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유이염(目濡耳染)
누구나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이 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거의가 타고난 환경에 따라 나머지 인생길의 방향이 결정된다. 때문에 다수가 마치 체념한 듯 운명론자가 되어 자신의 길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자신의 굳센 의지에 기대어 스스로 인생길을 개척하는 결기(結氣)로 살아간다. 그마저 없다면 이 세상은 지옥과도 같을 것이다.
주변에서 ‘잘되면 내 탓이고 잘 못되면 조상 탓’ 이란 말이 있다. 이는 모두 틀린 말이다. 출세하면 조상 탓이요, 바른 성과를 내지 못함은 순전히 자기 스스로의 탓이다. 큰 부자가 비록 몇 대를 이어가긴 하지만 장구하지는 않다. 위대한 선각자 혹은 부자가 있다 한들 몇 대까지 이르지 않는다. 이는 후대(後代)가 제 역할에 맞는 품성과 능력을 구비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일정 부분은 선대의 책임이다.
며칠 전에 상경한 친구인 「취석(翠石) 송하진(宋河珍)」과 「평인(平人) 송동옥(宋東鈺)」의 서예전시회에서 만났다. 작가로부터 작품에 대한 해설을 들으며 작가의 의도와 표현하고자했던 주제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인 전각(篆刻)작품을 관심 있게 살펴보았다.
상당량의 작업이었는데 자재가 번개를 맞은 대추나무라고 하였다. 단단하기가 거의 쇠에 버금가는 나무로 글씨를 새기는 것도 돌에 새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라고 하였다. 지팡이를 만드는데 가장 좋은 소재는 역시 번개를 맞은 감태나무(일명 연수목, 延壽木)란 말을 기억한다. 왜 하필 번개를 맞아 군데군데가 까맣게 그을린 옹이가 박혀있는 나무가 그렇게도 단단한지 궁금하다. 사실 인생길도 질곡(桎梏)을 겪으면서 단단해 지는 것이 사실이다.
중앙에 전시된 작품이 『난득호도(難得糊塗)』였다. ‘난득’은 ‘얻기 어렵다’라는 뜻이다. 또한 ‘호도’는 ‘어리숙하다, 어리석다’라는 뜻이다. ‘난득’과 ‘호도’가 합쳐져, ‘일부러 어리석은 척하기도 참 어렵다’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원래 ‘호도’는 ‘풀을 발라 감추거나 흐지부지 덮어버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일시적으로 어리석은 양 얼버무려서 위기를 모면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그 안에는 ‘누구라도 어리석은 듯 처신해야 하는 어떤 순간도 필요하다’라는 생활의 지혜가 들어있다. 혼란한 세상에서 화를 입거나 봉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총명함을 감추는 것이 더 낫다’는 사고방식으로 일종의 현명하고 역설적인 처세술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우리 속담과도 궤를 같이 한다. 주변 상황에 맞춰 자신을 낮추고 조화를 이루라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총명하면서도 어리숙한 듯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뜻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겸손한 자세는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신뢰하게 만든다. 섣불리 총명함을 내 세우다가 만인의 지탄을 받고 잠재적인 능력을 펴보지도 못한 채 속절없이 사라진 인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실제로는 총명함에 반하여 어리숙하게 처신하고도 과실을 챙기는 소위 입신(入神)의 경지에 오른 인재를 만나고 찾는 일마저 쉽지 않은 일이다.
행사를 마치고 오는 길에 동행한 친구가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침 오는 9월에 서예전시회를 준비하는 중인데 그의 작품을 살핀 한 중국 문학가가 한 마디로 평하길 목유이염(目濡耳染:눈목,적실유,귀이,물들일염)이라 했다고 하였다. 이 말은 당나라 문장가인 「한유(韓愈)」의 말로 항상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그 감화(感化)를 받은 상태를 뜻한다. 평시 일상생활을 통해 ‘눈에 젖고 귀에 물들다’라는 의미이다.
나 역시 그 표현에 박수를 치며 전적으로 동감을 했다. 바로 친구의 선친은 한학과 서화로 명성을 떨치신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선생이시다. 그의 조부님은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 선생으로 저명한 한말의 유학자인 「석정(石停) 이정직(李定稷)」 선생의 제자이시다. 여러 형제와 사촌들도 유명한 명필이며 친구 역시 빼어난 서예가다.
여러 대를 이어 걸출한 문화예술가를 배출한 집안은 그야말로 드문 일이다. 매우 어린 시절부터 선비의 가풍을 이어 받아 눈과 귀를 통해 살아있는 교육을 받고 성장한 결과이다. 그만큼 뿌리 깊은 타고난 유전자에다가 단단한 기초와 소양이 이미 고상한 경지에 이르게 한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가정교육으로 정성을 기울였지만 성공한 경우는 그다지 흔치 않다. 목유이염(目濡耳染)의 가정 분위기와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참여의식이 함께해야 가능한 일이다. 헬레니즘 문화를 꽃 피운 「알렉산더」 대왕은 아버지의 배려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의무론』을 쓴 「키케로」는 아테네에 유학중인 아들에게 산교육을 시킨 편지를 보낸 것인데 오늘 날에도 훌륭한 교재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나아가 한 인물의 성장 뒤에는 탁월한 스승이 있기 마련이다. 친구의 선친인 「강암(剛菴)」선생은 평생을 유학자로 살면서 서예와 문인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분이시다. 더구나 많은 제자를 양성했는데 그 중의 수제자가 바로 「하석(何石) 박원규(朴元圭)」선생이다. 「하석」은 서예는 물론이고 대만 유학을 통해 전각에도 뛰어난 예술가이다. 그런데 친구인 「취석(翠石)」이 바로 「하석」을 「강암」 선생에게 소개하였다. 그가 중3 시절에 당시 고3인 「하석」과 처음 만나 「강암」 선생의 제자가 되도록 연결했던 것이다.
「하석」은 지금도 하루 세 시간 이상은 작품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지낸다. 강남에 있는 ‘석곡실(石曲室)’은 서예와 전각의 두 스승의 당호(堂號)에서 각 한 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글씨뿐만 아니라 북을 치는 고수(鼓手)로서도 일가견이 있다. 2009년 이른 봄에 ‘석곡실’에 선친 시비(詩碑)의 제자(題字)를 받으러 갔었다. 이 때 서재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는 통북(큰 오동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북)을 보니 마치 선친을 만난 기분이었다. 바로 「하석」이 젊은 시절에 선친께서 직접 선물하신 북이었다.
「하석」은 서예와 전각(篆刻) 분야에 대한 최고수준의 전문서적인 『서예를 말하다』와 『전각을 말하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고문(古文)의 깊고 광활한 지식은 물론이고, 한 예술가의 진솔하고 치열한 삶의 노력이 배어나는 역작이다. 한문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도 아직도 한학을 배우고 있는데, 창의적인 고전의 천착을 통해 지속적인 진리의 탐구와 예술가로서의 진솔한 마음가짐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이 책에는 매우 소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서예의 발생 연원, 서예사의 발전 과정, 서예의 정의와 특징, 서예작품 감상 방법,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 그리고 석고문(石鼓文) 등의 문자에 대한 설명, 전각과 문방사우(文房四友)에 대한 체계적인 소개 등이 격조 있는 문장과 자료사진이 첨부된 매우 귀중한 책이다.
특히 「왕희지(王羲之)」의 천하제일의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난정서(蘭亭序)에 얽힌 이야기는 이 책의 백미이다. 나아가 박학다식(博學多識)한 동서고금의 전거(典據)와 “소년 문장가는 있어도 소년 명필가는 없다”는 자세로 평생을 꾸준히 경전을 읽고 노력하는 자세가 고스란히 울림을 준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을 다녀갔던 수많은 인물 중에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에게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거나 본인이 분발하여 이름을 후대에 남긴 인물의 숫자도 그리 많지가 않다. 십중팔구는 그럭저럭 이 세상을 살다 갔지만 그럼에도 부모의 지도에 순응하여 자신과 집안의 공명을 남긴 경우는 후세의 귀감이 되기도 하였다.
일국의 지도자도 마찬가지이다. 청나라의 「강희황제」부터 「건륭제」에 이르기까지의 국운상승은 바로 황태자 간의 경쟁을 유발시켜 가장 바른 인물에게 나라를 맡긴데 있었다. 유수한 기업도 가장 적합한 아들을 내세워야 성공하는 것처럼 적당한 경쟁과 교육은 나라와 가문의 미래까지 좌우한다.
그런데 반면에 후손이 교육을 받고자하는 준비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의지는 있을지라도 모든 사안에 대한 지식을 구비하기 쉽지 않다. 현재의 지식이야말로 구우일모(九牛一毛)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부단히 배우고 익혀야 그나마 현상을 유지할 수 있다. 공자의 말씀에 길을 나서면 함께 가는 사람이 모두 스승이라고 하였다. 평생을 부단히 배우고 익혀야함을 강조한 말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평소 언행을 통해 배운다. 자신이 솔선하지 않고 어찌 후대가 바른 생활을 하길 원하겠는가.
부모의 언행과 습관 그리고 사물을 대하는 태도는 그의 자녀들에게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 한 인물이 제 역할을 하여 이 사회와 국가를 위하는 역량을 발휘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나아가 그에 더하여 스승에게서 감화를 받아 한 시대를 빛내는 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가정과 학교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이다.
(2024.8.3.작성/9.10.발표)
※ 독자 여러분께서 즐거운 중추절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