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137장 >
바빌론의 강가에 앉아 시온을 회상하며 울었노라.
By the rivers of Babylon we sat and wept when we remembered Zion.
추방당한 유대인의 슬픔 - 에두아르트 벤데만, 1832
기원전 931년 혹은 기원전 930년에 10개 부족이 떨어져나가 따로 세운 이스라엘 왕국은 사마리아를 도읍으로 200년 가량 존속하다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게 멸망당했다. 이스라엘의 국왕과 귀족들을 포함한 2만 7천명이 아시리아 제국의 북동쪽 변방으로 끌려간 후 역사에서 사라졌다. 히브리 10개 부족은 이렇게 소멸되었다. 아시리아는 자국인을 이스라엘로 이주시켜 잔류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통혼시켰다. 이들의 혼혈로 태어난 종족이 성경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이다.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
아시리아제국 - BC 7세기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로 구성된 유다 왕국은 이집트와 연합하여 아시리아에 대항했다. 아시리아는 701년에 유다 왕국을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나 곧 철수했다. 구약성경에는 야훼 신의 심판으로 아시리아 군사 18만 5천명이 하룻밤 사이에 몰사했다고 쓰여 있다. 아시리아의 기록에는 유다 왕이 금과 은을 바치고 조공을 약속해서 철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후대에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당시 아시리아 군대에 발진티푸스가 퍼져 철수했다고 기록했다.
기원전 671년 아시리아는 이집트 원정을 감행하여 나일강 델타지역과 수도인 멤피스(지금의 카이로) 일대를 점령했고 기원전 656년에 이집트 남부까지 정복했다. 유다 왕국은 아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에 있으므로 이 당시 유다왕국은 아시리아의 속국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원전 701년의 사건에 대해서는 아시리아 측의 기록이 맞을 것으로 보인다.
칼데아 제국
아시리아는 기원전 612년 칼데아(신바빌로니아) 제국에게 멸망당했고, 유다 왕국은 기원전 601년에 칼데아의 속국이 되었다. 다음해 유다인들은 반란을 일으켰으나 기원전 597년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칼데아의 네부카드네자르 왕은 유다 왕과 상류계급, 금속장인들과 그 밖에 8천 명을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이를 1차 바빌론 유수(幽囚)라 한다.
이때 유다 왕국을 완전히 없애지 않고 허수아비 왕을 세워 속국으로 남겨 두었는데 기원전 587년에 이 왕이 독립을 선언하고 반기를 들었다. 전쟁은 1년 6개월간 계속되었다.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유다 왕국은 완전히 멸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를 2차 바빌론 유수(幽囚)라 한다.
남아 있던 유다인이 다시 봉기했으나 기원전 582년 또 다시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이때 4만 5천명이 바빌론으로 끌려가고 나머지는 도주하여 지중해 연안 전역으로 흩어졌다. 이처럼 바빌론 유수는 3차에 걸쳐 일어났다.
유다인 포로의 이동 경로
포로들의 대이동 - 제임스 티소
바빌론 유수(幽囚)라 하면 수용소에 유폐된 죄수가 연상되지만 실제로는 유다인들에게 신앙을 포함한 자유로운 생활이 허용되었다. 유다인들이 끌려와 정착한 바빌론 인근은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비옥한 땅이여서 팔레스타인보다 살기 좋았다. 당시 바빌론은 세계 제일의 대도시로 국제무역의 중심지였다. 유다인들은 국제무역에 종사하여 인도를 거쳐 당시에 알려진 세상의 끝인 중국까지 왕래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성공해서 부유하게 살았다.
바빌론 유수기의 오리엔트 형세 - BC 6세기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가 바빌론을 점령하여 칼데아왕국이 멸망했다. 키루스 2세는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강제노역을 금지하고, 신앙의 자유를 허용했다. 기원전 538년에 키루스 2세는 포로로 잡혀와 있던 모든 종족들을 해방하고 유다인의 귀향을 허용했다.
당시 바빌론에 살던 유다인 15만 명 가운데 1차로 4만 여명이 귀향했다. 1차 바빌론 유수로부터 60년만의 귀향이었다. 무역상으로 성공해서 바빌론에 잔류한 유다인들이 귀향하는 사람들의 경비를 지원했다. 기원전 520년 페르시아 당국의 전면적인 지원 아래 2차로 42,360명이 귀향한 것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대략 절반 가까이는 바빌론에 잔류한 것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기원전 444년에 3차, 기원전 428년에 4차로 수천 명이 귀향했다. 유다인들은 키루스 왕을 메시아로 여겼다.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스라엘인과 아시리아인의 혼혈인 사마리아인이 자리잡고 있었다. 바빌론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은 이들을 잡종견(犬)이라고 부르며 멸시하고 동족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두 종족간의 분쟁이 끝임 없이 일어났고 적대 관계를 해소할 길이 없었다. 이때부터 사마리아인과 구별하여 히브리인을 유다인이라고 불렀으며, 로마에 정복된 후에는 로마식으로 유대인이라 불렀다.
페르시아 제국 - 기원전 5세기 ~ 4세기
바빌론과 유프라테스 강
바빌론 유적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 - 바빌론 유적들을 옮겨와서 전시하고 있다