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영국 '프리 시네마' 운동의 기수로 일관되게 노동자 계급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적인 사실주의 기법으로 담아온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중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된 작품은 1995년 칸 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상을 받은 <랜드 앤 프리덤Land and Freedom>이다. 이 영화는 작품이 만들어진 당대의 시점에서 바라본 1936년 스페인 내란의 기록이다. 망각의 역사 속에서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끈은 혈육의 정. 영국 리버풀에 사는 한 노인이 죽고,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손녀는 낡은 가방 안에서 60년 전 울려퍼졌던 자유의 외침을 듣는다. 스페인 내란에 관한 신문 쪼가리들, 두툼한 편지뭉치들, 누렇게 바랜 사진들, 붉은 손수건에 담겨있는 흙... 손녀는 할아버지의 체취가 스민 그 단서들을 따라 과거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몸 속에 흘러온 선조들의 정의에 대한 열망을 똑같이 느낀다.
역사의 진실은 어떻게 세대를 이어가는가. 우리는 무엇을 잊고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랜드 앤 프리덤>에서 울리는 켄 로치의 목소리는 오로지 '자유', 그 피끓는 인간의 땅을 지키기 위해 스페인 내란의 현장으로 달려갔던 모든 이들의 육성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실업수당으로 연명하며 지리멸렬한 나날을 보내던 데이빗(이안 하트)은 자신이 속해 있던 영국 공산당의 한 모임에서 파시스트들과 싸우는 스페인 시민군의 연설을 듣는다. "정의와 평등사회를 위해 함께 싸우자"는 그의 말에 감동한 데이빗은 스페인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다국적 시민 혁명군의 일원으로 합류한다. 영화는 그가 보고 느낀 스페인 내란의 체험담이자 인류가 겪은 모든 혁명의 전말을 압축한 하나의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전장의 장관도 없이, 참상도 없이, 카메라는 스페인 내란의 현장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뜨거운 가슴으로 달려온 인물들의 일상이 생생하게 살아있을 뿐이다. 켄 로치의 주제는 전쟁이 아니라 인간이다. 그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인간' 또는 '인간성'을 억압하는 모든 '파쇼' '독재 체제'에 대한 불같은 분노다. 파시스트들이 점령하고 있던 한 마을을 탈환한 뒤 땅의 소유권을 놓고 벌이는 긴 회의 장면과 같은 편인 공산인민군에 의해 시민군이 무장해제를 당하는 들판 장면은 이 영화의 두 중심 축을 이루고 있다. 가장 정적이면서도 격렬한 사유재산권에 관한 소박한 논쟁, 총칼 앞이라도 맨 몸을 던져 지켜야만 했던 피의 이념, 이 두 축을 싸고 도는 켄 로치의 카메라는 가감없는 '진실의 눈'을 보여준다.
영화학도들의 공책에서 1968년 작 <불쌍한 염소>, 1972년 작 <패밀리 라이프>, 1979년 작 <블랙 잭> 등으로 좌파 사실주의의 거장으로 추앙되던 로치는 세월의 무게로 침착하게 가라 앉았으되 여전히 날카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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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한 가지. 1930년대 스페인. 선거를 통해 집권한 인민전선 정부에 반발한 프랑코는 군부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에 맞서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생디칼리스트, 그리고 쁘띠 부르조아는 한데 힘을 모아 투쟁하지만 영웅적으로 패배한다. 그러나 <랜드 앤 프리덤>은 이런 주류 역사나 혹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따위의 영웅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1960년 이후 일관되게 진보적인 감독으로서 유럽 지역에서 성가를 높여온 켄 로치 감독에게 1930년대 스페인은 ‘파시즘에 대한 연대 투쟁’의 귀감이 아니라 ‘배반당한 혁명’의 뼈아픈 기억이다.
삭막한 공업도시 리버풀의 초라한 노동자 거주지역. 갑작스럽게 숨을 거둔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손녀 킴은 젊은 시절 할아버지의 편지를 통해 1930년대의 과거 속으로 빠져든다. 공화군 전사의 설명에 덧붙여 상영된 스페인 민중의 투쟁을 기록한 독립영화(!)는 실업자 청년 데이비드를 혁명의 현장으로 끌어들인다. 영국 공산당 소속이던 데이비드는 우연하게도 정규군이 아닌 POUM(맑시스트 노동자 연합 정당) 의용군에 배속된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스페인의 전장에서 그는 새로운 세상을 목격하며 전율한다.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야. 모든 것을 더 멀리 보게 되었어.” 전우들은 모든 권위를 해체하며 파시즘과의 투쟁에 생명을 바치고, 민중은 진정 스스로 세상을 만들어간다. 그러나,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주의자들은 모든 정파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고 반혁명분자라는 마타도어가 동원되는 가운데 POUM은 인민군에게 무장해제당한다.
<랜드 앤 프리덤>은 과거를 회고하며 애석해하는 무기력한 노인의 독백이 아니다. 비록 60여년 전의 스페인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켄 로치는 패배의 원인을 운동 내부로부터, 그리고 운동이 봉착하게 되는 현실적 딜레마로부터 구하면서,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단서를 역사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찾으려 애쓴다. 그러기에, 역사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파시즘과의 전투보다는 해방구에서 벌어지는 스페인 민중의 집단화 토론에서 빛을 발한다. 토지의 집단화에 대한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가운데 파시즘과 맞서 싸울 무기를 지원해야 할 자본주의 국가와 스탈린 치하의 소련은 언제나 정치적 흥정을 하려 한다. 무엇이 올바른 판단인가?
1995년 칸 영화제에 참여한 영화평론가들을 열광시켰던 것은 물론 확고한 진보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살아 있는 연기를 끌어내는 켄 로치의 섬세한 연출력과 함께, 열린 공간을 가득 채운 배우들의 동작을 집요하게 포착하는 카메라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그러나,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투쟁하며 고민하는 운동가의 깨달음과 좌절의 과정이 가장 첨예한 정치적 논쟁과 결합되지 않았다면, 얄팍한 감상주의의 함정을 벗어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랜드 앤 프리덤>은 내부의 적을 지적하되 그것의 현실적 출발점을 살피려 하며, 운동의 고민을 탐구하되 언제나 진보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려 한다. 그리고 그 모든 노력의 근저에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다짐이 깔려 있으며, 그 다짐은 영화의 구석구석에서 명확하게 언급된다. “동지들, 내일은 우리의 것”이며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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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라의 노래 (1996)
젊은 병사들과 여자들, 어머니와 아내와 누이와 애인들이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애써 웃는 이도 있고, 눈물을 씻는 여자도 있다. 그 중 한 어머니가 인솔장교에게 매달린다. “우리 애는 너무 어려요.” 그러나 장교는 무표정하게 군용트럭에 병사들을 몰아태우고, 트럭은 털털거리며 흙먼지 속으로 달려가 버린다.
1995년 <랜드 앤 프리덤>으로 유럽영화상을 수상한 영국 감독 켄 로치는 1996년 니카라과의 작은 마을 에스텔리에서 1980년대 니카라과의 역사를 다시 점검하는 <카를라의 노래Carla's Song>를 찍고 있었다. 카메라는 멈췄지만 어머니 도나 글로리아의 흐느낌은 이제 시작이다. 그는 감독 로치가 재현하려는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산디니스타의 혁명 이후, 글로리아는 미국이 지원하는 콘트라 반군과의 내전에서 네 아들 가운데 셋을 잃었다. 넷째 아들은 촬영 얼마 전 사고로 죽었다. 촬영 도중 기억의 상처가 다시 덧난 어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무섭도록 쏟아져 흐른다.
다른 인물들도 대부분 직업배우가 아니다. 도나 글로리아 같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과 체험을 안고 출연했다. 주인공 카를라 역의 오양카 카베자스는 카메라 앞에 처음 서보는 니카라과의 무용가. 카를라는 혁명에 성공한 뒤, 산디니스타 정부의 문화선전대에서 가수로 활동한다.
어느날, 콘트라 반군이 선전대를 습격하자 카를라는 피난길에 오르고, 도중에 트럭운전사 게오르게를 만나 그의 트럭을 타고 자기의 조국과 1980년대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여행을 시작한다. 게오르게 역의 로버트 칼라일은 전직 미국 CIA 요원으로 출연한 미국 배우 스콧 글렌과 함께 이 영화에 출연하는 단 두 명의 직업배우다.
이들과 함께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답을 얻고 싶다면 켄 로치의 이력부터 뒤져봐야 한다. 옥스퍼드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로치는 텔레비전을 거쳐왔다. 1960년대 초 BBC 시절부터 관심은 노동계층을 향하고 있었다. 1967년 <불쌍한 소Poor Cow> 이후의 극장 영화들도 마찬가지였다. 1969년 <케스Kes>는 광산촌을 무대로 영국 노동자들의 막막한 처지를 건조하게 제시해 관객들을 숨막히게 했다. 1986년 작 <조국Fatherland>의 주인공은 옛 동독에서 쫓겨난 가수 겸 작곡가 클라우스 드리트만. 약간의 기대도 없지 않았던 서방에서 환멸을 느낀 드리트만이 2차 대전 중 실종된 공산주의자 아버지의 흔적을 뒤쫓다 스탈린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며,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1990년대. 로치는 계급의식에 눈뜨는 건설노동자들의 이야기 <리프 라프Riff-Raff>나 딸의 드레스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난한 노동자를 통해 영국 보수당 정권의 경제정책을 비판한 <레이닝 스톤Raining Stones>을 내놨다. 여기서 자신이 고수해온 이상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감독의 주장이 들린다.
그렇다면 그가 1980년대 진보적 지식인들이 희망을 기탁했던 혁명 니카라과를 찾아간 이유(영화의 원작 시나리오 작가 폴 라버티도 니카라과로 달려갔던 영국의 변호사다)는 명백하다. 미국이 지원하는 콘트라 반군과 내내 싸워야 했던 오르테가의 혁명정부는 결국 그 소모전과 미국의 경제봉쇄 여파로 선거에서 졌다. 로치는 그들의 이상이 소멸해간 과정을 다시 분석해 보려는 것이다. 카메라로 희망의 잔해를 다시 뒤지는 감독 켄 로치는 희망을 다시 조립해 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