이제 앞으로 하나님 앞에 복을 받아, 하나님이 너를 귀하게 해서, 하나님이 너의 일생에 복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네가 일생동안 잘 되는 길이 뭐냐? 너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답은 하나입니다. 길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모르면서 살아도 잘 사는 길이 있습니다. 많이 배우지 않아도 학자 이상으로 위대한 삶이 있는데 그것은 창조자를 기억하고, 창조자를 알고, 창조자를 향하여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생명은 고귀합니다.
생명은 아름답습니다. 생명은 신비합니다.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생명이 가치 있고,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 앞에 보람되고, 땅에서도 영광을 누리는 길은 먼저 위에 계신 하나님, 창조자 하나님을 알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누가 위대하게 되었는가? 누가 성공했는가? 누가 돈을 많이 벌고 출세를 했는가? 하는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크게 보지 않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았는가? 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가장 귀한 줄로 알고, 하나님을 향하여 바로 사는 삶이냐? 하는 것을 귀하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존재입니다.
저도 이번에 손자가 태어나면서 그 아이가 '제 아버지를 닮았다'하고 또 우리 집사님들도 그 아이를 보고 '목사님 닮았어요'하니까 아주 기뻤습니다.
제 어렸을 때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아도 상당히 닮은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참 감사하고,또 우리 집에 와서 이 어린 딸이 그 귀한 생명을 해산하는데 얼마나 수고했을까 생각하니 안스러워 기도도 해 주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닮았습니까? 원숭이를 닮았습니까?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것입니다. 창조자를 닮은 것입니다. 위에 계신 분을 닮은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성과, 양심과, 인간의 이성과, 의지와, 인간의 모든 예술성과, 인간이 갖고 있는 이 영광스러움은 위에서 왔지, 동물에서 온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3장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습니다. 이가봇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알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1장21절에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둔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같은데도 하나님께 감사도 안하고, 영광도 돌리지 못하고, 썩어진 것을 찾고, 지혜 있고 잘난 척 하나 우둔하게 되어서 미련한 일을 골라서 행하고, 버러지 형상, 우상숭배, 금수와 헛된 것을 좇아 헤매는 불쌍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떠난 인간은 영광도 없고, 가치도 없고, 보람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셔서 우리로 길을 잃어버린 데서 길을 찾아 주시고, 죄에서 건져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을 회복하여 주신 것입니다. 탕자와 같이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하나님과 만나는 이런 축복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미국 아틀란타에 가서 한 관광지에 갔습니다. 그 곳은 지하 자연 굴로서 약 2킬로미터 되는 굴입니다. 세계에 긴 굴이 많지만 이곳은 특이한 곳이었습니다. 20여분 정도 걸어가니까 마지막이 어두워요. 캄캄하니 보이지가 않아요. 그래서 힘들게 가는데 무슨 소리가 들려요. 아주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데 보니까 빗소리예요.
그런데 점점 다가가니까 아주 큰 폭포소리로 바뀌는 거예요. 앞은 캄캄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위에서 쏟아지는 폭포소리가 들리더니 한 순간에 불을 켜면서, 거기에 맞추어 음악까지 틀어놓으니까 얼마나 장엄 한지요.
'이런 곳이 세상에 어디 있나'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주 넓은 그 공간이 전부 바위로 둘려 있는데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면서 전깃불로 조명을 비추니까 너무너무 놀라워요.
기독교는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악의 긴 터널을 헤매이던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런 새로운 빛·새로운 광명·새로운 축복으로 이끄시고, 하나님께로부터 내리는 어마어마한 은혜가 폭포수와 같이 내려 쏟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방황과, 불의와, 이 세상의 되는대로 살던 허무한 삶은 끝나고 생명의 길·구원의 길·영생의 길·거룩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그를 찬양하는 새로운 축복을 우리에게 내려 주신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광명한 새 길, 거룩한 길로 가게 111되며 이제는 방황도 없고, 저주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를 주의 품안에서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전에서 영원토록 주를 섬기게 하신 이 영광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기독교를 어디에 비유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비유를 했습니다..
"어떤 보화를 찾는 사람이 값진 보화를 발견한 것과 같다". 다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가장 값진 보화를 찾은 그 기쁨을 천국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어디에 비유할 수 있습니까?
저는 <강화도령>에 비유하고 싶어요. 조선 왕조 25대 왕이었던 철종, <강화도령>의 원래 이름은 원범입니다. 나라가 정치적으로 바뀌면 권력에 의해서 상대방은 다 없어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역사입니다. 원범이도 좋은 임금님 슬하에서 태어났지만 부모 형제 다 죽고 자기만 혼자 남아서 강화도로 유배를 가게 된 거예요.
조선왕조에서는 조금만 불리하면 임금님 아들도, 형제도, 처가도 일족을 죽이는 일이 많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아들 방석도 왕위 계승자이었지만 피살당했고 방번, 방간, 모두 다 피살당했습니다.
세조가 등극한 후에도 그의 형제 되는 안평대군, 금성대군이 다 비명에 죽었고.
선조 시대에는 왕자 가운데 영창대군, 임해군, 임성군, 홍안군이 대역죄인으로 다 약사발 들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죽습니다. 내가 잘 될 때 너도 잘 되는, 이 지역이 잘 되면 저 지역도 잘 되는 이런 시대가 되어야지 죽이고 죽이는 역사가 계속 이어가면 안됩니다. 세계가 안 하는 이러한 행동을 빨리 떠나야만 이 민족이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철종이 된 원범이도 겨우 혼자서 그쪽에 가서 남았습니다. 이 원범이가 그곳에서 얻어먹습니다. 누구도 안 알아줍니다. 역적 죄인이 되고 상놈이 된 것입니다. 얻어먹고, 아무데서나 자고, 그렇게 지냅니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과 놀고 지냅니다.
그런데 하루는 자기 친구가 장가를 가는 것을 구경합니다. 다 장가갔는데 원범이만 못 간 것입니다. 그때는 열 두 살, 열 네 살 되어도 가는데 열아홉살 노총각이 못 가고 친구 장가가는데 구경하니 소원이 장가가는 거예요. 내 평생에 갈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그런데 마침 마을 건너에 살며 자기의 처지와 같은 아주 불쌍한 분이라고 하는 여자친구도 옆에 와서 같이 결혼식 구경을 하면서 침을 삼킵니다.
아! 나는 언제 장가가나! 물론 분이도 나는 언제 시집가나!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도 누가 맺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 때 분이가 먼저 자리를 뜨고 자기 집으로 가게 되는데 그 길 건너로 냇가가 있어요.
원범이에게 기회가 왔어요.
결혼식은 더 봐야 소용이 없고, 물 건너는 분이 구경이나 해야 되겠다 하고 먼저 빨리 산등
성이를 뛰어 넘어서 물가에 있는 돌 사이에 숨어서 분이가 물 건너는 것을 보았습니다.
드디어 물을 건너려고 하는데 옛날에는 여자들이 물을 건너려면 치마를 물만큼 걷어올리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건너는데 물이 깊어지면서 치마를 점점 더 올리니까 원범이가 너무 흥분하고 놀래서 그만 자빠졌어요.
물 건너던 분이가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건너다가 어느 남자가 보고 있는 걸 알고 자기도 놀래서 물에서 넘어집니다.
그래서 들고 있던 짚신도 떠내려가니까 원범이가 오히려 물로 뛰어가서 일으키고 신발 주워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침 한양에서 사람이 옵니다.
이조 24대 왕이신 헌종이 돌아가셨는데 손이 없어요. 찾아보니 왕족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제일 가까운 친척인 원범이가 하나 남았는데 강화도로 간 걸 알고 임금으로 모시기 위해서 정승들하고 찾아와서 물어보니까 잔치 집에 갔다 그래서 잔치 집에 가보니조금 전에 있었는데 없다며 저 건너에 간 것 같다고 해서 건너 가보니 분이하고 둘이 거기에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원범이는 자기를 잡으러 온 줄 알고 도망을 치는데 붙잡아 일으키며 그 앞에 정승들이 절을 하니까 원범이는 너무 놀랐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 한양으로 올라와서 철종 임금으로 취임을 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와 같습니다. 한 순간에 죄인이, 역적 죄인이 그리고 하나님과 원수 되어 아무 소망이 없이 '장가 한번만 갔으면...', '먹을 것만 있었으면...','집만 있었으면...' 하는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하나님의 궁궐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에는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하였습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 "나와 함께 즐거워하자 송아지를 잡아라 가락지를 끼워라" 이 말씀과 다를 바가 무엇이있겠습니까?
"발에 신을 신겨라 옷을 가져다 입혀라 내가 기뻐하는 것은 내 아들을 잃었다가 찾았다 죽었다가 살아났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사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땅에 있습니까? 출세에 있습니까? 권력에 있습니까?
우리 인간의 사는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길을 찾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본문에도 "예수의 피로 너를 샀다 건져내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나를 찾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내 스스로가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내 의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찾게 되고, 의로워지게 되고, 구원함을 얻게 되고, 거룩함에 이르는 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버지 집에 와서 그전의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그전의 작았던 소망을 버려야 됩니다. 원범이도 나중에 철종이 된 다음에 제일 잊지 못하는 것이 분이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결국 대비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분이하고 살 수 없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임금이 되었는데도 옛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비가 "이 나라의 대왕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느냐? 온 국민이 우러러보는 나라의 어른이고 왕인데 자꾸 분이만 생각하면 어떻게 하느냐? 이 나라를 위해 큰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데 강화도에 있는 분이만 생각하면 되느냐?"고 말하였습니다.
원범이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이제는 원범이가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서에도 "너희가 전에 어두웠을 때에 행하던 것을 다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전에 좋아하던 취미나 생각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계를 향하여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은 우리 인간의 문제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유일한, 거룩한 이 사명을 버리고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로부터 오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인류를 망치는 것입니다. 가정을 망칩니다. 우리 인간을 파멸시키는 마귀의 무기는 바로 이 세 가지 사랑 즉 돈 사랑, 자기 사랑, 쾌락 사랑 때문입니다.
금번 인천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55명이나 희생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온 세계가 우리 국민을 한심하게 보는 사건입니다. 온 세계가 톱뉴스로 이걸 다루었습니다.
대서특필했습니다.
대만 지진이 일어나도 대서특필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사람이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자연재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이나 기계가 한것이 아니라 사람이 죽인 거예요. 우리 온 국민이 이 청소년들을 죽인 겁니다. 감독기관이 다 받아먹고, 눈감아주고, 그것이 돈 사랑입니다. 주인도 이기적이고, 그곳에 들어간 아이들은 자기생각, 쾌락생각만 한 것입니다. 이 3요소가 뭉쳐서 이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감독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그곳에 한 명도 하나님을 생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몇 푼 안 되는 걸 받아먹고, 눈감아 주면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거예요.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까?
오늘 잘못된 이 사회의 구석구석의 문제들을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 손을 대어서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까?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에 우리의 모든 가정, 사회, 국가가 바로 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새 시대가 올 수 없습니다. 청소년도, 어른도, 사회도, 국가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참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이번에 희생당한 그곳의 학교가 23개 중·고등학교 예요 적게는 한 명이 죽고 많게는 일곱, 여덟 명이 죽었어요. 그런데 두 학교는 사고가 하나도 없었는데 영화여상과 중앙여상이에요. 이 두 학교는 기독교 학교이어서 그 전날 부흥회를 했고 전부 학교에서 기독교 축제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이 모든 불의에서 벗어나고 어두움에서 벗어나는 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이 시대를 바로 사는 길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쾌락을 쫓아가지 아니하고, 이러한 저주의 길에서 벗어나는 길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위엣 것을 찾아야 됩니다. 위를 바라보아야 됩니다. 위에 계신 분을 향하여 우리가 바로 살 때에 우리의 삶도 바로 설 줄로 믿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위를 싫어합니다. 위를 부인합니다. 어른을 싫어해요. 가정에서도 부모님을 싫어해요. 부모님이 짐이나 되고 백해무익하고 아무 소용없는, 쓸데없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없이 누가 있을 수 있겠어요?
부모님 말을 잘듣고 부모님에게 순종할 때에 그 집이 잘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싫어합니다. 선생님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제가 어제 텔레비젼을 잠시 보니까 한인수라고 하는 탤런트가 나왔습니다. 'TV는 사랑을 싣고' 라는 프로가 있는데 옛날 스승을 찾아주는 내용입니다. 그 분이 부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40년 전의 스승을 찾았어요. 교장선생님을 하신 어른인데 나오니까 '선생님' 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절하는 것을 보고 '너는 일류 배우가 아니라 일류 사람이다. 너는 문화인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집에는 낳아주신 부모님이 있고, 학교에는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이 사회에는 지도자가 계시고, 어른이 계시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위에 계신 분이 있습니다. 잘 산다고, 우리가 좀 배웠다고 다 부인하는 겁니까?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도 그것을 다 인정하고 살아갑니다. 우리보다 선진국도 그 질서가 분명한데 왜 우리가 다 버리는 겁니까? 학교가 도대체 뭐가 되는 것입니까? 저는 진정 아무 것도 잘 한 것도, 자랑할 것도 없지만 잠깐 한 가지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하면서 장로님들이 로얄 엑스큐 라고 하는 차를 한 대 사 주셨습니다. 자가용이 나오니까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그걸 안 탔어요. 고향에 저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계셔요. 그 어른은 아직까지 연세가 많은데도 걸어다니시는데 내가 어찌 먼저 타겠느냐 하고 그 선생님께 드리고 저는 한 이년 동안 차 없이 다니다가 그 다음에 샀습니다. 내가 뭐 그리 바쁩니까? 선생님이 잘 안 가르치고 내가 나올 수 있어요? 저는 교회에서 냉장고 해 줄 때에도 제가 먼저 안 쓰고 농촌에 계신 우리 어머니, 저를 낳아주신 어머님께 드렸습니다. 교회에서 TV를 해주었을 때도 어머니에게 먼저 드렸습니다.
오늘 이 학교가 어떻습니까? '교실이 무너진다'라는 특집으로 계속 신문에 다루고 있잖아요. 교실이 서야 되고 가정이 서야 되는 거예요. 든든한 가정, 든든한 교실이 되어야 하는데 다 무너뜨리면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우리 교회에 출석하시는 학교 선생님들이 작년과 금년에 사표를 많이 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선생님들을 매우 부정적인 사람들로 취급을 해서 초등학생도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으니 이런 사회를 만든 것이 누구의 책임입니까?
선생님은 영원히 존경해야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없고, 부모님도 없고, 어른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나라에 아무도 없는 이 사회를 만들어 놓으니 청소년들이 그리 막 뛰는 것입니다.
오늘 이 사회가 모두 날뛰는 것은 누군가 세워야 할 자리에 자기가 섰기 때문입니다.
향락이 그 자리에 다 올라갔어요.
“오 향락이여! 오 술이여! 술의 아름다움이여! 술의 능력이여! 오 음란이여! 동성연애여! 오 마약이여!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위엣 것이 없으면 항상 사람은 그렇게 되는 겁니다.
바르게 되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 성공하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
위를 두려워하면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어요.
위를 바라보고, 위를 존경하면 위에 올라가지만 위를 부인하는 삶은 언제나 아래로, 퇴폐적인 길로 나가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위에 계신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아야합니다.
열왕기상에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되어서 하나님을 먼저 찬양하고 제사를 지낼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솔로몬에게 부귀와 영광과 존귀함을 주셨습니다.
부귀와 영광과 존귀함은 내가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상급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앞세우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주의 교회를 앞세우고,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를 앞세울 때 땅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채워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인류역사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개인이나 민족들이 잘 됩니다.
루불 박물관에 가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림들이 최고의 그림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음악가들이 최고의 자리에 지금까지 서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과학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정치인들이 최고의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정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 보면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자기는 낮아집니다. 종이 됩니다. 자기는 작아집니다. 나중에는 죽기까지 복종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무덤까지 내려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높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 아래 꿇게 하셔서 주님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낮아지십니까? 주님이 여러분을 높이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 때문에 여러분이 적어지십니까? 하나님이 크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나를 죽이는 것, 내 손해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집에도 그렇고 이 원리는 어디서든지 해당됩니다. 집에서 여러분 조금만 적어져 보세요. 내가 좀 부족한 듯 해보세요. 가정의 행복은 저절로 찾아옵니다. 내가 잘난 이상 그 가정은 행복이 없습니다.
내가 남편보다 잘한다? 내가 부인보다 더 많이 배웠다? 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잘난 것으로 인하여 교만하면 그 만남은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그저께 곽선희 목사님과 함께 남한산성에 계신 한경직 목사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금년이 아흔 여덟이예요. 아직도 살아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제가 눈물 흘리면서 목사님 제발 100세 되도록 사시라고 하였고. 남북 통일 되도록 사시기를 바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목사님이 그렇게 오래 사실 줄은 본인도 모르고 아무도 몰랐어요.
본인도 내가 어떻게 정년퇴직까지 살 수 있겠나 그렇게 생각하셨답니다. 너무 약하셨습니다. 폐병으로 미국에 요양소에 몇 년을 계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강단에 올라갈 때 모두 걱정을 했답니다. 저렇게 약해 가지고 오늘 감당 하실까? 또 설교하실 때는 하도 열심으로 하니까 보는 분들이 마지막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총회장님들, 증경 총회장님들이 다 10년 20년 후배들인데 한 목사님을 걱정하던 분들은 오히려 다 돌아가셨어요.
"저런..저런.."그러던 분들은 다 돌아가시고 가장 약한 한 목사님은 아직도 살아 계십니다.
몸을 줄이는 분이 건강합니다. 몸이 자꾸 늘어나는 것이 건강에 좋은 것이 아닙니다. 지난번 신문에 보니까 미국에 480kg 나가는 분이 있어요. 쌀이 몇 가마니예요?
그래서 병원에 실려 가는데 문이 좁아 문을 절단해서 나오는 거예요. 차에 안 들어가는 거예요. 하여튼 데리고 갈 그릇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의 불행이 자꾸자기 몸 불리는 거예요. 자꾸 늘리는 거예요. 내가 커야 되고, 내가 잘나고, 내가 최고고, 내가 높고, 내가 많이 먹습니다. 교회는 여러분을 줄이는 곳입니다. 잘나도 잘난 거 없다라고 여러분을 축소시키는 거예요. 그게 축복이예요. 교회는 부자라고 알아주지 않습니다.
세상은 나를 띄우는 거예요. 풍선처럼 늘리는 거예요. 그러나 교회는 신령한 곳입니다. 몸을 줄이는 거예요. 기도로 줄이고, 회개로 줄입니다.
'나는 죄인이다. 자랑할것 없다'라는 거예요. 자기를 줄이면 줄일수록 영원하게 되고 하나님을 높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현대인들은 내가 높은 줄 알고 하나님 높은 줄을 모릅니다. 내가 좀배웠다고 하나님의 지혜를 무시합니다. 우리 인간이 좀 가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부유하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영원한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바로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수많은 이단들이 자꾸 일어나는 것도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능력이 나타난다고 해서 자기 능력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주신 능력을 가지고 자기 잘난 줄 알고 교만해서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교회가 크면 자기 교회냐 말이예요. 하나님의 교회예요.
나는 언제나 아무 것도 아닌 자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교회는 많은 데도 문제가 있고, 교회가 큰데도 큰 교회로서의 사명을 못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높일 생각을 안하고, 자기가 무슨 기업이나 경영하는 것처럼 자기영광을 찾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서 끝까지 나를 낮추고, 숨기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나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라고 생각하면 집도 잘되고, 나라도 잘되고, 교회도 잘되고, 기업도 잘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
☞첫째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인 주일날,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 교회에 나와서 예배 드리는 것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장소도 가능하면 앉던 자리에 앉는 것이 좋습니다. 1층에 앉는 분은 항상 1층, 자기 자리에 앉으시기 바랍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세요.
아래층에 앉았다가, 2층에 앉았다가, 지하에 갔다가, 되는대로 왔다 갔다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 한 번 정한 자리가 있으면 그 자리를 잘 지켜서 사명을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길이 내가 잘되고 하나님께 영광 되는 길입니다.
☞세 번째는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있는 대로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부부간에도 싸움하지 말고, 안 믿는 사람과 돈 거래하면 신용 잘 지키고,뭔가 말 한마디도 안 듣도록 해야 합니다.
☞네 번째는 사람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해야 합니다. 내 몸과 삶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하고 사람 앞에서 하나님 이 주신 축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물질의 복을 받았느냐?
물으면 ' 한탕 했다' 그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대통령 된 다음에도 '하나님이 나를 시켜주셨다'고 고백해야 됩니다.
미국 대통령도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왜 그 말이 잘 안 나옵니까?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선한 일을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선한 일을 하면 하나님께 영광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새 시대를, 우리 모두 새로운 삶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에 맞추어서 복된 생애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