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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속의 선도,
선도 속의 종교
1. 선․선․단․단(仙禪丹檀)
원형적 의미의 문자들 현대 종교․과학의 약점 보완 기능 선(禪)과 선(仙)은 '사촌지간' "절 안섰으면 도둑소굴 됐을 것"
2. 선승(仙僧)과의 대화
"신선은 단지 오래 살 뿐" 정신이 강하면 육체도 건강 "단전호흡 해서 무얼 해요" 영리한 사람, 선(禪) 수련 힘들어 남자 80명이 수련중 "옥황상제는 부처님의 제자" 정통 선맥(禪脈), 보우선사에 찾아야 '기독교는 노예사상' 가시밭길이나 멋진 인생 금강산 절 안가본 데 없어 참선으로 건강유지 달마선법에 치중 단전호흡하는 승려도 있어 단전호흡, 참선은 수단일 뿐 "사람이 신(神) 위에 있다"
3. 선도문화체계의 비밀
유(儒), 불(佛)사상의 원형은 선도(仙道)인가 선도와 수메르문명의 일치점 동서양사상의 중심은 천․지․인 빛과 불의 문명 세계문화의 구심은 '한문화'
1. 선․선․단․단(仙禪丹檀)
지금까지 선맥(仙脈)을 찾으면서 느낀 것은 순수 우리말이 중국문화의 번성과 더불어 한자말로 바뀌면서 우리말의 원래 음(音)과 의미(意味)가 변형․변질됨에 따라 우리문화의 원형도 따라서 가려졌음을 알 수 있었다. 선맥의 부활은 곧 순수[古代] 우리말의 부활이 전제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일부 학자들은 한자(漢字)도 동이(東夷)의 글자였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선조들은 사물의 형태를 기초로 한 상형문자, 한자와 인간의 발성기관을 기초로 한 소리글자, 한글(가림토)을 동시에 가졌는데 아마도 계층별로 두 문자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으면 한글은 한자의 발음기호였을 수도 있다. 그것이 분리되어 두 문자체계로 발전했음을 가정할 수 있다.
소리는 기(氣)를 구체화․현대화할 수 있는 가장 추상적(보편성)인 실체이다. 글자보다 소리가 먼저이다. 소리에 치중한 우리선조들은 신체와 소리를 예술로 승화시킨 노래와 춤(歌舞)을 즐겼다. 이것은 단순히 문화형태라기보다는 문화체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문화체질이라 함은 그러한 문화전통(원형)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언어(개념․학문)보다는 상징(예술․포괄적 언어)을 좋아하는 문화적 특징으로 나타난다.
상징은 기(氣)의 표현 매체(사물)가 다르긴 하지만 이다. 이런 점에서 언어도 광의의 상징임은 물론이다.
우리말에서 문화적으로 원형적 의미를 갖는 대표적인 글자를 보면 '한()', '선', '무'이다. 이 글자는 역사적으로 시대가 바뀜에 따라 문화의 상부구조(이데올로기)가 교체되어도 소리(발음)는 그대로 유지되고 글자만 바뀌거나 소리와 글자가 바뀌어도 의미가 같거나 한 소리(글자)가 여러 의미를 갖는 문화전략을 택하게 만든다. 바로 동음이어(同音異語)와 이음동어(異音同語)는 언어의 상징성(상징적 효과)을 높이게 된다.
원형적 의미의 문자들
'한'의 뜻은 3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인간이 원시시대에 가장 쉽게 생리적으로 발성할 수 있는 음이 'ㅎ'과 'ㅇ'이다. ㅎ과 ㅇ은 모두 후음(喉音)으로 쉽게 바뀔 수도 있다. 우리문화의 기본적인 말들, 예컨대 해, 흙, 하늘, 하나, 아버지, 어머니 등이 모두 ㅎ, ㅇ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 다음 주목되는 것이 '선'이다. 선은 선(仙)과 선(禪), 선(善)으로 나타난다.
'무'도 무(巫), 무(舞), 무(武), 무(無) 등으로 나타난다. 이와 관련 불(火), 물(水), 불(佛), 문(文)도 주목된다. 예(禮)와 예(藝), 식(息), 식(食)도 마찬가지이다.
이상의 글자들은 추상과 구상, 형이상과 형이하, 관념과 실체 등의 상반-대립된 세계를 나타내거나 조화시키는 개념들이다.
최남선(崔南善), 이능화(李能和), 손진태(孫晋泰) 등은 민속학 연구에서 이러한 어원학적(etymological) 관심을 일찍이 표명한 바 있다. 또 이러한 고대어들의 상호관련성도 밝힌 바 있다.
애부터 밝은 것[朝鮮]을 좋아한 우리민족, 이 점이 유라시아대륙의 동쪽 끝에서 살게 했고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산[白山]을 좋아하고 그런 '산에 사는 사람'(仙)을 이상으로 하여 인생(人生)을 영위했다. 이것이 바로 '산다'라는 동사, '삶'이라는 명사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우리조상들의 '삶'이란 무엇이었을까. 밝( )게 사는( ) 것일까?
이러한 배경으로 볼 때 선맥(仙脈)을 찾는 것은 밝게 사는 방법을 각 시대별로 찾는 것이다. 가장 고대의 것이 '선(仙)'이요, 그 다음이'선(禪)'이요, 그 다음이 '선(善)'이다. 이것은 선교(仙敎, 巫敎)시대, 불교시대, 유교시대의 주 덕목이다.
그런데 역사의 연속성(발음이 같은 데서도 알 수 있지만)으로 볼 때 뒤의 '선'은 앞의 '선'을 계승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강조점은 다르지만…….
한편 앞의 '선'이 타락하면, 즉 본래의 '밝음'을 실천하지 못하면 뒤의 '선'으로 대체된다. 그러나 실은 본래 추구하는 정신(精神)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仙)은 수성(守性)과 수명(守命), 즉 정신(관념)과 육체(실천)를 동시에 중시한 반면 정신의 육체적 실천을 높이 사긴 했지만 선(禪)과, 선(善)은 정신에 편중된 경향이 있다. 이것은 합리주의(合理主義)를 통해 이(理)를 추구함으로써 '이문화체계(理文化體系)'로 발전한다. 자연에 대한 과학주의, 사회에 대한 윤리주의가 그 특징을 이룬다. 유일창조신으로 발전한 기독교와 서양문명은 '이문화체계'의 극단적인 예이다.
선(仙)은 정신과 육체를 이원적일원론(二元的一元論)으로 보고 선(禪, 善)은 일원적이원론(一元的二元論)으로 본다.
전자는 정육합일주의(精肉合一主義)를, 후자는 정육분리주의(精商分離主義)를 추구한다.
선(仙)은 정육합일주의로 무(巫)와 차별성을 갖는다. 한국종교는 아니마(anima) 계열과 마나(myna) 계열로 나뉜다. 선(仙)은 마나 계열로 아니마 계열의 샤만(shaman, 巫)과 구분된다.
선(仙)은 정기(精氣)를 하나로 지키면서 초월성을 유지할 수 있으나 무(巫)는 정(精)과 영(靈)을 분리시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선(仙)이 '오름식 신명(神明)'이라면 무(巫)는 '내림식 신명(神明)'이다.
선(仙)과 무(巫)는 둘 다 '기문화체계(氣文化體系)'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그 편린이나마 볼 수 있는 선도수련은 '기문화체계'의 유물이다. 대체로 이같은 선도수련법, 즉 단학(丹學)은 절의 선승(禪僧)에게 전해져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해 왔음을 더듬어볼 수 있다.
현대의 문화는 물질주의이면서 물질을 아끼고 귀하게 여길 줄 모르고, 고대 선(仙)문화는 정신주의이면서 물질을 아끼고 귀하게 여긴다. 선(仙)문화는 물질을 대상(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정신과 똑같이 우주본질의 표현으로 보기 때문이다.
현대문화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물질을 다룰 정신은 없다. 이는 현대 과학문명이 물질의 원리를 바깥에서 규명하고 기계론적으로 이용하지만 안에서 체득하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기독교문화는 절대적인 신(神)을 강요함으로써 자칫 맹신을 초래하는 점이 없지 않다.
이것은 이기(理氣)철학으로 보면 이(理)와 기(氣)의 불균형의 결과로 보여진다. 이(理)가 강하면 기(氣 ; 物)가 되고 기(氣)가 강하면 이(理 ; 상징)가 된다. 이때 이(理)와 기(氣)는 공(室)과 색(色)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도문화의 우주론에 따르면 '도(道 ; 虛) 신(神) 기(氣) 정(精) 형(形, 육체)'의 순서로 인간발생을 설명한다. 이를 주렴계의 태극도설에 대입하면 '태극(太極) 음양(陰陽) 오행(五行) 물(物, 인간과 만물)'이 된다. 불교의 우주론은 위의 '도(道 ; 虛)', '태극(太極)'의 자리에 '공(空)' 또는 '무(無)'를 두고 '형(形)', '물(物)'의 자리에 '색(色)'을 둔다.
현대 들판과학의 약점 보완 기능
기(氣)는 단순히 기체(氣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체의 탄생을 기점으로 거론되는 것으로 생명학의 근본개념이다. 불교의 공(空)의 개념과 기(氣) 개념의 만남인 공기(空氣)의 개념은 우주를 감각적인 차원의 물질로 보는 한계를 극복하고 존재가 아닌 소통(疏通)으로 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우주는 바야흐로 '바람구멍이 난 소통체계'인 것이다.
선도의 개념으로 볼 때 오늘날 우리의 기독교는 절대신에 인격을 불어넣은 반면 이성(理性)을 과학의 전유물처럼 만들어 최악의 경우 신을 빙자하여 잘못된 인간이 과학을 인류 멸망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불교는 절대초월적인 자아를 설정하여 물(物), 즉 자연의 세계를 인간의 마음(心), 또는 관념의 세계로 환원시켜 마음과 물 사이의 엄청난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자칫 현실적응력을 상실케할 위험이 따른다.
유교는 또한 사회윤리적인 차원의 강조로 인하여 우주의 본질에 도달하는 힘과 자연을 실질적으로 다루는 능력을 감소시켜 자칫 공리공론(空理空論)에 머무르게 할 소질을 갖고 있다.
이상을 다시 선도체계 '도(道, 虛) 신(神) 기(氣) 정(精) 형(形)'의 선상에서 논한다면 기독교는 특정 신(神)을 절대화한 결함을 갖고 있고 불교는 도(道)와 형(形) 사이를 연기(緣起)로 설명하면서 단순화 또는 관념으로 대체할 위험(과정을 생략한)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로 너무 심(心)에 치중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유교는 또한 이기(理氣) 중 이(理)에 치중하여 기(氣, 物) 자체보다는 이(理)에 대한 대응개념으로 기(氣)를 다루어 이(理)를 공허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이는 기독교의 '신(神)', 불교의 '심(心)', 유교의 '이(理)'가 정신과 물질의 균형감을 상실했을 때 오는 폐단이다. 이는 종교 자체의 결함이나 폐단이라기보다는 그것을 믿고 사용하는 인간의 부족, 아니면 위의 세 종교의 시대적응력의 상실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각 시대는 따라서 시대에 맞게(효능이 있게) 종교를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종교의 탄생을 요구하게 된다.
각 종교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도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에선 부정적인 작용이 두드러진다. 우리가 고대선도문화체계의 부활을 오늘에 다시 시도하는 것은 거기서 무엇인가 희망적인 힌트나 암시를 받고자 함이다.
우리가 현대문화를 종교와 과학으로 대입시켜보면 '불교+기독교+유교+과학'의 인간상을 갖는다. 형이상학은 불교와 기독교가, 사회는 유교가, 형이하학은 과학이 맡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관통하지 못하고 심한 분절적 양상을 보인다.
이같은 분절상을 일관성있는 체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선도'가 가장 적합하다. 선도의 장생(長生)은 유교와 과학에, 불사(不死)는 불교와 기독교의 핵심 내용과 맞아 떨어진다. 물론 장생과 불사의 의미가 현대적으로 확대재생산되어야 할 것이다. 장생을 위해서는 과학의 발달과 사회윤리적인 제도의 정비가 뒤따라야 하고 불사를 위해서는 신(神)에 대한 개념의 정립과 죽음에 대한 철학이 성립되어야 한다. 살아서는 장생(長生)이고 죽어서는 불사(不死)인데 이것을 하나의 연속적인 체계로 본 것이 '장생불사'이다. 오늘날 우리시대는 결국 생(生)과 사(死)에 대한 문화의 집대성과 체계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은 '몸 밖'에서 이룩되는 이과학체계(理科學體系)'를 '몸 안으로 체득하는 기과학체계(氣科學體系)'로의 전환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선도문명체계는 원래 기과학체계였는데 이것이 유교, 기독교(뉴턴적 물리학)에서 이과학체계로 변모했다.
전자를 생물학적 체계라 한다면 후자는 물리학적 체계라 할 수 있다. 또 전자를 '관계(생성)의 체계'라면 후자를 '존재(결정)의 체계'라 할 수 있다.
불교(유교)는 기과학체계와 이과학체계의 중간에서 묘하게 이를 종합하고 있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는 지리적으로도 동양과 서양의 중간지점에 있다. 그런 점에서 불교의 선(禪)이 선도의 선(仙)을 포함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선(禪)과 선(仙)은 '사촌지간'
불교가 절대신관과 기계론적 자연관 대신에 자연과 초자연을 연속적으로 보는 우주체계를 이룬 측면은 이를 잘 말해준다. 이같은 불교체계의 중심은 인간이다. 인간 스스로의 깨달음(覺)․견성(見性)을 최고의 가치로 본다.
한국의 선(禪)불교는 서천(西天) 28조(祖)이면서 중국의 초조(初祖)인 달마조사(達磨祖師)의 계통에 속한다. 따라서 한국의 선승(禪僧)들은 달마조사선법을 정통적으로 삼는다. 선법은 화두(話頭)를 수도의 근간으로 한다. 이 방법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생각이 멈추는 데서 시작하는 특징을 갖는다. 선(禪)수행은 우선 계(戒)를 지키고 마음을 안정시켜 지혜를 얻는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의미한다. 이를 삼학(三學)이라 한다. 이는 부처를 맞이할 마음의 터(田)를 닦는 것으로 수성(守性)을 뜻한다. 선도의 단전호흡이 수명(守命)에 치중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선승(禪僧)들이 선수행을 하면서 조식(調息), 즉 단전호흡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선승들이 건강을 유지하면서 하루 20시간의 용맹정진을 하기 위해선 단전호흡이 최선의 수단이었을 것으로 유추된다. 더욱이 정혜쌍수의 정(定), 즉 마음의 안정은 바로 선도수련의 '지감(止感)․조식(調息)․금촉(禁觸)'의 지감(止感)에 해당하는 점이 많다. 선(禪)과 선(仙)은 확실히 사촌지간이다.
선(禪)은 인도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인도의 전통선은 요가이다. 고대의 요가는 정신과 육체를 이원론적인 입장에 두고 육체의 고행에 의해 정신적 자유를 얻으려는 고행 위주의 수행이었다. 이것은 우주의 원리인 브라만과 개인 속의 진리인 아트만, 즉 범아일체(梵我一體)로 발전한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천인일체(天人一體)와 상통한다. 석가모니는 처음 선인(仙人)에게서 당시 최고의 선정을 배웠으나 이것은 육체의 고통으로 '사후의 해탈'을 구할 뿐 현세의 해탈을 구할 수 없어 이를 버리고 일상생활 중, 즉 '현세의 해탈'을 실현코자 하였다.
대승불교에서는 선정(禪定)은 더욱 능동적인 것이 되어 지(止)와 동시에 관(觀)을 추구하게 된다. 지(止)는 선정(禪定)을, 관(觀)은 있는 그대로를 꿰뚫어보는 반야지(般若智)를 의미한다. 여기의 지관(止觀)은 앞서 정․혜(定慧)와 같은 뜻이다.
대승유식종(大乘唯識宗)과 중관학파(中觀學派)를 통합한 원효대사(元曉大師)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가운데 '수습지관좌선법요(修習止觀坐禪法要)'에서 '천태소지관(天台小止觀)'을 독자적으로 이해하여 정리했다. 원효의 '지관' 가운데 요점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만일 지관을 닦고자 하면 우선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아 단정히 앉고 뜻을 바르게 한다. 기식(氣息)과 형색(形色)과 공(空)과 4대(四大 ; 地․水․火․風) 및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에 의지하지 않고 일체의 상(想)과 이를 따르는 염(念)을 제거해야 한다. 모든 현상이 본래부터 일정한 모습이 없으므로 모든 생각이 나거나 없어지지도 않거니와 또한 마음 밖의 생각경계를 따라간다 해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마음으로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若修止者 住於靜處 端坐正意 不依氣息 不依形色 不依於空 不依地水火風 乃至 不依見聞覺知 一切諸想 隨念皆除 亦遺除想 以一切法 本來無相 念念不生 念念不滅 亦不得隨 心外念境界 後以心除心)({한국불교전서}, 제1권, p. 782).
② 만일 마음이 달아나 흩어지면 마땅히 잘 수습하여 바른 생각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의 바른 생각이란 오직 마음인 것이니 그밖의 다른 경계는 없다. 곧 이 마음에 되돌아가는 것도 스스로의 본디모습은 없기 때문에 실체를 잡을 수 없다.
원효는 유가종의 '9종심주(九種心住)'의 내주심(內住心)에서도 기식(氣息), 형색(形色), 4대(四大) 등의 모습과 6진(六塵)의 집착을 깨뜨릴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지관'이 숨쉬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경지에 들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인도의 선이 중국으로 전해진 것은 후한(後漢)시대이지만 {능가경(楞伽經)}에 의한 능동적 선은 북위(北魏)시대의 보리달마에 의해서이다. 달마 혜가(慧可) 승찬(僧璨) 도신(道信) 홍인(弘忍) 혜능(慧能)으로 이어진다. 중국의 선은 위의 지관(止觀)과 여래의 생활선(生活禪)을 종합, 발전시킨 것이다.
우리나라에 선불교가 들어온 것은 9세기로 달마선이 남북종(南北宗)으로 갈라지기 전 4조(祖) 도신(道信)에게서 선법을 전수받은 통일신라 초기 법랑(法郎)에 의해서이다. 그후 법랑의 재자 신행(信行)이 신수(神秀) 계통의 북종선을 전했다. 그러나 선이 신라에서 유행한 것은 남종선(南宗禪) 계통의 지장(知藏)으로부터 선법을 전수받은 도의(道義)와 홍척(洪陟)이 귀국하여 선법을 펼친 후부터 구산선문(九山禪門)이 형성되었다.
가지산문(迦智山門 ; 寶林寺), 실상산문(實相山門 ; 實相寺), 동리산문(桐裏山門 ; 泰安寺), 성주산문(聖住山門 ; 聖住寺), 봉림산문(鳳林山門 ; 鳳林寺), 사자산문(獅子山門 ; 雙峯寺 興寧寺), 수미산문(須彌山門 ; 廣照寺), 사굴산문(闇?山門 ; ?山寺) 그리고 희양산문(曦陽山門 ; 鳳巖寺)이 그것이다.
이 중 오늘날 선원(禪院)으로는 동리산문의 전북 곡성 태안사와 희양산문의 경북 문경 봉암사가 있다. 나머지는 기도처가 되거나 폐사되었다. 태안사에는 현재 조실(祖室) 청화(淸華)스님 아래 20여 명의 납자가 3년 결제(結制) 등으로 정진중에 있다. 특히 봉암사는 구산선문 중 가장 선풍이 왕성한 곳으로 조실 송서암(宋西庵) 스님 아래 80여명의 남자가 결제와 산철이 없이 정진하고 있다.
"절 안섰으면 도둑소굴 됐을 것"
필자가 봉암사 송서암 큰스님(83세)을 찾은 것은 3월 7일. 선맥(仙脈)의 실질적인 맥을 찾기 위해 선문(禪門)을 찾기로 결심하고 선풍(仙風)이 가장 왕성한 이 절을 찾은 셈이다.
봉암사는 40억 불사로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비롯 대규모 선방(禪房)을 새로 마련하고 옛 본당과 선방인 동당(東堂)을 건물째로 이전, 재배치하고 있었다.
이곳 동당은 중세근대 한국불교 선종사에서 유서 깊은 곳이다. 고려중기의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고려 후기의 태고(太古) 보우(普愚)가 이곳에서 선수행을 했을 뿐 아니라 경허(鏡虛), 만공(滿空), 보월(寶月), 금오(金烏), 효봉(曉峯), 청담(靑潭), 성철(性徹) 등 기라성같은 큰스님들이 이곳을 거쳤다.
봉암사의 자연경관도 신비스러워 희양산의 독수리 봉과 날개봉, 구룡봉(九龍峯) 등 봉 같은 바위와 용 같은 골짜기로 가득차 있다. 마치 봉황이 구름을 뚫고 날아가는 듯하고 물줄기가 사방을 둘러싸 이무기가 바위에 누운 듯했다.
전설에 따르면 희양산문의 개창조가 된 지증도헌(智證道憲)이 그를 따르던 심충(沈忠)의 소개로 이곳을 방문하고 "이 땅을 얻은 것이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승려들이 살지 않는다면 도적굴이 될 것"이라 감탄했다고 한다. 또 주변에는 선녀탕, 옥석대가 지금도 선경(仙境)을 연상시키며 우화등선(羽化登仙)을 깨닫게 한다. 절 앞을 흐르는 용곡천은 그대로 옥수(玉水)이다. 또 희양산 중간중간에는 용추토굴, 월봉토굴 등 크고 작은 토굴이 있어 수도자들이 참선을 하고 있다. 이곳 토굴의 수도자들은 특히 단전호흡을 하지 않으면 건강유지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주위의 설명이다.
봉암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1100년 전 신라 헌강왕 5년(서기 829년)에 창건됐다. 그후 고려 태조 18년(서기 935년)에 정진대사가 중창했으나 임란 때 사찰건물의 대부분이 불타 55년에 대웅전을 비롯, 여러 건물을 세웠다. 지난 82년부터 특별수도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 청정수행도량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직을 맡으며 종단화합에 앞장서고 있는 서암 큰스님의 조실채를 찾은 것은 밤 10시가 지나서였다. 초행이라 길이 서툴러서 몇 번이나 길을 바꾼 뒤에야 절에 도착했다. 이번 봉암사행에는 10여 년 전 서암 큰스님의 행자생활[性悟行者]을 하다가 환속하여 선도수련원 '백두산족국선도'를 내고 있는 청도거사(淸道居士) 이판암(李判岩, 48세)씨가 동행했다.
청도거사는 선(禪)과 선(仙)을 함께 체득한 까닭에 필자가 목적하는 선(禪)과 선(仙)의 친연성을 찾는 데 큰 실마리를 제공했다.
더욱이 청도거사는 대종교(大宗敎)에도 관계해 단군성조(檀君聖祖)와도 맥을 닿고 있다. 또 그의 할아버지인 이중건(李仲乾)은 일제 때 증산교의 일파인 보천교(普天敎)의 전라남도 선정사자(宣正士者), 즉 접장(接長)이었다. 따라서 선도(仙道)의 근대의 고대, 근대의 맥을 받고 있는 셈이다. 즉 통시적, 공시적으로 선도(仙道)의 맥을 찾기 위한 좌표의 접점에 있는 인물이다.
필자가 여러 정보를 종합한 바에 따르면 송서암 스님은 선승(禪僧)이지만 단전호흡이나 물구나무서기[頭坐] 그리고 외단(外丹)인 금액환단(金液還丹) 즉 금단(金丹)을 제조하는 기술까지 가졌다는 것이었다. 즉 서암 큰스님은 내․외단(內․外丹)에도 통한 인물일 것으로 추측됐다.
그는 80이 넘은 고령에도 척추가 꼿꼿하며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가부좌자세에 흐트러짐이 없을 정도였다. 성오행자의 말에 의하면 눈이 좀 나빠졌을 뿐 건강은 10년 전과 다름없어 보인다고 한다.
서암스님과의 대담은 첫날 저녁과 다음날 아침, 점심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간간이 불자들의 문안으로 중단되긴 했지만 그런 대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2. 선승(禪憎)과의 대화
요즈음 건강은 어떠신지요. △ 여러분이 걱정해주신 덕분에 좋습니다. 속세와 멀리 떨어진 공기와 물 좋은 산 속에 거처하고 있으니까요(대담은 3월 7일 오후 10시부터 자정까지, 8일 오전 10시 30부터 정오까지, 그리고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서암스님은 대담이 진행되는 동안 가부좌자세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잔잔한 목소리로 종교와 불교의 선(禪)과 선(仙)의 연관성에 대해 들려주었다). 선거철을 앞두고 나라가 혼란스럽습니다. 각종 불법타락선거와 사리사욕(私利私慾)으로 인한 종교간의 갈등 등……. 이럴 때일수록 불문(佛門)에 기대를 해봅니다. △ 우리종단 내부의 갈등, 강남과 강북의 종권싸움도 쉽사리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아요. 종교인으로서 송구스럽습니다. 정칙가나 종교인, 나아가 국민 모두가 주체적인 정신과 선견지명을 발휘하면 난마(亂麻)가 풀리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정책이 옳다 해도 국민이 따라주지 않을 경우 종교문제뿐 아니라 민생문제조차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하나의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가령 길을 가다가도 객(客)이 버릇없는 아이를 꾸짖으련 그 아이는 고분고분 말을 들었지요. 말하자면 우리사회에 '어른'이 있었습니다. 요즈음은 이런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사라지고 있는데……. △ 그야말로 인간이 사는 시대가 아니라 금수(禽獸)가 사는 시대로 전락한 느낌입니다. 이는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찌들고 병든 까닭이지요. 그렇다고 수수방관만 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전체가 대오각성해 도리(道理)를 실천한다면 점차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불교를 비롯해 종친의 자정(自淨)작용이 기대되는 때입니다. 불교가 앞장서 그 역할을 해냈으면 합니다. 사실 불교는 서민과 아주 밀접하고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사회발전에 이바지한 공(功)도 크고요. 저희가 오늘 스님을 찾게 된 동기도 현 시국과 무관치 않고 과거 불교전통을 더듬어 원효대사, 보조, 지눌국사 등 큰스님들의 맥(脈)을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우리불교사는 1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국가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같이 했고 신라․고려 때는 불교가 성하면서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게 없어요. 불교문화가 활짝 꽃을 피웠다가 조선조의 배불숭유(排佛崇儒)정책과 일본의 영토불교정책으로 우리불교는 크게 위축됐죠. 영토불교정책은 불교를 병들게 하고 대처승(帶妻僧)과 비구승(比丘僧)을 양성, 한반도에 일본식 불교를 유행시켰습니다. 광복 이후 오늘날 종교의 자유화가 이뤄졌지만 우리나라는 '종교백화점'이라 부를 만큼 각종 종교가 다 모여 있습니다. 기독교나 가톨릭은 국가정책에 힘입어 융성해졌지요. 십자가는 날로 늘어나고 기독교계통의 학교도 급속도로 확장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북한은 유물사관에 입각한 정책을 펴면서 형식상으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종교를 탄압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보면 종교는 국가정책에 크게 좌지우지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종교 자체보다도 정치인의 입김에 영향받지요. 그런 것 같군요. 80년에 일어난 불교법난이나 정부가 사사건건 불교행정에 간여한 느낌이 드는데요. △ 모든 게 다 저희 승려들이 못났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정상적이지 못하고 파행을 겪은 것도 한 원인이고요. 종교는 민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문화를 주도하는 종교가 병들면 사회도 병들게 됩니다. 서양종교 하면 위대한 힘을 떠올립니다. 기독교가 종속적 맹목적 신앙을 조장하는 종교라면 불교는 '인본(人本) 신본(神本)사상'을 기초로 신의 힘을 빌리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잘못은 인간이 저지르는 것이므로 책임도 인간에게 돌려야 하지요. 흔히 말하는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인본사상을 근거로 한 진리입니다. 부처도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면 될 수 있습니다.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사상은 인간본위의 사상이란 측면에서 일맥상통합니다. 인간이 각자의 도리를 다할 때 사회는 발전하고 인간의 윤리․도덕이 무너지고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이탈할 때 나라의 혼란은 가중됩니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입니다. 서양에서 르네상스혁명이 일어나면서 '신(神)은 죽었다'고 선포했지요.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에 불과합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이 근본이지요. 그게 바로 부처의 근본사상입니다. 진리가 잘못됐다는 것은 모든 문화가 병들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불교란 말은 '진리'를 의미합니다. 바꿔 말하면 모든 생명체가 어긋나지 않은 반듯한 길을 가는 것을 말하죠. 신라와 고려 때는 정치에 불교정신을 가미, 문화의 원동력이 됐고 사회가 안정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유교는 국가정책의 근간을 이뤘습니다. 전시대가 모두 그러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년에 사색당파로 나라가 어지럽고 끝내는 외세의 침략을 맞게 됐습니다. 5천 년 역사를 자랑하던 나라가 오랑캐로 불리던 일본에 지배당한 것은 문화가 병들었고 기본이 되는 종교가 병들었기 때문이지요. 불교를 서양종교와 동일시해서는 곤란합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서양종교는 신의 노예입니다.
"신선은 단지 오래 살 뿐"
우리 선종(禪宗)의 역사는 중국 육조 혜능으로부터 맥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혜능(慧能) 남악(南岳) 마조(馬祖)로 알려진 전통을 혜능 무상(無相) 마조로 이어진다는 것을 [세계일보]가 밝혀냈지요. 중국 당나라 때 일로서 우리역사 왜곡이 심했습니다. 무상스님은 신라승(憎)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선종은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놀라운 발전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효(元曉)스님은 잘 아시다시피 대단하신 분이었죠 당시 인도 유식불교(喩識佛敎)와 중관학파(中觀學派)를 섭렵,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등 많은 저작물과 주석서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원효스님은 인도나 중국에 가지 않고도 당대의 지식을 어떻게 섭렵하고 깨달았느냐는 의문이 남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우리민족에게 그러한 사상을 소화해낼 그릇이 있었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유불선(儒不仙)의 토대가 된 선(禪 혹은 仙)이 힘이 되어 유식불교와 중관학파를 통합했다고 보는데 스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 학자적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요. 그런데 태양이 안 비치는 곳이 없듯이 마음이 통하면 모든 이치에 닿습니다. 원효는 보통 승(僧)이 아니라 도를 닦은 분입니다. 그는 {기신론(氣信論)}이나 {화엄소}, 소를 타며 지었다는 {우악소} 등 많은 저서를 남겼고 중국에 들어가던 중 촉루수(觸縷水 ; 해골물)를 마시고 도를 깨친 후 중국에 갈 필요가 없어 돌아왔다는 얘기가 전하지요. 또 경상남도 척판암 이야기나 화엄 벌에서 대중 1,000명을 제도한 이야기는 원효가 단순한 승려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가령 원효가 수련에 정진하고 있는데 중국에 있는 승려들의 한 선방 건물이 곧 무너질 것을 아셨죠. 만일 선방이 무너지면 그곳에서 수련하던 1,000여 명의 중생이 죽게 되었어요. 원효는 판자에 글을 쓴 후 신통력으로 집어던졌습니다. 판자가 날아다니니 대중들은 하도 신기해서 서로 잡으려고 나섰지요. 대중들이 건물을 다 빠져나가는 순간 건물이 무너지고 판자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 판자에는 해동원효는 척판구중(판자를 던져 대중을 구했다는 뜻)이란 글귀가 써 있었다고 합니다. 화엄사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기적은 신기한 것도 못됩니다. 불교의 이치를 통하면 유불선의 모든 것을 통하게 됩니다. 원효의 신통력은 현세에 인도의 요기․요가가 불 속에 뛰어들어 살아남는 것을 볼 때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을 이론적으로만 따지려 들면 잘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일상적인 범인의 눈으로 보면 신기한 일로 받아들여지지만 제가 보기에는 거기에도 이치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 그렇지요. 이 세상은 이치로 움직여지는 것이지 이치에 벗어나는 게 어디 있습니까. 가령 4차원의 세계를 논할 때 실존철학과 유물철학이 터득하지는 못하면서도 인정하고 있거든요. 하이데거, 융, 야스퍼스 등 철학자들도 불교철학을 말했고 육식, 칠식, 백정식 등도 미세한 이론으로 되어 있지 어디 맹목적인 것은 아니지요. 단지 그 이치를 모를 뿐이지요. 참선선자 선(禪)과 신선선자 선(仙)은 한글발음이 같은데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비교를 좀 해주세요. △ 우리말에 신선(神仙)이라는 말이 있지요. 신선은 음식을 먹지 않고 물욕(物慾)이나 오욕락(五慾樂)을 끊고 공기만 먹고 삽니다. 말 그대로 산에서 살아가는 사람인데 누구든지 원하면 신선이 될 수 있지요. 그리고 신선은 육체를 근본으로 닦아나가는 게 원래 의미입니다. 반면에 참선선자 선(禪)은 생사(生死)를 초월하는 것이죠. 신선은 몇천 년을 산다 해도 결국 죽으니 엄밀한 의미에서 생사를 초월했다고 할 수는 없지요.
정신이 강하면 육체도 건강
원효스님이 청화산에 계실 때 일입니다. 옛날에는 화덕에 불을 지펴 추위를 달랬지요. 참나무를 화덕에 넣고 손을 대지 않으면 불이 일 주일 정도 갑니다. 집집마다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는데 하루는 불이 꺼진단 말이에요. 몇 달이 가도 안꺼지는 불인지라 원효스님이 가만히 살펴보니 어떤 키가 큰 이가 찾아와 밤새도록 화덕의 불을 제쳐대니 꺼질 수밖에. 원효가 "너는 누구냐"고 묻자 그는 "금강산에 사는 신선입니다"고 대답했지요. 원효는 다시 "내가 알기로 신선은 춥고 배고픈 것을 모른다 하던데……" 하자 "네 그렇습니다. 전에는 저도 춥고 배고픈 것을 몰랐는데 이제 죽을 때가 되어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어요. 원효가 또 "그러면 너는 얼마나 살았느냐"하자, 신선은 "얼마나 살았는지는 모르나 동해바다가 육지가 되고 육지가 바다로 변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하고 대답했어요. 이게 오래 살았다는 말이지. 이름은 '영랑선인(永郎仙人)'이었어요. 원효가 그를 붙들고 "봐라. 오래 사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죽음이 닥치면 공포가 엄습하지. 이것은 샘이 있는 '유류법'인데 샘이 없는 '무류법'을 해야 돼"하고는 생사를 초월하는 선법(禪法)을 영랑선인에게 준 일화가 있습니다. 영랑선인은 이미 물욕이나 오욕락이 없어 금방 생사를 초월하는 선인(禪人)이 됐어요. 영랑선인이 영랑조사가 됐죠. 선(禪)이란 것은 근본을 꿰뚫어버린 것이고 신선이란 오래 사는 것을 목적합니다. 그러나 좀 더 살아도 하루살이에 불과합니다. 요즘 단전법(丹田法), 흡기법(吸氣法)을 하게 되면 건강이 좋아지고 추위나 더위를 모르지요. 몇 백년을 살면 뭐합니까. 이제 선과 참선의 다른 점이 명확해지지 않습니까. 네 아주 명확하군요. 저희 범인의 입장에서 좀더 사는 것도 해볼만하죠. 안 그렇습니까. △ 우선은 그렇지만 젊어서 죽으나 늙어서 죽으나 죽는 사람은 다 똑같애. 죽는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결국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생사를 초월하는 게 중요하지요. 신선은 깨끗하게 살았으니까 아무래도 다른 사람보다 참선선자 선(禪)으로 들어가기가 쉽겠군요. △ 그렇지. 그들은 물욕을 이미 끊어버렸으니까. 오욕락, 즉 재(財)-색(色)-수(壽)-명(名)-낙(樂)을 끊지 않으면 신선이 못돼요. 절에서는 승려들이 참선을 합니다. 물론 오래 살기 위해 참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러면 승려들은 신선이 하는 단전(丹田)을 하지 않고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십니까. △ 그런데 사실은 건강을 특별히 유지한다는 게 건강에 나쁜 겁니다. 사자나 호랑이가 건강법을 알아서 오래 사는 것은 아니거든. 건강을 위해 온갖 것을 해먹고 향락을 누리기 때문에 건강을 해치는 거지.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오욕에 빠지지 않는 것이 건강법입니다. 이 세상에는 비타민 A다 비타민 C다 하여 복용하고 난리인데 안 먹고도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거든요. 인간이 아는 지식은 극히 일부분이고 그것만 이용해서 살잖아요. 스님 중에는 몇 달을 안자고도 사는데 의학적으론 충분히 자야 건강하다고 하지요. 공산주의 유물사상에 따르면 8시간 일하고 8시간 잠을 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자유주의 노동법도 비슷한 골격을 유지하고 있지요. 이처럼 인간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불교는 참선을 하면서 적게 먹고 적게 잡니다. 정신이 강하면 물질도 따라오는 법이거든요. 정신은 모양이 없어요. 둥글지도 모나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아요. 육체는 정신과는 달리 아름답고 추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형태가 있지요. 그런데 화가 나면 코 끝이나 손가락에서 화를 내는 게 아닌데도 사람이 추하게 느껴집니다. 왜 모양도 없는 정신에서 이런 현상이 나올까요. 인간뿐 아니라 다람쥐도 먹이를 빼앗으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아요. 탐욕(貪慾)이란 참 묘한 거죠. 정신으로부터 나오는 탐욕이 발동하면 몸이 부서지기까지 한다는 겁니다. 하나 더 예를 들어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전장에서 사망했다는 부고를 접하면 미치는 경우를 보게 되죠 정신이 이같은 작용을 만들어내고 정신의 힘이 얼마나 큰지 증명되지 않아요. 세상사람들은 정신의 힘을 알지도 못한 채 자기가 아는 지식의 범위 내에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인생을 살아가지요. 정신은 그야말로 무한한 자원이군요. △ 그렇지. 정신은 형체가 없으니 구애를 받지 않아요. 정신이 본래 자신의 생명이야. 몸은 정신의 일부분이고. 몸뚱이에 아무리 입히고 치장을 해도 얼마 후에는 쓰러져 사라질 존재입니다. 주객이 바뀌어 위대한 정신이 노예로 전락했지요. 선가(禪家)는 이러한 정신을 파악했어. 정신은 불생불멸이야. 태어나지도 않기 때문에 죽지도 않지. 고깃덩어리 육체는 없어져도 정신은 살아 있어요. 꿈 속에서 범이 좇아와 삼키려 하면 도망을 가게 되지. 도망을 다니는 주체는 정신이지 몸이 아니거든. 꿈을 깨고 나면 속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쫓아다닌 환상은 사라졌지만 속은 주체는 자기입니다. 장신은 불생불멸이고 제 삼자가 보기에 죽었다 해도 본인은 항상 그대로이므로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정신은 또 우주를 다 들이마셔도 형체가 없으니까. 조금도 비좁지 않아요. 그런가 하면 바늘구멍에 집어넣어도 들어가지요. 모든 우주가 자기한테서 나왔다는 거야. 삼라만상 만물도 마찬가지죠. 서양종교에서 인간은 왠지 왜소하고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신의 노예가 되어 전전긍긍합니다. 걸프전 때 후세인은 알라신의 명령이라며 쿠웨이트를 내놓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다국적군의 힘에 밀리자 재빨리 신의 명령이라며 후퇴하지 않았어요. 인간지혜가 없어 신에 대한 맹신으로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거죠. 종교가 병들면 인간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친다는 단적인 예입니다. 그러면 종교란 무엇입니까. △ 종교는 '근본된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만인이 따라갈 수 있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어야 해요. 미신적인 것이 어찌 종교가 될 수 있나요. 그래서 저는 서양종교를 종교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불교는 논리정연한 이론체계를 갖추고 있어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은 불자(佛子)가될 수 없습니다. 8만 4천 법문이 바로 이론체계이지요. 8만 4천은 숫자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끊임없는 망상, 즉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사를 초탈한다는 말은 좋습니다. 선계(仙界)를 보면 살아 있는 세계뿐 아니라 죽음의 세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선종(禪宗)도 그렇고……
"단전호흡 해서 무얼 해요"
△ 생사를 초월하면 무슨 문제가 되나요. 죽음 후의 세계는 한이 없지. 죽음을 달관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여기 얽매이고 저기 얽매이니 죽음을 앞두고 초조해지지. 비슷한 예로 짝사랑하던 사람이 사랑을 성취하지 못하고 죽게 되면 죽어서도 그런 세계가 나타나. 사랑귀신으로 변해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다닌단 말이야. 이런 일은 한 번이 아니고 무한정 일어나요. 모든 것은 그치는 법이 없이 흘러갑니다. 마시는 물도 땀으로 배출되고 다시 증발되는 등 끊임없이 순환됩니다. 우주공간에서 이합집산할 뿐입니다. 인간의 육신도 마찬가지이죠. 뼈와 살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미워할 줄도, 사랑할 줄도, 고통을 느낄 줄도 아는 정신이 어찌 사라지겠어요. 정신과 죽음의 정체를 알 때 그림자에게 속지 않게 됩니다. 성인이나 참선하는 사람은 착란이 없고 꿈을 꾸지 않아요. 누워 잘 때도 죽을 때도 착란이 없으니 자유롭고 그 상태가 해탈이죠. 평범한 사람은 자기 전생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다. 티베트의 승려들은 이를 알고 있는데 참선하는 사람은 더 잘 기억해요. 서양의 최면술로 '옛날의 자기'를 찾아보면 잠재의식은 전생을 기억해냅니다. 그러나 원래 상태로 깨어나면 전혀 그 사실을 모르죠. 인간의 죽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어쩌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연속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 △ 본시 나고 죽는 것이 없어. 중생이 미혹행위를 착란으로 보는 거야. 아편세계나 담배세계를 형성하면 사후의 세계에서 그런 세계가 형성되듯이 자기가 자기세계를 만들어갑니다. 한번 그 세계에 빠지면 고통받는데 오욕을 익히지 않으면 고통을 받을 리가 없습니다. 자업자득, 인과응보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산다는 소리는 죽는다는 소리입니다. 종이의 안쪽과 바깥쪽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안쪽이 바깥이요 바깥이 안쪽입니다. 아무리 얇게 쪼개도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지금 이 찰나에도 우리몸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생과 사는 양 수레바퀴처럼 붙어 있으므로 100만 년 산다는 것도 무의미한 일입니다. 생사가 없는 도를 믿는데 무슨 괴로움이 있나요. 시간과 공간의 개념도 중생들이 만든 것이야. 스님,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보통사람은 미망이나 착각속에 사는 데 이 삶이 옳은가요, 아니면 해탈하며 살아야 합니까. △ 이 세상 사는 데 만족하면 그만이지, 만족이 안되고 애욕에 탐닉하니 문제야. 해탈하면 더욱 좋고……. 환생은 모든 만물이 유전함을 말합니다. 사물에는 이치가 따르듯이 환생에도 법칙이 있는지요. △ 법칙은 간단합니다. 자기가 행한 대로, 즉 자기가 만든 업보(業報)에 의해 결정되죠.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공기(空氣)와 흡기(吸氣)에서 기(氣)의 어원은 무엇입니까. △ 기는 기운(氣運)을 말합니다. '사람은 기운이 있어야 한다', '기가 살아야 한다'는 등 여기서의 기는 기운을 의미하죠. 흡기나 기합술도 기운을 얻어야 가능하고 적을 물리칠 수도 있죠. 기를 이용해 작용을 많이 하는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 혹시 기를 축적하는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시지는 않는지? △ 단전호흡 같은 것을 해서 무얼해요. 하루 삶을 연장하는 것보다 '왜 사는가'를 깨닫는 일이 중요하지. 불교는 오래 사는 데에 연연하지 않아요. 다시 원효스님 이야기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그는 삶의 단계를 거쳐 가면서 많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앞으로도 그만큼 훌륭한 스님이 나올까요. 원효스님께서 직접 환생할 수도 있을 터이고……. △ 원효스님은 생사를 초월한 분으로 달관했기에 할 일이 없습니다. 미욱한 중생의 입장에서 답답하니 윤회다 뭐다 얘기하지 무엇에 구애받겠어요. 다만 환속한다면 중생을 건지기 위해 보살로 나오시겠죠. 관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도 그러한 분 중의 하나이고. 그렇다고 해서 꼭 학자로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짐승의 몸을 쓸 수도 있지요. 우리나라의 태고(太古) 보우선사(普愚禪師)가 제주에서 말이 되어 임금을 교화했다는 일화가 전해내려오잖아요. 해탈한 입장에서 보면 짐승이 되건, 사람이 되건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지옥이나 천당이나 다 똑같으니까요. 그들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자비를 베풀러 나올 수는 있지요. 부처가 되어 어디 있든지 상관없다면 상대적 세계를 초월하는 것 아닙니까. △ 그 자리는 상대적 세계가 아닙니다. 자기가 가진 경지에서 자꾸 따지면 높은 경지를 이해할 수 있어요? 불교의 가르침 중 '불이법(不二法)'이란 게 있습니다. 이는 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그렇다고 하나도 아닙니다. 하나라는 말은 벌써 둘을 지칭하니까요. 자기 스스로 깨우쳐 아는 게 중요하지 남이 아무리 말해도 그 경지를 이해할 수 없어요. 우리가 꿈 속에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막힌 부분을 뚫어야 합니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면 도(道) 아닌 것이 없어요.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도 진리란 말이야. 부처가 와서 일러줘도 자기바탕 위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결국 깨달음은 스스로 얻어야 해.
영리한 사람 선(禪) 수련 힘들어
저희 같은 중생이 깨달음을 얻는 법을 한마디 일러주실 수 있다면? △ 먼저 불교용어 '공겁(空劫)'을 알아야 합니다. 겁은 장구한 우주세월을 의미하므로 공겁은 우주가 생기기 이전을 지칭하지요. 지구는 태초에 불덩어리였다고 하는데 우주가 탄생하기 직전 기류가 이합집산했다고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중생의 입장에서는 무한한 세월이 흘렀다고 합니다. 지구가 생기기 전에도 생명체는 있었지요. 세상의 전생명체는 태(胎), 난(卵), 습(濕), 화(化), 즉 불교의 4생(四生)을 벗어나는 게 없습니다. 이 4생의 근본은 똑같습니다. 부처니 사람이니 짐승이니 어느 것이 우수하다고 말할 수 없는, 말하자면 차별이 없는 자리지요. 차별이 있다면 단지 헛된 것에 사로잡혀 진리를 보지 못하는 무명(無明) 탓이지요. 착란을 일으켜 허깨비를 보았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불교의 12인연, 즉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근(六根),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등 가운데 첫번째 무명 때문에 차별이 생긴 것입니다. 무명을 깨치면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없어집니다. 세포가 살아 숨쉬는 육체는 100년만 지나도 사라지지 않아요? 그러므로 있다고 할 수 있나요. 색즉시공(色卽是空)이요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유형의 만물[色]이 결국 없다[空]는 말입니다. 몇 천 년을 살 것으로 착각하고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고들 있지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색 드물어요. 유(有)가 공(空)한 것이란 것을 깨닫게 될 때 안목이 열린다 말이지. '본래 깨끗한 자기를 찾자'는 게 불교의 가르침이라, 부중생(不中生) 부중멸(不中滅), 난 것도 아니니 죽은 것도 아니란 말이지.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시간도 공간도 없어. 일 순간이 하루가 될 수도 있고 몇천 년이 하루가 될 수도 있는 거지. 이 모든 게 자신이 지은 업(業) 때문이야. 이러한 근본방법을 아는 것이 선방(禪房)에서 말하는 '조사공안(祖師公案)'이지. 조사공안이 뭐냐하면 인간 저울대로 따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지. 인간이 아무리 따져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자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어. 눈을 뜨고 아무리 멀리 쳐다본다 해도 몇억 만리를 볼 수 없고 귀도 마찬가지야. 코와 우리몸이 느끼는 것은 극히 미약한 부분에 속하지. 이런 잣대로 우주를 파악하려고 덤벼드는 게 우스꽝스러운 일이야. 선수련(禪修鍊) 중 제일 공부하기 힘든 사람은 영리한 사람이야.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가 석사, 박사보다 더 늦게 깨달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도(道)를 빨리 깨우치거든. 속칭 세상에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머리속에 든 보잘것없는 지식을 던져버리기가 힘들어요. 선방(禪房)에 들어와 선수련을 하려면 먼저 기존의 지식보따리를 던져버리고 들어와야 해, 참선은 공(空)에서 출발하는 거야. 반똑똑이보다 멍텅구리가 낫지. 조사공안(祖師公案)이 란 무엇입니까. △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조사공안의 원리이지. 가령 '어떻게 구속된 자기에서 벗어나 깨달을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뜰 앞의 잣나무다'라는 화두를 던진다. 이는 불교의 선문답, 즉 질문에 대한 동문서답의 답이지. 깨닫지 못한 사람은 통하지 않는 법이야.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빌공(空)자와 빌허(虛)를 저희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군요. 허탈이다 해탈 이전이다, 깨달았다, 깨닫지 못했다고 따지는 것도 다소 우스꽝스럽습니다. 태고(太古) 보우(寶愚)스님이 보살행의 말(馬)로 환생했다고 하는데 이때 말은 깨달음을 갖고 나옵니까 아니면 깨달음과는 별개입니까. △ 태고스님의 얘기군요. 먼저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려고 말로 환생했다는 사실에 착안해야 해요. 조선조 때 불교탄압이 심해 승려들은 장안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태고 보살이 임금을 깨우쳐주기 위해 말(馬)로 환생, 임금의 지혜를 일깨웠다는 전설이 전해옵니다. 이때 말은 깨달은 존재이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성현이 변신하고 있는 모습이니까요. 석가모니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으며 앞으로 불교는 어떻게 전개됩니까. △ 그 질문은 부싯돌에 불을 켜 불이 일어났는데 부싯돌에 영원히 불이 켜질지 묻는 질문과 같습니다. 이치는 불변입니다. 석가모니가 태어나기 이전에도 있었고 그가 없어진 뒤에도 변하지 않고 있어요. 불교는 어느 시대에나 차이가 없습니다. 인간이 모든 이치를 발휘하지 않으면 없어진단 말이야. 불교는 '바로 본다'는 이치가 담겨져 있으므로 옳은 것만 받아들이면 되지요.
납자 80명이 수련중
불교 이전이나 이후에도 불교적인 원리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원리는 있으되 우주가 진행되면서 진리라는 옷을 갈아입을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 진리는 불변이라 불(火)은 불로 나타나지 물(水)로 나타나지는 않는단 말이야. 불교라는 이름을 붙이든지 아니면 다른 이름을 붙이든지간에 이름만 달라질 뿐이야. 역사는 같은 원리와 내용에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리는 불교 이전에도 있었고 설사 현재 불교란 이름을 사용하더라도 이치와 법도에 어긋나면 불교가 아니지요. 그렇다면 불교도 인간이 붙인 코드(부호)에 불과하군요. 부처라는 말도 중생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 사용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봉암사는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어느 파입니까. 또 어떤 종류가 있습니까. △ 저희는 희양산문(曦陽山門)에 속합니다. 희양산문은 지증(智證)이 경북 문경 봉암산에서 개산한 선파(禪派)로 현재 남아 있는 구산선문가운데 가장 활발하죠. 나머지 구산선문에는 전남 장흥 보림사(寶林寺)의 가지산문(逃智山門), 전북 남원 실상사(實相寺)의 실상산문(實相山門), 전북 곡성 태안사(泰安寺)의 동리산문(桐裏山門), 강원도 강릉 굴산사(?山寺)의 사굴산문(闇?山門), 충남 보령 성주사(聖住寺)의 성주산문(聖住山門), 전남 화순 쌍봉사(雙峯寺)의 사자산문(獅子山門), 경남 창원 봉림사(鳳林寺)의 봉림산문(鳳林山門), 황해도 해주 광조사(廣照寺)의 수미산문(須彌山門) 등이 있습니다. 현재는 희양산문과 동리산문만 정진중에 있고 나머지 7대산문은 기도처로 변했죠. 봉암사에는 몇 명 정도가 수련에 정진하고 있나요. △ 평소에는 80여 명의 납자(納子)가 수련에 임하고 있지요. 그러나 하안거(夏安居), 동안거(冬安居) 때에는 110명 정도가 선방(禪房)에서 정진하고 있습니다. 인원은 철에 따라 약간씩 변하고 있지요. 죄송스러운 질문이지만 스님께서는 몇 분의 제자를 두셨는지……. △ 별로 제자를 기르지 못했어요. 이론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처사께서 참선을 해보아야 이해할 수 있지요. 저는 인연이 없나 봅니다. △ 인연이야 만들면 되지요. 세상에서 말하는 사주팔자와 불교의 인연은 다릅니다. 불교는 인간중심의 합리적 종교예요. 인간문제가 곧 우주문제이니 하나의 이치를 깨달으면 전체를 알 수 있습니다. 껍데기를 더듬고서 안다고 할 수는 없지요. 세상 사는 사람이 전부 스님이 되면 어찌 됩니까. △ 모든 사汰?스님이 되면 태평천하이지. 좋은 것은 좋을 수록 좋은 게 아닙니까. 나쁜 것은 하나만 나빠도 나쁘고……. 스님이 된다는 말은 나 같은 사람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도(道)를 깨우친 사람이 된다는 말이니 많을 수록 좋지요. 천상이 평화스러운데 무슨 걱정인가(웃음). 제가 말씀드리는 건 그게 아니고요. 스님이 되면 자식을 낳지 않게 돼 자연히 대(代)가 끊기게 되는데……. △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 물질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사람들이 도(道)를 깨우치면 모두 도인(道人)이 되어 영원히 살 텐데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요. 그런데 처사님은 한꺼번에 다 알려고 하는데……. 네, 제가 욕심 이 많은 편입니다. △ 이 세상에서 욕심이 제일 많은 분은 부처님이지. 국회의원이다 시의원이다 하여 갖은 수단을 동원, 자리욕심을 내잖아. 그런데 부처님은 왕위(王位)를 버리고 더 큰 것을 얻으려 하니 이보다 욕심 많은 사람이 어디에 있어. 부처님 욕심은 이른바 '버리기 위한 욕심'이지. 중생구원을 위해 '한바탕 연극'을 했다고나 할까. 우리가 깨닫기 전에는 그 경지를 알 수가 없지.
"옥황상제는 부처님의 제자"
저도 석가모니가 욕심이 많았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았어요. 아마도 그 분이 헛고생 한 것 같습니다. △ 헛고생(웃음)! 처사님이 보시기에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만일 처사님께서 부처님이 헛고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여기에 있지도 않았겠지요. 아, 그렇게 됩니까……. 원효(元 )나 서산대사(西山大師) 등 고승(高僧)들이 선(仙)을 이해하고 상당한 경지에 이른 분으로 압니다. 스님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 있을 수는 있는 일이지요. 선(仙)은 서양종교와 달리 인본사상을 바탕한 합리적 종교이지. 불교도 합리적 종교입니다. 인간 밖에 신을 두고 맹목적 신앙을 하는 기독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요. {금강경(金剛經)}에서도 말했듯이 어떤 종교처럼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든지, 기적을 행사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다 사도(邪道)입니다. 소리나 색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이죠. 자기 스스로 깨우쳐야지 바깥에서 나오는 어떤 경계에 현혹되어 따라가고 맹종하는 것이야말로 미신이지요. 맹목적인 것이 극에 이르면 미쳐버립니다. 이런 사상을 불교에서는 제일 금하는 것이지요. 동양의 도교(道敎)를 불교에서 비방할 이유가 없어요. 이치에 맞기는 맞아요. 우리동양의 하늘사상은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말이지. 동양의 하늘은 진리의 대명사입니다. 바른 길을 찾아가는 사람을 천심(天心)이다,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하지요. 이게 천(天)입니다. 반면에 서양종교는 여호와신, 알라신이 하늘을 창조했다고 말하지요. 부모에게 효도하고 친구와 우애(友愛)가 있어도 그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즉 우주만물을 창조한 신에게 복종하라는 거지요. 서양종교는 신본주의(神本主義)이거든. 이론체계도 없는 맹목적 신앙이지. '신이 있으니 신을 믿으라'고 강요하잖아. 신에 대해 물으면 신성불가침으로 금기시하지. 내세울 만한 이론체계가 없으니 강제성을 띠는 거지. 유교는 공자사상인 윤리․도덕을 가르치는 종교요, 불교에서는 유동보살이 인간으로 나타나 유교의 공자가 되었다고 하지요. 동양철학에 나오는 옥황상제는 전지전능한 신(神)이 아니라 하늘에서 진리를 다스리는 인간이라고 봅니다. 동양에서는 창조설이 없지요. 선(仙)은 오래 살기 위해서, 혹은 오래 산다고 보기보다 인간의 오욕락(五慾樂)을 무시하고 착하고 순탄하게 사는 도를 말합니다. 동양의 선교(仙敎), 도교(道敎), 유교(儒敎) 등 3종교는 '악을 버리고 착한 것을 닦는다', 즉 목적지가 일치하지요. 서양은 그게 아니야. 신이 우주를 만들었으니 다른 것은 소용없다, 이런 입장이지. 인도는 시바신, 힌두신을 모시고, 또 석가모니도 제7대신으로 받들지만 기독교는 못들어갑니다. 기독교의 여호와신이 독불장군처럼 떠들어대니 안된다는 것이죠. 힌두교는 그런 신들과 똑같이 위대한 신이라 보지요. 이와 대조적으로 기독교는 여호와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주장하거든. 불교는 다른 신을 배타적으로 배척하지 않아요. 누구나 착하기만 하면 부처지, 차별이 없다는 말이야. 근본적으로 동서양의 종교는 달라. 글자 많이 안다고 유식한 건 아니지. '종교는 매 한가지'라는 넋빠진 소리를 하고 다니거든. 맹자님도 그랬지. 글자는 몰라도 국가에 충(忠)하고 형제간에 의리(義理)가 있고 내외간에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면 그 사람이 학자라고 했어요. 글자 많이 아는 것은 '살아 있는 사전'이지 학자는 아니지요. 동양의 유․불․선이 그래도 서로 통하네요. △ 유불선이란 말은 유생(儒生)들이 만든 말이지. 유교를 먼저 놓고 다음에……. 같은 이치에 닿으니 서로 통하지. 착한 사람은 복받고 악한 사람은 벌받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펴고 있잖아요. 불교에서는 유교철학, 도교철학 일체를 다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33천, 28천 등 하늘의 세계를 무한히 말하고 있지요. 하늘의 옥황상제는 부처님의 제자란 말입니다. {서유기(西遊記)}는 소설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삼장법사가 등장하는 서유기는 유․불․선 전체를 포괄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정통 선맥(禪脈), 보우선사에 찾아야
도교(道敎)와 선교(仙敎)를 구분하는 사람도 있던데요. △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 도교와 선교는 뿌리가 같은 종교입니다. 불교도 역시 오욕을 저버리면 신체에 신통이 나는 것이고 선교에 가까운 사상이거든. 선도(仙道) 수련장에 가보면 정심(正心), 정시(正視)辯, 정각(正覺), 정도(正道), 정행(正行)이란 말이 있습니다. △ 네, 바른 마음을 갖지 않으면 수련이 안돼요. 물질에 탐닉한다든가 오욕락에 천착하면 수련이 되지 않아요. 동양사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봅니다. 서양종교는 죄(罪)를 지어도 천국(天國)에 갈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합니다. 때문에 '젖비린내도 안나는' 놈이 범행을 저지르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지요. 유교나 도교, 불교는 기독교와는 달리 태교(胎敎)에 큰 비중을 둡니다. 아니 태교도 늦다고 가르칩니다. 훌륭한 자녀를 두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올바른 수양을 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요즘은 태교는커녕 태어난 후에도 안가르쳐요. 잘못을 꾸짖고 사랑의 매를 때리는 교사를 고발하고……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제멋대로 교육받았으니 당연한 귀결이지요. 그런데도 신(神)만 믿으면 천국간다고 하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어요. 북한의 김일성(金日成)처럼, 어릴 때부터 신(神)이라는 마취제를 정신(精神)에 주사하고 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지요. 자기 부모는 가짜 부모이고 하나님만이 진짜 부모라고 가르치고 있잖아요. 2000년 전부터 하겠다는 심판이 지금까지 연기되고 있고……. 이처럼 기독교는 중생을 미혹하고 있는 거예요. 세상은 참 어리석고 바보스럽습니다. 그렇게 속고도 또 속고 있으니……. 일본만 가도 전혀 먹혀들지 않아요. 얼마나 어리석은 국민인지. 헛된 소리는 들어도 옳은 소리는 안들어. 이제 국민들이 정신차려야 할 때가 됐어요. 그리고나서 '인간교육(人間敎育)'을 시켜야 합니다. 대학교수에게 학생들이 달걀세례를 퍼붓고 총장의 멱살을 잡는 등 도의가 땅에 떨어졌죠. 종교인의 본래 사명은 '정신세계'를 제도하는데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추구한 것도 금은보화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정신세계를 지향했지요. 오늘날 사람을 미혹케하여 돈을 빼앗고……. 그것까지는 좋은데, 돈을 모아 양로원, 고아원 등 사회복지사업을 합네 하고 있는데 그걸 종교인이 해야 되나요. 종교인은 정신세계를 제도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인이 세상을 바로 보는 안목이 부족해요. 정치 종교뿐 아니라 언론공해도 심각해요. 무엇이 올바른가를 판단하지도 않고 기사를 작성하는 게 오늘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잘못된 일을 북돋워주고 권장해야 할 일을 짓뭉개버리니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밝은 정치, 밝은 종교, 밝은 언론이 될 때 나라가 바로 설 것 같습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정심, 정시, 정각, 정도, 정행 등도 불교에서하는 선(禪) 수련과 관계가 있습니까. △ 우리불교도 사악수선(捨惡修善), 즉 악을 버리고 착함을 닦는 수련이지요. 이것이 불교의 기본 가르침입니다. 계행수신(戒術修身), 술을 먹지 말아라, 여색을 멀리 해라 등 기본되는 계율을 지키고 수련에 정진해야지. 피가 탁해가지고는 절대 수련이 되지 않아요. 모든 종교는 선(善)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이지 악(惡)함을 통해 들어가는 것은 없어요. 첫째 바탕이 계행이고 다음이 안정입니다. 또 지혜를 얻어 참선에 들어갑니다. 지켜야 할 계행들은 필요에 의한 것이지 부처님이 심술을 부려 만든 것은 아닙니다. 불교 속에도 바르게 수행하는 법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바르게 산다는 말은 밝게 산다는 겁니까. △ 옳지 옳지. 밝게 살 때는 모든 것이 밝게 보입니다. 밝다 어둡다 하면 명확히 구분됩니다. 밝음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나요. 그래서 불교는 보시를 중요시합니다. 남을 위하는 삶이 곧 자기를 위하는 것임을 알게 될 터이니까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선사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실천하는 지성인의 모습을 저희에게 보여 주셨는데……. 속세에 있는 저희들은 그래서 그를 우러러보는 편입니다. △ 만해스님은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보시행위를 한 것이죠. 자기 일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대의에 희생의 길을 걸은 게 위대한 점이죠. 이야기 주제를 다시 선(禪)으로 돌렸으면 합니다. 선(仙)과 관련된 선맥(禪脈)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 우리불교는 그런 맥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중생들이나 전통이다 뭐다 하지 잠꼬대 같은 얘기입니다. 태고(太古) 보우(普愚)스님과 보조(普照) 지눌(知訥)스님 중 어느 분이 정통 선맥을 잇고 있습니까.
'기독교는 노예사상'
△ 아무래도 태고 보우선사 쪽으로 보아야 합니다. 태고 보우선사나 보조 지눌선사 모두 똑같은 불자이지요. 우리나라 불교는 중국 육조혜능(六祖慧能)의 맥을 이었습니다. 중간에 인물이 잘나면 파(派)가 생기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논합니다.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부처님 제자이면 그만이지. '내 불교다', '네 불교다'하며 따지는 건 무의미합니다. 생사를 초월하는 자리에서 칭찬도 있을 수 없고 비난도 있을 수 없습니다. 단지 싸움하기 좋아하는 패거리들이 편을 갈라 하는 쓸데없는 짓이지요. 태고종(太古宗)과 조계종(曹溪宗)도 마치 김씨(金氏), 이씨(李氏) 문중(門中)이 서로 옳다며 싸우는 당파싸움에 다름 아닙니다. 세상이 바로 서면 검은 것과 흰 것이 저절로 판가름날 거예요. 고약하고 사악한 사람이 설쳐대지 않는 정의사회가 실현돼야 하지요. 예전에 비해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의식주가 해결됐지만 정신이 썩어 큰 일입니다. △ 참으로 큰일이지요. 아름다운 풍속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근검절약할 뿐 아니라 차가 안가면 내려서 밀어주는 등 이웃간의 온정이 넘쳤지요.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조그마한 일에도 불평을 늘어놓고 욕설을 퍼부어대니 아마도 인간교육 부재 탓이라 봅니다. 나는 이 세상에 독소가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마르크스․레닌 유물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서양 기독교사상이지요. 전세계 인류를 마취시켰던 유물사상은 점차 기울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재산만 공동으로 분배하면 행복하다는 게 마르크스․유물사상이죠. 인간이 물질로 행복을 얻습니까. 물질만으론 살 수가 없어요. 똑같은 조건에서 같은 양의 물질을 배분해도 건강한 사람, 약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같은 만족을 누리지 못합니다.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 항상 그늘진 마음을 가진 사람, 사람마다 다릅니다.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똑같은 비를 맞고도 쓴 풀, 단 풀, 질긴 풀, 부드러운 풀이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지 않아요. 머리가 좋을 수도 있고, 둔할 수도 있으며 건강한 사람도 있고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데모한다고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이에 못지 않게 인류에게 미치는 독소는 아까 말씀드렸던 기독교사상입니다. '신이 우주를 지배한다', 공산주의보다 더 지독한 독소지요. 인간이 지혜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으니 기독교가 신을 내세워 인간을 신의 노예로 만들고 있지요. 일본은 기독교라는 독소를 잘 막아냈는데 비해 우리는 아편에 완전히 마취됐죠. 제 나라 조상은 섬기지 않고 남의 나라(이스라엘) 조상을 섬기고 있으니 병들 수밖에 없어요. 자, 우리는 물에 빠졌어요. 정신을 차리고 민족정신을 되찾아야 하지요. 종교는 종교를 믿게 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아요. 교육이 교육을 위해 존재합니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 교육을 시키는 것이지요. 우리국민의 지적활동이 너무 사대적인 것 같습니다. 일본 정신문화와 비교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 일본은 2차세계대전 때 패전국입니다. 전승국인 미국이 일본의 정신을 매수하지 못했지요. 일본인은 미국에서 전도단이 왔을 때 어떻게 했어요. 정신문화를 꽃피우기 위해 살해했습니다. 그러자 전도단은 발을 붙이지 못하고 줄행랑치지 않았나요. 흔히 일본인들은 한국인이 너무 지조가 없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서양은 기독교가 쇠하고 불교를 수입하기 급급한데, 우리는 그와는 정반대로 전통을 버리고 교회가 득시글득시글거립니다. 한국민족만큼 넋빠지게 사는 민족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봉암사(鳳巖寺)는 언제, 누가 창건했습니까? 저희들이 아침에 일어나 절 주변을 돌아보니 보물이 많은 것 같던데요. △ 이 절은 신라 헌강왕 5년(서기 879년) 지증대사(智證大師)가 창건했습니다. 특히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희양산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제가 참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와 좋은 말씀도 듣고 공양도 하고……. △ 본시 대장부가 어디간들 밥을 굶겠소. 또 우리나라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어디를 가도 경치가 좋아요. 삼천리 금수강산에 태어난 것은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외국에 많이 나가보지는 못했지만 한국만큼 경치가 수려한 곳은 찾아보지 못했어요. 미국에 가보면 허허벌판에 왔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처럼 아기자기한 산이 전국에 걸쳐 뻗어있는 나라는 별로 없어요. 내가 다시 환생한다면 나는 한국에 태어날 겁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강토는 찾아보지 못했어요. 예부터 우리민족은 파란곡절을 많이 겪었지요. 쇠끝을 제련할 때 두드려야 강해지듯 대한민국을 단련시키기 위해 시련을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특히 나는 복을 갖고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왜 그런고 하니 내가 태어날 무렵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소학교부터 모진 고생을 했습니다. 그 파란 속에 얼마나 고생하며 자랐겠어요. 이제 나는 과거를 회상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소학교 때는 고학을 하고 밤에는 과자를 들고 어른이 모인 곳에 찾아가 팔았죠. 우리어른(부친)이 독립운동을 하다 가산이 기울어 나는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았고, 때문에 어릴 때부터 '인생이 무엇인가'를 자각하며 살았습니다. 때때로 너무 힘이 들어 자살하고픈 충동을 느끼곤 했는데 돌이켜보면 흐뭇한 일도 많았지요. 우연히 스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도 자부심이 있었어요. {세계문학전집}을 비롯해 {삼천리}, {조광} 등 문학잡지를 읽는 문학소년이었지요. 학교에서는 일제항거를 주제로 연극공연을 하다 요주의 인물로 지목받았지요. 나이에 비해 조숙한 편이었지. 중학교시절 목사를 찾아가 인생문제를 두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는데 기대에 못미쳐 산사(절)를 찾았습니다. 친구 중에 김경헌이라는 손윗사람과 함께 절에 놀러갔다가 노승들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해보니 깊이가 있고 막힘이 없더군요. 그 분이 말씀하시길 "네가 지금까지 보고 듣고 배운 것을 털어버리고 네 소리 한번 해봐라"했지요. 나는 꽉 막혔어요. 또 "네 몸이 형성되기 전 이야기를 해봐라"는 등 질문이 이어질 때마다 나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인생을 논해도 그렇고 철학을 논해도 그 분은 막힘이 없어 저로서는 도저히 당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호기심으로 한두 번 놀러갔다가 '나도 중이 되어보자'는 결심을 했어요. 그러나 스님은 "아무나 중노릇하는 것 아니다"라며 안받아주더라고요. 내가 자꾸 졸랐더니 "그러면 2년 동안 내 밑에서 머슴살이하면 시켜주지"하고 대답했어요. 내 나이 16세로 건장한 젊은 청년이었고 일을 잘하니 기분좋아하시더군요. 2년간 행자생활을 하면서 밤에는 공부하곤 했지요. 그러고도 3~4년이 지난 후에 사마계를 받았습니다. 은사스님의 이름이 이화산(李華山)입니다. 화산스님은 금강산 속초 근처에서 태어났습니다. 금강산에 반해 중이 된 분입니다. 내가 정식으로 계(戒)를 받은 것은 21세쯤 됩니다.
가시밭길이나 멋진 인생
서암(西庵)스님께서는 일평생을 절에서 보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스님되신 일을 후회해보신 적이 없습니까. △ 참 잘왔다 생각해요. 지금 금방 죽어도 후회는 없어요. 만일 내가 정신세계를 모르고 세상에 살았다면 아들딸 낳고 살거나 아니면 학생을 가르치는 직업을 택했을 겁니다. 참 부럽습니다. 그동안 수행과정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여러 단계가 있는 줄 압니다. 수련 도중에 어려웠던 일화 한 토막을 얘기해주십시오. △ 왜정 때 나라 빼앗긴 설움만큼 더 큰 설움은 없습니다. 그래서 국내에 머물러서는 안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일본대 법문학부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하고 방학 때는 노가다 일꾼으로 변장해 두 달 정도 학비를 벌었어요. 그땐 한국사람은 '조센진'으로 불려 막노동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었어요. 이력서에 거짓으로 노동경력을 꾸며 들어가곤 했습니다. 사람을 저울질로 등급을 매겨 임금에 차등을 주었지요. 가끔 일 능력에 따라 급료를 높여주기도 했는데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나는 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돈을 벌어 공부하기 위함이었죠. 각반을 치고 노동현장에 투입돼 일했는데, 특히 수천 명의 노동자가 섞여 일하기 때문에 일본인과 한국인을 구별하기 힘들었지요. 또 일본어 회화도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어 의사소통에 애를 먹었지요. 나는 1급 노동자로 분류돼 가장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터에 배치됐습니다. 그러나 일하는 모양새가 서툴러 한번은 쫓겨날 뻔했습니다. 난 반장에게 사정사정했죠. "나는 학생이다. 학비가 없이 일하러 왔다"고 사정했더니 그는 나에게 "너는 뭘 잘하나. 나도 학비가 없어 어렵게 고학을 했다"며 일말의 동정을 했어요. 때마침 절에서 가마솥 밥을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나는 "밥을 잘한다"고 대답해 취사반에 다시 배치됐지요. 절에서 배운 밥솜씨는 인기가 대단했어요. 수백 명의 밥을 큰 목간통에 하다보면 반은 늘고 반은 설익기 일쑤인데 저는 적절하게 익은 밥을 했던 거지요. 내가 처사님께 밥을 잘하는 비결을 알려드리지. 먼저 물을 끓여 쌀을 씻은 후 찬물을 솥에 넣고 그 위에 다시 끓는 물을 넣으세요. 지피던 불을 꺼내고 훈기로 밥을 하면 삼층밥이 되지 않아요. 또 나는 고학을 하기 위해 고물장사, 우유배달, 신문배달 등을 하며 동경 거리를 헤매고 다녔지요. 그래서 지금도 눈을 감으면 동경 거리가 환하게 떠오릅니다. 고생을 했어도 인생을 재미있게 보낸 것 같습니다. 출가하신 후 공부를 계속하신 겁니까. △ 그렇죠. 불경을 공부하다 서양학문도 접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내 나이 23세쯤 되던 해 일본대 법문학부에 입학, 비교종교학을 수학했지요. 그때 나보다 한 해 먼저 정두석씨(전 태고종 종정, 동국대총장 역임)가 이곳서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정씨가 일본어에 능하지 못해 내가 유창한 일본어로 많이 도와줬지. 일본인의 한국차별은 특히 심했어요. 그들 사이에는 '조센진'과 '개'에게는 집을 빌려주지 말라고 했지요. 팻말에다 써붙여놓고 방을 안빌려준 것이지요. 내가 일본인 행세를 하여 한국인에게 많은 방을 빌려주었습니다. 그후 광복이 되었지요. 또 6․25를 겪었지요. 구구절절 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역사를 보냈으니 멋진 인생 아닌가요(가슴 아픈 추억들을 되새기면서도 서암스님은 인생을 달관한 듯 멋진 인생으로 연출하는 여유를 보여줬다). 6․25동란 직후 지리산 칠불사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인민군이 국군이라며 내려와 죄없는 승려를 괴롭혔지요. 똑같은 종족이고 인민군이라 해도 전혀 표시가 나지 않잖아요. 나중에는 국군과 인민군이 구별되지 않는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났단 말이오. 곡예로 말하면 상당한 난이도가 높은 연기를 한 격이군요. △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지요. 남이 보기에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가시밭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멋진 인생이라 생각해요.
금강산 절 안가본 데 없어
여든셋의 나이에도 어떻게 이처럼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지요(禪수련에 단전호흡을 응용하고 있음을 이끌어내기 위한 유도질문이었다. 서암스님은 이를 간파한 듯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 아까 말했던 일본유학중 3년간 폐병을 앓았어요. 고학하는 사람이 폐병에 걸렸으니 어떻게 되겠어요. 건넌 방에 살고 있던 이종익씨가 나를 업고 대학병원에 데려갔죠. 일본인 의사는 나와는 대화를 하지 않고 이씨와 속삭이더군요. 나는 궁금한 나머지 의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내 병 고칠 수 있소?" 일인의사는 "병을 고칠 생각은 있습니까"라고 반문하더군요. 나는 "당신이 의사이니 의학적으로 묻는 것이요. 거기에만 대답해주시오. 하루를 살든 1년을 살든 나는 개의치 않으며 단지 참고하고 싶어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1년간 입원하라고 권했죠. 문제는 1년은 고사하고 하루도 입원할 비용이 없었다는 겁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졸업 1년을 앞두고 고국으로 귀국했습니다. 우연히 길가에서 은사를 만났는데 그 분이 나에게 교편잡을 것을 권하더군요. 나는 폐병 때문에 1년을 못넘긴다고 생각하고 내 마지막 인생을 꿈나무 양성에 바치기로 결심했죠. 한쪽 호주머니에는 신문지를 둘둘 말아 늘 넣고 다녔어요. 학생들에게 침이 튈까봐 대단히 조심했어요. 신문지에 뱉은 핏덩어리는 방과후 산에 올라 소각하여 파묻었지요.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1년이 무사히 넘어가고……. 난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어요. '인간은 신비한 존재다. 그냥 죽지는 않을 것이다.' 왜정 때 병원에 가본 후 지금까지 병원 한 번 가본 적이 없습니다. 의학도 엉터리가 될 수 있구나 싶었지요. 난 의학에 내 몸을 맡길 수가 없어 교편을 던지고 절로 입산했어요. 지금도 간혹 젊은 중이 병이 나면 병원에 못가게 막습니다. 고귀한 생명을 기계적으로 다루는 병원에 맡길 수는 없으니까요. 난 아픈 데에도 관심이 없어요. 병에 신경을 쓰는 것 자체가 병을 부르기도 하니까요. 사경(死境)을 헤매던 사람을 치료해준 적도 있지요. 아마 30~40년 전, 광복 후의 일입니다. 학교는 달랐지만 일본유학을 같이 했던 친구입니다. 그 친구의 생질이 곱사등이인데 울고불고 했었어요. 나는 병은 자신이 지은 업으로 생기니 그 매듭만 풀어주면 낫는다고 이야기했지요. 그 자리를 떠나면서 병을 고칠 수 있는 진언을 주고 외우라고 했어요. 1~2년 후 그 댁을 지나다 또 들렀더니 그 곱사처녀가 깨끗하게 나아 싱글벙글 하고 있었습니다. 4~5년 전에 내가 여기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처녀는 이제 중늙은이가 되어 찾아와 "스님 절 모르시겠습니까"하더군요. 기적 같은 일이지요. 금강산에서는 어느 절에 계셨습니까. △ 마하연, 장안사 등 금강산 일대 내가 안머무른 절이 없지요. 아마 1943년쯤 일이지요. 아름다운 금강산에 대해 말씀 좀 해주시죠. △ 이런 말도 있잖아요. 중국사람이 내 일생에 소원이 있는데 금강산 한 번 보고 죽었으면 원이 없겠다고. 예로부터 금강산을 보지 않았으면 천하산수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했지요. 유명한 시인 김삿갓이 금강산에 가서는 천하의 산은 오르면 들은 것보다 못한데 금강산은 들은 것보다 낫다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금강산에 관한 김삿갓의 재미난 일화가 있지요. "단장을 짚고 구름을 휘저으며 세 발짝 떼어놓고 서서 산을 휘둘러보니, 산은 푸르고 돌은 희며 사이사이에 초록빛이 비치더라. 이 경치는 화공을 불러 그릴 수는 있겠는데 아름다운 새소리는 어찌할꼬." 요즘 같으면 사정이 다르겠지. 녹음기로 새소리를 녹음하면 되니까. 또 이런 시도 있지요. "산과 구름이 다같이 희니 이를 가릴 수가 없구나. 구름이 돌아가고 색 산이 홀로 나타나니 1만 2천 봉이라." 금강산은 참 좋습니다. 설악산도 명산이지만 험하고 빛이 탈태를 못해 좀 검습니다. 아주 희고 아름다운 산이 금강산이지요. 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나라 산은 참 좋지요. △ 그래서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고 부르지. 전국 어디를 가도 싫증나는 산이 없고 정원을 꾸며도 그렇게 꾸미기는 힘들어. 외국에 나가 보아야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것을 알지. 허허벌판 미국과 삭막한 인도를 가보면 좋은 대비가 돼. 또 우리나라 국토의 흙은 황토색이야. 아무 곳에나 앉았다 일어서서 툭툭 털면 깨끗해지지. 물도 얼마나 좋아. 아무 물이나 마실 수 있고. 인도에서는 아무 물이나 마실 수가 없더라고. 일본만 가도 공기가 탁합니다. 나무를 잘 가꾸어 푸른빛을 띠고 있지만, 미국은 로키산맥을 따라 시애틀, 샌프란스시코, 로스앤젤레스 등 좋은 곳이 몇 곳 있지만 산이 넓적하게 없어요. 그래서 난 미국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요.
참선으로 건강유지
우리의 금수강산은 마치 조물주가 기막히게 자연을 만들어놓고 사람을 심은 것 같습니다. △ 우리는 선택받은 민족이야. 고통을 주고 시련을 겪게 하는 것도 모두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한 거지. 항상 긴장되고 바쁘니 뇌수가 썩지 않지. 뇌수가 작용해야 일등국민이 될 수 있어. 옛날부터 은자(隱者)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숨을 은(隱)을 보면 다소 의미가 있을 법도 한데요. △ 조선조 때 선비들에게 유행했지. 큰 뜻을 품은 선비가 좌절하면서 은둔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재래의 신선을 뜻하기도 하는 말이야. 옛날에는 명산대천을 따라 인물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보시기에 근래에도 훌륭한 인물이 탄생하리라 보십니까. △ 물론이지. 지금도 우리나라에 인물이 없는 게 아니야. 정치가 제대로 안되고 자기 뜻을 펼칠 수 없으니 숨어 있을 뿐이지. 우리 선방(禪房)에도 기대되는 인물들이 있지. 정치인들이 정신차리고 그들에게 조금만 숨통을 틔워줘도 종단이 밝아질 수 있어요. 문제는 정신이 썩었다는 것이지요.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지성인이 대부분이고 정의를 식은 죽 먹듯 내팽개칩니다. 아무튼 스님의 말씀대로 정신을 차려야 할 때인가 봅니다. 일본에서 귀국하신 후 다시 절로 들어갔다고 하셨는데 참선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었는지요. △ 참선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지. 우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마음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참다운 삶과 가치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참선을 통해 내 인생을 개척한다는 생각이 들면 참선하는 생각이 놓쳐지지 않습니다. 참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장기, 바둑을 두듯이 몇 시간만 참선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선 안됩니다. 이 길이 나의 길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뒷받침되어야지, 호기심으로 수행에 뛰어들었다가는 몇 시간도 못 참고 나오지요. 그래서 참선은 쉽다면 무한정 쉬운 길이요, 어렵다면 무한정 어려운 길입니다. 쉽고 어려움이 문제가 아니라 참선하고자 하는 마음의 각오가 문제입니다. 참선은 수행방법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뉩니다. 각각 어떤 장단점이 있습니까? △ 조사선(祖師禪), 갈화선(看話禪), 묵조선(黙照禪) 등이 있어요. 어느 수련법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고 자기에게 적합한 방법을 골라 정진하면 되지요. 마음을 정립한 바탕 위에서 참선이 시작됩니다. 때로는 일상의 일을 하면서 참선을 할 수도 있지요. 예컨대 갈증이 심하게 나면 편지를 쓰다가도 '갈증'이란 생각이 떨어지지 않지요. 참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선이 인생문제를 해결할 중대사안이라 생각이 들면 다른 생각은 나지 않고 '참선'만 생각날 게 아닙니까. 그렇다면 저희와 같이 겉으로는 속세의 생활을 하면서도 내적으로 스님과 같은 생활을 하는 분이 많겠네요. △ 옛날에 거사(居士)가 다 그렇지. 속세의 생활을 하면서도 절의 불승들과 전혀 다를 바 없었지. 어느 스님이 시주를 하러 속세에 들렀다가 한 처녀가 자기와 결혼해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응낙했지. 스님도 자기공부도 좋지만 한 생명체가 사라지게 할 수는 없어 결혼한 후 일가족 전체를 도인으로 만들었다는 일화가 있어요. 중국 방(方)거사의 일화입니다. 절에 있다고 중이 아니야. 공부에 정진하는 게 중이지. 공부는 알곡이 하는 거예요. 껍데기가 하는 게 아니고…… 극락세계는 권위로 들어갈 수 없어요. 척도는 이승에서 얼마나 정신세계를 개척했느냐에 달렸지. 어찌보면 승려는 나처럼 좀 못난 사람이 하는 겁니다. 절의 스님들은 어떻게 건강을 유지합니까. △ 결가부좌자세로 참선을 통해 마음을 비우지. 영양실조는 못먹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내는 거야. 우주는 신비해서 공기 속에도 충분한 영양소가 들어 있어요. 역설적인 말이지만 신선(神仙)은 안먹기 때문에 오래 살아요. 신선이 영양실조로 병원에 찾아오는 것 보았습니까. 저는 매일 먹어도 배가 고픕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 다 자기가 만든 업(業) 때문이지. 조금 심하면 맛난 것 아니면 맛없어 못먹겠다고 던져버리지. 부인보고 불평을 늘어놓고……. 이러니 참 딱한 일 아닙니까. △ 딱한 줄 아니 다행이야. 정신차리고 욕심을 버려요. 나이가 들면 입 안에서 데모를 하게 돼. 그런 일은 방지해야지.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두어서는 안돼요. 내 말은 정신을 차리라는 거지. 굴원(屈原)이 한때 세상이 극도로 싫어진 적이 있어서 연못가에 가 며칠을 굶고 빙빙 돌며 죽으려는 거야. 쉽게 죽어 지지는 않고. 어부가 가만히 보니 그는 고관귀족인데 "어찌 이 꼴이 됐느냐"고 물었어. 굴원은 "세상이 너무 흐리고 탁한데 나만 정신이 멀쩡하여 세상이 귀찮다"고 대답했지. 그러자 어부가 말하길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그런 것에 팔리지 않아. 세상사람이 술에 취해 머리가 흐리멍텅하면 술을 한 잔 더 마시고 취해야지. 그러면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게 남자이지." 굴원은 이어 "목욕을 한 사람은 갓의 먼지를 털어 쓰고 옷의 먼지를 제거한 후 입어야 하는데 이 청결한 몸으로 장사를 지낼지언정 진흙탕 같은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고 한탄했지. 이에 어부는 "창하(滄河)의 물이 깨끗하면 갓을 씻고 물이 흐리면 네 발을 씻어라. 그대는 나와 말할 자격이 없다"며 노를 저어 유유히 사라졌다는 일화가 있어.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은 굶거나 집안을 팽개치라는 말이 아니라 더 열심히 살고 '정신혁명'을 꾀하라는 말이지. 범을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호랑이 잡을 능력이 있을 때 들어가야지 능력이 없으면서 들어간다면 제일 어리석은 일이지. 도둑굴에 들어갈 경우 그들을 교화시킬 수 있어야 들어가는 거야. 그러니 그 말은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쳐 승리하라는 의미야. 충실히 생활을 하다 힘을 얻으면 독자적으로 행보를 하는 거야. 내자식, 내 집안 안보살피면 다 죽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다 욕심 때문에 생기는 일이지. 처사님도 집을 뛰쳐 나오려면 공부할 준비가 되거든 나오시오. 안그러면 집과 절, 양가(兩家)에 죄를 짓는 꼴이 되니까.
달마설법에 치중
스님께서는 입적(入寂)하신 후 다시 보살님으로 나오실 것 같습니까. △ 나는 보살님으로 환생할 정도는 아니고 한국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못다한 공부를 계속해야지. 한국은 선택받은 백성이 사는 곳이니 다른 곳에 태어나고 싶지는 않아. 참선을 할 때 선(禪)자는 무슨 자입니까. 뜻풀이를 해주세요. △ 터닦을 선자지. 마음의 터를 닦는다는 의미야. 즉 부처를 맞이할 터를 닦는다는 것이지. 이것은 의역을 하니 그렇고 원래는 '선(禪)나다', 즉 정혜쌍수(定慧雙修)야. 정혜쌍수란 뭐냐, 우선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지혜를 얻은 후 선(禪)에 들어가는 거지. 사람은 향락에 빠져 성(性)을 즐기는데 금수들은 그렇지 않지, 생식보존을 위해 합금할 뿐이야. 인간도 자녀를 낳은 후에는 인생공부에 힘써야지. 내가 아는 장호영은 두 번만 합궁했어. 그 정도 돼야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한자를 보면 음은 같고 뜻이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선(禪)을 파자(破字) 풀이하면 어떤 뜻이 됩니까. △ 그건 내 알 바 아니오. 단 나는 우리문화정책이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우리문화의 근간이 한문이고 이미 우리말로 화(化)했는데도 배척하려 하고 있어. 이는 절름발이 문화를 만들려는 것이지. 한문을 모르고서는 우리문화를 빛낼 수가 없어요. 중국 한자는 우리와 완전히 달라요.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를 남의 글이라 생각지 말고 우리말로 닦아 빛내야지(점심공양을 위해 인터뷰중단됨). 하직 인사겸 마지막으로 좋은 말씀 듣고 싶어 또 찾아왔습니다. 아무쪼록 곧 불교 내홍(內訌)을 잘 수습하시길 바랍니다. 저희들은 점심공양 후 선녀탕(仙女湯)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불사(佛事)가 꽤 오래된 것 같은데요. 언제쯤 끝날 예정입니까. △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금년 가을쯤 마칠거요. 이번에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혹시 너무 무례하게 굴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주십시오. 오전에 질문한 것 중 약간 미진했던 부분에 대해 보충질문할까 합니다. 아까 달마조사선 등 여러 가지 수행(修行)방법이 있다고 하셨는데 대표적으로 그 조사선법에 대해 말씀해주시고 마지막으로 서암스님께서는 어떤 방법을 택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 달마조사(인도 28대)는 중국 가서는 초조(初祖)가 됩니다. 이조(二祖) 혜가…… 육조 혜능이 나오지요. 달마는 불립문자(不立文字)로 성불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말하길 "내가 중국에 온 것은 법을 전하고 중생을 구하기 위함이라. 꽃 하나를 가지고 활짝 피게 한다"라고 했지요. 혜가가 자리에 앉자 달마는 "너는 뭣하러 왔느냐"며 처음엔 돌아보지도 않았지. 이어 달마가 "징표를 보이라" 하자 혜가는 팔을 뚝 잘라주며 "편안하지 못합니다"고 대답했지요. 그러자 달마가 "편안치 못한 마음을 가져오너라"라고 했는데, 그는 아무리 찾아도 불편한 마음을 찾을 수 없거든. 그래서 혜가가 "아무리해도 불편한 마음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니 달마는 "내가 이미 그 마음을 없애주었노라"고 대답했어요. 달마선은 이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수련하는 것을 말합니다. 달마선법이 육조 이후 중국을 통해 들어왔지요. 조계부란 곳에서 그는 많은 제자를 길러냈어요. 조계종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조계종은 일종의 선법(禪法)이지. 선교(禪敎)를 둘로 보지 않아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고,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라. 우리나라는 특히 교선일체지. 아까 말씀하신 일본의 영토불교는 어떤 것을 말합니까. △ 일본사람들은 계(戒)를 무시하고 처자식을 가진 이가 불교를 유지하는 제도를 말하지. 영토정책을 통해 우리나라에 일본식 불교를 이식시키려 했는데 그걸 말해. 일제 때 조선총독부의 남차랑이 일본불교와 조계종을 하나로 통합하라 지시했는데 우리측 승려들이 크게 반발한 일이 있지. 달마조사선법과 간화선법(看話禪法)은 어떻게 다른가요. 서암스님은 달마선법으로 수행을 해오셨습니까. △ 화두를 간하는 것을 간화선법이라 하지. 나는 달마선법을 계속해왔어요. 근래에는 경허(鏡虛)스님이 선풍을 진작시켰지. 그 뒤를 만공(滿空)스님, 만암스님, 혜공스님, 혜월스님이 맥을 이었어요. 일본 선과는 다릅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동양정신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미미하지만 선방수련을 하고 있어요. 그들은 중국이나 일본 선보다는 우리나라 선을 우선으로 꼽아요. 우리측 불교가 순수하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샌프란시스코 버클리대학에 우리불교를 연구하는 사람이 있어. 흔히 우리는 불교가 발생한 인도를 미개국이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 아직도 정신문화에 있어서는 상당히 앞장서 있지. 인도에 가보면 히말라야산맥을 따라 흐르는 갠지즈강을 성수(聖水)라고 불러요. 우리가 금강산을 한번 구경하기를 원하듯이 인도사람은 갠지즈강에 가 멱을 감고 싶어하지. 가난하게 살아서 가보지 못하는 경우에는 후손들이 장례를 그곳서 치릅니다. 아주 엄숙해요. 처음 가는 사람은 얼굴을 찡그리지만 그들은 태연히 명상을 하며 인생을 정리하지. 얼핏보면 송장 같은 사람이지만 그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 생사를 초월했어요. 그들이 도인(道人)이지, 역시 인도는 정신문화의 꽃이야. 불교문화는 한마디로 자비문화요. 남을 해치거나 원수지는 문화가 아니야. 현재 인류문화는 갈등문화인데 문화혁명을 이룰 시점이야. 초자연세계를 자연세계와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특히 물질문명의 피해가 심할수록 인도에 대한 관심이 높고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불교경제학이 등장하고 아무튼 미래세계를 이끌 사상조류로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인도에는 요기 요가라는 신선들이 살고 있어요. 그들은 불 속에 뛰어들어서도 살아 나와요. 또 마음으로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가지. 신선(神仙)하면 옛얘기로 취급하는데 분명 실존하고 있어. 특히 히말라야산맥을 중심삼고 신선들이 많지. 우리나라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거요. 사람이 다가가면 고약한 냄새가 나니 신선들이 몸을 피하지. 신선을 보았다는 사람이 많아. 어느 시대든 신선은 있고 건강법으로는 그들이 최고지.
단전호흡하는 승려도 있어
우리 승려들 중에도 단전호흡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요. 평범한 삶 속에서는 답답증을 느껴 그들은 산에서 토굴을 파고 생활하지. 아주 찬 방에서 지내요. 그들은 호흡을 통해 극약을 먹어도 상관없을 만큼 육체적으로 단련시켜 놓았어. 요즘 조금만 해도 병이 나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아. 그러면 토굴에 계신 분들은 단전호흡을 익혔다고 해도 괜찮겠습니까. △ 단전호흡이 공부는 아니지, 그러나 단전호흡으로 건강을 획득한 후 수련에 들어가는 것이 좋아. 단전호흡을 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몸도 건강하게 돼요. 심지어 달마스님도 호흡(달마조식법을 말함)을 했다는 말이 있어요. 난 역사적으로 모르지만. 난 외국가면 '어떻게 사느냐'를 자세히 관찰하죠. 박물관을 비롯해 오래 머물면서 그들의 인생을 살펴보면 많은 것을 배워요. 제가 인류학을 전공했는데 저희도 한자리에 오래 머물면서 조사를 합니다. 흥미있는 일을 많이 발견하지요. 81년 10월 프랑스의 유명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통도사를 방문, 경봉(鏡峯)스님을 만나 오랜 선문답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 가능한 일이지. 언어가 달라도 말을 하기 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서로 통해. 바디랭귀지라고 하던가. 몸짓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잖아. 그러니 정신교류는 문제될 게 없지. 서암스님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와 많이 닮았어요. 그 분과 공부하는 모습도 비슷하고 그 분도 동양불교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학문이 서로 만나는가 보지요. △ 진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니 똑같지. 철학이든 과학이든 근간이되 는 근본은 하나이니 만나게 돼요. 세계 인류가 통한다는 건 삶을 공유한다는 의미이지. 하나도 몰라도 통하는 길이 있어. 어느 한 분야에서 도(道)를 통하면 다른 분야는 자동적으로 터득되지. 제가 글을 쓰면서 서암스님이 계시는 봉암사를 들러야 하는 인연이 있었나 봅니다. △ 학문을 할 때 피상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자기형(自己型)을 파고드는 게 첩경이지. '나라는 존재'를 파악하면 모든 것이 열리거든. 소크라테스, 칸트도 "자기자신을 알라"며 바깥을 더듬지 않고 자기 내부로 향했지. 자기자신을 알면 우주 전체를 알 수 있어. 슬픈 생각이나 화내는 방향으로 마음이 움직이면 바깥에서는 반드시 사건이 일어나요. 진심을 알려거든 겉을 향하지 말고 근본을 살펴보아요. 슬픈 것도 화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될 거요. 어떤 마음이든지 뿌리없이 일어나지는 않아. 그 뿌리를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 만들지, 내면세계를 파고들면 곧 사그라지고 말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를 버리고 또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야. 자기를 아는 것이 참선이지. 불교철학을 보면 '색즉시공(色卽是空)'이요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이는 '있는 것이 없는 것이요,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는 소리 아니여. 물리학에서 원자․전자를 추적해보면 무(無)의 상태가 오지. 이 상태가 바로 유(有)가 무(無)요, 무(無)가 유(有)인 상태야. 이런 줄도 모르고 우리는 무(無)에 빠져 고통을 느끼고 헤매지. 무의 근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겉으로 더듬었기 때문이야. 진실을 깨달을 때 고통에서 해방될거요.
단전호흡, 참선은 수단일 뿐
가령 내가 '괴로움은 공(空)하다'고 해도 괴로움은 달아나지 않아요. 체달(體達)해야 그 괴로움이 싹 달아나지. 이론적으로 알아서는 해결이 안돼. 과학적으로 이치를 알아도 고통과 괴로움은 떠나지 않아. 왜냐하면 과학자들은 관찰을 통해 이치를 깨달았을 뿐 근본을 깨치지 못해 몸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거든. 한마디로 바깥으로 알아서는 자기것이 못된다는 소리이지. 체득(體得)해야 해. 이론은 한계가 분명히 있어.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깨달음이 필요해. 무(無)의 정체, 공(空)의 정체를 파악해야 도움이 되지 '그럴 것이다'라는 추측만으론 무용지물이야. 유학자들 중 거유(巨需)라고 불리는 분들과 스님들이 만나면 통하지 않을까요. △ 아는 세계는 마찬가지이니 서로 안통하겠어? 통하지. 처사님과 내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학술적으로 처사님이 많이 알고 있으니 가능하지. 자기가 인식하고 느끼며 아는 것만 통할 수 있어. 문헌상으로 보면 퇴계(退溪)는 활인심방(단전호흡)으로 건강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학자나 불승(佛僧)들도 단전호흡을 이용, 건강을 유지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 모든 것을 다 동원해 목적에 당도하면 되지. 단전호흡을 하더라도 옳은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은 불가능해. 단전을 이용, 정신을 바로 세우면 목적에 도달할 수 있어. 만일 서울을 간다고 하자.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이 제일 빠르다는 것을 알아. 자동차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다음 수단을 찾아야 하고 그것도 안되면 걸어서라도 서울에 가야지. 단전호흡과 참선과의 관계도 이렇게 보면 이해가 될거요. 제가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던지고 싶습니다. 몸은 언제인가 벗어야 하는데, 육신도 귀중하지 않습니까. △ 귀중하지. 의복을 입는 것은 육신을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의복이 중요하듯 정신을 담는 그릇인 육신이 안 중요할 리 있어요. 이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재물(財物)이 육신이야. 감투를 주어서 바꿀거요, 금은보화를 주고 바꿀거요? 그렇죠. 육체라는 재물을 이용해 정신을 잘 가꾸면 '너 자신을 알라'는 진리와 통할 것 같습니다. 흔히 깨닫는다, 도를 통했다 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육체를 아끼고 소중히 가꿔 수련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 육체를 무시하고 함부로 하라는 말이 아니야. 참 도(道)를 깨우치지 못하면 죽음 앞에서 초조해지고 미련이 남거든. 몸을 막 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체달(體達)은 말 그대로 육체를 통해 깨달아야 하는데……. △ 천하를 다 속여도 자기는 속일 수가 없어. 그걸 어디다 사용하겠다고 과시하고 난리야. 도인이라고 행세해도 천하가 인정치 않으면 무슨 소용 있어. 자기는 상대적 자기가 아닌 절대적인 자기야. 누구에게 무엇을 과시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지혜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을거요.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됩니다. 때문에 생사를 초월한다는 말이 다소 어색하게 들립니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간다고 표현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어떻고 저 세상에 살면 어떻습니까. △ 중생들이 하는 소리여. 생사를 초월하면 아무런 차이가 없이 똑같애. 여기서 고민을 털어 버리지 못하면 저 세상에서도 고민이 따라다니며 괴롭히지. 성사가 본공하는 근본진리를 파악하라는 거야. 극락세계가 특별히 따로 있지 않아. 생각을 돌이키면 극락세계가 나타나는 거지. 가끔 세상이 귀찮다고 자살하는 경우가 있지. 따져보자구. 자살하면 그 고통이 사라지나? 고통의 연장일 뿐이야. 고통을 벗어나려면 먼저 마음의 피난처를 마련하시오. 사람이 즐거워하는 낙(樂)이 있습니다. 즐거움은 많을수록, 연장될수록 좋지 않습니까? △ 한 자(尺)가 올라가면 반드시 한 자는 내려가. 즐거움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고통을 수반하지. 등에 짐을 지고 땀을 흘리며 산을 올랐다 하자. 그 자체는 고통이지만 짐을 벗었을 때는 너무나 즐겁고 상쾌하지. 그런데 향락이 24시간 지속되는 법은 없어. 고통과 즐거움을 초월한 게 열반락(희락)이오. 중생들은 이것이 얼마나 좋은지 그 경지를 모르지. 하나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어. 고통의 다음은 즐거움이요, 즐거움의 다음은 고통이야. 또 그 역도 성립되지. 문명발달사를 고찰해보면 인도는 지리상 서양과 동양의 중간지점에 있습니다. 불교진리가 절대론이 있듯이 서양종교도 절대신이며 절대체계를 갖고 있어요. 그러나 중국이나 동양은 음양(陰陽)이라 하여 상대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서양은 절대론을 지향하고, 동양은 상대론이며, 인도는 그 중간인 절대 상대론을 추구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인도의 '절대 상대론'이 서양으로 건너가서는 '절대론'으로, 동양으로 전파돼서는 '상대론'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게 아닌지요. 또 신(神)이란 것도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을 체득하기 전단계에서 벌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신의 단계에 도달하려면 상대론을 통과한 절대론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처사님의 논리는 새로운 종교 창조론이야. 그렇게 얘기하면 이야기 재료가 되고 재미도 납니다. 그러나 현실을 토대로 이야기해야지, 현실을 벗어난 이야기를 해서는 안돼. 다음에 시간을 내어 독특한 이론을 갖고 토론을 해봅시다. 기독교는 유일신이야. 성서를 통해 형성된 기독교의 골자는 전지전능한 신이 세상을 창조했으니 자기자신을 신에 예속시키는 거요. "하나님 아버지시여 나를 왜 버리시나이까"라고 예수는 기원했고, 3일만에 부활했다고 하지 않나. 예수는 인격과 절대를 두루 갖춘 인물이라 하지. 다시 말해 기독교는 엄연히 절대신을 상징하고 인간은 그 속에 예속된 거야. 처사님이 말하는 절대신의 개념은 애매모호한 것 같소.
"사람이 신(神) 위에 있다"
서양사람은 절대신을 믿고 있으면서 자연과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도의 불교는……. △ 절대신을 드러내 보이시오. 남의 종교는 자꾸 이야기하고 싶지 않고……. 신의 정의를 내려보시오. 제 생각으로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나고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은 그 어디를 가정하고 싶어합니다. 그 어디를 가정 한 게 신(神)이지요. △ 아하, 그 말이군. 그래 사람이 신을 만들었다는 거죠. 그러면 이야기는 결론이 났습니다. 신의 모체는 사람이 되므로 신은 없어져버립니다. 기독교는 신이 사람을 만들었다 하는데 처사님은 사람이 신을 만들었다는 말이 아니오. 그러면 사람이 신 위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는데 그게 부처님말씀이요. 역사적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기독교의 바이블도 표현방법의 차이일 뿐 결국 깨달은 어떤 사람을 신비화한 것 아닙니까. △ 긴 이야기가 필요치 않아요. 말이 많으면 혼란을 가져올 뿐이야. 바닷물을 다 마셔야 바다가 짜다는 것을 아나. 조금만 마셔도 알 수 있어. 만일 처사님의 논리대로 사람이 신을 만들었다면 기독교는 허깨비를 가르치는 것이야. 올바른 진리를 가르치지 않고……. 그렇죠. 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한계 때문에 기계론적인 과학과 다른 새 문명체계를 준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그만둡시다. 이론을 정리하고 다시 얘기합시다. 이 절에 수녀 200~300명이 부활절에 찾아와 세 시간씩 저한테 법문을 듣습니다. 종교를 위해서 종교를 믿어서는 안됩니다. 항상 바른 길이 있다면 저의 모든 입장을 버리고 따라나설 각오가 돼 있어요. 거추장스러운 종교의 옷을 입기보다, 내 종교다, 네 종교다 하지 말고 인간적인 입장에서 대화를 나눠야지. 가령 가지고 다니는 구슬보다 더 좋은 보물을 갖게 되면 구슬을 버리고 보물을 취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오. 애착을 가지고 구슬을 안버리겠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무튼 신(神)은 인간에게 하나의 장벽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만들어놓은 장벽이든, 원래부터 있던 장벽이든간에……. △ 불교는 일체의 신을 부정하지만 신을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게 불교입니다. 이율배반이죠. 일반인은 범신론으로 이해하지요. △ 그걸 아시겠어요. 서양은 기독교와 자연과학주의의 두 수레바퀴에 의해 오늘의 문명을 체계화시켰다고 봅니다. △ 서양의 문명을 기독교가 일으켰다는 말은 착각이야. 오히려 르네상스 때 신을 부정함으로써 문명이 출발됐어.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다 목이 잘렸고, 그로부터 약 100년 후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을 받고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지. 종교암흑시대요 신을 부정하는 르네상스시대였어. 즉 신의 지배를 부정하고 인간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 현대문명은 여기서 출발했지. 기독교문화가 갑자기 정신문화로 둔갑, 우리를 사로잡고 있어. 서양의 두 축인 공산주의와 기독교가 교묘히 신을 이용하고 있는 거지. 아무튼 우리문화가 남의 것에 종속되어서는 안되겠어요. 이제 제자리를 찾아야 하지. 우리민족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보이지 않는 역사의 큰 흐름이 있는 것 같은데요. △ 큰 흐름은 없어요. 자신의 마음의 흐름에 따라 명운(命運)이 달라지지. 단 하나 얘기할 수 있는 건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개혁하고 변한다면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수 있지. 제 생각은 지혜롭지 못하게 살아왔으니 지혜롭게 사는 것이 앞으로 가능하냐는 거지요. △ 어려운 질문입니다. 서암스님, 장시간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사시면서 많은 일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저희들은 서울을 향해 떠나야겠습니다. △ 내 얘기가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군. 아까 풀지 못한 숙제는 다음에 만나 얘기합시다. 서울에 살다 머리가 혼탁하면 바람쐬러 놀러도 오고……. 잘 가시오(이로써 장장 6시간여에 걸친 인터뷰는 끝났다).
3. 선도문화체계의 비밀
서암스님은 일본대학 법문학부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한 탓인지 불교를 이야기하면서도 비교문학적 관점이나 해박한 불경[經․律․論]의 예를 들어가며 사통팔달의 깨달음을 보였다. 또 시문(詩文)에도 밝아 내용을 알아듣기 쉽게 풀어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서암스님은 선도(仙道)를 인정했다. 또한 신선(神仙)을 인정했다.
그런데 선도(仙道)의 장생(長生)이 가능하지만 언젠가는 죽지 않을 수 없고 죽을 때는 삶의 길고 짧음과 상관없이 죽음의 고(苦)를 맞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신선(神仙)보다는 윤회의 삶과 죽음을 초월, 깨달음을 통해 부처가 되는 것이 더 높은 경지라고 설파했다. 상반되는 음양의 세계를 떠나 부처가 되어야 인간이 완성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인간의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불교도 인간을 위해 존재함을 확실히 했다. 인간이 스스로 해탈해야지 신(神)을 섬기는 것은 금물이라 했다. 특히 절대신을 섬기는 기독교의 인류문명사의 폐해를 지적했다. 맹목적인 신을 섬기는 행위를 넘어서 스스로 깨닫는(自覺) 경지가 불교의 궁극이라고 했다.
화두(話頭, 公案)를 골자로 하는 달마조사선법에 따라 용맹정진하면 신선(神仙)의 경지를 넘어서 생사초탈(生死超脫)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禪)을 선(仙)보다 우위에 두었다. 그는 마음이 모든 것을 움직인다(一體唯心造)고 전제하고 '마음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없음(無)'에 도달한다고 했다. 이것을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선(禪)을 마음터[田]를 닦는 것이라고 하고 육체의 터[丹田]를 닦은 선(仙)보다 높이 평가했다.
그는 불자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논리를 펴나갔다. 그러면서도 단전호흡이 선수행의 보조적 수단이 됨을 인정했다.
특히 참선을 선원이 아니라 토굴에서 하는 사람은 단전호흡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기후조건을 극복한다고 말했다.
선(禪)이 선(仙)을 포함하고 있음은 고대에서와 달리 주객(主客)이 바뀐 셈이다. 수성․수명(守性守命)을 동시에 달성해가는 선도(仙道)는 사실 수성(守注)에 중점을 두는 선(禪)을 포용한다고 하는 편이 옳지 않을까?
서암 큰스님은 깊이를 느끼게 했다.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세계, 불이문(不二門)의 세계를 말로써, 몇 가지 예증으로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말이 끝나는 곳에서, 말이 막히는 곳에서부터 참선이 시작된다는 것,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화두(話頭)를 출발점으로 하는 것은 말을 막기 위함인지 모른다. 말이 막히는 저 너머 무한(無限)의 공(空)이 펼쳐지고 무량수(無量數)의 시(時)가 시작되는 것인가보다. 시공(時空)의 초월…….
선승들의 선방은 숨을 죽이는 정적이 감돌았다. 그들은 숨쉬는 일조차 잊은 듯했다. 귀경길에 문경새재의 굽잇길을 넘으면서도 인류문명사의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넘나들며 줄곧 선도와의 상관관계를 따졌다.
필자는 앞서 오늘날 우리의 문화적 상황을 '불교+기독교+유교+자연과학(한의학)'으로 구조화한 적이 있다. 이것은 형이상학에서 형이하학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을 고대선도문화체계의 '천부경+인부경+지부경=천부경+참전계경+삼일신고=음부경+황제외경+황제내경'과 대비시켜 볼 수 있다.
인간의 보편성을 인간종(種)에서처럼 인정한다면 인간은 호모사피엔피스 사피엔스(Homosapiens Sapiens)에서 더이상 진화하지 않았고(조금의 미세한 변화는 있었겠지만) 인간의 본성(humanity)도 변하지 않았다. 선사․고대인과 현대인에겐 공통의 사고원형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즉 '무엇이 다른가'라는 차별성을 묻기 전에 '무엇이 같은가'라는 질문을 함으로써 인류문화의 원형을 파악하고 그것이 지역적․역사적 변화, 그리고 문화의 상호영향(문화변동)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유(儒)․불(佛)사상의 원형은 선도(仙道)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선도문화체계'가 동이(東夷) 또는 중국, 몽고를 포함하는 아시아 전체의 고대문화체계로 가정해보면 보다 분명한 문화와 종교의 분포, 변동양상을 파악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밝혀진 학문적 연구에 따르면 분명히 우리의 조상[東夷]들은 고대에 커다란 문명체계 '선도문명체계'와 대제국 '고조선제국'을 형성한 것이다. 그후 오히려 중국, 인도 그리고 최근의 서구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 문화를 역수입한 양상을 보인다.
구조는 시간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또 그것이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선도문명체계'의 구조가 인류문명의 원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의 역사적인 변동양상은 어떤가.
유교의 성인인 공자(孔子)가 동이(東夷) 출신이며 항상 그곳을 그리워했다는 이야기는 유교경전 속에 심심찮게 전해진다.
고대 중국문헌에는 한민족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성품이 어질고(仁) 도(道)가 높으며 사람이 곧 하늘[天子思想]로 인간을 중시하며 예의범절과 문화수준이 높다. 또 감정이 풍부하고 즐겁게 살며(樂天) 용감하고 근면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理)와 기(氣)가 왕성함을 엿보게 한다.
유교의 경전이 '선도(문화체계)' 경전의 중국식 리바이벌인 측면이 강하다. 이런 점에서 원시유교(原始儒敎)가 바로 '선도'일 수도 있다.
'공자가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자 하니 "어떤 사람이 그곳은 누추한 곳이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는데,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君子)가 사는 곳이니 어찌 누(陋)함이 있을까보냐"라고 했다(子欲居九夷 或日陋如之何 子日 君子居之 何陋之有)({논어} 권9, {자한(子罕)])'.
공자는 그의 사상의 근본을 동이(東夷)에서 구했다.
사람 인(入)자가 갑골문에서 비롯됐고 동이(東夷)는 인(人)에서 비롯되었으며 어질 인(仁)도 같은 근원을 가진 것이다. 또 이들 글자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고대에는 고유명사(入方族)였던 것으로 고찰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자(漢字)도 동이(東夷)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이 있고 고대 한글 가림토(加臨土)가 있음을 감안하면 원래 가림토가 발음기호에 해당하고 갑골․한자가 글자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두 종류의 글자를 계층에 따라 사용했다든가, 이것이 후에 소리글자인 '한글'로, 상형 문자인 '한자'로 발전한 것이 아니었을까. 즉 형(形)과 소리(音)를 기본으로 한 두 글자체계가 동이(東夷)에서 탄생한 것이다.
글자체계와 함께 문장의 어순(語順), 문장구조로 문제가 된다. 중국의 고대문헌 가운데는 한글식으로 풀이하면 훨씬 의미가 확실히 전달되는 게 많다고 한다. 한글식은 '주어+목적어(보어)+동사'의 순이다.
한문은 대체로 '주어+동사+목적어(보어)'식이다. 이것은 영어식과 같다.
고대 동이(東夷)의 어순은 한국식이었는데 이것이 중국의 패권과 한자의 중국화에 의해 어순이 바뀐 게 아닐까.
문명의 주도권 이전은 흔히 글자의 뜻이 달라지고 어순(語順)의 바뀜이 뒤따른다. 이는 지배의 전략이기도 하다.
중국의 유교와 한자에 대한 이상의 관점은 인도의 불교와 범어(梵語)에도 그대로 적용해볼 수 있다.
석가세존이 동이(東夷) 사람이라는 이색주장이 최근 제주대 안창범(安昶範)교수에 의해 제기된 적이 있다. 그의 주장은 아직도 많이 보완되어야 하고 검토되어야 하지만 유의해볼 가치가 있다(안창범, {석가세존은 단군의 후예다}, 1991. 참조).
석가의 성씨는 사이(舍夷), 묘족(苗族), 단종(檀種), 찰제리(刹帝利) 일종(一種)이다. 사이(舍夷)는 인도로 이주한 동이(東夷)나 서이(西夷)이며 묘족(苗族)은 고몽고계(古蒙古系) 인종이다.
상고시대에 우리나라에 고불교(古佛敎)가 있었다고 안(安)씨는 주장한다. 이 고불교가 바로 선도(仙道), 신선교(神仙敎)라는 것이다. 불교전래 이전에 고불교가 있었음이 {삼국유사}를 비롯 고문헌에 나온다. 특히 사찰의 대웅전(大雄殿)은 바로 환웅(桓雄)을 나타내며 법당 안의 삼불도 환인․환웅․환검의 3신(三神)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다.
불교의 {소승경(小乘經)}은 석가가 직접 설법한 기록으로 인도 고유어인 팔리어로 쓰였는데 {대승경(大僧經)}은 범어(梵語)로 쓰였다. 용수보살(龍樹菩薩)에 의해 전해졌다는 대승경(大僧經)은 석가불 이전의 전불(前佛)시대의 것이다.
석가불교는 공자가 동이(東夷)의 '선도(문명체계)'를 유교식으로 리바이벌시켰듯이 석가가 불교식으로 부활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인도 고대어인 드라비다어에는 쌀(米)=쌀, 벼(希)=비야, 풀(草)=풀, 알(粒)=아리 등 우리말과 유사한 단어가 100여 개가 있다고 한다. {대승경}의 범서(梵書)는 우리민족의 상대자서(上代字書)일 가능성이 높다.
{태백일사(太白逸史)}에 보면 신시(神市)에 녹서(鹿書), 자부(紫府)에 우서(雨書), 치우(蚩尤)에 화서(化書)가 있었다.
복희(伏羲)에 용서(龍書), 단군(檀君)에 신전(神篆)이 있었다고 한다. 이 중 복희의 용서가 범서와 같다고 안씨는 추정한다. 인도의 범서는 '데바나가리'라 부르는데 '데바'는 천․신(天神)의 뜻이며 '나가'는 용․상(龍象)이란 뜻으로 '데바나가리'는 천서․신서․용서․상서(天書神書龍書象書)의 뜻이다.
따라서 '범서(梵書)=용서(龍書)'라는 것이다. {태백일사}에 따르면 복희는 의역(義易, 후에 周易)의 창시자로 환웅천황으로부터 5대째 태우의환웅(太虞儀桓雄)의 막내아들이다. 즉 배달국시대에 해당한다.
{대승경}의 범자의 모양이 일률적으로 용(龍)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점도 기억할 만하다. 범서는 문장구조에서 '주어+목적어(보어)+동사'로 우리말과 같다. 또 수식어가 피수식어에 선행하고 조사의 변화에 의해 주어․목적어를 나타내고 동사의 어미변화로 인칭(人稱), 수(數), 시상(時相), 법(法), 태(態)를 나타낸다.
범서는 또 둘 이상의 연속자음을 나타내려면 그 자음을 연합하여 하나의 결합문자로 만드는데 한글도 마찬가지다.
범어(梵語)는 천축어(天竺語)라고도 하는데 천축은 종교의 요람을 나타내는 것으로 {산해경(山海經)}, {해내경(海內經)}에 고조선을 '천독(天毒)'이라 한 것도 음독(音讀)이 통한다(안창범, 앞의 책, pp.98~137, 1991).
선도와 수메르 문명의 일치점
불경의 사상과 선도의 사상이 너무 흡사한 점이 많다. 석가불교는 ① 공(空)사상과 ② 전세(前世), 현세(現世), 내세(來世)의 윤회 ③ 양극조화사상을 근간으로 ④ 무신론적 범신론(無神論的 汎神論)으로 집대성된다.
이것은 선도(仙道)의 ① 천․지․인 일체사상 ② 천계․지계․인계의 순환 ③ 천인합일을 근간으로 결국 장생불사 신선(長生不死 神仙)을 추구한다.
석가불교나 선도가 둘 다 유일창조신을 부정한다. 이에 반해 인도의 고대 정통사상은 유일창조신을 섬긴다.
일부 불교학자들은 환인(桓因)을 불교의 제석(帝釋)으로 보고 단군설화를 후인의 날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단군신화는 불교나 라마교의 색채가 짙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환인(桓因)은 하느님의 한문식 차음(借音)이며 단군신화는 선진(先秦)시대부터 있었던 민간신앙을 흡수한 도교사상과 북방민족계의 샤먼교[巫敎]에서 나온 것으로 불교영향설을 배제하기도 한다.
안씨의 주장을 보면 오히려 역으로 불교야말로 단군, 즉 선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인도판 선도가 아닌가 싶다고 한다. 아니면 선도(仙道)를 고불교(古佛敎)라 하든지.
환인(桓因)은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또는 '제석환인(帝釋桓因)'의 약칭으로 '석가+하느님'의 뜻이다. 종래 '환인', 즉 '하느님'이라는 보통명사에 '석가'라는 고유명사를 합성한 것으로 석가를 신격화한 역사적 흔적이다.
환인, 즉 하느님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 개념이며 존재이다. 환인(桓因)의 '환(桓)'과 '인(因)'은 기독교의 발상지인 수메르지역에도 통한다. 석가를 수메르인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다.
환(桓)은 순수 우리말인 '한'의 한자식 차음(借音)이다. '한'은 우랄알타이어계 언어에서 '간', '칸', '찬' 등으로 표현되어 '큰', '하늘', '전체', '넓은' 등의 의미로 최고 통치자나 나라의 이름에 붙여 사용되어졌다. 수메르어의 '간(gan)'도 같은 뜻이다.
'간'에서 '안(an)', '안나(anna)', '아나(ana)'가 나왔다. '안'은 수메르의 최고신들이다. 수메르인은 하늘신을 안(an), 바람신은 엔릴(enlil), 물의 신을 엔키(enki), 큰어머니신을 닌후르삭(ninhursag)이라 한다.
'안'이 하늘의 남신이라면 '인안나'는 하늘의 여신이다. '인'은 동등하게 대우를 받는다. '인'도 제사장 또는 왕에게 붙이는 칭호이다.
'석가제환인다라'도 수메르어에서 어원을 찾아볼 수 있다. 수메르의 우루크시대에 '인' 호칭을 제일 처음 사용한 왕은 '인사쿠사나(ensakusanna)'이다. 산스크리트어[梵語] 어간에서 발견되는 '삭(sak)', '안(an)', '인(in)'과 일치하고 있다. 수메르어에서 '인'이 형용사로 될 때는 '사쿠(saku)'라면 '인'과 '사쿠'는 서로 같은 말이라 할 수 있다. '인드라'신은 원래 불교의 신이 아니라 힌두교의 신이었다. 이것은 인더스문명과 메소포타미아(수메르)문명 사이에 교류를 짐작케한다. 인도의 아리안족이 원주민인 드라비다인을 정복하기 이전에 이 원주민들은 인더스문명을 건설했는데 모헨조다로 유적은 대표적인 것이다.
'석가제환인다라', '인사쿠사나'는 결국 '최고 높은 주님' 즉 '하느님'의 뜻이다.
'안(an)'='한(han)', 그리고 '엔(en)'='님'에서 하느님이 합성된다.
불교가 들어와서 우리의 하느님(桓因)의 개념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본래 고유하게 있던 개념에 불교의 것이 합해진 것이다.
수메르문명이 인더스문명에 영향을 주었다면 인더스문명과 선도문명 속에 같은 문화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것은 인더스문명이 선도문명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설득력이 약함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수메르문명과 선도문명의 관계에 대해서 논의가 필요하다.
수메르어 수사와 한국어 수사는 유사성이 높다. 수메르어 수사 1의 소리는 '아쉬', '디쉬', '디리'이다. 한국어에서 '아시'는 '처음'을 의미한다. 수메르어의 2는 '민'이다. 한국어의 '둘', '반(伴)', '우(友)'와 같다. 수메르어에서 1과 2는 엄격히 구분되지 않는다. 수메르어에서 '디리'는 하나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둘을 의미하기도 한다.
원시 알타이어는 하나를 '비르(bir)', 둘을 '디르(dir)'라고 한다.
수메르어 3은 '에쉬(es)', 한국어는 '셋(set)', 수메르어 5는 '이 아(ia)', 한국어는 '다섯(tasas)'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1, 2, 3, 5의 수사에서 수메르어와 한국어 사이의 일치점을 발견할 수 있다. 수메르어의 6~10의 수사는 5와 다른 수사의 배합으로 만들어지는데 한국어의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이 모두 모음으로 시작되는 것과 수메르어가 '이 아'(ia)가 먼저 발음되는 것은 상관성을 느끼게 한다.
수메르어의 '북쿠'는 한국어의 '북', '멕쿠'는 '막대기', '맥', '매구'와 통한다.
수메르어와 한국어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단어는 200여 개에 달한다(김상일 엮음, {인류문명의 기원과 한} pp. 303~406, 1987).
아바=아바(abba), 얼=아라(ala), 한=안(an), 단(丹)=아담(adam), 어느=아나(ana), 아시=아쉬(ash), 반(半)=바(ba)․바르(bar), 밝[白, 光明, 日中]=바브바르(babbar)․바르바르(barbar), 벽=바드(bad), 빛=비르(bir), 달(아나다)=달(dal), 닮(다)=담(dam), 닭=다르(dar), 덮(다)=더브(dub), 가슴=가브(gab) 등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어와 수메르어는 단어의 유사성이 높고 어순마저 같으며 조사를 쓰는 접착어라는 공통점과 함께 고산숭배라는 두 문명의 골격은 더욱 친연성(親緣性)을 느끼게 한다.
동서양 사상의 중심은 천․지․인
선도문명과 수메르문명의 고산(高山)숭배와 피라미드(인공산)를 살펴보자.
수메르에선 신들의 회의장을 '에쿠르'라 하는데 이는 '산의 집'이라는 뜻이다. 앗시리아의 신인 '아슈르'도 '큰 산'이 란 뜻이다.
수메르인의 인공산 '지구랏'은 '하느님의 산', '하늘언덕'의 뜻이다. 창세기 바벨탑은 바로 '지구랏'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지구랏'이다.
수매르어는 접착어로 한국어와 같다. 황인종인 몽고계는 지금부터 1만년 전 파미르고원을 중심한 중앙아시아에서 여러 산맥을 따라 흩어졌는데 수메르족은 천산계 쪽으로 붙어나간 동북아시아의 몽고정통계인 것 같다. 문명사학자 C.J. 볼은 수메르가 혈통적으로나 언어적으로 고산지대에서 온 듯하다고 했다. 그는 또 수메르인은 중국인[東夷族]이라고 했다.
단군신화의 고산숭배사상은 큰 의미를 지닌다. 문명의 기원이 동(東)에서 서(西)로 갔을까, 아니면 서에서 동으로 갔을까.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수메르의 '지구랏'을, '지구랏'은 동이(東夷)의'고산(高山)'을 본뜬 것이다. 이들 고산문명의 문화내용은 '선(仙)'이다. 그렇다면 고대 아시아문명은 동이(東夷)에서 출발하여 수메르, 인도를 연결하는 거대한 환(環)을 이루고 이들은 서로 문명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게 된다. 육당 최남선(崔南善)의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은 바로 이 밝산[白山] 숭배를 중심사상으로 하는 선도문명권(仙道丈明圈)을 주장한 것이었다.
이 '밝'은 흔히 '발'로, 한자식 음차로 '맥(貊)', '발(發)', '부리(夫里)', 그리고 '번(番)', '방(方)', '부여(扶餘)'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 '닥', '밝'은 점차 민족이동에 따라 본국은 '한', 그 씨계(氏系)는 '닥', 그 족 이름은 '박'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은 나중에 한자로 '환(桓)', '한(韓)', '닥'은 '대(大)', '이(夷)'(고음이 박이다), '박'은 '백(白)', '박(朴)이라 했다.
또 자기들이 사는 지역을 ' 가'라 일컫고 그 중에서 동쪽으로 치우치는 지역을 ' ', '신'이라 불렀다. ' 가'는 후에 '발해(渤海)', '신'은 '선(鮮)', '진(震)', '전(展)' 등으로 불렀다.
수메르문명과 선도문명의 관계로 볼 때 기독교도 ① 천․지․인 일체사상 ② 천계․지계․인계의 순환 ③ 천인합일 ④ 장생불사 신선이라는 4가지 기준으로 대입할 수 있다.
기독교의 ① 성부․성자․성신의 삼위일체사상 ② 하느님의 아들 예수, 예수의 승천, 천상천국 ③ 하느님과 예수의 일체 ④ 부활 등으로 대비된다.
기독교도 유일창조신을 섬긴다고 하지만 충분히 천․지․인 사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인류문명사로 볼 때 인도는 동아시아의 '천․지․인 문명권'과 '유일창조신 문명권'이 만나는 지역이다. 지리적으로도 인도는 중앙에 있다.
혹시 인류의 문명은 '천․지․인'중 어느 것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특징을 보인 것인지도 모른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힌두교는 '천'에 편중된 것이고, 불교는 '인'을, 선도(신선교)는 '천․지의 조화'를 추구한다.
불교가 '인'을 통해 천지의 조화를 추구하지만 선도와 다른 점은 인간(人)의 해탈을 강조, 육신을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선도가 '현세지향적 조화'라면 불교는 내세지향적 조화'이다. 그러나 불교의 공(空 ; 無)은 매우 초월적 개념으로 선도의 천(天)보다 절대성을 추구해 보인다. 이런 점에서 불교가 '천(天) 지향적'이라면 선도는 '인(人) 지향적'이다. 조로아스터교와 라마교는 '지(地) 지향적'이라면 불교는 신(神)을 부처의 하위개념으로 본다. 불교의 법신(法身), 보신(報身), 응신(應身)은 선도의 천(天)․지(地)․인(人)에 대응된다.
그러나 불교의 출발은 지(地)이다. 지상의 모든 존재를 고(苦)로 보고 이곳에서 해탈을 추구한다.
불교와 선도를 상대비교하니까 선도를 '인 지향적'이라 했지만 실은 선도는 '천지(天地) 지향적'이다. 인중천지(人中天地)는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선도에 천화(天化), 불교에 신선(神仙)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양쪽의 친연성을 느끼게 한다.
기독교의 '천'지향은 불교의 '천(天 ; 空)'과 달리 너무 인간화되어 있다. 기독교의 '천'이 '내림식[下降]'이라면 불교의 천(天 ; 空)은 '올림식[上昇]'이다. 기독교는 절대신에 의지하는 경향[聖靈]이 강하고 불교는 절대자아(唯我獨尊)를 달성하는 것을 인간완성의 목표로 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매우 무교적(巫敎的)이고 불교는 선도(仙道)에 상대적으로 가깝다.
선도는 양쪽을 포용하는 '올림내림식[上昇下降]'이다.
선도에서 신(神)이 도(道 ; 虛)의 하위개념이라고 할 때 신(神)은 계속 새로 태어나는 속성을 느끼게 된다.
인더스문명과 수메르문명의 관계는 흔히 불교와 기독교, 이는 또다시 석가와 예수의 관계로 초점이 모아지기도 한다. 앞에서 수메르문명이 인더스문명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살펴보았다. 예수는 기원 전 6~7년 이스라엘 나자렛에서 태어났다. 예수의 이름은 '야훼는 구원하시다'의 히브리어 이름 '요수아'에서 비롯됐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바른 왕' 또는 '대제관'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히브리어 '메시아(기름부음을 받은 자)'에서 유래됐다. 메시아의 어원인 마시아(masiah)의 희랍어 번역은 '크리스토스'인데 그것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크리스투스(christus)이다.
유태인들은 이스라엘을 다윗시대처럼 재건할 것으로 기대한 구세주를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라고 불렀다(한국종교사회연구소편저, 한국종교문화사전} pp. 478~479, 1991).
빛과 불의 문명
'예수+그리스도'는 결국 '황(대제관)'의 뜻이다. 결국 석가의 이름 '석가제환인다라', '제석환인' 즉 '하느님+석가'와 같다
이것은 바로 '환인(하느님)'이라는 이름에 특정의 역사적 인물을 동격화시킨 것이다.
석가는 기원 전 6세기 중엽~7세기 초엽 중인도(中印度)의 가비라의 성주(城主) 정반왕(淨飯王)의 태자로 태어났다. 예수와는 약 500년간의 시차가 있다.
예수는 16살 때 인도에서 전통적인 요가행자의 지도로 정신통일법과 {대일경전(大日經典)}을 배우고 그후 인도북부에서 마니트라 스님의 지도로 호흡법과 그밖의 물질화현상(物質化現象), 불교의 이타행(利他行)을 터득하게 된다.
예수는 24살 때 인도를 떠나 페르시아에 가 조로아스터교의 선악이원론을 배우나 이 배화교(拜火敎)가 불을 중시하는 데 공감을 얻지 못한다. 25~29세 희랍, 애굽을 돌면서 불교적 명상생활을 한 후 30세 때 빛의 천사 가브리엘의 명으로 나자렛으로 가면서 전도생활을 한다.
예수의 가르침과 그 바탕은 인도의 생활에서 배운 불교정신으로 가득차 있다.
물론 수메르문명지역의 조로아스터교의 배화사상과 이에 영향을 받은 티베트의 라마불교의 성력숭배(性力崇拜), 이슬람교의 절대 유일신(알라)사상 등의 영향을 신약성서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교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동양의 고대신화문학은 구약성서의 뿌리가 되고 불교는 신약성서의 뿌리가 된다.
구약성서의 창세기는 수메르의 천지창조설의 변형이고 예수의 사랑은 발르신의 신화에 불교의 자비가 가미된 점이 있다. 유태교가 유목문화(민족)의 특성인 성과 우상에 대한 극도의 터부를 나타낸다면 기독교는 풍요와 성교를 강조하는 발르신의 농경문화를 포용하면서 불교의 자비가 가미된다. 예수의 치료신으로서의 역할은 신약의 중요한 줄거리가 된다.
예수가 치료력을 통해 마침내 다른 신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은 불교의학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한다.
무엇보다 예수는 조로아스터교의 선악이원론(善惡二元論)을 비판하고 모든 것은 선(善)하다고 주장하였다.
모든 피조물은 제각기 고유의 색채와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있는 그대로가 바로 선이다. 단지 이들이 부조화를 이를 때 악(惡)이 발생한다.(민희식, {성서의 뿌리}, pp. 73~84, 1989.).
인류의 신화와 종교를 통해 볼 때 빛과 불(火)에 대한 신화는 매우 중요하다. 빛은 하늘(天)의 것이고 불은 땅(地)의 것이다. 둘 사이에서 인간(人)은 빛이라는 일원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불(火)을 통해 제한적이고 부족한 빛을 보완해야 하고(이것이 문명이지만) 빛은 정신적인 것, 불은 물질적인 것을 대변하면서 빛이 강조되면 '일원적 세계관'으로, 불이 강조되면 '이원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빛(天)과 불(地)은 결국 하나인 것이다.
필자는 앞에서 선(仙)․선(禪)․선(善), 무(巫)․무(舞)․무(武)․무(無), 그리고 불(佛)․불(火)․물(水)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이들 글자는 모두 빛과 불의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여기서 물(水)은 불(火)의 한계(부조리)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선(仙․禪․善)은 '빛의 언어'들이고 무(巫․舞․武․無)는 '빛과 불의 언어'들이며 불(火․佛)은 '불의 언어'들이다. 그러나 천(天 ; 빛) 지(地 ; 불) 인(빛과 불)은 하나[天地人合一]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로 통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흔히 문물(文物)이라는 것도 문(文)은 비물질적 특성 때문에 '빛의 언어'이고 물(物)은 바로 물질적 특성 때문에 '불의 언어'이다.
빛과 불은 하나(一)이면서 둘(二)이고 둘(二)이면서 하나(一)이다. 빛과 불은 바로 에너지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빛의 입자는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광자(光子)는 '빛이 있어라' 하는 신(神)의 염(念)이 한 점에 집중하여 에너지의 자장(磁場)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신(神)의 염(念)이 소멸하면 광자도 없어진다. 우리가 사는 3차원 세계의 현상계는 광자가 목적성을 가지고 집합하여 원자를 만들고 원자가 모여 분자를 만들고 분자가 모여 물질이 형성된다(민희식, 앞의 책, p.8).
이것이 부처의 공(空)사상이다. 에너지를 기(氣)라 할 때 공기(空氣)의 개념은 중요하다.
서암스님은 공(空)에 치중했다면 필자는 기(氣)에 치중한 문답(問答)을 했던 것이다.
세계문화의 구심은 '한문화'
이상에서 볼 때 불교․기독교․유교는 선도의 어느 한 부분을 강조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지리환경적 특성이나 각 지역의 역사성 때문에 선도의 원형이 변형된 탓일 것이다.(〈그림 4.〉 참조)
선도가 포함하고 있는 과학적인 세계는 종교간의 비교로도 해명할 수 없는 분야이다. 종교나 이데올로기는 흔히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또한 종교나 이데올로기는 환경의 극복수단이 되기도 한다. 문화생태학적 입장에서 보면 문화의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는 상호가역적이다.
선도의 하부구조는 무엇일까. 선도의 핵심적인 개념이자 재료는 기(氣)이다.
기(氣)는 물질이며 또한 비물질이다. 근대서구의 자연과학은 '물리학중심'으로 기의 '물질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지만 고대에는 '비물질성'에 초점을 두었다. 이것은 대체로 숨을 쉬는 행위 '식(息)'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생물학중심'이다. 이것의 대표적인 것이 '한의학체계(漢醫學體系)'이다.
한의학체계는 인간의 '몸 안'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현대물리학은 '몸밖'의 사물에 관심을 보인다. 전자는 '몸 안에서 몸 밖으로', 후자는 '몸 밖에서 몸 안으로' 접근방향을 보인다. 전자는 직관적(종합적)이고 후자는 경험적(분석적)이다.
물질을 다루는 데는 현대물리학이 앞서지만 '비물질=정신'을 다루는 데는 고대 한의학체계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현대의학체계와 비교해서).
선승(禪僧)들이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단전호흡이나 한의학체계에 도움받은 바가 클 것이다.
선(禪)은 선(仙)의 명맥을 이어주는 그릇이며 그 내용은 단(丹)으로 단(檀, 즉 단군(檀君)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었다. 이제 역사적으로 '선도문명 체계'는 '한[桓문명 체계'로 이해되 어야 할 것이다.
단군설화 속에는 불교․도교․샤머니즘․기독교 등 여러 측면이 신화소(神諸素)로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보는 측면에 따라서는 아전인수격으로 자기들의 신화 밑에 예속시켜 왔다. 이제 '한문화'는 역사의 주변, 문화의 수입국이 아니라 수출국이었음이 드러났다. 역사의 원심력과 구심력이 어디인가를 알려주는 셈이다.
한 문명권, 즉 '천․지․인문명권'과 '유일창조신문명권'은 사실 같은 것을 추구하는 다른 방법론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단군이나 석가나 공자나 예수는 각 문화권별 특수성을 통해 보편성에 도달한 인물이었다. 모든 인간은 그 도정에 있다. 석가와 공자는 기원 전 500~600년, 예수는 기원 전후, 달마․원효․마호메트가 기원 후 500년 전후(5세기) 주자․루터가 그후 1000년대의(15세기 전후) 인물이다. 20세기 들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소태산 박중빈(少太山 朴重彬), 증산 강일순(甑山 姜一淳)도 이런 관점에서 음미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지역문화권을 이끄는 큰 인물은 500년 주기, 세계문화를 이끈 큰 인물은 1000년 주기로 나타난다는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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