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동지사(同志社) 대학을 찾았다.
윤동주 시인께서 이 대학에 다니다가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이역땅에서 짧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 한 애닯은 인연이 있는 대학
이기에 찾아 보고 싶었다.
<밖에서 본 동지사 대학>
학교 정문을 들어서니 개교 150주년을 알리는 프랑카드가 우리를
먼저 맞이한다. 아들의 안내를 받으며 윤동주 시인의 시비(詩碑)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개교 150주년을 알리는 프랑카드>
현장에 도착해 보니, 먼저 정지용(鄭芝溶) 시인의 시비(詩碑)가 보였다.
선생은 내 고향인 보은과 이웃해 있는 충북의 옥천 출신의 시인이시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선생의 자취를 만나니 실로 반가웠다. 내가 속한
합창단에서 종종 선생의 시 '향수'를 노랫말로 만든 곡을 불렀는데, 새삼
감회가 어린다. 선생의 시비를 살펴보고 근처에 나란히 서 있는 윤동주
선생의 시비를 찾았다.
<정지용 선생 시비앞에서>
정지용 선생의 권유로 윤동주 시인이 동경에서 이곳 교오토의 동지사
대학으로 오게 되었다는 기록을 읽어 본 기억이 떠오른다.
윤동주 시인에 대한 추모의 정과 애닯은 마음이 내 가슴속에 스며들어
온다. 2004년에 중국 연길과 용정을 방문시에 선생의 생가 명동촌을
찾았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윤동주 선생 시비>
<윤동주 선생의 시비앞에서 아들과>
옥중에서 고통을 겪다가 서른 살을 못넘기고, 그 아까운 젊은 나이에
탁월한 시재(詩才)를 마음것 펼쳐 보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던 시인의
짧은 삶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두 분 시비를 둘러보고 나니 시장기가
돌았다. 대학 구내식당을 찾아 아들과 함께 늦은 점심 식사를 하였다.
부자가 둘이 마주보며 함께 식사하니 참 감사하였다.
<동지사 대학 경내 1>
<대학 경내 2> - 예배당 건물
<대학 경내 3>
<대학 경내 4>
식사 후에 이 대학 건물들 사이로 다니며 기념사진을 몇장 촬영해
보았다. 개교 150주 년을 맞는 이 대학이 앞으로 많이 발전하면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문화발전과 친선증진에 기여해 주기를 비는
마음이 간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