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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찾사(하수오를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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º――――…자유♡게시판 스크랩 한국의술
석겸선생 추천 0 조회 206 11.01.20 23:4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한국의 술



1. 전통술의 기원
(酒)의 옛글자는 유(酉/닭, 별,서쪽, 익을 유)자입니다. 유(酉)자는 본래 밑이 뾰족한 항아리(술의 침전물을 모으기 편리하다)에서 유래한 반면, '' 의 고유한 우리말은 '수블/수불'이었습니다. 수블>수울>수을>술 로 변천하였을 것입니다. 옛사람에게는 물이 난데 없이 부글부글 끓는 것이 신기하여 물에 불이 붙는다는 뜻으로 '수불'이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bae1.jpg 옛말에 물은 神이, 술은 인간이 만들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의 기원은 신화로만 전해집니다. 서양의 경우 이집트에서는 천지의 신 이시스의 남편이 오시리스가 곡물신에게 맥주 만드는 것을 가르쳤다고 하고, 그리스 신화는 디오니소스, 로마는 바커스를 술의 시조로 말하고 있으며, 구약성서에서는 노아가 최초로 술을 만든 사람이라고 합니다. 반면, 동양의 경우 중국에서는 황제의 딸 의적(儀狄)이 처음으로 빚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 술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술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우리 문헌에 나타나는 술 이야기는 제왕운기(帝王韻紀)에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하백의 딸 유화가 해모수의 꾀에 속아 술에 만취된 후 해모수의 아이를 잉태하였는데, 그가 주몽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 문헌에 술에 관한 기록이 드물지라도 술이 단순히 중국에서 전래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미 고조선 시기 이전부터 동아시아 대륙에 번성했던 우리 민족은 발효문화를 장기로 하였으므로 술의 역사도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술의 기원은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이라기 보다 화북과 산동지역의 동이족 술문화가 한반도와 중국에 동시에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

2. 고구려시대의 술
bae4.jpg 무천, 영고, 동맹등 제천행사에서 '주야음주가무'하였다는 삼국지위지동이전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는 실로 발효의 나라라할 만큼 훌륭한 술과 앞선 장담그기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이 때 이미 술누룩 주국(酒鞠)과 곡아(穀芽)로 술을 빚는 방법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AD430년경 북위의 산동태수 가사협이 지은 '제민요술'(齊民要術)이라는 책은 고구려의 주조 기술을 규명하는데 실로 중요한 자료입니다. 산동반도가 역사이래 우리민족의 직, 간접적인 영향하에 있었던 문화지역인데다 북위와 고구려의 민족적 지리적 정치적 인접성으로 고구려의 술빚기가 거의 제민요술에 고스란히 살아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구려의 주조기술은 중국으로 건너가 곡아주라는 명주를 잉태하고 고구려의 양조기술을 이어받는 낙랑주법이 신라사회에 뿌리를 내려 신라주가 당대의 운사들에게 애용되었습니다.

3. 백제시대의 술
백제의 술은 지금도 일본에서 酒神으로 모시는 백제사람 수수고리(須須許理)가 일본에 누룩과 술 빚는 법을 전함으로써 비로소 일본에 술다운 술이 생겼다고 합니다. 일본고사기(日本古事記)의 중권(응신천황조)을 살펴보면 베짜는 기술자인 궁월군의 증손인 수수고리(須須許理)가 일본에 가서 응신천황(應神大王)에게 술을 빚어 바쳤더니 왕이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백제의 술은 자세한 기록으로 전하는 것이 없어 말하기 어려우나 일본에 남아 있는 기록과 술빚기 기술로 보아 고구려의 술빚기에 비해 그리 못하지 않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4. 신라와 통일신라시대의 술
삼국 중 비교적 늦은 시기에 국가의 체계를 형성한 신라는 술빚기에서도 가장 낙후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문화와 함께 고구려로부터 양조기술이 전해진 이후,'지봉유설'에 전하듯이 국력과 함께 날로 발전하였으며, 통일 신라 시대에 이르면 양곡곡주들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상류사회에서는 청주류의 음용이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5. 고려시대의 술
sul2.jpg 고려시대(918~1392)가 되면 중국의 송/원나라와 빈번한 교류로 인하여 송/원시대의 양조법이 거의 도입되었으며, 양조기술의 종류가 심화되었습니다. 사원에서는 오늘날의 여관업을 겸하여 술을 빚어 팔기도 했습니다. 한편 궁중의 양온서(궁중에서 술을 빚던 관청, 후에 장례서, 사온서로 명칭이 바뀜)라는 부서에서 국가의식용 술을 빚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송나라 서긍(徐兢)의 고려도경에 의하면 '고려에는 찹쌀이 없어 멥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 '술의 맛이 독하여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 '일반적으로 고려사람은 술을 즐긴다. 그러나 서민들은 양온서에서 빚는 그러한 좋은 술을 먹기 어려워 맛이 박하고 빛깔이 짙은 것을 마신다' 고 고려의 술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 고려시대에 비로소 소주가 전래되었는데 소주가 유입된 시기는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 의하면 원나라 때 아라비아와 원, 만주를 거쳐 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음용시기는 충숙왕에서 충혜왕(1314~1345)사이로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 고려시대의 술의 종류
고려시대는 우리나라 술의 3대 분류인 탁주, 약주, 소주의 기본형태가 완성된 시대였습니다.
  • 포도주 - 쌀로 빚은 술에 포도를 넣은 술
  • 도소주 - 새해에 마시는 약술
  • 계향어주 - 계실에 넣은 향기로운 술로 송나라로부터 전래된 술
  • 유주 - 고려 충렬왕의 왕비가 몽고술인 마유주를 전했다고 한다.
  • 감주 - 감향주와 향감주가 있다
  • 이화주 - 특이하게 쌀 누룩을 사용한 탁주의 일종

6. 조선시대의 술
조선시대의 술빚기의 특징은 양조원료도 멥쌀 일색에서 찹쌀이 점차 늘어난다는 점과 부본(腐本) 즉, 술밑을 사용하여 효모를 증식시키는 기법이 발전하였다는 점 등입니다. 조선시대에 유명했던 술은 무려 300여가지에 이르며, 소주도 날로 소비가 늘어 다산 정약용이 전국의 소주고리를 거두어 들여 식량난을 예방하자고 상소하기도 할 정도였고, 조선후기에 들어서는 합주류와 과하주류가 출현하여 탁주, 약주, 소주위에 혼양주가 덧붙여지게 되었습니다.

- 조선시대의 술의 종류

탁주
  • 이화주 - 쌀누룩으로 빚어 진하고 주도가 높은 탁주
  • 사절주 - 막누룩으로 빚되 청주를 조금 얻고 탁주로 대부분 걸러 마시는 술로, 맛이 이화주와 비슷함
  • 혼돈주 - 연산군 때 정희량이 빚었다고 하는 술로 사흘만에 걸러 마신다. 혹은, 탁주에 소주를 타서 먹는 술이나는 설도 있다.
  • 합주 - 약주를 뜨지 않고 탁주로 걸러마시는 순탁주
  • 모주 - 술지게미에 물은 타서 끓여 낸 것
홍주와 백주
  • 천대홍주 - 홍국과 누룩 찹쌀로 빚는 술
  • 백주 - 탁주에 속함
감주
  • 감주 - 누룩으로 빚은 술의 일종으로 술과 식혜의 중간
  • 청감주 -물대신 좋은 술로 빚어 감미를 더한 주도한 낮은 술
  • 이양주/청서주 - 여름철에 빚어 먹는 술로 큰 자배기에 찬물을 붓고 수시로 갈아주며, 술독을 그 속에 잠그어 저온 발효시킨다.
  • 와송주 - 스스로 누운 생소나무의 둥치를 말구유모양으로 파내고 그 속에 술을 빚어 넣은 진흙으로 봉하여 익힌 술
  • 죽통주 - 생대나무의 절간을 뚫고 술을 빚어 넣어 익힌 술
  • 가향주 - 도학주, 송화주, 송순주, 하엽청, 연엽양, 진달래술
  • 과실주 - 포도주, 송자주
소주
  • 공덕지소주 - 서울 교외의 시골인 공덕리에 운집한 소주가에서 빚은 순곡 소주, 임진왜란 이후부터 시작됨
  • 안동소주 - 안동지방에 널리 빚어진 순곡 증류주
  • 찹쌀소주 - 찹쌀로 빚은 술밑을 고아낸 소주
  • 삼해소주 - 삼해주의 술밑을 고아낸 소주
혼양주
  • 과하주 - 여름을 넘기는 술, 약주에 소주를 섞어 주도를 높인 서울식 과하주와 달고 진하게 빚어 여름을 넘기는 김천식 과하주가 있다.
  • 송순주 - 찹쌀밥, 송순으로 빚은 술밑에 삼해소주를 부어 서늘한 곳에서 식힌 술
  • 삼해소주 - 삼해주의 술밑을 고아낸 소주
약용소주
  • 관서감홍로 - 소주를 고을 때 지초와 꿀로 바쳐 내린 소주
  • 이강고 - 울금, 계피, 배, 생강, 물을 소주에 넣어 합한 소주
  • 죽력고 - 청죽을 쪼개어 불에 구워 스며 나오는 진맥인 죽력과 물을 소주에 넣고 중탕한 술
약용약주
  • 자주 - 좋은 청주에 약재를 넣고 중탕한 술
  • 구기주 - 구기자즙과 누룩쌀로 약주를 빚어낸 술, 오가피주, 도소주, 밀주, 송절주 등 다수

7. 일제시대하의 술 (1910-45)
조선시대에는 금주정책으로 술에 대한 과세나 전매제도가 없었고, 따라서 술의 공업적 양조보다는 일곱 집에 한 집꼴로 집에서 술을 빚어 마시는 가양주문화가 그 특징이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조선주세령이 발표되고 집에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하고 대신 면허를 주어 주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찬란했던 가양주문화는 단절되고 양조면허를 받은 양조장에서 공업적인 술빚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양조에 필수적인 누룩제조도 기업화되어 조선곡자조합이 생기게 되어 손꼽히는 산업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다양한 주품들이 사라지고 왜식청주(정종), 맥주, 양주 등 외래주가 대거 유입되어 상류계층에서는 왜식청주등 외래주를 음용하고 우리 전통술은 일반서민들사이에서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8. 광복 후
광복의 감격에도 불구하고, 오랜 수탈에 이어진 한국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곤궁과 광복 후 청산되지 못한 일본식 제도의 잔재에 의해 우리 전통술은 오히려 일제하보다도 더욱 더 피폐해졌습니다.탁주가 양적 팽창을 보았고, 희석식 소주가 아직 큰 시장을 유지하고 있는 등 외형적인 모습은 왜곡된 채로나마 발전하였다 하더라도 우리의 진정한 전통술은 거의 명맥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다행히 1980년대 이후부터 불합리한 규제와 제약이 조금씩 해소되어 잊혀진 전통술 50여종이 재현되었으나, 대부분 영세하고 전문 양조기술의 부재와 영업력 부재로 우리의 찬란했던 전통가양주 문화가 복원되기에는 아직도 요원한 실정입니다. 뒤늦게 1995년부터 술을 개인이 빚어 마시는 것이 허용되어 90년간의 가양주 문화단절을 극복하는 기회를 맞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언제, 어떤 곳에나 술이 있었다. 사람이 모이면 술을 빚었고 술이 있으면 사림이 모이고 문화가 싹텄습니다. 술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시름을 잊게 하며 마음의 문을 열어 주기에 술잔을 가운데 두면 모든 원망은 녹아 내리고 사랑과 우정이 싹트며 문화와 인종의 벽도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술로써 몸을 해치고 싸움이 일어나고, 나라가 망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모순되는 술의 양면성은 술이 취하게 하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술을 다스리는 민족과 문화는 번성하였고 술에 사로 잡힌 민족과 문화는 몰락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술을 다스릴 줄 아는 성숙한 문화는 술을 더욱 아름다운 것으로 키워냈습니다. 와인, 위스키, 꼬냑, 마오타이,데킬라 등등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명주들은 성공적인 문화권의 생산물인 것입니다. 오랜 역사와 독창적인 문화를 가진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독특한 전통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리적, 문화적 원근에 따라 서양의 술과는 크게 다르고 중국과 일본의 술과는 비교적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서양의 술과 동아시아 3국의 술을 다르게 하는 것은 누룩입니다. 서양의 과실주는 물론이고 서양의 맥주나 위스키 같은 곡주도 누룩을 사용하지 않고 엿기름으로 술을 빚습니다. 누룩은 밀이나 쌀같은 곡식을 물로 반죽해서 곰팡이가 피어나도록 발효시킨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술도 곰팡이를 이용하여 빚는 누룩술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누룩으로 술을 빚는 동양 3국 술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일본술은 쌀누룩을 사용한 술이며 중국과 우리는 찹쌀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또, 원료는 중국이 찹쌀을 주고 쓰고 일본이 쌀만을 사용해 술을 빚는데 비해 우리는 쌀과 찹쌀, 잡곡들을 다양하게 함께 사용하여 술을 빚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전통술은 지금까지 제조법이 전하는 것만도 약 300여가지에 이릅니다.

dong-dong-ju 미작문화권인 우리나라의 술은 거의 전부가 쌀을 사용한 술로서 쌀과 누룩으로 발효시킨 술밑을 맑게 여과한 것을 약주라 하고 술밑을 증류한 것을 소주, 약주를 거르고 난 찌꺼기에 물을 섞은 것을 탁주라 합니다. 갑작스런 인구증가로 식량이 부족했던 조선시대의 거의 대부분의 우리나라에는 금주령이 시행되었는데 다만 질병을 치유하는데 사용하는 약용주는 예외로 허용했으므로 술을 만들어 마시기위한 편법으로 청주를 약주라고 부리기 시작한 것이 이제까지 전통청주 또는 모든 술을 약주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전통술은 신맛과 단맛이 어우러져 먹기 좋고 독특한 과실향이 납니다. 또한 좁은 국토에서 빚어진 술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다는 점이 남다릅니다. 무엇이 우리전통술의 그러한 특성을 가져다 주었을까요? 그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우리 조상들의 술에 대한 독특한 생각과 가양주문화에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전통술을 단순한 기호음료가 아니라 음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나이 지긋한 분들은 술을 마신다고 하지 않고 술을 먹는다고 합나다. 술이 음식이기 때문에 5미가 조화된 맛있는 술을 좋은 술이라 하였고 음식이기에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서양, 중국, 일본과 달리 역대왕조의 금주정책으로 공업적 양조보다는 집에서 빚어 마시는 가양주문화가 발달한 탓에 역설적으로 엄청나게 다양한 술들이 전하는 것입니다. 또다른 우리전통술의 특징은 기능성이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음식이 곧 가장 좋은 약이라는 생각이 술에도 적용되어 술자체를 약으로 쓰기도 하고 특히, 술의 부원료로 생약재를 사용한 술의 발달을 가져왔습니다. 생약재의 고유한 약효외에도 순환기질환과 암등에 작용하는 전통누룩과 전통술의 기능성도 현대과학의 힘을 입어 그 과학성이 속속 입증되고 있습니다.

  전통술을 빚는 방법
  1. 통밀을 부수어 물과 함께 반죽하여 덩어리지게 합니다.
  2. 덩어리지게 한 반죽을 약 6개월간 발효시키면 속속들이 곰방이가 만들어 집니다.
  3. 이렇게 만든 누룩과 쌀, 보리 등 곡물원료를 한데 버무려 물과 함께 옹기독에 넣어 발효시키면 짧게는 3일 길게는 100일정도 후에 찌꺼기가 가라앉고 술독표면에 맑고 노른 물이 떠 오릅니다. 이것을 떠내면 알콜도수 16도 전후의 약주가 됩니다.
  4. 남은 찌꺼기에 물을 타서 체에 걸러내면 탁주(막걸리)가 되고 소주고리에 증류해 내면 소주가 됩니다. 유명한 약주로는 백하주, 호산춘, 소곡주 등이 있고, 막걸리로는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할 정도로 진한 이화주, 산성막걸리가 유명했고, 소주로는 평양소주, 이강주, 안동소주 등이 유명했습니다.
    이밖에도 노송의 썩은 허리에 술을 빚어 넣은 와송주, 대나무속에서 익힌 죽통주같은 술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전통술탁주, 약주, 소주로 대표된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제조방법으로 볼 때 탁주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탁주에서 재(滓)를 제거하여 약주가 되었으며, 이를 증류하여 소주가 만들어졌다.

◆ 탁주

오늘날에도 널리 애음되고 있는 막걸리인 탁주는 약주와 함께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도시의 서민층과 농민에게까지 널리 기호층을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의 토속주이다. 탁주는 예로부터 자가제조로 애용되었기 때문에 각 가정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만들어져 그 맛도 다양한 것이 특징이었으며 대중주로서의 위치도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탁주는 지방방언으로 대포, 모주, 왕대포, 젓내기술(논산), 탁배기(제주), 탁주배기(부산), 탁쭈(경북)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삼국시대 이래 양조기술의 발달로 약주가 등장했지만, 탁주와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았다. 같은 원료를 사용해서 탁하게 빚을 수도 있고 맑게 빚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이래로 대표적인 탁주는 이화주(梨花酒)였다. 이 이름은 탁주용 누룩을 배꽃이 필 무렵에 만든 데에서 유래했으나 후세에 와서는 어느 때나 누룩을 만들었으므로 그 이름이 사라지고 말았다. 일반에 널리 보급된 탁주는 가장 소박하게 만들어진 술로서, 농주로 음용되어 왔다.

탁주와 약주는 곡류와 기타 전분이 함유된 물료나 전분당, 국 및 물을 원료로 한다. 여기에서 발효시킨 술덧을 여과 제성했는가의 여부에 따라 탁주와 약주로 구분된다.

◆ 약주

약주는 탁주의 숙성이 거의 끝날 때쯤, 술독 위에 맑게 뜨는 액체 속에 싸리나 대오리로 둥글고 깊게 통같이 만든 ‘용수’를 박아 맑은 액체만떠낸 것이다.

약주란 원래 중국에서는 약으로 쓰이는 술이라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약용주라는 뜻이 아니다. 한국에서 약주라 불리게 된 것은 조선시대 학자 서유거(徐有渠)가 좋은 술을 빚었는데 그의 호가 약봉(藥峰)이고, 그가 약현동(藥峴洞)에 살았다 하여 ‘약봉이 만든 술’, ‘약현에서 만든 술’이라는 의미에서 약주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약주에 속하는 술로는 백하주, 향은주, 하향주, 소국주, 부의주, 청명주, 감향주, 절주, 방문주, 석탄주, 법주 등이 있다. 이밖에 보다 섬세한 방법으로 여러 번 덧술한 약주에 호산춘, 약산춘 등이 있는데, ‘춘(春)’자를 붙인 것은 중국 당나라 때의 예를 본뜬 것이다. 그리고 비록 ‘춘’자는 붙지 않았어도 같은 종류의 술로 삼해주, 백일주, 사마주 등이 있다.

◆ 청주

청주는 백미로 만드는 양조주로서 탁주와 비교하여 맑은 술이라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청주는 음료로서 사용되지만, 육류와 생선요리 등 각종 요리에 조미용으로도 사용된다.

청주는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진 한국의 술이다. 일본 「고사기(古史記)」에는 백제의 인번(仁番)이 응신천황(應神天皇, 270-312년) 때 일본에 건너와 새로운 방법으로 미주(美酒)를 빚었으므로 그를 주신(酒神)으로 모셨다고 전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미주는 청주의 전신인 듯하다.

고려시대 「동국이상국집」의 시(詩)에서는 “발효된 술덧을 압착하여 맑은 청주를 얻는데 겨우 4-5병을 얻을 뿐이다”라고 했고, 「고려도경」에서도 “왕이 마시는 술은 양온서에서 다스리는데 청주와 법주의 두 가지가 있으며 질항아리에 넣어 명주로 봉해서 저장해 둔다”라고 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는 발효된 술덧을 압착하거나 걸러내어 맑은 술을 빚었고, 이미 덧술법을 사용하여 알코올 농도가 높은 청주를 빚은 듯하다. 즉 발효가 끝난 술덧을 잘 걸러내어 부드럽게 마실 수 있게 맑게 한 술이 청주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식 청주가 만들어진 것은 1900년 이후이다.

◆ 소주

소주는 오래 보관할 수 없는 일반 양조주의 결점을 없애기 위해서 고안된 술로서 발효원액을 증류하여 얻는 술이다.

소주는 인도나 이집트 등지에서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이나 2,800년 전부터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국내문헌에 의하면, 600년 전 중국 원나라 때 처음 생산되었다. 이때는 감로(甘露), 아라키(亞刺吉)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술을 만주에서는 이얼키(亞兒吉)라고 하고 아라비아에서는 아라크(Araq)라고 했다. 아라키라는 이름은 아라비아의 아라크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주는 징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가 일본 원정을 목적으로 한반도에 진출한 후 몽고인의 대본당이었던 개성과 전진기지가 있던 안동, 제주도 등지에서 많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원나라가 고려와 함께 일본을 정벌할 때 안동을 병참기지로 만들면서 안동소주가 알려지게 되었는데, 안동소주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더욱 발전했다. 당시 원나라는 페르시아의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세력이 중국은 물론 한반도에도 미쳤다. 원의 이러한 세력확장에 따라 페르시아 증류법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다.

한반도에 들어온 소주는 지역마다 명칭을 달리했다. 개성에서는 ‘아락주’라고 했고, 평북지방에서는 ‘아랑주’라고 했다. 경북과 전남, 충북 일부에서는 ‘새주’, ‘세주’라고 했다. 진주에서는 ‘쇠주’, 하동과 목포, 서귀포 등지에서는 ‘아랑주’, 연천에서는 ‘아래지’, 순천과 해남에서는 ‘효주’라고 불리었다.

고려시대 중국에서 전래된 소주는 오랫동안 약용으로 음용되다가 조선시대에 와서야 ‘술’로서 일반인들이 마시게 되었으며 ‘약소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반도에서는 평양에서 만든 ‘감홍로(甘紅露)’가 최초의 소주이고, ‘재소주’(두 번 증류하여 강도가 높은 소주)는 태국으로부터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 가향주(加香酒)

술에 독특한 향을 주기 위해서 꽃이나 식물의 잎 등을 넣어 만든 술이다. 진달래꽃을 쓰는 두견주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화주(花酒)가 있는데, 빚는 방법으로는 일반 처방에다 가향재료를 넣어 함께 빚는 것과 이미 만들어진 곡주에 가향재료를 우러나게 하여 빚는 가향 입주법이 있다.

출처 : http://www.krla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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