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자씨
"춘자씨!!!
보고싶어 혼났어요"
"춘자씨
저도 보고 싶었어요?"
서로를 보며 춘자씨라고 말하는
두사람의 이야기를따라
오늘은 걸어가 봅니다
퇴근
병원으로 달려온 여자는
사랑의 하트를 쉴새없이 날려가며 애정표현을 해대지만
침대에 누운 사람은
눈만 끔뻑거리며
왜 귀찮게 하느냐는 듯
입술을 삐죽거리기만 하는데요
춘자씨..
늦게와서 삐졌구나?"
여자는
그런 모습과는 아랑곳 없이
누워있는 환자의 발에
신발을 신기더니
휠체어에 태워 산책을 나왔는데요
병원 앞마당을 왔다갔다하다
단풍잎으로 빨깔게 달궈진
벤치에 마주보고 앉더니
'춘자씨.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춘자씨는
힘들지 않았나요?"
춘자씨..
밥 잘 먹고 많이 웃으셨나요?"
춘자씨도
밥 잘먹고 많이 웃었나요?"
안부를 되물으며
서로를 춘자씨라 부르는 두사람은
엄마와 딸이랍니다
치매걸린 엄마가
끝가지 기억했던
한가지 자신의 이름
"춘자씨.."
딸이
자신인 춘자씨라고
생각하는 엄마
딸은
기억의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줄
소중한 단 한사람이 되어
오늘도 하루를 함께하고 있었는데요
"이제 곧 추석이네..
춘자씨..
작년 추석때 함께 송편 만들었던거 기억나?"
춘자씨..
우리 송편 좋아한다..
고운 그 마음을 내게 주셔서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춘자씨..
이번에도 우리둘이
누가누가 잘 만드나 내기할까?"
나무가 불러서인지
지나는 새가 내려앉더니
행복은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거라며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춘자씨....
선택해 오른쪽인 이 손엔 행복
왼쪽 손에 슬픔...
"춘자씨..
나 이거할래"
'그치..
춘자씨
오늘 행복을 선택했으니
지금부터 우린 행복해지는거다."며
간지러움을 태우는
딸의 모습에
세상 날아갈듯한 웃음으로
화답하고 있는 춘자씨
그렇게
두사람은 아픔도 힘이 된다며
노닐던 자리는
어느새 빨간 노을이 드리우고 있었고
하늘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노란달을 등지고서야
병실로 돌아온 딸은
빛바랜 액자를 꺼내어
지난 기억의 물레를 돌려봅니다
"춘자씨.
와젊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짚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춘자씨
"춘자씨
이사람 누구야?"
춘자다...
춘자"
지난 행복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놓다
금방 꿈나라로 여행을 떠난 모습에
"춘자씨..
잘 주무세요"
딸의 말은 귀에 닿질 않는
마음속 독백처럼
가을바람을 따라
떠다니기만 할뿐
대답조차 사라진
병실안 침대 모서리에서
자다깨는 쪽잠으로
밤을 꼬박 버틴 뒤
밝아온 아침을따라
걸어나가고 있었습니다
기억이 엉클어진
엄마의 변화된 모습이
처음엔 힘이 들었지만
엄마의 일상이
언젠간 나도 걸어가야할 길이라며
점점 쇠약해져가는
엄마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딸은
지금껏 나에게 빛을 주던
엄마의 그 마음을
모르고 살아온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치매걸린 사람은
춘자씨가 아닌 나였다며..
오늘도 함께하는 엄마는
내게 아픔이 아니라
지키고 싶은
영원한 행복이라고 말하는
자리에 번진 눈물로
어쩌면
우리에게 찾아올 기적이란
하루하루 사랑한
시간을 따라 오는거란걸
믿을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를
파란 하늘에 그려넣고 있었습니다
"내 엄마니까...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