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지난 주 토요일 오전 10시쯤 남편과 함께 호텔 앞 까페를 방문했다. 남편 등 뒷편 사선 방향에 아주 어린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미취학 아동이거나 기껏해야 초등학교 1~2학년 정도 될 것 같았다. 아이는 애착 인형을 꼭 안고 있었고 시종일관 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여기까지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므로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 시선은 아이 앞에 앉은 사람과 테이블에 있었다. 아이 앞에 앉은 사람은 과외 선생님이었고 테이블에는 학습 교재가 놓여 있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약간 커질때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니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선생님은 교재를 보며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는 반면 아이의 시선은 교재 대신 까페를 두리번 거리거나 창 밖을 쳐다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선생님의 질문에 간간히 대답을 하긴 했지만 그 마저도 대충 대답하는 듯 했다. 대답할때마다 애착 인형을 쓰다듬는 건 기본이었다.
하필 내가 앉은 자리에서 너무 가까운 곳에 있던 장면이라 나는 남편과 대화를 하면서도 자꾸만 그 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자리도 자리이지만 교육학자인 내 정체성 때문인 것이 더 컸으리라 생각한다. 토요일 아침에 늦잠을 잘 수도 있고 부모에게 한껏 어리광을 부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나이인데 까페에서 과외 선생님이랑 마주 앉아 있는 아이를 보며 씁쓸함이 컸다.
요즘 집 대신 까페에서 과외를 한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카공족이 생기면서 까페에서 공부하는 것이 의외로 괜찮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집에 있는 가족 구성원들이 과외로 인해 신경쓰거나 조심할 필요가 없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얘기를 들을때마다 중고생들 과외라고 생각했지 10살도 채 안된 아이에게 해당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여러 질문이 떠올랐다. 부산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곳인 해운대여서일까? 아니면 이 아이의 상황이 매우 특별한 것일까? 내가 방문한 카페는 해운대 지역에서 호텔이 밀집한 곳이기에 섣부른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아파트가 밀집한 곳의 까페는 어떠한지 궁금했지만 연구자가 아닌 여행자로 왔기에 나는 한 시간 반 동안 커피를 마신 후 바다를 보기 위해 까페를 나왔다. 아이는 여전히 선생님과 함께 까페에 있었다.
어제 지인을 만나 이 얘기를 해주니 그녀는 웃으며 "대치동에 와서 보세요. 흔한 일이예요."라고 말했다. 날더러 뭘 그리 놀라냐는 말도 덧붙였다. 순간 머리가 아득해졌다. 그녀는 대치동에 거주하며 초등학생과 중학생 두 아이를 키우고 있고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녀는 언제나 교과서에 국한되어 문제를 출제하는데 100점 받는 학생이 20명에 가깝다고 한다. 초등학생은 변별을 안해도 되는데 고등학생은 상대평가를 해야하니 대치동의 경우 학생들이 어릴때부터 기를 쓰고 선행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100점 받은 학생이 대부분이면 교사로서 기분이 좋아야하는데 왠지 자신이 문제를 잘못 출제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말에 나는 또다시 씁쓸했다.
해운대 까페 장면은 나에게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수업에서 기회가 될때마다 학생들에게 언급할 계획이다. 단순히 이런 문화가 문제라며 비난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육이 지금 무엇을 추구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제대로 들여다보자는 의미에서이다. 누군가는 현재 교육 현상이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이라고 하겠지만 누군가는 비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인 교육이므로 바꾸도록 노력하자고 할 것이다. 모두가 후자일 수는 없다. 다만, 후자인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많아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