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큰 빛이 보이고 비치도다
Text Ish 9,1-7
(1)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1. 우리 ‘엔학고레의 집’에 제일 많이 피는 꽃이 영어 이름으로 ‘메리골드’라고도 하는 ‘서광(瑞光)’입니다. 서광은 사람들이 스치기만 해도 박하 향기를 듬뿍 뿜어줍니다. 옛 어른들은 이 꽃을 장독대나 대문 주변에 심었는데 이 꽃 향기가 뱀을 쫓는다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해충을 떨어뜨리는 특성이 있어 모기나 하루살이 등의 침입을 막아준다고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서광에는 항염 작용이 있는 화합물과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여 염증을 줄이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효능도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제 개인적으로 이 꽃이 좋은 것은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는 꽃말입니다. 그 외에도 서광의 꽃말에는 기쁨, 낙천주의, 쾌활함 등과 같이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말이 주로 사용됩니다. 새해에도 우리 ‘엔학고레의 집’에는 서광이 많이 펴서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까지 장식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얼른 혼돈과 분열과 대립이 심화하는 탄핵 정국이 끝나고 새로운 시작과 기회, 새로운 도전에 대한 희망과 용기의 서광이 비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신 것을 묵상하며 은혜받는 주현절 마지막 주일이 오늘입니다. 이제 다음 주일부터는 사순절이 시작될 것입니다. 오늘 주현절 마지막 주일에 우리가 은혜받을 성경 본문은 흑암에 행하던 백성과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어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2025년 대한민국과 우리 성도들 각자에게 그 빛, 서광이 비치는 은혜가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 먼저, 1-2절 말씀을 봅니다. “(1)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 말씀은 마4,14-16절에 약간 변형되어 인용되었습니다. “(14)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그리고 그렇게 인용된 것은 예수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신 것(마4,12-13) 때문입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라고 하는 지역은 북쪽 갈릴리 지역과 요단 동편 지역을 포함한 말입니다.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많은 이방 민족(아람인, 페니키아인, 헬라인 등)이 거주하면서 유대인 정통 신앙에서 멀어졌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이방의 갈릴리’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강 저편 해변 길’에서 해변은 갈릴리 호수 해변을 뜻하는데,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갈릴리 호수를 바다라 불렀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의 주요 도시는 가버나움, 나사렛, 가나, 가다라 등이고, 예수님께서 주로 사역하신 지역이기도 합니다. 갈릴리 지역은 유대 지도층에게 멸시받았지만, 예수님은 이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빛을 비추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스라엘 지역이지만 변방에 있어 이민족의 침입을 자주 받아 학대와 고통을 당하였고 동족들에게도 이민족과 결합했다는 무시와 천대를 받는 이중고를 겪은 지역이 이 지역입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모든 일이 어둡고 우울하며 환난과 고통의 흑암 뿐인채로 살아야 했습니다만 하나님은 이제 영화롭게 하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은 큰 빛이 나타나 그 지역을 비출 것이니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빛을 보고 그 빛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빛은 자기 땅에 오신 예수님이심을 요1,9-14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러분,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 저편에 산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매우 암담하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며(시112,4), 어두워 갈 때 빛이 있게 되어(슥 14,7), 고통당하는 최악의 사태에도, 하나님의 백성은 핍박을 당하여도 버린 바 되지는 아니하며(고후4,9),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할 수(고후6,10)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껏 흑암이 있었고 그것은 매우 오래 지속되었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될 것이라고.
혹시, 지금 자신이 흑암의 땅에 있다고 여겨지십니까? 그 흑암의 땅에 주현절의 빛, 서광이 비치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그 빛을 바라보십시오. 그 빛을 영접하십시오. 그 빛에 자신을 모두 맡기십시오. 그 빛의 꽃길을 걸으십시오. 그 향취에 젖어 사십시오. 아멘.
3. 다음, 3-5절을 봅니다 “(3)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여기에서 3절 번역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히브리어 원문 사본에는 ‘나라를 창성하게 하신다. 그리고 기쁨을 증가시키지는 않으신다. 그 기쁨은 전에 추수 때에 가졌던 기쁨이나 탈취물을 나눌 때의 기쁨 같은 기쁨이다.’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성하게 하신다는 것은 연이은 심판에 의해 감소하던 인구가 다시 늘어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메시아의 도래로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기는 하지만 정욕적인 기쁨과 환락, 그런 즐거움의 대상과 원인이 되는 것들을 더하게 하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메시아의 권능은 무겁게 멘 멍에와 어깨의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어주시는 영적 기쁨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서로 싸우고 죽이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은 볏짚을 태워 없애듯 없애시는 평화의 시대를 주시겠다고도 하십니다. 마치 미디안의 멍에가 기드온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목에서 꺾어져 나갔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세상적인 선물에 더 관심이 많은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선물이 선물일 수 있는 것은 선물을 주시는 분 때문입니다. 아무리 고가의 선물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주는 선물이라면 기쁜 선물이 아니라는 것과 같습니다. 주는 분과 관계없이 선물 그 자체에 기준을 둔다면 그 선물은 독일 수 있다는 것은 인류사에 드러난 죄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부와 신분 상승을 꿈꾸며 부와 신분 모두를 갖춘 사람과 결혼을 하면서 결혼하는 배우자에게는 관심이 없고 그가 가지고 있는 부와 신분만을 취하고자 하는 사람이 오늘 우리 가운데 꽤 많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선물 중 최고의 선물은 빛으로 오신 분 자체입니다. 그분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원리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요즘 자주 언급되는 김구 선생의 말이 있습니다. 내가 꿈꾸는 나라는 강하여 남의 나라를 침탈하거나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모든 나라와 백성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문화강국이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강한 나라를 꿈꾸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세계는 자기, 자국 등과 내편 네편 따지면서 남이야 어찌 되든 말든 내가 먼저 세계 제일이 돼야 하겠고 세계 최강이 되겠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사상입니다.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우다 모두 죽게 만드려는 사탄의 궤계입니다.
저는 찬송가 441장을 좋아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달라고 구하고, 은사를 원한다고 구하며, 병을 낫게 하는 은혜를 구했는데, 은혜와 은사와 신유의 주님은 은혜와 은사와 신유를 주신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내용의 찬송입니다. 내 뜻과 내 욕심 다 던져버리고 말씀위에 서서 온전히 자신을 주께 맡겨, 전엔 나를 위해 구하였었지만 이젠 주만 위해 힘써 일하겠다는 내용의 찬송입니다. 오늘 주현절 마지막 주일에 주님은 다시 한번 더 우리에게 빛을 비추시면서 주님의 성도가 받을 복과 은혜의 내용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이기심과 탐욕과 세상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미디안의 멍에가 꺾여지기를 축복합니다. 이 나라와 이 땅과 온 교회에게서 피 묻은 군인의 신과 옷이 사라지도록 기도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 주의 백성이 창성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이 빛이 산 위에와 등잔걸이 위에, 말 위에 있어 세상에 비치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빛을 따르는 주의 백성이 창성해야 합니다. 이 나라의 운명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직접 보여주시는 그 주님의 모습을 찾고 구하고 순종하는 주님의 성도에게 달려 있습니다. 스불론과 납달리와 요단 저편 갈릴리처럼 어둠에 잠긴 오늘날의 성도 모두에게 주님의 빛이 환하게 비추어지기를 기도합니다.
4. 끝으로 6-7절을 봅니다.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오늘을 사는 우리는 본문에서 말하는 이 아기가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만, 이사야 선지자가 살아 있던 당시에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 약속의 메시아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시고 평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스불론과 납달리와 갈릴리 해변에 나타나셨을 때, 멸시와 천대를 받던 그곳의 길들은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의 서광(메리골드)이 가득한 꽃길이 되었습니다. 거기 가버나움에서 수많은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거기 갈릴리 바다와 해변에서 광풍이 잔잔케 되고 오병이어로 이루어진 잔치가 열렸습니다. 그저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을 뿐인데 두 배가 물에 잠길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으로 된 기적만이 진정한 기적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이라야 진정한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라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그 일을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모든 복된 일에는 두 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열심’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열심으로 이루어지게 보증하시는 예수님을 찾고 구하고 영접하며 순종하십시오. 물을 떠난 고기는 혹시 산다 하여도 예수 떠난 내 심령은 살 수 없습니다. 아침에는 예수로 눈을 뜨게 하시고 저녁에는 예수로 잠을 자게 해달라고 구하셔야 합니다. 예수 없는 사업은 성공 같되 실패요 예수 있는 생활은 만사가 유익하기 때문랍니다.
여러분, 복잡한 신학 사상이나 이론은 알면 물론 좋지만, 그런 것은 몰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향한 열심이 없으면 그 복잡한 신학 사상이나 이론은 아무리 많이 알아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낮의 하늘에는 태양이 하나뿐이고 밤의 하늘에는 달이 하나뿐이듯, 성도의 낮 삶에는 오직 예수 해만 있으면 되고 성도의 밤 삶에는 예수 달만 있으면 됩니다. 성도의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내 마음 중심에서 늘 확인하고, 그 예수님과 늘 대화하면서 동행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묘하신 지혜와, 전능하신 능력의 역사와, 정사와 평강이 충만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꼭 그렇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