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분과 같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분의 거룩한 율법의 원칙과 일치한 품성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성화이다" (각 시대의대쟁투 469)
"사람을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과 일치하게 해 줌으로 하나님과 사람으로 화목하게 해 주는 것이 회개와 성화의 사업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467)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져야 하고 위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야 한다. 이와 같은 변화는 새로 나는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이 일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 하신다" (각 시대의대쟁투 467).
새로워져야하고 예수님 같이 되어야 하고 율법의 원칙과 일치해야한다고 하는데, 이런 모든 변화는 믿음으로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믿었어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평안하고 좋을 때는 변화된 것 같다가도 무슨 일이 생기면 그렇지 않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믿었는데 왜 안 되는 것일까?', '믿음이 잘못 되었을까?', ‘그렇다면 참된 믿음이란 무엇일까?',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져야 한다고 하는데 마음은 수시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어떻게 새롭게 되는 것일까?'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오랫동안 증언의 말씀을 보며 특히 수시로 변하는 마음의 상태를 알기 위해 마음에 관한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마음에는 여러 가지 기능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 기능의 회복이 구속의 사역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란 이런 것이었구나!" 깨닫게 되니 성화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도 저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이니 열심히 교회에 나가면 되지.' 생각 하시는 분들은 증언의 말씀을 보십시오. 성화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용서도 없습니다. 잘못 믿으면 잘못된 길로 갑니다. 피상적인 믿음은 피상적으로 끝납니다. 구원은 반드시 거듭나야 이루어집니다. 거듭남이 없으면 자라남(성화)도 없습니다. '성화는 평생 과업이니 열심히 믿다보면 차차 변화 되겠지.'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자신의 신앙을 뒤돌아 보십시오. 처음 믿을 때보다 오늘은 이기심이 줄어들었습니까? 탐심은 사라졌습니까? 자아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없어졌습니까? '믿다보면 언젠가 되겠지' 생각하고 있다가 아까운 시간다 지나고 늦게야 깨달으면 너무 늦을 수도 있습니다.
필자도 30년이 넘도록 스스로를 속이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화문제를 깨닫는데 10년이 더 걸렸습니다. '믿음이 뭔가?'에 대한 확실한 개념을 깨닫는데도 몇 년이 걸렸습니다. 다 아는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님을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마지막 선지자께서도 "구속의 역사는 체험 할 수는 있어도 설명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본서는 여러분들께 연구 자료가 될 수는 있어도 완전한 설명은 못될 것입니다. 스스로 체험하시고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과 성화」 발간에 즈음하여
열매 맺는 삶
모든 죽은 것은 부패하고 썩습니다. 그러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살아 있는 생태현상이 있습니다. 그 생태현상은 자라는 것이며,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입니다. 죽은 것은 절대로 생태현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형상의 열매들이 나타나고 그분의 선하심을 따라 사는 현상이 나타나려면 영적으로 죽은 자가 영적으로 산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영적으로 산 사람이 되는 길은 무엇일까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영적으로 산 자가 되는 길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자"는 "아들이 있는 자" 이며 또한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으니 "산자" 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죽은 자가 예수 안에서 영적으로 "산자"가 되면 영적으로 열매 맺는 생태현상과 영적으로 자라나는 영적 생태현상이 따르게 됩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요 3: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 5:24-26)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일 5:11-13).
예수님은 이러한 원리를 포도나무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요 15:1).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6-7).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요 15:2-4).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8).
그리스도인의 성장과 품성이 변화되는 주제에 대하여 한 평신도가 깊이 고민하였다는 것은 실은 모든 기독교인의 과제입니다. 유인석장로의 개인적 고민의 경험과 찾으신 해답의 기록들이 읽는 이들에게 유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품성이 변화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품성은 관계 속에서 확인됩니다.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이웃하고 사는 관계들 가운데서 품성이 나타납니다. 진리를 중요하게 여겨 집요하게 진리냐를 따지며, 혹은 옳으냐를 따지므로 사람들과의 관계가 매우 어려운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진리는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여 영혼에 평화를 누리게 합니다. 또한사람과 사람 간에도 화목과 평화를 누리게 하고, 원망 없이 즐거이 봉사하게 합니다. 이렇듯 생명의 주 예수를 마음의 보좌에 모시고 사는자들은 평화를 누리며, 평화를 나누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 2008년 10월 30일
한국연합회 목회부장 홍성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