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지난 곳에 남는 것은? 길입니다.
그런 모양입니다.
사람이란 참으로 모지락스런 물건이어서, 그들이 지나고 나면 길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숙소 주인 아저씨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알려준 비장의 카드가 있다 하길래,
제우쳐 물었습니다. "거기가 어딘데요? 어찌 가면 되나요?"
철지난 달력을 한 장 부~욱 찟어서(아... 달력 종이는 150g 스노우화이트였습니다)
그 뒤에다 사인펜으로 자상하게도 알려준 코스.
바로 형제봉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형제봉은 지리산에 있는 형제봉과 이름은 같지만, 지리산에 끼지 못한 산이었습니다.
티코로 갈 수 있다 없다, 주인 내외는 잠시 승강이를 했지만, 별무 상관이었습니다.
이미 지리산관광도로를 일주한 당당한 레저용(?)티코였으니까.
까짓 사륜구동은 아니었대도 이제껏 6년 동안 한번도 말썽을 부린 일이 없으니까요.
다음날 라면과 커피를 챙겨들고 티코에 올랐습니다.
주인 내외가 알려준 카드에는
형제봉에서 끓여먹는 라면과 커피가 일품이라는 팁이 달려 있었던 탓입니다.
달력에 그려진 약도를 짚어가며 들어선 초입부터 공사를 하느라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못 간다'를 주장하던 아주머니의 말씀이 새삼스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들어서면 끝장을 보고야 만다는 "새마을정신(?)"으로 내달렸습니다.
이름하여 임도(林道), 산불이나 벌목한 나무를 나르기 위해
산을 나선형으로 돌아가며 만든 비포장도로. 간혹 시멘트포장은 되어 있었습니다.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하다 티코가 겨우 지날 만한 폭의 비포장도로를
벌떡이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쭈뼛쭈뼛 솟는 머리칼을 눌러가며 내달렸습니다.
가는 길에 '활공장'이란 이정표. 아니 이렇게 험한 곳에 왠 활공장? 하며 달렸습니다.
한편으로 낭떨어지를 내려다보며
활공장이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를 짐짓 가늠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언제나 끝이 날까 싶어하던 바로 그 순간에 돌아내려오는 차 한 대를 만났습니다.
물었습니다.
"정상이 먼가요?"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물을 구할 수 있나요?"
"글쎄요..."
속으로는 이렇게 물었던 겁니다.
"정상이 먼가요?(활공장 주인이세요? 왜 이곳에 활공장을 세우셨죠?)"
---
"물을 구할 수 있나요?(활공장에 가면 물은 있죠? 라면과 커피 끓일 물 조금은 얻을 수 있는거죠?)"
---
야박하단 생각을 하면서 멀쩡하게 생긴 양반이 짓궂게도 이런 곳에 공장을 차리고 그러네...
다시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들국화의 노랫말을 떠올리며 가노라니...
하늘이 보이고 길도 막바지에 이른 듯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정표 "활공장 500M."
어라! 여기 공장이 어딨어?
해발 1150미터. 형제봉.
그리고 스포츠형으로 깎은 머리처럼 산마루가 온통 벌목이 되어 있고,
깃대 하나 펄~럭!
활공장은 없었습니다. 그저 그곳은 패러글라이딩 이륙, 아니 활공장이었던 것입니다.
허탈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한참을 웃어대다가 발치를 바라보았습니다.
악양 뜰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이는 태어나서 1년 4개월만에 해발 1150미터에 올랐습니다.
그곳에서 위태롭게 앉은 모습을 찍고서 내심 헛헛했습니다.
사람이 지난 곳이 길이라더니...
사람만이 아니라 사람이 탄 차가 지난 곳도 길이고,
길은 곧 편리고, 편리는 또 한편의 상실이기도 했습니다.
오르고 나서의 뿌듯함이 외려 민망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먼저 자리를 차지한 부부 동반으로 오신 어른들 네 분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을 것을 권하는 통에 알뜰하게 준비해간 라면도 커피도 빛이 바래고 말았습니다.
길... 조심해서 살아야겠단 생각, 내려오는 중에 내려놓질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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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봉_해발 1150, 임도를 타고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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