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기독교시대 교회⌟ - 그들은 왜 이탈 교인이 되었는가?
-짐 데이비스, 마이클 그레이엄, 라이언 버지 공저
한국에 돌아와서 ‘가나안교인’ 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몹시 생소하였다.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면서도 교회에 소속되기를 거부하는 40대, 50대 고향 후배는 물론이고 청년 가나안교인들을 많이 만났다. 특별히 인도에 다녀간 친구들 중에 교회에 나가지 않는 청년들에게 일일이 물었더니 결혼과 직장 연고로 이사를 했는데 새로운 지역에서 마땅히 다닐만한 교회를 못 찾은 것과 주말부부를 하다 보니 너무 바빠서 교회에 다닐 시간이 없다고 하였다. 가까운 고향 후배들은 직장 일이 바쁘다는 이유와 새로운 목회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다. 물론 그 반대로 아내를 따라서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는 친구와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는 후배도 만났다. 아내에게 끌려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는 후배 중에는 회사 대표도 있고 대학교 교수도 있는데 그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좋은 말씀으로 세상에 찌든 머릿속 청소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도 여차하면 가나안 교인으로 전락할 듯 싶다.
그래도 나의 주변에는 신실한 신앙인들이 많았는데 코로나 록다운 이후에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가나안 교인들이 생겼다. 아픈 마음으로 가나안 교인들이 교회로 돌아갈 날을 기대하면서 지인들을 위해 기도를 바친다.
세상 살면서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처럼 축복받은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진리로 자유로워진 복된 삶을 살라 고 해도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온갖 우상이 더 좋다. 주일 성수보다 다양한 취미생활과 스포츠가 더 멋있고 십계명 따위로 도덕군자인 척하는 것보다 프리하게 사는 것이 인생을 만끽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종교를 아편으로 취급하는 사람들, 종교를 혁명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취급하는 흐름들, 공산주의가 세상을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었다는 제대로 점검도 확인도 되지 않은 신화로 말미암아 교회는 설 자리를 잃기 시작하였다. 거기에다 심리학과 의학, 과학과 급속한 산업화, 학문과 언론매체가 신의 죽음을 선포하였고 인간이 하나님을 제치고 우주중심이 되면서 교회는 다양성과 포용성과 평등을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포위당하여 근본주의가 되거나 깊은 신학적 성찰 없이 야합하였다. 여기에 교회의 부패와 세상에 대한 무관심, 세상의 다양한 이즘과 기독교 신학이 문화에 대응하면서 일어난 분열과 혼란 그로말미암은 영적 지도력 상실이 크게 한몫을 하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교회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성서를 시대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위대한 신학자와 이기적이고 투쟁적인 인류를 사랑으로 섬기며 감화시킬 수 있는 위대한 신앙인, 성인, 순례자를 배출하지 못하였다.
탈기독교시대는 가슴 아프지만 하나님의 형상에서 비롯된 인간의 보편적 존엄과 가치, 평등과 권리, 책임과 의무를 산산조각 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더 이상 보편 가치를 추구하지 않으며 자기가 속한 집단의 사상과 모토를 맹목적으로 광신적으로 추종하며 사랑과 용서를 보편적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을 외면한 지구가 그리고 이 시대가 어디로 갈 것인가?
노아의 시대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포악하고 부패한 길로 갈 것인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히 무거운 죄악에 빠질 것인가?
참으로 교우들이 함께 깨어서 이 시대와 인류를 위해 아브라함처럼 중보기도를 드리길 빈다.
처음 300년 동안 교회가 로마의 모진 박해 속에서 진리를 증언하였는데 현재처럼 평안한 때에 교회가 세상의 논리에 밀려서 증언을 하지 못하는 것이 슬프다.
⌜탈기독교시대 교회⌟는 미국 교회의 ‘이탈 교인’에 대하여 원인과 이유를 분석하며 떠난 사람들과 탈기독교가 미국의 정치와 종교, 문화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며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는 교회에 대한 아이디어를 적고 있다.
미국은 최근 25년 사이에 더 이상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급격히 증가하여 전체성인 인구의 16%를 차지한다.
4천만 명이 교회 출석을 그만 두었다. 1990년대 초부터 30년 동안, 매년 그 비율이 1-2%씩 증가했다.
저자들은 1990년대 미국사회의 탈교회의 가속화에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한다.
첫째, 냉전 당시 미국적인 삶의 방식에 존재론적인 위협을 가했던 국가와 싸울 때 ‘미국인’과 ‘크리스천’은 자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다. 이 기간에 미국 화폐에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안에서”(In God We Trust)라는 문구를 더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에 “하나님 아래서”(Under God)라는 문구를 더했다. 소련이 무너지고 냉전이 종식되자 정치인들과 크리스천들의 위선에 질린 일부 크리스천들이 넌크리스천으로 바뀌는 것이 문화적으로 고무되었다.
둘째, 극단적으로 치달은 종교적 우파로 인한 악영향이 있었다. 제리 폴웰의 도덕적 다수, 팻 로버트슨이 공화당 조지 부시에게 도전한 일, 뉴트 깅그리치가 하원을 완벽하게 장악한 일로 중도층이 기독교를 극단 우파 운동으로 매도하며 교회를 떠났다.
셋째, 인터넷이 미국인들의 탈교회를 가속화시켰다. 1997년 미국의 가정 20%에만 인터넷이 설치되었지만 학생들은 학교와 도서관에서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었고 인터넷 카페가 오픈되면서 사람들은 전문가의 도움 없이 혼자 다양한 세계관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 신앙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로서 더 이상 사회와 가족에서 제재를 받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목회자와 교회의 도움 없이 자신의 종교적 고민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인터넷은 그들에게 교사와 상담자가 되었다.
이 세 가지 요인으로 시작된 이탈로 말미암아 지난 25년간 교인들의 약 40%가 교회를 떠났다. 이 수치는 미국장로교회 58%, 감리교는 37%, 참례교는 29%, 오순절파는 26%이다. 이탈자 중에 백인이 27% 흑인이 26%, 히스패닉계가 14%, 아시아계가 34%이다. 공화당 지지자는 21%, 민주당 지지자는 29%, 무소속 지지자는 23%이다.
교회를 떠난 이탈 교인들의 개별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첫째는 그들은 명목상 크리스천이었던 사람들이다. 친구를 따라서, 또는 프로그램을 좋아서, 또는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 나갔다가 이유가 사라졌거나 더 좋은 것들을 제공하는 곳이 나타났을 때 그들은 거침없이 떠났다. 그들은 당시 시대를 휩쓸고 있는 기독교문화를 좋아했을 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건 아니라고 답하였다.
둘째는 한 시기에 열렬히 봉사한 복음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청소년기나 청년의 시기에 친구들과 함께 교회 프로그램과 봉사에 열광적이었지만 진학, 애인, 결혼과 직장 드의 새로운 상황과 환경으로 말미암아 교회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 출석이 결혼생활, 직장의 문제, 가사와 기타 문제에 부담이 되는 순간 미련 없이 교회에서 이탈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지만 교회 생활이 더 이상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셋째는 교회에서 피해와 상처를 입은 자들이다. 그들은 조용히 그림자처럼 교회에 출석하는 부류이나 출신성분으로 말미암아 무시당하고 정말로 직장을 잃고 어려워져서 도움을 요청을 했을 때 수치스럽게 거부를 당한 경험, 이혼의 상처 속에서 비난을 받은 경험, 교육수준의 차이로 어울리지 못한 경험, 영적인 학대, 성적인 학대를 받았다. 자존심이 상하는 경험도 많다. 그러나 이 부류의 이탈교인들은 떠났어도 의식은 여전히 크리스천이다.
넷째는 교회에서 소수자로서 소외감, 고독감을 느낀 사람들이다. 유색인종으로서 백인교회에 다닌 경우, 가난한 사람이 중산층 수준의 교회에 출석한 경우, 저학력의 사람이 고학력자가 많이 다니는 교회에 나간 경우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이 아무리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해도 교회 내에서 친구를 찾지 못하며 기성의 교우들의 냉담과 교만에 지쳐서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난다, 이들은 교회를 떠난 후에 자기를 받아줄 교회를 찾아서 계속 이동하며 개인당 평균 6.5개 교회를 전전한다.
다섯째는 그들은 교회가 타락한 세상과 다름이 없다고 여기는 주류 개신교 신자와 가톨릭 신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목회자 또는 교우들과 정치적 견해가 다르고, 교회가 여성 차별, 성적 자유를 묵인하는 것에 못 견디며 불편을 느낀다.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하고 교인들과 이견으로 어울리지 못하면 바로 교회를 떠난다. 일부는 교회가 사랑이 없으며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시간과 돈을 교회 봉사에 바치지는 않는다. 그들은 믿음보다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행하는 구체적인 선행에 관심이 많고 교회보다 다른 조직이나 단체가 지역사회에서 더 많은 선행을 한다면 그들은 교회로 돌아갈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은 제 아무리 권력을 잡고 향락과 부귀영화를 누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는, 믿음 없이는, 말씀 없이는 삶의 가치와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며 공허와 고독을 견딜 수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인간은 창조주를 만나지 못하면 우상으로 기울게 된다. 그 우상은 거짓 종교를 포함하여 돈, 권력, 취미, 마약, 오락, 게임, 도박, 술과 담배, 섹스로 사람을 절망과 죽음으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이탈 교우에 대하여 거룩한 영적 고통과 책임감을 느끼며 찾기 위하여 전심전력을 해야 한다.
저자들은 이탈 교인들을 어떻게 돌아오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네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그들 가까이에서 그들의 필요를 살펴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어라.
둘째, 차분히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인생과 신앙에 대하여 질문을 던져라.
셋째, 젊은 세대에게 영적 멘토가 되어 주라. 비난과 정죄, 꾸중과 지적보다 친구가 되어서
격려하고 위로하며 용기와 꿈을 주어라.
넷째, ‘불완전한 교회’와 ‘불완전한 교우’에게 임하는 ‘은혜의 완전한, 충만함’을 전하라.
그리고 그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처럼 세상이 기다리는 교회, 세상이 신뢰하는 교회로 변화하라고 충고한다.
세상이 기다리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복음의 사랑과 진리를 행동으로 증명하고, 바른 신학을 정립하고 그 위에서 영혼을 사랑함으로 뜨겁게 전도하며, 세상의 부귀영화에 취하지 않고 순례자, 나그네, 종으로 살면서 조건 없이 베풀라 고 한다.
아무리 탈기독교시대이지만 저자들의 설문 조사대로 라면 미국교회는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
4천만 명이 떠났지만 51%의 이탈 교인들이 조건이 갖추어지고 적합한 교회가 있으면 교회로 돌아가겠다고 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미국 교회가 상처가 받은 그들을 형제자매로 영접하여 함께 교제하며 성숙하며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로 존재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2024년 1월 30일 화요일 인시
우담초라하니
*참고서적
짐 데이비스, 마이클 그레이엄, 라이언 버지 공저, 정성묵 옮김,⌜탈기독교시대 교회⌟, 두란노, 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