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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이름에 대한 기리(義理)도 과민하다 할 정도로 중대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지키는 것이다
자신의 명예에 대한 비방이나 의심이 있을 경우 복수를 하든지 자살을 하든지 또는 여하튼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그냥 지나치지는 않는다
세상에 대한 기리는 친절을 갚는 것이지만 이름에 대한 기리는 복수를 하는 것이다 서구인들은 이 두 행위를 전혀 다른 것으로 보나 일본인들은 친절과 모욕은 둘다 갚아야 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에 맞다고 생각한다
모욕이나 비방이 보복되지 않거나 없어지지 않으면 '세상이 뒤집어졌다'이라 표현하면서 어떡하든 이전 상태로 되돌려야 하며 이것는 공격이나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국인들은 그런 복수를 소인배의 행동이라고 낮추어 본다 중국인들은 자기에 대한 비방을 들었을 때 복수를 다짐하고 그러지 않고 오히려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쎄(自制)라는 또 다른 이름에 대한 기리가 있다 고통이나 위험에도 초연하여야 한다 홍수가 밀려와도 큰 재물은 그냥 두고 작은 소지품만 챙겨서 피신한다 피난처에는 혼란이나 아비규환이 없다
특히 사무라이들에게 더 엄격하다 고통이나 부족함을 표시해서는 안된다 먹을 것이 없어도 구걸할 수 없다 오히려 방금 식사를 마친 듯이 이쑤시개를 물고 다닌다 '어린 새는 먹이를 찾아 울지만 사무라이는 이쑤시개를 물고 있다'라는 속담을 일본군 병사들에게 교육한다
각자 신분에 맞는 생활도 의미한다 이것도 엄격한 규율이다 도쿠가와(德川)시대에 이미 각 계층에 따라 입고 먹고 사용하고 행동하고 소유하고 하는 모든 행위를 세세하게 강제로 지키게 했다 만약 미국인에서 이런 제한을 둔다면 큰일이 일어날 것이다 미국에서는 각자 형편과 자유의사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또 다른 이름에 대한 기리가 있다 돈을 빌릴 때 제 날짜에 갚지 못하면 공개적으로 조롱하여도 좋다고 조건을 단다 물론 실제로 조롱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돈을 빌린 사람은 설날이 다가오면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자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거나 비난을 받을 때 일본인들은 지나친 요구를 한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불이 났을 때 화재의 책임이 아닌 단지 천왕의 사진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자살하는 교장이 종종 있고 사진을 구하러 불길에 뛰어들다 죽은 교사들도 많이 있다 이들은 죽음으로써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와 천왕에 대한 충성을 증명한 것이다 심지어 교육칙어나 군인칙유를 중간에 잘못 읽어 자살한 이야기들도 유명하다
전문직으로서의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도 많다 '나는 교사로서 내 이름에 대한 기리때문에 어떤 지식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다' 라고 말한다 교사나 전문직은 몰라도 인정하거나 수정하지 않고 아는 척하면서 고개만 끄덕인다 사업가는 자기 사업의 실패를 알리지 않고 외교관은 외교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듯 일본인은 능력이나 행동의 실패를 인간 자체의 실패로 여긴다
물론 미국인들도 실패에 대한 비판에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계속 숨기거나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수긍하는 것이 옳다고 자인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자기방어가 지나치게 심하다 실패를 언급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신경과민적인 반응은 경쟁에서 졌을 경우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지거나 탈락하면 창피당했다고 생각하면서 심하게 화를 내거나 의기소침해진다 경쟁을 할 수 없는 의식구조이다
미국인은 경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혼자보다 경쟁이라는 자극으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든다
그러나 일본은 정반대이다 특히 경쟁이 없는 소년기를 거쳐 청년기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타인과 비교하거나 경쟁자가 있는 작업에서는 능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일본학자들은 혹시 질지 모른다는 그래서 이름을 더럽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압박감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경쟁을 공격이라고 생각하고 그 공격에 신경쓰느라 작업에 집중하지 못해서 라고 분석한다 학생들도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시합에서 진 운동선수들은 치욕이라 생각하며 운동장에 모여서 다같이 엉엉 운다 미국인의 눈에는 좋지 않은 패자의 모습이다 패자는 아무리 분해도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를 축하해야지 소리지르고 울고불고 하는 일본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일본인은 가능한 경쟁을 피한다 학교통지표에도 학과 성적이 아니라 품행에 대한 기록이 우선한다 경쟁에 대해 지나치게 긴장하여 시험에 불합격한 학생이 자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족도 그렇다 일본인은 미국인 아버지와 아들이 자동차를 먼저 사용하려고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일본사회 전체가 개인간의 경쟁을 피한다 각 계층이 지켜야할 행동규칙을 세밀하게 정해놓고 그 이상의 직접적인 경쟁을 최소화시킨다 그래서 일본인은 모든 일에 중개자를 내세운다 경쟁을 두려워 하고 실패의 창피함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손님을 맞이할 때 좋은 옷으로 갈아 입고 예의를 차린다 그동안 손님은 기다리면서 그 과정을 모른 척해야 한다
한밤중에 동네 총각이 처녀 방에 몰래 들어가는 풍습이 있다 처녀는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있다 이때 총각은 얼굴을 대충 가린 채 숨어들어간다 혹시 거절 당하더라도 그 다음날 그런 적 없는 척 행동하기 위해서다 얼굴을 가려도 누구인지 다 아는 작은 동네이지만 총각 본인은 그날밤 실패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결혼중매인은 양 당사자를 소개할 때 마치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국화전람회나 벚꽃놀이 공원 이런 곳에서 지나가다 만나는 것처럼 연출을 한다 혹시 성사가 되지 않으면 양쪽 집안의 명예를 해치기 때문이다
뉴기니 부족중에는 다른 부족을 방문할 때 당신들은 가난하다 보잘 것 없다 등으로 모욕을 준다 그러면 그 부족은 일부러 많은 음식과 화려한 치장으로 압도적인 접대를 하여 오명을 씻는다 전투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특이한 모습을 예의바른 민족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일본인은 그렇게 생각한다
수많은 복잡한 예의범절을 미리 정해놓은 이유도 이름에 대한 기리에 문제가 생길까봐 그런 것이다 이렇게 일본인들은 모욕을 씻는 기무를 강조하고 또 그런 만큼 실패로 인한 치욕이 없도록 미리 회피하거나 예방한다
일본인들의 모욕에 대한 예민함은 미국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사소한 욕을 서로 주고받는 미국인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말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일본인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미국에서 성공한 일본인 화가 마키노 요시오는 자서전에 이렇게 쓴다 '..가난했던 내가 알고 지내던 미국인 선교사를 찾아가 미국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아무것도 없는 네가 어떻게 미국에 가고 싶으냐고 웃었다 나는 즉시 집에 돌아와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에게 복수하는 길은 오로지 미국에 가서 성공하는 것뿐이라고 맹세했다... 그는 불성실한 자이며 육체의 살인자는 용서할 수 있으나 조소(嘲笑)한 그는 용서할 수 없는 영혼의 살인자이다..' 미국인들은 그 화가가 말한 이 불성실 insincerity 이라는 표현을 이해못한다 일본인은 싸움할 의사도 없으면서 상대방을 조소하며 업신여기는 사람을 무례하고 불성실한 사람이라 여긴다
일본인은 복수도 정의라고 생각한다 일본인 특유의 이중적 심리는 깨끗한 것을 좋아하지만 깨끗함에 필수적인 불결함은 거부한다는 점이다 한번 모욕을 받으면 다른 어떤 것도 해결이 안되고 오로지 복수만이 모욕을 씻어낸다고 믿는다 더러움이 전혀 없는 깨끗함만 가져야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모욕은 상대방 한사람의 입에서만 나온거지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인에게 '47 로닌(浪人)이야기'는 유명하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어느 다이묘가 가신들에게 어떤 좋은 칼을 보여주며 누가 만든건지 물어본다 결국 그중 한명만 맞추고 틀린 답을 한 나머지 가신들은 답을 맞춘 그 한명을 죽일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다 결국 암살하여 자기의 이름에 대한 기리를 지킨다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한 가신도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주군을 맹렬하게 증오한다 이에야스의 사무라이도 좋은 예가 된다 이에야스에게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한 그 사무라이는 복수를 맹세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전쟁이 한창일 때 상대편 다이묘들에게 찾아가 이에야스를 죽이는 방법을 제안한다 그럼으로써 자기 이름의 기리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의 기리는 충성도 의미하지만 동시에 모욕으로 인한 배반도 기리이다 일본에 '매맞은 자는 배반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일본의 여러 문학작품에 자신의 잘못이라도 상대방에게 모욕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복수하는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복수행위는 조금씩 줄어든다 이는 명예에 대한 기리가 없어진 것이 아니고 공격적인 복수가 방어적인 복수로 바뀌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에는 노골적인 행동보다 은밀한 복수를 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가슴에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상대방에게 눈치채지 못하게 똥을 넣은 음식을 대접하는 등 은밀하게 복수한다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에 쉽게 상처를 받고 스스로 자신을 괴롭힌다 극단적인 우울감에 빠지고 어두운 무력감을 가진다 러시아 처럼 이런 변덕스러운 감정이 문학작품에도 자주 나온다 극단적인 자신에 대한 공격행위가 자살로 나타난다
미국은 자살을 자포자기적인 굴복으로 죄악시하나 일본은 자신의 오명을 씻는 당연한 행위로 찬양한다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 사고을 친 관리 이루지 못한 사랑의 연인들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열렬지사들 모두 최후의 폭력을 자기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도 자살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일본사람들은 자살 사건 자체에 흥미를 느낀다 미국인은 범죄 사건을 크게 떠드는 반면 일본인은 자살 사건을 많이 다룬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사건보다 자신을 죽이는 사건을 더 좋아 하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자살은 더욱 자학적으로 변하고 있다 과거 사무라이들은 불명예스런 처형 대신 은밀한 명령에 의해 하라키리(腹切り)를 한다 이는 교수형 대신 총살을 요구하거나 처형 대신 권총 자살을 허용하던 프로이센 장교와 비슷하다 과거에는 용기와 결단의 표현이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자기 파멸로 변질한다 자살이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나 협박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일본인 특유의 우울증과 권태감의 결과로 자주 나타난다
전쟁이 끝나자 일본인들은 더이상 맹렬하게 집중할 목표가 없어졌다는 심한 무력감에 빠진다 패전국 독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미국을 더 놀라게 한 것은 일본인들은 그런 허탈감에 빠져있으면서도 점령군인 미군을 만나면 분노나 침울함 대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웃음 짓고 손을 흔들면서 그렇게 친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인의 갑자기 바뀌는 모습은 서구인들에서는 볼 수 없다 유럽인은 전쟁에 지더라도 자기 신념이나 애국심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저항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일본인은 점령군을 환영한다
전쟁에서 패전하면 일본인은 패배를 복수해야 하는 모욕으로 생각하고 아마 점령군에게 치열하게 복수하려 덤벼들 것이라고 예상했던 대부분의 서구인은 어리둥절해 한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봉건영주 시절 한 영국인이 살해되고 그 보복으로 영국 함대가 포격을 한다 화력에서 밀려 무너진 일본의 다이묘는 복수를 맹세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적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겠다고 영국과 통상관계를 맺는다 또 다른 사례는 외국인에게 가장 배타적인 조슈 번 다이묘는 지나가는 서구의 함선을 공격하다 월등한 화력을 가진 서구의 함선들의 반격을 받는다 사납게 덤벼들던 다이묘는 즉시 엄청난 배상금에 동의하고 화해를 한다
두 사건에 대하여 한 서구 학자는 '오랑캐를 물리치겠다던 이들이 순식간에 현실주의적 태도로 바뀌는 모습은 경의를 표할 정도로 놀랍다' 고 말한다
이런 발빠른 현실주의는 이름에 대한 기리의 밝은 면이다 그러나 전쟁준비를 하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은 나쁜 면이다
항복한 후 더 의아한 점은 점령군에게 그렇게 상냥한 일본인들이 막상 파괴된 자기 나라를 복구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메이지이신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배우고 만들고 또 전쟁 준비도 철저히 하고 전쟁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맹렬하게 덤비던 일본인들인데 이상하다
열렬한 헌신에서 심각한 권태로 변하는 것은 일본인 특유의 극단적인 감정이다 결국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라는 체면을 건드리는 캠페인으로 겨우 복구작업에 들어간다
일본인의 영원한 목표는 명예이다 일본에서 기리를 모르는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경멸 받고 추방되는 '비열한 놈'이 된다
시대나 민족에 따라 존엄성의 의미가 다르고 굴욕의 개념도 다르다 이를 다른 국가에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일본도 자기들의 '각자 적절한 위치' 개념을 다른 국가에 강요해서는 안된다 미국도 평등주의를 일본에게 강요할 수 없다 세월에 따라 기준이 바뀌듯이 일본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은 새로운 사상으로 바뀌어야 한다
참조: <국화의 칼> 요약 2020.04.01
다음은 제9장 : 감정(人間感情)의 세계 The Circle of Human Feelings 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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