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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쿤스의 아트마케팅: 소통과 협업의 비즈니스
기업은 예술과 여러 접점에서 만난다. 메세나로부터 공공미술, 그리고 아트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기업이 예술을 사랑하는 방식은 다양하며, 그 모두가 예술을 비즈니스의 장으로 만들며 그 자체로 예술경영이 된다.
"기업은 예술을 제품을 더 팔기 위한 마케팅으로만 보지 말고 더 넓고 크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나 커뮤니티를 풍성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풍성하게 한다'는 뜻은 예술을 촉매로 사람들을 교류하게 하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힘을 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트 마케팅이 단순한 마케팅이 아닌 예술경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분명하고 간결하게 정리된 예술경영의 정의가 경영자나 경영학자(예술경영 포함)가 아니라 예술가의 입을 통해 나왔다는 점이다. 사업가적 감각과 현란한 대중문화를 차용한 작품 덕택에 앤디 워홀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데미안 허스트와 함께 생존 작가 중에서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제프 쿤스(Jeff Koons·56)의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그(비즈니스) 위에서 돌아가지 않습니까? 비즈니스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만나는 흥미로운 플랫폼입니다." 그는 예술가로서 비지니스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에 대해, 예술, 사회적 책임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마술 같은 공간이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플랫폼을 강조하는 쿤스의 말에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 한다. 예술경영에 플랫폼 개념을 도입한것 자체가 그만큼 획기적이라 하겠다.
예술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이 상업적이 아니라 철학적이라고 강변하는 쿤스가 '마케팅'이라는 용어를 '비즈니스'로 바꾼 것을 다시 바꾼다면 그대로 아트 마케팅에 관한 설명이 된다. 그 자신은 마케팅이라는 말을 왜 싫어하는지 몰라도 제프는 천생 마케터다.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판매하는 그의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가 사람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면서 쿤스는 단연 예술계 최고의 마케터가 되고 있다. 사업가적 감각과 현란한 대중문화를 차용한 작품 덕택에 데미안 허스트와 함께 생존 작가 중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직원만 100명이 넘는다. 아예 '제프 쿤스 유한책임회사'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쯤 되면 '고뇌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주식회사 예술가'의 CEO인 셈이다. 그의 스튜디오에는 한때 1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년 동안 '세계 최고 경매가'(생존 작가 작품) 기록을 두 번 갈아 치운 쿤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값에 작품을 파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스테인리스로 만든 2.7m 높이의 조각 작품 '풍선 꽃'(Balloon Flower)의 2008년 낙찰가는 2570만달러(280억원)이었다. 제프 쿤스가 1988년에 만든 도자기 조각 핑크 팬더(Pink Panther)는 1999년 미국의 출판 재벌이자 미술품 컬렉터인 피터 브랜트(Brant)가 180만 달러(약 20억 원)에 사면서 화제를 모았다. 파산 위기에 몰렸던 쿤스는 이 작품을 통해 고가(高價) 예술가로 주목받으며 재기했다. 12년이 지난 올해 5월 경매에서 이 작품은 1680만 달러(178억 원)에 팔렸다.
수십억 원을 넘는 최고의 작품가도 화제와 논란거리지만 작품에 대한 평단의 평가 또한 극과 극을 오간다. "현대 사회의 불안을 치유한다"는 극찬부터 "비싼 가격 때문에 유명해진 키치(kitsch·싸구려 취향)"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작품의 가격과 질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쿤스는 팬 사인회를 하는 몇 안 되는 예술가다. 그에 대해 비판적인 평론가들조차 제프 쿤스 없이는 미국 현대미술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최고의 작가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제프 쿤스라는 브랜드를 마케팅에 이용한다. 제프 쿤스의 이름이 들어가면 스위스 중소기업이 만든 플라스틱 시계가 최고 5500만원에 팔리고(스위스 업체 이케포드의 제프 쿤스 시계 가격: 1만5118~5만1833달러), 꽃병에도 800만원이 넘는 가격표가 붙는 것은 물론이며(가고시안 갤러리의 제프 쿤스 화병 가격: 7500달러), 미디어에도 소개된다. 이른바 ‘쿤스 마케팅’으로 불린다.
입이 딱 벌어지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벌써 그의 공공미술 작품만 3점이나 들어와 있다. 언론에서 추정하고 있는 가격이 자그마치 300억원이나 되는 ‘세이크리드 하트’는 신셰계가 구입했으며, 그 이전에 삼성의 리움미술관은 '리본 묶은 매끄러운 달걀'을 2009년에 구입했었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CJ 계열의 골프장인 제주 나인브릿지에 가면 '풍선 꽃(Balloon Flower)'을 만날 수 있다. 선수가 선수를 알아보는 것일까? 공교롭게도 가격대가 비슷한 것으로 알려진 3점 모두 신세계, 삼성, CJ 등 형제기업이 경쟁하듯 구입했다.
그 중 신세계 백화점은 제프 쿤스의 작품 ‘세이크리드 하트’를 구입한 것을 계기로 지난 5월 한 달간 이를 테마로 한 '쿤스 마케팅'을 벌인 바 있는데, 신세계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쿤스 마케팅'을 한 5월 백화점 매출은 작년보다 13.8% 늘었다고 한다. '세이크리드 하트' 전시와 관련된 테마 마케팅이 VIP 고객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인 매출 증대 효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트렌드세터이자 고급스럽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강화해 롯데나 현대 같은 경쟁업체와 차별화하는 브랜드 전략에 중점을 두겠다. 앞으로 매년 몇 차례씩 예술 마케팅을 벌이겠다"고 장재영 신세계 백화점 부문 고객전략본부장은 말했다. 이처럼 기업이 쿤스 마케팅에 적극적인 것은 국내외가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쿤스를 세계 거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당대 최고가(價) 예술가로 마케팅 해온 것은 쿤스 자신이라는 점이다. 쿤스는 ‘기업과의 콜래보레이션(collaboration·협업)은 국제미아착취아동센터 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사업으로 자신의 주된 활동에서 벗어난 곁가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그의 작품 활동은 콜래보레이션과 밀접히 연결돼 돌아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쿤스는 1994년 의류 업체 휴고 보스 광고에 처음 참여하여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강아지(Puppy)’의 제작비용을 지원 뒤부터 갭(의류), 일리(커피), 키엘(화장품), BMW(자동차) 같은 유명 브랜드의 콜래보레이션에 참여했으며, 구글의 검색 화면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왜 쿤스가 예술가로서 기업과의 콜래보레이션에 거부감이 없었을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는 반대였다. 신세계와의 협업에 대해서도 환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예술 작품을 만들 때는 내 비전을 완벽하게 반영하기 위해 주변과 분리된 상황에서 일하게 되지만 기업과 함께 작업하면 경험과 책임을 공유하고 서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우리와 접촉하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예술계의 문제는 좋은 작품일수록 대중이 보기 어려워진다는 데 있습니다. 인기가 올라가면 가격이 높아지고 (컬렉터들이 사들이면서) 일반인들의 눈앞에서는 사라지죠. 콜래보레이션을 통해서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게 좋아요."
그는 콜래보레이션 뿐만 아니라 예술 네트웍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콜래보레이션이 쿤스의 첫 번째 마케팅 수단이라면 예술 네트웍은 두 번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쿤스가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 주요 고객(컬렉터) 명단에는 구찌(의류), 크리스티(미술경매업체)를 보유한 프랑스 PPR그룹의 창업자 프랑수아 피노(Pinault), 미국의 억만장자 부동산 개발업자 일라이 브로드(Broad), 그리스 부동산 거물인 다키스 조아노(Joannou) 등 오늘날 세계 비즈니스계를 주름잡는 기업가들로 가득하다. 기업가 뿐만 아니라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치뱅크, 이탈리아 의류 기업 프라다, 벤츠 브랜드 가진 독일 자동차회사 다임러 등 기업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쿤스 마케팅’이 가능했던 것은 공공미술을 비롯한 예술마케팅의 흐름이 바뀐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서유럽 중심에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겨우 가세하던 예술 마케팅의 영역이 아시아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1980년대까지 예술 마케팅을 주도했던 일본의 대기업들이 싹쓸이하다시피 수집했던 인상파 그림들에 대해 식상해지면서 새로운 장르로 옮겨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전 세계의 큰 손들은 이제 반 고흐나 고갱의 작품이 아니라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리처드 프린스, 마크 퀸 등 미술계 관계자가 아니면 이름도 생소한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 대상 중 하나로 등장한 '쿤스 컬렉터'는 최근 아시아 등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한국 컬렉터 사이에서도 쿤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예술 마케팅계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쿤스는 고객명단만을 활용하는 소극적 마케팅에 그치지 않고 컬렉터, 딜러, 경매회사 등의 이너서클을 이용한 가격설정 과정에도 적극 개입할 수 있도록 예술 네트웍을 보강하고 있다.
미국 예술전문지 '아트뉴스'의 선임기자 켈리 토마스(Thomas)는 "제프 쿤스는 피터 브랜트, 일라이 브로드 같은 기업인 컬렉터, 래리 가고시안(Gagosian) 같은 미술 딜러, 소더비·크리스티 같은 경매회사가 이너서클(inner circle)을 이뤄 몸값을 띄운 경우"라고 평가했다. 예술가의 재능뿐 컬렉터, 미술 딜러, 경매회사로 이뤄진 강력한 컨소시엄이 유명 브랜드가 되기 위한 필수요건이 되고 있는 현대 예술 시장에서 이들은 모두 쿤스의 작품 가격이 높아야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다.
2009년 삼성그룹 미술관 리움은 '리본 묶은 매끄러운 달걀'(Smooth Egg with Bow)을 사서 전시했으며, 몇 해 전부터 제프 쿤스에 관심을 가져왔던 신세계 이명희 회장 역시 작년 말 서미갤러리에서 "쿤스가 '세이크리드 하트'의 구입자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구매한 것이다.
신세계가 구입한 '세이크리드 하트'의 가격은 300억원 전후로 알려졌는데, 신세계갤러리 황호경 관장에 따르면 300억원은 2007년 '세이크리드 하트'와 형태가 비슷한 '매달린 하트'의 경매가(217억원)를 기준으로 그간 쿤스 작품의 가격 상승 추이를 대입해 언론에서 추정한 가격이라고 했다.
신세계가 작품에 관심을 보이자 쿤스 측에서 먼저 희망 가격을 보냈고, 신세계 측도 자체 조사를 통해 원하는 가격을 서미갤러리를 통해 쿤스 측에 전달하면서 인수 협상은 한 달이 안 돼 끝났다. 가격결정권을 쿤스가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예술 커넥션을 그저 마케팅 수고 대상으로 삼지 않고 이를 가격결정 메카니즘으로 활용하는 것이 쿤스의 세 번째 마케팅 수단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일생을 스토리로 만들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35년 전 시카고 예술대를 졸업한 뒤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표 파는 일로 예술계에 발을 들이밀었던 그는 지난 30년간 미술계 인물로는 이례적인 화제를 몰고 다니면서 스스로 몸값을 높였는지도 모른다. 1991년 유명 포르노 배우 출신으로 나중에 이탈리아 정치인이 되는 치치올리나(본명 일로나 스탈러)와 결혼했지만, 이듬해 이혼하면서 치치올리나가 갓 태어난 아들을 데리고 로마로 떠났다. 쿤스는 "납치"를 주장하면서 10년 넘게 양육권 소송을 벌이다 패소한 뒤, 이 경험을 살려 납치·학대 아동을 돕는 '국제미아착취아동센터'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신세계와 공동 마케팅을 할 때도 제품 판매액의 10%를 이 센터에 기부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지금도 전 세계 많은 아이가 성적 학대, 노예 노동에 시달리고 있죠. 저는 단지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로 남기는 싫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우했던 인생마저도 스토리텔링으로 만들 수 있는 창작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세계적 브랜드가 됐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도 제프 쿤스는 파산을 걱정해야 하는 작가에 불과했던 쿤스의 오늘날이 있게 한 것은 지금가지 살펴본 마케팅 수단을 적절히 이용한 스스로의 전략의 결과였다는 얘기다.
'세이크리드 하트'가 포함된 연작(聯作) '축하'(Celebration) 시리즈를 만들던 중이던 1995년 작품 제작을 의뢰한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주물업체가 도산하면서 제작비를 날렸고, 1999년에는 70명이 넘던 스튜디오 직원을 단 2명만 남기고 모두 해고해야 했다. 하지만 같은 해 미국 출판 재벌 피터 브랜트(Brant)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도자기 조각 '핑크 팬더'를 쿤스 작품의 최고 경매가를 4배 이상 뛰어넘은 180만 달러(20억원)에 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경매가 화제가 되면서 덩달아 브랜트가 가진 다른 쿤스의 작품도 값이 오르는 상황이 됐다. 이제 쿤스는 조수와 하도급업자에게 영감과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지시할 뿐이다. 실제로 '풍선 꽃'을 제작한 것은 '아르놀드'라는 독일 건설·기계 부품 제작회사였다. 그리고 이러한 하도급 제작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공공미술의 영역인데 쿤스는 이 공공미술의 특징을 가장 잘 이용하는 현대작가로 알려져 있다.
2008년 쿤스가 현대미술가로는 처음 프랑스 베르사유궁 안에서 전시를 열어 전 세계 뉴스의 주목을 받았을 때 190만유로(33억원)가 든 전시 비용의 절반을 PPR그룹 창업자이자 쿤스 작품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프랑수아 피노가 댔다. 당시 쿤스는 시리즈 작품 가운데 제1호를 저명한 컬렉터에게 가격을 할인해주면서까지 팔고 '누가 사들인 작품'이라는 광고 효과를 노리는 등 뛰어난 사업 수완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쿤스는 "작품을 사준 컬렉터들에 감사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관심은 작품 가격을 올리는 게 아니라 "오로지 현대미술의 경계를 넓히는 데 있다"고 말했다.
"돈이요? 제 작업을 지속하고 내 가족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플랫폼에 불과합니다. 그 나머지는 의미가 없습니다. 전 21세기 예술을 이끌어 가고 싶을 뿐이에요." 그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AFP 통신은 "이 전시로 누가 이득을 보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는데, 그는 예술가가 스스로를 경영하는 가장 원초적인 의미의 예술경영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쿤스도 이 점에 대해서는 스스로 인정한다. "제가 다른 예술가들보다 상대의 필요(needs)를 더 잘 읽긴 해요. 월스트리트에서 일한 적이 있고 아홉 살 때부터 용돈을 벌기 위해 집집이 다니며 장난감과 캔디를 팔았죠. 거기서 사람과 교류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예술이란 결국 사람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잖아요? 저는 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뿐입니다."
'예술과 도덕까지 품속에 끌어들이는' 현대 비즈니스의 마술 같은 플랫폼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미켈란젤로라고 말하고 다니고, 그의 작품을 가진 컬렉터들도 그가 미켈란젤로라고 믿고 있다"고 미술평론가 로버트 휴스(Hughes)는 비아냥거린다. 휴스의 말처럼 쿤스에게서 미켈란젤로의 이미지를 찾기는 쉽지 않지만 컬렉터(수집가)를 사로잡는 데 뛰어난 마케터로서의 수완을 보인 예술경영자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론적으로 쿤스는 예술작품의 독특한 가격결정 메카니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자신의 작품 만에 적용될 수 있는 전용시장(captive market)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쿤스의 이러한 비즈니스 내지는 마케팅 활동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경제 담당 논설위원 에두아르도 포터(Porter·43)의 가격결정 시스템이다. 포터는 지난 1월 펴낸 '모든 것의 가격'(원제 The Price of Everything, 한국어판 5월 출간)이라는 저서에서 ‘가격은 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도구’라고 주장한 바 있다.
“모든 가격에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지론을 가진 포터는 가격을 통해 한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며, 노동·육아·생명처럼 가격을 매길 수 없다고 여겨지는 대상에까지 가격이라는 렌즈를 갖다 댄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과 상황에 따라 같은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가격을 지급하곤 한다. 오락가락하는 인간의 속성을 간파한 기업들은 끊임없이 가격을 조정하며 수익을 높였다. 가격을 통해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시장이 가장 효과적인 제도라는 믿음도 오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뉴욕타임스에서 근무하기 전 금융 전문기자 생활을 했던 포터는 일반 경제학자의 그것과는 다른 독특한 ‘그만의 시장 개념’을 가지고 있다. 상품의 가격이 철저하게 수요·공급에 따라 정해지는 금융의 세계에서는 시장이 부를 분배하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지만, 금융 이외의 분야의 경우 시장과 가격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수요·공급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많은 변수가 끼어들어 불완전한 가격에 인간이 휘둘리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공짜 또한 불완전한 가격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금융시장이 수요공급의 메카니즘이 가장 잘 작동하는 완전한 시장이라는 그의 주장은 금융시장이 가장 불완전하기 때문에 정부의 규제가 가장 필요하다는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금융시장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금융 시장이 일반 시장에 비해 효율적이라는 그의 주장이 다소 역설적인 면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시장의 발전도에 따라 가격결정 메카니즘의 작동 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장이 수요공급과는 무관한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불완전한 가격에 휘둘리고 있다는 포터의 ‘이상한 가설’을 그나마 가장 잘 뒷받침 할 수 있는 것이 예술시장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 이상한 가격결정 메카니즘을 가장 잘 사용한 것이 쿤스라는 작가 겸 마케터, 즉 예술경영자라 하겠다.
<참고자료>
[Weekly BIZ] 제프 쿤스와 '아트 마케팅', 현대미술과 욕망의 비즈니스, 조선일보, 2011.7.16.
[Power of Art] 독특한 현대 미술로 '기업의 개성'을 표현하다, 조선일보, 2011. 4.19.
[Weekly BIZ][Interview] NYT 논설위원 포터가 말하는 '모든 것의 가격', 조선일보, 201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