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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은 멀고
오덕배와 오진덕은 동급생이긴 하지만 촌수로 따져 보면 열촌이 넘고 덕배가 아저씨뻘이 되는 것은 맞는 이야기지만 평소에는 일가에 대한 촌수를 따지지 않다가도 어떤 때 덕배는 그것을 들먹걸이면서 진덕이에게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였다.
진덕이네는 덕배네 보다 잘 못사는 편으로 한 여름에 가믐이라도 심하여 농사를 제대로 짓지를 못할 때에는 벼를 털어도 쭉정이만 나오는 판이니 기나긴 겨울 양식걱정으로 인하여 한숨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실 진덕이의 아버지는 원래 술을 좋아하는 편으로 어디 술이라도 있을만한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술을 내라고 할 정도로 입심이 좋기도 하였다.
이웃에서 생일상이라도 차린다는 말을 들으면 오라 소리를 하지 않아도 그 집을 배회하다가 식구를 만나게 되면 “오늘이 생일이지. 내 기억력이 얼마나 좋으면 자네 생일을 잊어버리지 않느냔 말이야“ 하면서 안방으로 들어앉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다사한 사람이라 집에 농사일도 그렇게 열심히 하면 좋으련만 집안의 일은 순전히
마누라에게 맞기고 자기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집안의 일은 소홀히 하였다.
매사가 이러니 진덕이 엄마는 날마다 남편이 해야 할 일까지 도맡아서 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집안에 대해서 이렇게 소홀하니 진덕 엄마는 아들이 자랄 때부터 아버지가 할 일을 네가 맡아서 하라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덕배는 학교를 갔다가 돌아오면 꼴을 베기도 하고 논 밭둑에 나가서 풀을 뽑거나 소를 끌고 다니면서 풀을 뜯기었다.
덕배나 진덕이나 이렇게 날마다 집에 있게 되면 한시도 방안에 앉아서 공부를 할 시간이 없다 보니 둘의 성적은 만날 뒤에 처져 있어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을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둘 다 인성은 좋아서 친구들이 다 좋아하고 둘 다 운동 중에도 달리기와 축구를 잘 하였다.
어느 날 덕배네 옆집으로 이사를 온 집이 있었는데 식구는 여자아이와 달랑 엄마 뿐이었다.그런데 다음날 여자 아이는 덕배네 반으로 들어왔는데 선생님은 앞으로 사이좋게 지나기를바란다는 말씀을 하셨으니 그전에 새로 전학을 오는 아이가 있으면 놀려주었기 때문이다.
덕배네 반에 들어온 정 순임은 전학을 오자마자 아이들의 인기를 차지하였는데 칠판 글씨를잘 쓰는가 하면 그림도 잘 그리고 노래도 잘 불러 선생님은 매일같이 공부 시작 전에 노래를 부르게 하셨다,
순임이 엄마는 이사다음날 덕배네 집을 찾아와서 덕배 엄마에게 인사를 하며 앞으로 많이 도움을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덕배 엄마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어떤 때는 밥도 제대로 하지를 못한다고 하였는데
엄마한테 그 말을 들은 순임이는 덕배 어머니를 도와드리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순임이가 덕배네 집엘 가기 시작한 것은 먼저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를 못하여 덕배에게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특히 과목 중에서도 수학을 잘 몰라서 묻게 되자 덕배는 자기도 잘 모른다면서 더 이상 집에를 오지 말라고 하였지만 순임이는 덕배가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이 나는 대로 와서는 모르는 문제를 가르쳐달라 하고 어떤 때는 덕배 어머니의 일을 도와 드렸다.
덕배가 순임이를 오지말라고 하지만 덕배 어머니는 순임이가 심부름도 곧잘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딸처럼 생각을 하고 별식을 하게 되면 엄마에게 갖다가 드리라고까지 하자 순임이 엄마도 자주 덕배네 집에를 와서 허드렛일을 거들기도 하였다.
어떤 날에는 순임이가 학교 갔다가 저의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덕배네 집으로 바로 갈 정도로 덕배네 집에 가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결에 초등학교 졸업을 하게 되었고 중학교 진학을 하게 되었다,
덕배 어머니는 그동안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한약을 지어다가 여러 차례 자셨는데 그 약이 효험이 있었던지 건강이 차츰 회복이 되자 텃밭을 손수 가꾸기 시작하였다.
“오늘도 순임이가 밥을 해서 차려 놓았구나 .얼마 있으면 중학교 졸업을 한다면서 학교 졸업을 하게 되면 고등학교로 올라가겠지.”
덕배 어머니가 말씀을 하시자 순임이는 고등학교는 아무래도 친척들이 계시는 서울로 가게 될 것 같다는 말을 하였는데 그러고 얼마 후에 순임이 말대로 이사를 간다면서 덕배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였다.
덕배 어머니는 사실 속으로 순임이네가 오래도록 함께 살게 되면 장차 순임이를 며느리로 삼겠다는 생각까지 하였는데 이사를 간다니 더 이상 말릴 수도 없었다.
한편 덕배 아버지는 일찍이 할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아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으나 장가를 들고 덕배를 나은 다음부터 읍내 장엘 다니며 활량들과 친하게 지나다가 어느 날부터 투전판에 발을 들여 놓게 되자 여기에 재미를 붙여서 날밤을 새우는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술집 아가씨에게 깊이 빠져 재산이 새기 시작을 하였는데 내용인즉 아가씨가 자기와 살려면 서울에 딴 살림을 차려 주지 않으면 만나주지도 않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덕배 아버지는 이 여자를 놓치게 되면 인생사는 것이 재미가 없다면서 여자가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 주기로 하였으니 땅문서를 그녀에게 맡기고 그길로 서울로 올라가서 2년여를 살았는데 어느 날 여자가 재산만 가로 채고 야반도주를 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덕배 아버지는 오갈 데가 없게 되어 할 수없이 체면불구하고 집으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자 부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되자 잠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은 재산이라고는 산골에 천수답 몇 마지기 뿐이었으니 그렇게 한 시절 부러울게 없이 살던 집안이 갑자기 가난하게 되자 덕배 아버지는 날마다 술만 퍼마셨다,
덕배네가 한때 잘 살던 때에는 가을에 농사를 다 지은 다음에 거두어드리는 곡식은 마루와 창고가 모자라 앞마당에 기둥받침대를 놓고 곡식을 쌓아올려 동네 사람들이 다 부러워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덕배 아버지는 노는 재미에 빠져서 몇 년 사이에 논이 빚으로 넘어가는 것 조차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눈을 번히 뜨고도 투전판에서 잃은 돈만큼 논문서를 내주게 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려고 하였지만 잃어버린 재산의 복구는 도저히 되지를 않았다.
다음해가 되어 다른 해 같으면 덕배 아버지가 농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무 소리가 없자 덕배 엄마가 왜 농사 준비를 하지 않으냐고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덕배 아버지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간 후에 다 저녁때가 되어도
사람이 집으로 들어오지를 않았다.
밤을 새워서 기다렸지만 덕배 아버지가 돌아오지를 않자 다음날 아침에 동네 사람들을 풀어 찾아 나섰는데 그때에 산에서 나무를 해가지고 오던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덕배 아버지가 소나무에 매달려 있더라는 것이다.
집안의 재산을 다 없애고 났으니 마누라를 볼 면목도 없거니와 낯을 들고 살아갈 수가 없게 되자 스스로 자기를 제어하지를 못하였던 것이다,
덕배 어머니는 그렇지 않아도 남편으로 해서 속이 상했는데 일이 이리 되자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림을 내팽개치듯 사람이 변해 가고 있었다.
덕배 어머니는 모든 것이 자기가 팔자를 잘 타고나지 못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동안 문밖출입도 하지를 않았으며 먹지 못하던 술만 들이마셨다.
그러자 이웃에 사는 남씨 아저씨가 덕배 어머니에게 만날 술만 자시면 어떻거느냐면서 정신을 차리시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남씨는 몇 년 전에 산판을 다니다가 벌이가 시원치 않자 덕배네 집께로 이사를 와서 노동품팔이를 하였는데 덕배네 농사일을 자주 거들어주었다,
남씨의 마누라는 지병이 있어서 만날 집안에서만 있으면서 남편의 밥도 해주지를 못하였는데 이리로 이사를 와서는 더욱 몸이 쇠약해지더니 어느 날 이웃에서 좋다는 한약을 달여 먹은 후부터 약이 맞지를 않았던지 오히려 입맛을 잃고 밥을 먹지 못하다가 아까운 나이인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을 하였다.
이웃사람들은 아까운 여자가 너무 일찍 갔다면서 애처러워하며 남씨를 동정하였다.
1년 사이에 공교롭게도 두 집의 안팎이 앞서거니 뒤서거니하게 되자 사람들은 그것을 바로 보지 않고 색안경을 쓰고 보기 시작하였다.
우물가에서 여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덕배 엄마와 남씨가 서로 좋아하고 있으며 장차는 한집에서 살 것이라는 둥 두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을 넘어 만날 두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주시를 하였다.
그렇지만 덕배 어머니는 동네 여자들이 어찌 생각하던 간에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고 아들인 덕배를 고등학교까지는 졸업을 시키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덕배야 말로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공부를 하여 마침내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자 서울에 아는 아저씨를 통해서 취직을 한 곳이 왕십리에 있는 가발공장이었다.
덕배는 어머니가 고생을 너무 많이 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악바리로 돈을 모아 어머니를 행복하게 시켜 드려야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하였다.
그런데 가발공장에서 1년간을 일을 했지만 거기에서의 수입을 가지고는 혼자 살아가기도 어려워서 생각을 한 것이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덕배는 학교 다닐 때에 과학에 대해서는 소질이 있어서 그쪽으로 취직을 하려 하였으나 고등학교 출신으로는 그런 계통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빵 공장에 가서 기술을 배우기로 하였다.
1년여를 고생 끝에 덕배는 마침내 빵 기술의 자격증을 딴 후에 우선은 작은 빵공장에 취직을 하였다.
사실 우리나라는 주식이 쌀이어서 때가 되면 집집마다 쌀로 밥을 해서 먹기 때문에 어떤 해에는 쌀이 부족하여 수입을 하던 해도 있었다.
그런데 나라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외국의,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관광객들도 외국으로 나가서 먹는 음식이 주로 서양의 주식이라고 할 수 있는 빵을 많이 먹게 되자 은연중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밥상에도 빵이 오르게 되고 빵의 수요는 점차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말로 예상치도 않은 일이지만 빵의 수요가 점차 늘게 되자 빵공장은 규모를 넓히고 종업원도 몇 명 더 채용을 하였다.
덕배는 공장의 수익이 올라가자 속으로 조속히 월급을 올려주기를 바랐지만 사장님은 그렇게 녹녹하게 사원들에게 월급을 많이 올려 주지를 않았다,
덕배는 빵공장에 취직을 한 후에 얼마 되지 않지만 월급을 모아서 어머니에게 보내드렸다.
공장은 날로 번창을 하여 작은 빵 공장을 확장하고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여 지금보다는 더 나은 빵을 구어 내놓으니 판로는 더 넓어지고 있었다.
그 무렵 정 현희라는 아가씨가 새로 입사를 하였는데 얼굴이 예쁘기도 하지만 경리를 맡아서 일처리를 잘 하여 사장님도 인정을 해줄 정도였다.
여기에서는 매월 한 번씩 회식을 하였는데 사장님은 덕배에게 모든 직책을 위임할 정도로 신용이 두터웠다,
덕배는 하숙을 하다가 아무래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취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셋방을 얻어 자취를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직원들이 회식을 하는 날인데 회식이 끝난 뒤에 다른 직원들은 다 돌아갔지만 뒷정리를 하고 있던 정 현희가 하도 기특하여 덕배는 다방에 들려 차를 사주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현희는 깜짝 놀라더니 차보다도 과장님의 댁부터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우리 집은 셋방이라 누추해서 보여 줄 수가 없다고 하자 현희는 어느 집이나 살아가는 방식이 다 다른데 왜서 그런 말을 하느냐면서 오늘은 꼭 가보고 싶다고 하였다.
잠시 생각을 하던 덕배는 문득 그가 처음으로 공장에 입사를 할 때를 떠올렸다.
그날 정 현희는 옥색의 원피스를 입고 사무실엘 들어왔는데 그의 화사하게 꾸민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덕배네 집을 가보고 싶어하는 것이니 덕배는 잠시 난감하였는데 방 정리라는 것을 전혀 하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 현희야. 우리 집에 가는 것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되겠니.”
“그러시지요. 하면 좋으시겠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못하겠는데요.”
“ 하하. 나는 다음으로 하자는 말로 들을 번 하였네.”
그러자 현희는 거리낌 없이 팔짱을 끼더니 “앞으로 가기만하면 되셔요.“ 하였다.
덕배는 대낮에 도깨비에게 홀린 모양 현희의 말에 따라 행동을 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이날 정현희는 덕배네 셋방엘 들어오자마자 방안을 들러보더니 여자가 있다면 방을 예쁘게 꾸며도 되겠는데요 하였다.
“ 처녀가 총각이 살고 있는 집에 와보고 실망했지.”
“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정말이야.”
“ 네에.”
현희는 그 말과 동시에 턱을 바로 세우며 덕배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하도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꽉 끌어안고 말았다.
그러자 현희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마치 한 여름에 살구나무에 매미가 노래를 부르려고 착 달라붙듯이 덕배에게 매달리는 순간 두 입술이 하나가 되고 있었다,
“ 음음.”
현희는 덕배가 하도 세게 끌어안은 체 입술을 놓아주지 않자 숨이 막히는지 캑캑 하더니 손바닥으로 덕배의 어깨를 팍팍 때렸다.
“ 112지요. 여기 폭력을 쓰는 아가씨가 있어서 신고를 하려는데요.”
현희는 더욱 힘을 주어 덕배를 때렸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이른 봄 과수원에 복사꽃이 활짝 피듯이 그렇게 아름다움이 배어 있었다.
사실 현희가 오늘 처음으로 덕배에게 어리광을 피우는 것이긴 하지만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란 현희는 남자를 경계시하고 살아야 할 정도로 의붓아버지는 현희에게 희한한 남자로 보여 언제부턴가 남자기피증이 생겼는데 이 공장에 입사하면서 덕배의 따뚯한 말 한마디가 현희에게는 너무도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덕배는 그날도 한참동안 빵 반죽을 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부른다고 하기에 급하게 층계를 뛰어오르다가 발을 헛딛는 바람에 덕배는 다섯 바퀴나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안면에 타박상과 왼발의 종아리 뼈 한 대가 골절이 되고 말았다.
뜻밖에도 덕배가 부상을 입어 부득이 병원에 입원을 하였는데 적어도 한 달간은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덕배가 입원을 하게 되니 당장 빵공장의 가동이 제대로 될 수가 없게 되자 사장님은 덕배를 찾아와서 웬만하면 일주일 내로 공장엘 나와 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병원에서는 움직임을 삼가라고 하니 일주일 내로 공장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한 달 간은 더 입원을 해야겠다는 말씀을 드리자 사장님은 기술자가 없으니 빵이 제대로 나오지를 않는다며 좋지 않은 안색으로 돌아갔다.
덕배가 가만히 생각을 하니 자기를 지금까지 보살펴주시던 사장님을 생각하면 어떻게 하든지 이 공장에서 오래도록 일을 해야 되지만 자기가 결근을 함으로 해서 회사가 손해를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사장님에게 다른 사람을 쓰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사장님도 할 수없이 며칠 후에 다른 기술자를 임시로 쓸 터이니 얼른 나아서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덕배가 다친 종아리는 수술을 잘 못하여서 다시 재수술을 해야 할 처지가 되어 입원기간은 더 길어졌다.
덕배는 일이 이렇게 꼬여가자 사장님에게 자기는 몸이 낫는대로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사장님은 덕배의 몸이 나을때까지 기다릴 터이니 그리 알라면서 덕배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것이지만 덕배는 사장님의 뜻이 그렇다 하더라도 장기간에 걸쳐서 일을 하지 못한 이상 더는 미련을 두지 않기로 하였다,
덕배가 입원을 하고 있는 동안에 현희는 일이 끝나면 매일 같이 병원에 와서 덕배의 내복이며 양말을 빨아주는 등 각별히 신경을 써주었다.
현희가 그렇게 정성을 다하자 나중에 입원하는 환자며 간호를 하는 아줌마들은 덕배에게 어쩌면 그렇게 예쁜 아내를 맞았냐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덕배는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얼굴에 열이 오르고 듣기가 거북하였으나 그렇다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덕배의 입원실에는 환자들이 들고나는 판인데 뜻밖에도 병원엘 찾아온 여인이 있었으니 그는 초등학교 때 이사를 간 정 순임이었다,
순임이는 갑작스레 이사를 간 후에 소식이 없었는데 몰라보게 자란 처녀로 덕배를 찾아왔던 것이다.
" 오빠. 오래간만이네요. 서울로 이사를 간 후에 고향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하다가 최근에야오빠가 서울로 올라온 다음에는 아무도 행방을 모른다고 하여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여기에 입원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 왔어요."
" 너 정말 오래간만이구나. 이사를 간 다음에 이따금 보고 싶었는데 그동안 몰라보게 변하였네.“
그러고 생각을 하니 덕배가 학교를 갈 때가 되면 날마다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덕배를 뒤쫓아 왔었는데 그때마다 순임이는 빠지지 않고 덕배에게 수학문제를 풀어 달라고 매달렸다,
“ 수학이 과목 중에 제일 재미가 있는데 수학이 싫은거냐.”
“ 오빠는 수학은 아무리 알려고 해도 모르겠어요.”
“ 그럼 자신이 있는 과목은 무언데.‘
“ 호호호. 그것은요. 지금은 밝힐 수가 없어요.”
그러던 순임이가 찾아왔으니 덕배는 꿈을 꾸는 것만 같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생겼으니 현희를 서로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서울로 올라간 순임이는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한 남학생을 친하게 되었는데 학교대항 육상기록대회가 있을 때에 순임이가 선수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책임을 맡아가지고 수돗가에서 물을 주전자에다가 받을 때에 한 남학생이 뛰어와서 목이 말라서 그러니 물 한 컵만 달라고 하여 물 한 컵을 떠주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둘이 친하게 되었다.
그후 일주일에 한번 정도 만나서 학교공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의 취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둘 다 미술부원으로 활동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둘은 그 다음 부터 쉬는 날이면 함께 그림을 그리러 다니다 보니 둘 사이는 굉장히 친하게 되었고 어느 날 남학생이 저의 집엘 가자고 하여 따라가서 보니 남학생의 어머니가 몸이 약하신 관계로 남학생이 밥을 해서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임이는 그 말을 듣고 자기와 비교를 해보니 자기는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다는생각을 하니 부모님께 효도를 잘 해야 된다는 것을 까달았다,
그 다음부터 순임이는 남학생네 집에를 가게 되면 밥도 하고 국도 끓여서 어머니께 드리자 어머니는 그것이 고맙다면서 순임이를 칭찬해 주셨다,
그때 남학생의 아버지는 경찰관으로 항상 바쁘시다 보니 집에를 자주 들어오시지를 못한다고 하였다,
그렇게 지나다가 결국에는 결혼을 하여 1년쯤을 지나다 보니 남편의 태도가 결혼전과 비교를 할 때에 전혀 딴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었으니 그 예가 집안의 일을 나누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순임에게만 시키었다,
하루의 시작이 시작되는 시간부터 따져보면 순임이가 일찍 일어나서 밥을 하게 되면 결혼전에는 자기가 쌀을 씻어서 밥을 안치는 것 까지 다 하더니 결혼 후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기는 대감마냥 세수하고 난 다음에는 밥상을 차려올 때까지 양반다리를 하고는 상을 받았다.
순임이는 처음에는 그것을 다 수용을 하였는데 어느 날부터 회사에서 늦게 퇴근을 하더니 만날 술을 마시고 퇴근을 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와이셔츠에서 향수냄새가 나기도 하여 이사람이 어떤 여자를 사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하였는데 얼마 후에 알아보니 같은 직장에 한 처녀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들리었다.
그래서 하루는 그 이유를 묻자 왜 그런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대답을 하는 것이었으니 그다음부터 순임이는 이 남자와 더 이상 결혼생활을 이어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혼을 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 신랑과 살아가는 것이 큰 재미가 없는 모양이구나 .”
“ 그래요. 정말이에요,”
“ 부부가 살아가는 데는 사랑이 만날 깨밭에서 깨가 쏟아지듯이 넘쳐야 한다는데 이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이나 그렇게 살겠어.”
“ 그렇지만 부부가 얼굴을 맞대는 것이 좋아야 하는데 점점 싫어지고 있으니 어떻거지요.”
“ 그러니 어떻게 해. 아이들이 있으면 참고 살아야지.”
“ 지금까지 아이는 없어요.”
“ 그랬구나.”
“나 사실 오빠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요.”
“ 그게 뭔데 .”
그러자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던 순임이가 갑자기 귀를 잡아 다녀서 아얏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 어디서 그렇게 큰 소리가 들린대요.”
“ 갑자기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이 아픈데 소리 지르지 않고 백여.”
“ 후후후. 남자가 그것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다니.”
“ 왜 귀를 잡아 다녔는데.”
그러자 순임이는 재차 귀를 힘껏 잡아다녀서는 귓속말을 하였다.
“ 나 오빠하고 살고 싶어.”
“ 뭐야. 신랑은 어떻거고 나와 산다는 게야. 순임아. 너 지금 정신이 있는 소리를 하는 게냐, 내가 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그리고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서로 좋아하였지만 그동안에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갔냐. 우리 사랑은 아름다운 저녁노을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지가 꽤 오래 되었어. 지금은 가슴 속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이름 석자 밖에 남은 것이 없어. 그러니 부질없는 생각일랑은 다 날려 버리고 신랑을 새로 얻었다 생각하고 정을 주도록 해봐.”
“ 오빠 난 지금 오빠가 무슨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잘 들리지를 않으니까 그런 줄이나 알아요. 그리고 지금 셋방을 얻어서 산다면서요. 나 오늘부터 거기 가서 살거야.”
너무도 엉뚱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덕배는 헉하고 나가자빠지게 생겼으니 이 일을 어찌 하면 좋단 말인가. 더구나 오늘 저녁에 현희가 내 생일상을 차린다고 하였는데. 이런 젠장할.
마침내 덕배가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나서의 일이다.
그는 먼저 다니던 빵공장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궁금하여 들렸는데 그 동안에 사장님은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고 하였다.
덕배는 그래서 사장님을 문병하기 위해서 들렸는데 덕배가 입원실로 들어서자 사장님은 덕배의 손을 덥석 잡으시더니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곤 하시는 말씀이 네가 회사에 나오지 않는 동안에 기술자를 한사람 들였으나 자료보관을 잘못하여 빵 속에 벌레가 들어간 것이 발견되어 매스컴을 타는 바람에 그렇게 잘 나가던 빵이 매장에서 반납을 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신용도가 떨어짐과 동시에 벌금이 나오는 바람에 거기에 신경을 쓰다가 뇌졸증으로 인해서 병원에 입원을 한 것이 반년이 지나 이제 겨우 회복이 되어 며칠 후에 퇴원을 하신다고 하였다.
덕배는 사장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제 몸이 아픈 이상으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빵 공장을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묻자 당분간 문을 닫았다면서 네가 몸이 온전하다면 다시 한번 공장을 일으켜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이제 당신은 더 이상 공장을 끌고 나갈 힘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매도를 할 계획이었는데 네가 할 수가 있다면 맡아서 하라고 하셨다,
사장님은 그 말씀을 하신 다음에 장기 저리로 회사에 들어간 비용을 대면 된다고 하셨다.
한마디로 앞으로는 덕배가 사장이 되어서 앞서의 명성을 회복해 보라는 뜻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덕배는 자기가 하는 일이 잘되게 되면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오 덕진을 불러서 일을 함께 해보자고 할 참이었다,
그런데 사장님의 권고로 빵공장을 인수하여 운영을 하게 생겼으니 한편으로 이 기쁜 마음을 고향의 어머니에게 말씀을 드리려고 전화기를 들었다.
오래간만에 전화를 드려서 그런지 어머니가 전화를 받지를 않으셔서 무슨 일인가 하고 궁금해서 다시 전화를 몇 번 하자 어머니가 아니라 하나 밖에 없는 이모님이 받으시었다.
“이모님 오래간만입니다. 덕배예요.”
“ 음 덕배라구.그러지 않아도 엄마가 전화를 할 참이라고 하였는데 아무려나 내가 바로 말을 해야겠다, 너 엄마 있지. 네가 어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너 엄마 남씨와 오늘 저녁에 동네 사람들을 모신가운데 조철하게 국수 한 그릇씩 먹으려고 한다. 엄마가 아들을 부르겠다는 것을 내가 다음에나 부르라고 하였어. 엄마 말을 들어보니 남씨는 그동안 엄마가 몹시 아플 때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퇴원을 한 다음에는 엄마의 회복이 늦어지자 보약까지 지어다가 달여서 드리는 등 지금까지 한 번도 남편에게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느껴 장차를 생각하고 남씨와 같이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한 모양이더라. 엄마가 그동안 너의 아버지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이 하고 늘 몸이 아프다 보니 기왕에 사는 인생 호강이나 한번 해보자는 뜻으로 이번에 남씨를 받아드린 모양이니 너야말로 엄마를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너의 엄마하고 하기를 바란다.”
덕배는 이모님의 말씀을 듣다가 어머니가 남씨에게 시집을 간다는 소리를 듣고는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전화상에서 이모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덕배는 아버지로 해서 어머니가 한때 자포자기(自暴自棄) 하신 일을 되새겨보았다.
덕배는 진작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할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몹시 후회막급이었다.
그리고 이제 생각하기를 지금이라도 어머니가 편안하게 사실 수만 있다면 더 이상의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속에는 한 겨울에 호수 속에 짙은 안개가 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끝.
金 斗 洙 (김 두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