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 바람이 분다
하필 산나물 산행을 고향으로 잡았다. 산나물을 꺾으러 갈 곳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다 잡은 곳이 내 고향, 안화리이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고향의 기억이 나를 몸살 나게 했다. 초등학교 시절 누나들이 국수댕이에서 한 다래끼 따온 산나물이 마음속에서 아물거렸다. 주로 고사리와 버섯이었다.
작은 저수지를 가슴에 품고 있는 국수댕이, 논밭과 가수원이 들어선 골짝을 조금 오르면 옹달샘이 나오고 더 올라가면 고사리와 버섯 등 산나물이 지천이던 골짝, 그런데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산나물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내 나이, 육순, 벌써 40년이 흘렀다. 아직도 산나물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들지만 도시락 싸들고 놀러가는 기분으로 처제네와 합세를 했다.
차 속에서 희희낙락하면서 40분을 달려오니 부모님 산소가 동그러니 놓여 있는 자갯골, 그곳에서 잠시 멈춰 국숭댕이 찾아갈 궁리를 한다.
그러나 그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저수지만 찾으면 그만인데 길마다 사연이 있는 듯 길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토박이가 저수지를 찾지 못한 것은 그만큼 고향과 멀어졌다는 뜻이다. 명절날 한두 번 고향의 큰집만 찾아보고 횅하니 떠났던 내 무관심 때문이다. 이길 저길 눈길 돌리다 어찌어찌 길을 찾았는데 산 아래 저수지가 아물거렸다. 저수지는 옛날과는 확연히 달랐다. 낚시터로 사영되었던 저수지가 어렵사리 제 모습을 찾았지만 낚시꾼들이 흘리고 간 잔해들이 수북했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저수지 주변으로 들어선 전원주택들, 아무리 시골마다 전원주택 바람이 분다지만 산짐승들이 울부짖을 듯한 산골이 이렇게 변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시골에 전원주택 살이를 꿈꾸지만 내 고향이라 그런지 보기 거북했다. 고향이 순수함으로 남아주길 바랐는데 문명의 이기심 앞에선 어쩔 수가 없구나.
한나절 산을 헤맸지만 산나물은 씨가 말라 없고 외따로 놓여 있는 전원주택이 무척 낯설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