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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눈을 뜨니 동쪽 하늘빛과 서쪽 하늘빛이 사뭇 다르다.
어제도 청명하던 하늘이 어느새 구름이 시커멓게 변하나 싶더니
금새 소나기를 한바탕 뿌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파아란 얼굴을 곱게 내밀었다.
오늘 날씨도 어제처럼 그러려나.
아침 차 한 잔 손에 들고 창가로 다가 가 본다.
언제 바라다 봐도 평화로워 보이는 창밖 산복마을.
그러나 지금은 거의 반이 빈집으로 남아 았는 오래된 마을.
아마 이 마을을 떠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활의 불편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쾌적한 아파트로 다들 이사 했으리라.
다시 고개를 돌려 반대편으로 바라 본 잔뜩
흐린 남항 앞 바다.
금새라도 매섭게 높은 파도가 몰아칠 것 같은 데도
이른 아침부터 크고 작은 배들이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바삐 움직이며 오간다.
새벽 조업을 마치고 돌아 오는 배들.
그리고 이제 조업을 나가는 게으른 배들.
어제 는
이른 저녁에
이브닝 차 마살라차이
한 잔을 마신 다음 한동안 미루어 두었던 집 대청소에 들어 갔다.
본격적으로 가을에 돌입한다는 처서
가을맞이 대청소다.
대청소란 원래 한낮에 하는 게
맞은 일이긴 하지만 요즘처럼 더운 날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날에는
차라리 저녁에 하는 게 훨씬 편하다.
대신 불을 환히 켜 둔채.
청소는 주방이 딸린 거실부터 시작했다.
먼지가 가장 잘 생기고 많이 쌓이는 곳이기도 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이 곳 거실에서 보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혼자 사는 집이라
대청소라 해 봐야 크게 할 것도 없다.
집안 여기저기를 좀 더 깔끔하게 정리정돈 하는 수준이라고나 할까.
안방과 작은 방, 나름 서재까지 정리하고 나니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왕 하는 김에 화장실 때도 조금 벗겨 냈다.
다행히 앞에 살던 사람이 집을 깨끗하게 관리하며 산 덕분에
특별히 크게 손을 댈 것도 없다.
내 나이 또래의 부부만 살던 곳이니까.
작은 아들 내외와 합가하기 위하여 이사를 하게 되었다며
약간 아쉬워 하기도 했던 집이다.
대청소를 한 다음 날 아침.
전날 덮고 깔고 자던 이부자리들을 한데 모아
세탁기에 넣었다.
이왕 대청소를 하는 김에 함께 다 하고 싶었다.
사실 이부자리도 이번에 여름을 맞이 하며 새로 다 구입을 한 것들이다.
이들도 이미 두어 번은 세탁을 했다.
얇고 가벼워 세탁 하기도 좋다.
세탁기도 한 달 전에 새로 바꿨다.
전에 있던 대용량 세탁기는 10만원을 주고
청소를 했는 데도 한번씩 털털거리거나 쿵쿵 거리기도 하여
신경이 쓰여 바꿔 버린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10만원이란 거금(?)을 들여 청소를 해서
최소 한 반년은 더 쓰고 싶었다.
하지만
차라리 바꾸어 세탁기에 대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훨씬 더 가심비가 있을 것 같아 다소 아쉽긴 하지만
과감하게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난 후 모닝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고는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롯데백화점 식당가다.
요즘들어 일반 식당을 가기보다 더 자주 백화점 식당가를
찾는 이유는 더위 속에서 식당을 고르며 찾아 다니는 것 보다
이 곳에는 수많은 식당들이 모여 있어
금방 먹고 싶은 식당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여기에는 번거로운 브레이크 타임도 없다.
그 외에 한 가지 더 이점이 있기도 하다.
롯데카드로 지불하면 나중 월말에 카드값을 계산 할 때
10~15퍼센트 정도 차감해 준다는 것이다.
백화점 내 카페를 이용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요즘같은 한여름에는 백화점에서 식사를 하고
카페를 이용하는 것이 가성비가 꽤 높기도 하다.
식사를 한 후 찾아간 숲길.
언제나 그렇지만 숲길은 찾아가기가 번거롭지
일단 숲에 들어 오면 싱그럽기가 그지 없다.
이왕 들어선 숲길.
오늘 남은 하루는 이 숲속을 거닐며 마저 다 보내야 겠다.
아니
이 숲길을 버리고 따가운 햇살이 내리 쬐는 아스팔트 보도로
다시 내려 가는 게 한편은 끔찍 하기도 하다.
쭉쭉 뻗은 편백 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그 아래로 긴 벤치가 곳곳에 놓여 있는 작은 산
아담한 숲길.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힐링 장소다.
더구나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이런
산림욕장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더없는 복을 받은 거나 다름 없다.
나무잎 수풀 틈새로 반짝 들어오는 햇살조차 이럴 때는
참 반갑기도 하다.
도시민을 위한 도시의 작고 얕은 산을 끼고 도는 산책길이라
어디를 가도 걷기가 편안 하다.
맨발로 걷기 좋은 숲길도 있고
야자나무 껍질로 만든 편안한 산길도 있다.
걷다보면 때로는 곧은 길도 만나고
때로는 굽은 길도 만난다.
우리의 삶과 같은 길이기도 하다.
누구는 일생의 대부분을 평탄하게 걷기도 하고
또 누구는 그 삶의 대부분을 굴곡지고 고단하게 보낸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인생을 걸어 간다.
산길을 이리 걷고 저리 걷고
때로는 걸은 길을 다시 걷고 하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나도 모르게 발길이 한 카페에 닿았다.
카페 만디.
만디란 꼭대기란 뜻의 경상도 사투리다.
산만디는 물론 산꼭대기다.
카페 만디는 거의 대부분 손님들이
이웃이나 이웃 동네 사람이거나
혹은 차를 가져 오는 사람들이다.
위치는
그 위에 더 이상 주거지가 없는
마을의 제일 꼭대기에 있다.
그래서 카페 이름이 만디다.
적절한 이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카페의 분위기도 좋고
커피 등 음료의 맛도 좋다.
이 번에는 엑설러트 라떼를 주문해 봤다.
아이스크림을 녹여 가며 천천히 맛을 음미하라고
친절하게 설명도 해 준다.
시킨대로 마시니 맛있다.
대략 반 시간 정도 머물다가 카페를 나오려니
바리스타가 커피 맛이 어땠냐고 묻는다.
메뉴 이름 그대로 엑설런트 했다며 손가락을 치켜 주고 나왔다.
그러는 게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고
맛나게 마신 라떼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카페를 나와 감천 문화마을 방향으로 걸어 가는 길.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사람을 빤히 쳐다 본다.
똘망똘망한 눈이 참 귀엽고 예쁘다.
카페 만디에서 감천 문화마을로 가는 길.
이 길 또한 예쁘다.
오늘은 감천 문화마을을 돌지 않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원래는 이 동네를 한바퀴 돌고 난 후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집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마을을 한바퀴 도는 대신에 집까지 걸어 가기로 했다.
대신 오랫만에 호랑나비를 만났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나비는 날개를 접고 앉고
나방은 날개를 펴고 앉는다고 알려 졌지만
이 호랑나비처럼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세상의 모든 이치란 게 꼭 상식대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란 걸
우리는 살아 오면서 볼만큼 보아 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