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시집 『사슴 』은 당대의 시인들에게 폭넓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예를 듭니다
- 하늘이 이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부분
-어머님, 나는 별하나에 아름다운 말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 패,경,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어머니 된 계집애 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윤동주, 「별헤는 밤 」부분
윤동주는 백석시인의 『사슴 』을 필사했다고 합니다.
문체를 흡수한 결과 생의 성찰이 열거형 산문시형으로 비슷하게 나타나고 외국의
시인이름이 같게 나타난 것입니다.
『사슴 』 은 2005년 《시인세계 》의 설문조사에서 현역시인 156명에게
'우리시대 시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선정되었고 ,
2003년도 대입수능시험에 시 <고향>이 지문으로 출제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2012년에는 문학평론가 75명이 한국대표시집을 뽑았는데
1위에 김소월의 『진달래꽃 』
2위에 서정주의 『 화사집 』
3위에 백석의 『 사슴 』
4위에 한용운의 『 님의 침묵 』
5위에 윤동주의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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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이 왜 이남으로 오지않았는지에 의문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친일도 하지않았고, 부모와 아내가 평양에 있었고, 특정한 문인단체에 가입하지도 않았기에
위험한 남행을 해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북한에서 번역일과 아동문학으로 사상의 위험이 드러나지않는 문학을 하였으나
1958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편지'(붉은 편지)는
사회주의 건설 속도를 위한 명분으로 북한 문학계를 휩쓸었습니다.
사상성이 약했던 백석은 함경도 삼수군의 협동조합으로 쫓겨나게 되고
양을 돌보는 일을 하다가
거기서 84세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신문에 난 자료를 보니 한때 미남이었던 얼굴은 간 곳 없고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모습과
고생을 한 흔적이 전체에 남아있었습니다.
첫댓글 백석 시인님께서 84세에 영면하샸군요...
북한에서 일찍 돌아가신 줄만 알았는데...
양치기를 하시다 돌아가셨으니 나름 시인다운 마지막이었습니다...
지금 쯤 하늘나라에서도 주옥 같은 시를 짓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