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추분치성 태을도인 도훈
가족 사랑부터 실천하는 태을도인
2024. 9. 22. (음 8.20)
지난 추석 때 다들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가 없지요. 그래서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그 과정에서 태어난 자식이 또 성장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이렇게 우리네가 살아갑니다. 학생시절 가정시간에도, 가정은 우리가 살아가고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곳이라 배웠습니다.
하지만 한창 패기 넘치는 젊은 시절엔 저 혼자서 자란 것 같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것 같고, 그래서 한때 눈에 뵈는 게 없는 적도 있었어요. 끓어오르는 열정을 주체 못할 때였지요. 그런데 증산상제님 말씀 중에 “나를 괴이고자 하면 먼저 네 부모를 괴이고, 나를 공경하고자 하면 먼저 네 형제를 공경하라.”는 구절이 있어요. 태을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나이 때엔 그 구절이 잘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오면서 하느님을 만났는데, 어떻게 하느님보다 세속적인 관계를 더 앞세울 수가 있지? 하고 말이지요.
증산신앙을 해오면서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이 반대해서 갈등을 빚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그런 경우 앞의 상제님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짐작해요. 혹 부모님의 경우는 수긍한다 쳐도, 형제의 경우는 특히나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거예요. 나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가고자 하는데 내 가족이 내 믿음과 결정을 도통 이해하지 못해서 계속 반대한다면, 대화도 안되고 원망도 쌓이고 관계가 점점 불편해지겠지요.
그런데 태을도에서는 수신제가와 가화만사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상생의 실천을 요구하지요. 그래서 가족과 화목하지 못하면, 신앙생활도 사회활동도 명분을 얻기가 어려워져요. 스스로 양심에 걸리고 떳떳하지 못하게 돼요. 그러다 보니 나이를 먹을수록 상제님께서 하신 그 말씀의 의미가 뭔지 점점 체감하게 되더라고요.
보통 집에 초상이 나게 되면 재산 분배를 놓고 분란이 생기는 경우도 많고, 또 제사를 지내려 일가친척들이 모여도 어쩌다 말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예전엔 흔했습니다. 평소에 풀지 못하고 쌓여왔던 묵은 감정의 골들이 집안행사로 모였을 때, 우연찮게 건드려지면 일시에 다 터져나오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명절이나 제사를 지내려고 가족이 모였을 때의 분위기를 보면, 그동안 우리가 얼마만큼 상제님의 그 말씀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어요. 우리 태을도인들은 당연히 이번 추석때 아주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가족과 즐겁게 지내고 오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당부드리고 싶은 게, 우리가 하려는 진리적인 사랑의 출발이 물론 자기 존재를 믿는 자기 사랑도 있지만 아무래도 가족 사랑부터이고, 그래서 가족 사랑을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내가 사회에 나가 활동하는 근원적인 힘은 가정에서 얻습니다. 어린 시절, 저도 ‘내가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났지? 좀더 형편이 좋은 집에 태어났으면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싸움이 없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내가 이 집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그냥 태어나보니 이 집인걸.’ 이렇게 생각하셨던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아까 종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세상에 내려올 때 다 선택해서 내려왔던 거지요. 그래서 지금 내 가족의 인연도 우리가 윤회환생 개념으로 비춰보면, 내가 이번 생에서 이 가족관계 속에 그 인연들을 하나하나 성공시켜야 하는, 그래서 도연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그런 운명적인 인연이어서, 현재의 가족 친척 인연을 이룬 거지요. 그러니 증산상제님이 말씀하신 가족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진리적인 사랑까지 갔을 때, 제대로 된 태을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상제님께서 부모 사랑 형제 사랑을 말씀하신 그 다음 구절이 “가까운 것을 잊어버리고 먼 것을 능히 가까이 못하리라.”입니다. ‘기본이 난이면 말치자는 비의’라 대학경에 나오는 구절처럼, 우리 주변의 아주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실천해 나갔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