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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의 어휘 연구 오늘 114번째 시간입니다. 성경의 어휘 연구를 하는 목적은 단어와 본문과 신학을 올바로 성경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것입니다. 114번째 시간의 제목은 "연보, 연보금, 연금, 의연금, 헌금"입니다. 단어가 다섯입니다만 개념은 하나입니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이 올바른 개념이고 올바른 용어인지 한번 살펴보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완전히 틀렸다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더 바람직하고 합당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먼저 이 다섯 단어를 우리말 국어사전(동화새국어사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첫째, 연보(捐補)는 '금품을 내어 남을 도와줌'이 일차적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연조'인데, 남에게 내어주어서 돕는다는 뜻이겠죠. 이 보자도 보태다, 보충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금품을 내어 남을 도와주는 것이고, 둘째는 헌금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연보금이라고 하는 단어도 국어사전에 나오는데 '교회에서 내는 헌금, 연보 돈'을 의미합니다. 돈 전(錢) 자를 써서 연보전이라고도 합니다. 이런 의미로 사용한다고 국어사전에는 돼 있지만 막상 성경에는 이 단어가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다음에 연금이 있습니다. 우리가 퇴직 후에 받는 연금(年金)은 해 년 자를 쓰지만, 여기서 말하는 연금(捐金)은 다른 것입니다. 돈을 내어 남을 도와주는 것이죠. 이 연금은 '의연금'의 준말이며 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연금을 찾아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의연금은 자선이나 공익을 위하여 내는 돈입니다. 자선은 불우한 이웃, 재난을 당한 동족, 또는 어려움에 처해 갚을 길이 없는 빚을 지거나 병원비를 갚지 못해 헤매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수제 의연금'이 있습니다. 수제를 당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공익이나 자선을 위한 돈이며, 이것의 준말이 바로 연금입니다. 그래서 연금과 의연금은 사실 같은 말인데, 하나는 줄여서 말하고 하나는 원래대로 의연금이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헌금(獻金)은 '돈을 바침 또는 그 바친 돈'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에서 주일(예배하는 날) 또는 어떠한 일을 맞아 교회에 바치는 돈을 말합니다. 제가 노란 색깔을 칠해놓은 부분이 기독교에서 흔히 말하는 어휘의 뜻입니다.
이것의 성경상의 용례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연보입니다. 여기서 찾아보는 것은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개역한글판입니다. 개역한글판에 연보와 관련된 어휘들은 총 14회 나옵니다. 연보 또는 연보하다 등 연보가 들어 있는 다른 단어를 포함한 횟수입니다. 명사로서 '연보'라는 말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에 총 8회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이 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인 고린도전서 16장 1, 2절과 고린도후서 8장, 9장에 여러 번 쓰였습니다. 그다음에 연보에 괴를 붙인 '연보궤'가 명사로서 4번 쓰였습니다. 이것은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각각 사용되었습니다. 연보를 드리는 궤짝, 상자, 또는 함을 말하며 개역한글판에 연보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보하다'라는 동사로도 쓰였습니다. 연보하다는 역대하 34장 9절과 14절에 두 번 나옵니다.
이 말이 히브리말로 무엇인가 성경을 찾아보니까 '무바'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보'라고 하는 단어의 변형인데, '보'가 무엇이냐면 '가다, 오다'입니다. 그래서 가게 하다, 오게 하다, 즉 어떤 돈이 이쪽으로 오게 하거나 저쪽으로 가게 한다는 의미에서 연보하다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성소에서 물건을 가져다 바친 것을 두고 '돈을 오게 했다' 하여 연보하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독자적인 동사가 없고 '간다' 또는 '온다'를 말하는 '보'라는 단어의 변형을 사용하여 '오게 했다, 가져왔다'는 뜻으로 연보했다 한 것입니다. 히브리어는 고(go)나 컴(come)이 똑같아서 문맥에 따라 가다도 되고 오다도 됩니다. 우리말이나 영어는 가다와 오다가 다르지만 히브리말은 같습니다.
이 단어가 사용된 실제적인 성경 본문을 보십시다. 역대하 34장 9절과 14절에 "저희가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나아가 전에 하나님의 전에 연보한(가지고 온) 돈을 저에게 부치니"라고 했고, 14절은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연보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의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연보는 간다 온다라는 동사에서 온 것입니다. 이 '연보한'이라는 개역한글판 번역을 개역개정판에서는 '헌금한'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개역개정판은 개역한글판보다 수십 년 후에 좀 더 적절한 단어들을 골라서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헌금한'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를 봅시다. 고린도전서 16장 1절, 2절 개역한글판입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문맥을 보면 내가 가서 막 돈을 걷고 하지 않게 미리 매주일 첫날에 거두어 가지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매주일 첫날은 그 당시 주일의 첫날인 일요일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헌금 드리는 예배 시간의 헌금이 아니고,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드리는 의연금을 모으라는 의미에서 연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연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로게이아(Logeia)'인데, 뜻은 컬렉션(Collection), 즉 모금입니다. 모금한 것을 가지고 연보라고 번역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재난 당한 사람들, 이재민들을 위해서 일요일에 모금하라는 뜻으로 쓴 것이 분명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 2절에는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연보는 앞서 본 단어와 다릅니다. 고린도전서·후서 같은 교회에 보냈지만 여기서는 '하플로테스(Haplotes)'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하플로테스의 뜻은 진지함, 성실함, 또는 관대함입니다. 너희들의 풍성한 관대함이 넘치게 하라는 뜻입니다. 재난당한 사람을 위해서 가난한 중에서도 풍성한 관대함을 나타냈기에 연보를 냈다 하는 식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개역개정판에 사용된 연보와 관련된 어휘들을 보면 아홉 번 나옵니다. 연보라는 명사가 로마서 15장 26절에 나오는데 원어로는 '코이노니아(Koinonia)'입니다. 코이노니아는 교제, 친교를 뜻합니다. 이 코이노니아를 개역개정판이 연보로 번역했습니다. 성도의 친교를 나누기 위해 주는 돈을 연보라고 한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26절에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고 나옵니다. 개역한글판에서는 '동정했다'는 말을 개역개정판에서는 '연보했다'로 썼습니다. 그리고 개역개정판에는 '연보궤'라는 단어가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헌금함으로 바뀝니다.
여기서 우리가 뚜렷이 볼 수 있는 것은 연보가 교회 자체의 사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쓰는 구제금의 성격을 띤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때로는 동정했다 그러고, 헌금했다, 연보했다 고 번역합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오늘날의 헌금과는 좀 다른 성격의 모금이라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연보금, 연금, 의연금이라는 단어는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에 한 번도 사용되지 않습니다.
대신 헌금은 나옵니다. 개역한글판 누가복음 21장 1절, 4절에는 헌금이라고 번역했는데, 이 헌금이라는 말의 헬라어는 '도론(Doron)'입니다. 도론은 영어로 하면 기프트(Gift)나 프레젠트(Present), 즉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을 헌금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개역개정판에는 헌금이라는 단어를 구약 민수기, 역대하와 신약 마가복음 등 총 8번 사용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16개 절에 사용되었고, 새번역에는 17개 절, 현대인의 성경에는 37번 사용되었습니다. 현대적인 번역에 가까울수록 더 많이 헌금이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연보보다는 헌금이 더 좋다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어느 것이 가장 적합할까요?
첫째, 연보는 일차적인 의미가 금품을 내어 남을 도와주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들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문맥을 보면 가난하거나 재난을 당한 사람을 돕기 위해 드려진 금품을 가리키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연보는 일종의 구제금 또는 구호품이었습니다. 따라서 연보를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 드리는 헌금에 적용하는 것은 썩 적합하지 않습니다. 비록 구약에서 하나님의 전을 수리할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고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사용하고 있지만, 하나님께 바치는 돈을 가리키는 말로서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둘째, 연금(의연금) 역시 하나님께 드리는 돈을 가리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자선을 베풀거나 의연금을 드려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재난을 당해서 우리가 돈을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 십일조에 대해 공부할 때 본 바와 같이, 나를 존재하게 하시고 나에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셨으며 나의 생활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표시로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연금은 남을 도와주는 의연금의 준말이므로 헌금을 가르치기에는 부적합합니다. 만약 아직 사용하고 계신 분이 있으면 한번 제고해 보시길 바랍니다.
셋째, 헌금은 국어사전에서도 기독교에서 주일 또는 어떠한 일을 맞아 교회에 바치는 돈으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원래의 의미도 바칠 헌(獻) 자에 돈 금(金) 자를 써서 바치는 돈이므로, 하나님께 바치는 물질을 가리키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라고 생각됩니다. 성전에서 예수님이 보시는 중에 부자들과 한 과부가 하나님께 드린 것도 성경에 헌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돈은 헌금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연보궤'라는 단어가 나온 것을 보았죠. 개역한글판의 연보궤를 개역개정판과 다른 역본들에서는 '헌금함'으로 번역했습니다. 신약 시대 성전에 있던 헌금함은 양의 뿔로 만든 나팔 모양으로 생겼습니다. 헤롯 성전의 여인의 뜰 안 벽에 각 용도에 따라서 13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여섯 개는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낙헌제 같은 헌금)을 위한 것이고, 나머지 일곱 개는 각기 특별한 목적을 위한 것이어서 그 목적이 헌금함 위에 적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곳 여인의 뜰 헌금함 맞은편에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시며 말씀도 가르치셨습니다.
성전의 구조를 보면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있는 뜰이 여인의 뜰이었습니다. 여인들은 거기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안쪽 문으로 더 들어가면 남자들과 제사장들이 들어가는 뜰이 나옵니다. 그래서 바깥쪽 영역인 여인의 뜰 벽이나 단 밑에 13개의 헌금함이 붙어 있었고, 가난한 과부도 부자들도 거기서 헌금을 드렸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성전에 헌금함을 비치하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헌금을 하게 한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헌금하는 방법을 시사해 줍니다. 과거 오랜 기간 예배 시간에 자루가 달린 헌금 바구니를 돌려서 헌금을 수납하곤 했는데, 요즘은 들어가는 입구에 헌금함을 두고 자유롭게 내게 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교회당 입구 가까운 곳에 헌금함을 비치하여 교인들이 자유롭게 헌금하도록 하는 것이 성경적으로도 바람직합니다. 11조나 헌금 등에 대하여 바르게 알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관련 서적들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어떤 마음으로 헌금을 드려야 할까요?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에 정한 대로' 자기 능력에 맞게 스스로 정해서 내는 것입니다. 너무 과하게 해서 빚을 지거나 삶에 짐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십니다. 둘째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것입니다. 억지로 강제로 뺏기듯이 내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십니다. 체면 때문이나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인색하게 내지 말고, 즐겨 내야 합니다 이것이 헌금의 대원칙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분석에 의하면 오늘날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주요 원인이 교회에서 헌금과 십일조를 강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분석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만약 실제로 교회나 목사가 헌금을 강요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비그리스도교적인 행태입니다. 헌금은 자원하여 즐겨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 강요하는 사례는 극소수일 텐데 그것을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주요 이유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오늘 강의를 요약하겠습니다. 연보는 가난하거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드리는 구제금을 뜻하므로 헌금 대신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버릴 연(捐) 자에 도울 보(補) 자를 써서 내 소유를 내어 남을 돕는다는 뜻이므로 하나님께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연금(의연금) 역시 구호금을 의미하므로 헌금을 가리키기에는 부적합합니다.
하나님께 드리거나 교회에 바치는 돈을 가리키는 용어로는 '헌금'이 가장 적합합니다. 바칠 헌(獻) 자를 써서 감사한 마음으로 나의 생명과 건강과 직장을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입니다. 헌금하는 방법으로는 예배 시간에 바구니를 돌리는 것보다 신약 시대 성전의 전례처럼 교회당 입구에 헌금함을 설치하여 교인들이 자원하는 마음과 즐거운 마음으로 자유롭게 드리도록 하는 것이 성경적인 원칙입니다.
존경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든 소유와 생명과 시간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에 대해 감사 예물로 바칠 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 또 다른 귀한 어휘를 가지고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핵심 요약 정리
용어의 정확한 국어사전적·성경적 개념 구분
연보(捐補): 버릴 연(捐)과 도울 보(補)를 사용하여 '금품을 내어 남을 도와줌'을 뜻합니다. 성경 문맥상(고전·고후 등) 예루살렘의 가난한 이재민을 돕기 위해 모금한 구제금·구호품의 성격을 띱니다.
연금/의연금(捐金): 자선이나 공익을 위하여 내는 돈(예: 수제의연금)을 뜻하므로, 하나님을 대상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합니다.
헌금(獻金): 바칠 헌(獻) 자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돈을 바침 또는 그 돈'을 뜻하며, 신약 원어 '도론(Gift, 선물)'의 의미와 일치하여 오늘날 교회 예물을 가리키는 가장 합당한 용어입니다.
연보금/연보전: 구어 사전에는 등록되어 있으나 성경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성경적 헌금 방법 (헌금함 비치)
개역한글판의 '연보궤'는 개역개정판에서 '헌금함'으로 바르게 번역되었습니다.
신약 시대 헤롯 성전의 '여인의 뜰'에는 나팔 모양으로 된 13개의 헌금함이 비치되어 누구나 자유롭게 예물을 넣었습니다.
따라서 예배 시간에 헌금 바구니를 돌려 거두는 것보다, 교회당 입구에 헌금함을 비치하여 성도들이 자유롭게 내도록 하는 것이 성경적 전례에 부합합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헌금의 대원칙 (고후 9:7)
마음에 정한 대로: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맞게 스스로 정하여 드려야 하며, 삶에 부담이나 빚이 되는 과한 헌금은 지양해야 합니다.
즐겨 내는 마음: 체면 때문에 억지로 하거나 인색한 마음으로 내지 않고, 생명과 소유를 주신 하나님께 자원하는 마음과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헌금과 십일조는 결코 강요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