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 자전거
지난해 겨울과 올봄을 지나며 칠팔월 오이 자라듯이 몰라보게 훌쩍 큰 유진이를 위해 또래의 아이들이 타는 파랑 자전거를 샀다. 바퀴가 꽤 큰(18인치) 어린이용으로 수월치 않은 셈을 감내해야 했다. 지난 해 가을까지 탔던 작은 세 발 자전거로는 더 버틸 재간이 없어 눈 딱 감고 장만했다. 원래 인라인 스케이트를 살까 하다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무릎이나 발목을 비롯한 팔꿈치의 관절에 무리가 따를 것으로 생각되어 올해엔 큰 자전거를 이용해 운동을 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좀 더 성장한 내년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게 해줄 요량이다.
며칠 전에 녀석에게 새 자전거를 사주겠다는 언질을 주었다. 성질이 급해 들떠있던 녀석과 오월의 셋째 토요일(19일) 마트에 갔다. 전용매장이 아니기 때문인지 커다란 마트의 한쪽 구석에 몇 개의 모델을 전시했어도 전담 판매원도 배치되지 않아 무척 썰렁했다. 마트 생리를 꿰뚫고 있는 제 할머니가 여기저기 쑤시고 다닌 끝에 안내원의 도움으로 겨우 녀석의 맘에 흡족한 자전거를 고를 수 있었다.
과연 새로운 자전거를 사거나 갖고 싶은 물건을 사는 게 행복인가. 녀석은 자전거를 사던 날 집에 와서 내 귀에 대고 속삭이던 비밀스런 얘기가 ‘오늘 행복하다며 내 생애 최고의 날’이라고 했다. 그 말의 통상적인 의미를 입때까지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판단하건대 가지고 싶거나 먹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이 이루어졌을 때 곧이곧대로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는 말이다. 천방지축의 철부지일지라도 나름대로 자기 주관이 뚜렷하니 평상시에 제 맘에 들지 않거나 성에 차지 않아 아파했거나 끌탕을 치며 가슴앓이를 했던 경우가 얼마나 많았을까.
자전거는 어린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속도감을 가늠할 능력이나 움직이는 물체에서 균형감각을 기르며 팔다리를 위시하여 전신 운동에 도움이 되지 싶어 건너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건강과 성장에 이로움은 물론이고 또래들과 한데 어울리며 새록새록 정을 쌓아가면서 무리를 이루는 문리(文理)를 깨우치거나 터득할 계기가 될게 자명하다. 이런 생각에서 또래들과 어울려 신나게 내달리며 몰두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마냥 흐뭇하다.
변덕이 팥죽 끓듯이 변화무쌍할 어린 손주 녀석과 동행이기에 언제나 변함없이 짝짜꿍을 노래하며 태평성대를 구가할 수 없을 노릇이다. 이런 연유로 공존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녀석은 영원한 강자인 ‘갑(甲)’이 되고 나는 절대 약자인 ‘을(乙)’의 처지에서 짬짜미를 하더라도 평화를 추구할 룰(rule)을 쌓아나가야 한다. 그렇게 밀고 당기는 나날 중에 자투리 시간이 생기거나 서로의 배포가 통해 척척 죽이 맞아 떨어질 경우 녀석을 파랑 자전거에 태우고 아파트 주위의 공원이나 바닷가를 찾으며 살가운 선린관계를 돈독하게 쌓아 신뢰를 여퉈둘 셈이다.
여섯 살 배기에겐 아직 과한 운동인가보다. 새 자전거가 생기고 나서 몸을 사리지 않고 신나게 아파트를 돌고 돌며 노는 날엔 저녁을 먹으면서도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잠에 취해 연신 꾸벅댄다. 물론 다른 놀이도 과하다 싶으면 같은 현상을 종종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심하게 타는 날엔 혼곤히 몰려드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쩔쩔맬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하기야 저보다 두세 살 더 많은 초등학교 형들이 앞에서 이끌고 또래의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뒤따라 달리는데 무리가 따르지 않으면 그게 되레 이상하지 않을까.
반 백 년 전쯤의 내 어린 시절 얘기이다. 한국전쟁(6.25)이 휴전을 전후했던 그 시절 자전거가 무척 귀했다. 따라서 초등학교 다닐 무렵에도 어른들의 자전거를 한 번 얻어 탈 기회도 드물었다. 그 시절 누군가의 자전거를 잠간 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질질 끌고 가면서 허둥대며 쩔쩔매다가 언덕빼기 아래 개울로 자전거와 함께 나동그라지며 꽤나 깊은 물에 빠져 크게 혼쭐이 난 이후에는 옆에 다가가기 조차도 꺼렸던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자전거였다. 그 혼비백산했던 사고 이후에 트라우마(trauma) 지경에 이르지 않았어도 악몽을 되풀이해서 꾸게 되면서 타고픈 마음이 씻은 듯이 사라졌던 관계로 아직까지 자전거를 타려고 시도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예체능 방면에 유독 소질이 없을 뿐 아니라 하고픈 의욕도 없는 관계로 심하게 표현하면 젬병이다. 그래서 내 두 아이를 키울 때도 나를 닮게 만들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태웠다. 낯섦 때문에 피하거나 주눅이 들면 등신처럼 어눌하게 행동하게 마련이다. 이런 연유에서 손주인 유진이도 나를 닮지 않도록 자신감을 키워주려고 은밀하지만 의도적으로 애를 쓰고 있다.
새 자전거에 적응하는 유진이의 모양새가 일취월장의 꼴이다. 처음 조우하던 날 우람한 자전거의 등치에 주눅이 들고 크기와 높이에 압도되어 조심스레 다루며 서툴고 어색해 멋쩍어 하던 꼴이 아직도 선연하다. 하지만 그동안 자전거를 다루며 터득한 비술(秘術)과 시나브로 쌓인 알토란같은 소중한 경험은 노련한 전문 몰이꾼으로 바꿔 놓았다. 신통방통할 정도의 진취적인 적응력을 지켜보면서 요즈음 아이들은 참으로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녀석은 푸른 하늘에서 비추는 상서로운 밝은 햇살을 받으며 해맑은 마음을 파랑 자전거에 가득 싣고 신바람 나게 나풀나풀 내달리며 행복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푸른 세상에 아름다운 꿈을 기리며 올곧게 자라나는 듬직한 모습을 그려본다. 여린 다리일지라도 푸르른 희망의 파랑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고 앞으로 질주하며 무럭무럭 자라가는 여정에 고운 꿈과 행운이 가득하길 염원한다.
2012년 5월 27일 일요일
첫댓글 파랑자전거와 甲乙의 관계...
세월이 지나면 을은 갑을 등라계갑하여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
그래서 손주 사랑은 할아버지의 몫이되는 가 봅니다.
할아버지의 소망대로 운동능력이 일취월장하는 손주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